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언제나 네 편이야
하코자키 유키에 지음, 고향옥 옮김, 세키 아야코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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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도 얇고,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손이 닿으면 금방 읽을 것 같고 여운이 오래 가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라고나 할까. 그런 핑계를 대며 책 읽기를 미뤄 두다 정말 기분이 최악일 때 꺼내 들었다. 그제야 책 제목도 내 마음에 들어오고, 과연 이 책이 나의 기분을 어떻게 바꿔줄지 궁금했다. 띠지에 적힌 '두려움은 없애고, 자신감은 키운다!'라는 문구가 내게도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에 대한 장르 구분과 연령대에 꽤 선을 긋는 편이었다. 그러다 서서히 그런 경계를 무너뜨리니 더 다양한 책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이 있으면 무조건 보는 식이다. 이 책도 그런 호기심으로 보게 된 책인데, 기분이 최악일 때 꺼내서인지 조금 어리둥절했다. 내 감정에 대해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이 책을 대한 나의 감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낯섦'이었다. 지금껏 이런 책을 만나보지 못했다는 낯섦이 책 속에 펼쳐지는 감정의 나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게 했다. 아이들이라면 어떻게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른인 내가 참고할 수 있는 일례가 없어 당황스러웠다.

 

  책에는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많은 감정들이 드러나 있었다.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외로 많은 기분들이 들어있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감정은 일상의 경험에 따라 달라져 갔다. 좋아하는 사람의 말에 힘을 얻기도 하고, 사랑하는 강아지가 죽어 슬퍼하기도 하는 감정의 변화는 우리가 흔히 '퍼스나콘'이라고 불리는 동그란 물감 안에 표정들이 살아 있었다. 기쁨 감정들도 많았지만, 그와 비슷하게 안 좋은 감정들도 많이 드러났다. 그런 감정을 으레 피하기 마련인데, 책 속의 '나'도 그런 기분들을 한 구석에 몰아넣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그 기분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감정의 굴곡을 경험한 후에 '느껴서는 안 되는 기분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로소 갇혀 놓았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가둬 둬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 그 감정대로 자신을 표현해도 좋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나의 감정을 받아 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불안감까지 드러내도 좋다는 것을. 그 모든 감정과 경험은 짧은 글을 통해, 형태의 유무를 통한 그림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추상화 같기도 한 그림들과 사람의 얼굴을 드러나는 동그란 표정은 글과 함께 어우러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들여다보고, 감정에 충실하면서 느낀 깨달음인 '내가 나인 것이 좋아'를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초반의 '나'처럼 안 좋은 감정들은 마음속에 묻어두고 문을 닫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감정들이 내 일상에 쏟아져 들어온다면 분명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경험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런 감정들까지 그대로 느끼라는 것이다. 나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으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위로해준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못하기에 겉도는 아이들이 많고, 힘들어한다는 설명이 수긍이 가면서도 역시 나에게 대입시켜 보기란 쉽지 않다. 이런 형태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깨달음을 얻는 것도 익숙지 않았기에 두려움이 나를 더 마음의 문을 닫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른인 내가 바라보기에도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해 감정의 변화에 휘둘리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나의 감정에 얽매이는 것은 나와 더 멀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도 나의 마음을 숨기고 있고,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이 있기에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언제쯤 그 마음들을 편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언제쯤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두려운 감정을 햇볕에 내다 바삭하게 말릴 수 있을까. 어두운 마음이라고 해서 마음을 문을 닫아버리지 않도록 언제쯤 내 마음에 솔직해 질 수 있을까. 여러 감정이 생길 때마다 이 책을 꺼내 마음과의 대화를 시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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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테리 트루먼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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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니 장 루이 푸르니에의 <아빠 어디 가?>가 생각났다. <아빠 어디 가?>는 장애인인 저자의 두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14살 소년 숀의 이야기와 안락사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두 책의 주제가 비슷하긴 하지만 결코 가벼운 내용은 아니다. 그나마 <아빠 어디 가?>는 저자 특유의 익살이 있었던 반면, 이 책은 좀 더 현실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숀의 내면을 다루고 있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숀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물론, 눈 깜박임 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다. 태어날 때 뇌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이 된 숀은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아이큐는 1.2, 정신연령은 3~4개월 밖에 안 되지만 이 책의 주된 서술자는 숀 자신이다. 숀은 아무도 알 수 없고,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내면을 기록해 간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살아있다고 해도 살아있다고 인정할 수 없는 소년의 모습이지만, 숀의 내면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이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숀은 특별한 아이다. 겉모습을 긍정적인 특별함으로 봐 줄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알 수 없더라도 내면에 쌓인 인격은 보통의 소년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했고, 자신에게 찾아오는 발작에 대한 독특한 견해도 돋보였다. 한 번 보고 들은 내용을 모조리 기억하는 특별한 재능은 잠시 서번트 신드롬(자폐증 등의 뇌기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와 대조되는 천재성을 동시에 갖게 되는 현상)을 생각나게 했다. 그러나 숀은 그것을 드러낼 수 없을 뿐더러 내면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가 꺾이고 말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렇게 숀의 처지만을 생각하고 있을 수 없었다. 숀은 지금 위험에 처해 있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아빠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쌓여있다. 아빠는 숀을 사랑했지만 숀의 발작을 지켜보는 것이 힘겨워 남은 가족 곁을 떠났고, 숀이 고통에 쌓인 삶을 살고 있다 생각했다. 숀 또한 자신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죽고 싶지 않았다. 가족에게 짐이 될지언정, 내면에 펼쳐지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며 키워가고 싶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아빠는 숀이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고통을 끝낼 수 있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족을 떠난 이기적인 면이 있는 아빠는 숀의 이야기를 통해 시인이 되고, 상을 받고, 방송까지 하니 가족들 모두가 고운 시선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숀이 학교에 나가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가려면 아빠가 버는 '돈'이 필요하기도 했다. 숀 자체만으로 엄청난 돈이 들었으므로.

