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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 스스로 행복해지는 심리 치유 에세이
플로렌스 포크 지음, 최정인 옮김 / 푸른숲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꿈에서 깨니 가슴이 후련한 게 기분이 이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꿈속에서 무척 서럽게 운 기억이 떠올랐다. 꿈을 꾸는 시간 동안은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기에 무척 진지한 상황을 맞으며 서럽게 울어댔나 보다. 그 동안 내 마음 속에 쌓여 있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듯 했지만 꿈 내용이 섬세해 질수록 마음은 무거워 지고 있었다.
꿈을 무의식중에 나타난 현실의 거울이라 생각하고 해몽하는 경우가 있다. 내 안에 어떤 서러움이 깃들었는지 내 자신조차 알 수 없는 가운데 나를 더 서럽게 만든 책을 만나고 말았다. 한 권의 책에 덕지덕지 붙인 메모지가 민망할 정도로 나를 사로잡았던 책. 여성을 위한 자계서라 시큰둥한 시선을 던졌던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이었다. 미술관에 혼자서 간 적이 많기에 제목은 끌렸지만, 자계서라는 장르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한창 유행하는 심리 에세이에 여성이 어떻게 하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빤한 내용이 실려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현재의 나에 대해서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꿈에서 서럽게 울던 감정의 북받침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느낌이 들어 갈수록 감정이 격해지고 말았다.
이 책의 요점은 '여자가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다. 결혼이 늦든, 이혼을 하든, 사별을 하던 배우자나 가족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혼자가 될 때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혼자 있다는 것을 새로운 기회로 삼고 그 시간을 즐기라는 얘기인데, 과연 그것이 여성들에게 전해줄 메시지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당장 나만 보더라도 서른을 눈앞에 둔 나의 나이를 보고 긍정보다는 걱정스런 시선이 더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옆에 누군가 없다는 사실을 되레 불안해하고, 더 나아가 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 양 쳐다보는 시선들이 곱지 않다. 그런 시선들과 마주하다 보면 '내가 정말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다행히도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인간이기에 종종 외로울 때도 있지만), 나름대로 잘 보내는 터라 우울증이라든지 대인기피증이 없는 것에 감사해야 할 처지다. 그만큼 혼자인 여성이 많고, 어딘가에 종속되어야만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여성들은 혼자일 때 큰 불안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온전히 여성의 탓으로 돌릴 수 없었다. 지금껏 사회는 혼자인 여성에게 던지는 시선이 곱지 않았고, 배우자나 자녀를 갖지 않은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지 않았다. 그런 부수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여성이 혼자인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한다. 외로움과 고독은 분명 다른 것인데, 지금껏 그 시간을 자기 자신과 함께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어쩔 줄 모르며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런 여성들에게 저자는 혼자인 것이 외로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고립이나 소외나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구해 줄 남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그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심리 치유사인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이 상담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었다. 이런 경험담들은 독자에게 다양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반면 사례 위주로 나가다 보면 깊이는 없고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만의 통찰력과 경험담, 책과 영화 등 다양한 자료를 언급하며 깊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깊이에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지는 물론 여성의 삶을 넘어 과거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독을 어떻게 즐길 것이며,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처럼 잔잔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전해주는 책은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다. 어쩌면 혼자가 되는 여성의 조건 안에 내가 포함되어 있기에 깊은 공감을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껏 살아왔던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기에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이면에 자리한 내 자신과 마주하기를 외면하지 않길 바랐다.
그렇다면 어떻게 혼자인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까. 책을 다 읽었지만 콕 집어 이렇게 해야 두려움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몇몇 방법을 직접적으로 제시해 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들이 더 소중했다.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갖으며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어렴풋이 그려본 일은 독서하는 과정에서 모두 드러났다. 그 느낌을 정리하는 것도, 어떤 방법을 취하는 것도 나에겐 여전히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아껴가며 읽었던 수많은 날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 줄의 글에 울기도 하고, 한숨 쉬며 보내기도 하고, 과거와 미래를 더듬어 본 일은 색다른 경험이었고 무척 오랜만에 마주한 나 자신과의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내 마음 속에 울분과 설움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꿈속에서 서럽게 울었던 일, 한 권의 책으로 위로 받았던 일은 교묘하게 맞물려 내가 현재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뚜렷이 보여주는 계기가 되어 주고 있었다.
아끼기도 하고, 펼치는 것이 두렵기도 해서 더디게 읽은 책이었다. 내가 읽은 글이 어떠한 메시지도 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쉬워 아껴 읽었고, 현재의 나를 맞닥뜨리는 것이 두려워 피하고 싶기도 한 책이었다. 그 과정이 힘들어서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긴 터널을 지나온 듯 한 기분에 사로잡히면서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고한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에 빠지는 것은 변화할 용기가 없어서다'는 저자의 말을 인정하고,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믿음과 인내심과 나 자신을 존중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충고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타인의 도움으로 핑크빛 미래를 꿈꾸는 것 보다 내 자신에 솔직해져 가며 내가 스스로 길을 닦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이 보기 좋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최선을 다하며 내 자신에게 솔직해 지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나에게 주어진 삶이 현재하고, 그 시간은 소중함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