 

  그러다 아빠가 방송에 나와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일이 생긴다. 뇌 손상을 입은 두 살배기 아들을 살해한 남자의 이야기를 숀의 아빠는 전면에서 다룬다. 어떠한 것이 진정한 답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얘기를 다루고, 숀에게도 그런 위기가 닥친다. 가족들이 모두 여행을 가고 없는 사이 보모에게 맡겨진 숀을 아빠가 찾아온다. 그리고 괴로운 듯 숀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늘어놓는 아빠의 독백이 이어지고,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어떠한 결말이 나던 간에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긴장감을 잔뜩 안겨준 결말은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숀의 내면은 살고 싶다는 욕망과 천진난만하고 특별한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겉모습은 감정도 표현할 수 없고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한 모습이다. 그런 숀의 생명을 아빠라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 비난과 긍정을 던질 수 있을까. 정말이지 답이 없는 이야기일 뿐더러 생명 존중과 도덕성이 따라오는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남 얘기하듯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 법이 통과했고, 첫 존엄사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존엄사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존엄사 판단 기준과 그에 부합되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문제점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그러나 그에 대한 어떠한 입장을 취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상황이 내가 된다면 어떠한 결정을 내릴 지도 모르기에 그저 답답할 뿐이다. 생명은 소중하고, 인간의 법으로 생명을 논한다는 것이 순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알지만 과연 내가 그런 상황에 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숀의 아빠처럼, 혹은 그런 가족을 둔 수 많은 사람들처럼 마음아파 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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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백년 전 악녀일기가 발견되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6
돌프 페르로엔 지음, 이옥용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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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제목만 본다면 내용이 심상치 않을 것 같은데, 겉표지를 보면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겉표지의 소녀는 악녀로 보이지 않을 뿐더러 고뇌에 차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추천사를 보니 불편한 내용이라고 한다. 흑인 노예가 물건처럼 거래되던 19세기 네덜란드 소녀의 이야기인데, 인물들만 저자가 꾸며냈을 뿐 수리남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사람들은 불편하다고 하고, 악녀라고 불리는 걸까. 두껍지 않은 책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내 눈길이 잠시 혼란스러웠다.
 

  글은 짤막한 단락으로 채워져 있었다. 산문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한 글 속에는 천진난만 한 14살 소녀가 등장한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며 원하는 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한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10대 소녀지만 그녀의 글을 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녀는 14살생일 선물로 아빠에게 노예 꼬마를 선물 받는다. 그것도 쟁반 안에 리본을 단 채 웅크리고 있는 노예 소년 꼬꼬. 다른 아주머니는 노예에게 쓸 채찍을 선물로 주었다. 14살 소녀에게 흑인 노예를 선물로 주는 시대. 그 시대의 14살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갔던 것일까.

 

  소녀의 내면은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난다. 노예 소년을 받은 기쁨도, 그 소년을 괴롭히는 것도,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노예들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모든 것이 소녀를 통해 전해진다. 우리가 일상을 얘기하듯 흘러가는 소녀의 고백은 충격적이다. 부족한 것 없이 사는 소녀와 노예를 물건 다루듯이 다루는 어른들. 그 안에서 소녀가 저지르는 행위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세속 된 행위였다. 노예에게 심하게 굴어도 나무라는 어른이 없고, 맘에 안 들면 팔아버린다는 생각을 지지해 준 것도 어른이었으니 나름 순수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뻔했다.

 

  소녀는 부모님이 교환한 노예를 임신시킨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친척 오빠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녀는 충격을 받지만 곧 자신에게 펼쳐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 바쁘다. 소녀에게 흑인 노예는 그냥 물건일 뿐이고, 거리낌 없이 팔 수 있는 존재 이상의 것이 되지 못했다. 엄마가 아빠와 함께 사는 흑인 노예에게 흉터를 만들어 주어도, 자신이 좋아한 오빠가 흑인 노예와 애를 낳고 여행을 가도 일상의 한 부분일 뿐, 그 안에 내포된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그러기엔 소녀가 어리기도 했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옳게 가르쳐줘야 할지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책을 읽고 보니 추천사에서 언급되었던 '불편하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것을 알았다. 과연 이 이야기를 19세기에만 국한 시킬 수 있을까. 저자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인 수리남을 1970년대에 여행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 광경을 보고 책으로 써 낸 것이다. 저자가 수리남을 여행한 시기가 현재와 결코 가깝다 말할 수 없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금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여전히 인종차별은 현 시대에도 팽배해 있고, 대 놓고 거래할 때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14살 소녀는 자신의 행동이 악한 행위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지만, 소녀의 글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역사의 치부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현재에도 비일비재한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유색인종의 고충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행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독자에게 커다란 짐을 남겨준 이 책의 이야기는 여전히 해결 방법이 없다. 당장 내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욕망을 따라가다 보면 다른 인간에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뿐이다. 나와 우리의 책임도 아니며 역사의 한 자락일 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음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만 정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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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네버랜드 클래식 1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엘 그림, 손영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이상한 나라 앨리스>만큼 많이 들어본 명작이 있을까. 책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에 상관없이 늘 궁금증을 자극하고, 새롭게 번역 되어 나올 때마다 추억을 되새겨 주는 책. 아직 앨리스를 만나지 못해서 깊은 애틋함은 없었지만, 앨리스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늘 열등감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언제쯤 읽고 속을 후련히 만들 수 있을까란 의문에 답을 해 주었던 것은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를 만나고서다. 내가 놓쳐버린 명작들을 읽게 해주었고, 현재의 내가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작품들을 만나다, 오랫동안 읽어보고 싶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심으로 돌아갈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앨리스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입에 오르내리는 것일까. 책장에 빨려 들듯 읽어 나가는 나의 눈길이 초조해 보일 정도였다. 거의 최근에 루이스 캐럴이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부 교수였다는 사실을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학장의 딸 '앨리스'에게 들려 준 이야기가 이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터라 호기심은 최고조였다. 앨리스가 흰 토끼를 따라 토기 굴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평범한 세계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나 이상했으면 앨리스 앞에 '이상한 나라'라고 붙였을까. 그러나 내가 책으로도 경험하지 않은 평범하지 않은 세계가 이렇게 나를 당황스럽게 할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 처음에는 앨리스를 따라가느라 숨이 찼고, 나중에는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약간 경계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떠한 이야기가 펼쳐지더라도 안정된 구조 안에서 흘러갈 거라는 나의 예상을 철저하게 깨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책이고(요즘은 어른들에게도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지만) 아이들의 불규칙(어떠한 것이 규칙적이란 말인가!)적인 상상력을 자극해 준다는 사실을 잊고 오로지 나의 시선에서 보게 된 결과였다. 나의 수준에서, 나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던 앨리스였기에 녹록할 리가 없었다.

 

  앨리스를 따라 절반 정도 여행을 할 때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정신없이 등장하는 괴상한 등장인물들과 계획되지 않은 앨리스의 방향(발걸음이든, 앨리스가 가고자 하는 길이든)은 순간적인 상상력에서 나왔다는 희미한 추측이었다(아니나 다를까 루이스 캐럴은 이 이야기를 쓸 때,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 보지 않고 우선 앨리스를 토끼 굴로 내려 보낸 후, 그때그때 사건을 엮어 나갔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앨리스의 이야기를 앨리스의 수준에서 따라가려면 대상이 누구인지, 그들의 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나처럼 나이를 먹은 어른은 아니기에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상상하며 그들의 시선이 조금 느껴지기도 했다. 촘촘한 구조를 원하기보다 조금은 헐거워도 신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좋아할 거라 생각하니 나를 옥죄던 불발 같던 이야기의 흐름은 안정되기 시작했다. 엉뚱하고 생뚱맞다는 생각을 잠시 밀쳐둔 채 앨리스의 발걸음을 따라 앨리스가 보는 세계에 관심을 돌리자 아이들이 앨리스의 시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쉼 없이 만나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등장인물들. 앨리스가 이상한 여행을 하도록 자극한 흰 토끼부터 못생긴 공작부인, 웃고 있는 체셔 고양이, '당장 목을 베라'라고 말하는 여왕 등 모두들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동화 속의 등장인물들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괴상할 것도 없었는데, 앨리스라는 존재는 이미 내게 너무나 친숙했고 이제야 앨리스를 알아가려는 시도를 하다 보니 너무 진지하게 임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앨리스가 만나는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앨리스를 현실의 아이로 끌어다 놓고 이상한 여행을 하는 것을 그야말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책의 제목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임에도 '앨리스'와 '이상한 나라'를 동시에 인식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 내가 느꼈을 허탈감과 의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실망감이 교차한다. 내가 상상한 앨리스, 내가 만나고 싶었던 앨리스는 이런 모습이 아니라는 제멋대로의 판단으로 엉망이 되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앨리스가 체험한 괴상한 여행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난감해 하고 있던 찰나 잠에서 깨어난 앨리스를 만났으니 내 마음은 오죽했을까. 다짜고짜 내 책장에서 주석이 달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꺼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였다. 엄밀히 말하면 앨리스와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앨리스만의 독특함과 발랄함을 따라가지 못했고, 즐기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고, 누군가에게 설명을 요하고 내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나를 다독이는 것 또한 새로운 난관으로 다가왔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한 번의 만남으로 앨리스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앨리스에 집착을 하고, 내가 만들어 놓은 세계로 끌어들이려는 편협한 생각이 있더라도 주석아 딸려 있든 새로운 번역본이든 앨리스를 어떤 마음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 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 게 되었다. 동화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순수한 내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어른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앨리스와의 만남이 당혹스러웠더라도 다음의 만남이 있다는 확신 때문에 마음이 편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앨리스를 내 안에 가두려 하지 말고, 나만의 앨리스를 만들어가며 내면을 살펴야 한다는 깨달음이 책을 읽고 난 뒤 한참인 지금에서야 나의 내면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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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주 마이리뷰 당선작
 




타샤 할머니가 숫자를 알려 준다면... - 태극취호
<1은 하나>
타샤 할머니의 책을 거의 다 읽어서 새로운 번역본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번역본이라고 해도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들이 전부였지만,동화책이라도 한 권씩 모으며 타샤 할머니를 추억하고 싶었다. 그만큼 타샤 할머니는 나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었고, 타샤 할머니의 흔적을모아보고 싶었다. 그런데도 출간 소식이 들리지 않아 기다리고 있던 중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하니<1은 하나>가 출간된 사실을 알고 바로 구입했다. '광고라도 좀 해주지' 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움도 잠시, 책을 받고 보니 타샤 할머니의 열혈 팬이 아니면 구입하기...

 

 

 

- 대박이다!

알라딘 로그인을 했다가 적립금 5만원이 들어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만원이라 함은....

리뷰어 사이에서 꿈의 마일리지로 불리운다는 알라딘 이주의 리뷰 당첨!!!

바로 가서 확인해 보니 정말 내가 당첨이 되어 있었다!

당첨된 책은 타샤 튜더의 <1은 하나>.

오잉? 정말 순식간에 읽고 아주 편안하게 휘리릭 쓴 서평인데...

이 책이 되었다!

알라딘에서 구입하고, 신간이어서 뽑아 주었나 보다!

앗싸뵤~~!

책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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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6-13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리뷰에 축하한다고 댓글 달고 나니 이게 있네요.^^
알라디너에겐 꿈의 마일리지~~ 맞는 말이죠.
난 1년에 딱 한 편 당선인데 올핸 아직이에요.ㅜㅜ

안녕반짝 2009-06-13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3년 전에 되고 안된 것 같아요. 이번이 두 번째인가.. 세 번째인가 기억이 가물가물 해요. 알라딘은 정말 되기 힘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