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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ㅣ 네버랜드 클래식 1
루이스 캐럴 지음, 존 테니엘 그림, 손영미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이상한 나라 앨리스>만큼 많이 들어본 명작이 있을까. 책을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에 상관없이 늘 궁금증을 자극하고, 새롭게 번역 되어 나올 때마다 추억을 되새겨 주는 책. 아직 앨리스를 만나지 못해서 깊은 애틋함은 없었지만, 앨리스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늘 열등감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언제쯤 읽고 속을 후련히 만들 수 있을까란 의문에 답을 해 주었던 것은 <네버랜드 클래식 시리즈>를 만나고서다. 내가 놓쳐버린 명작들을 읽게 해주었고, 현재의 내가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작품들을 만나다, 오랫동안 읽어보고 싶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동심으로 돌아갈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앨리스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입에 오르내리는 것일까. 책장에 빨려 들듯 읽어 나가는 나의 눈길이 초조해 보일 정도였다. 거의 최근에 루이스 캐럴이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부 교수였다는 사실을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학장의 딸 '앨리스'에게 들려 준 이야기가 이 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터라 호기심은 최고조였다. 앨리스가 흰 토끼를 따라 토기 굴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평범한 세계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나 이상했으면 앨리스 앞에 '이상한 나라'라고 붙였을까. 그러나 내가 책으로도 경험하지 않은 평범하지 않은 세계가 이렇게 나를 당황스럽게 할 거라고 예상치 못했다. 처음에는 앨리스를 따라가느라 숨이 찼고, 나중에는 예측할 수 없는 세계를 약간 경계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떠한 이야기가 펼쳐지더라도 안정된 구조 안에서 흘러갈 거라는 나의 예상을 철저하게 깨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책이고(요즘은 어른들에게도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지만) 아이들의 불규칙(어떠한 것이 규칙적이란 말인가!)적인 상상력을 자극해 준다는 사실을 잊고 오로지 나의 시선에서 보게 된 결과였다. 나의 수준에서, 나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던 앨리스였기에 녹록할 리가 없었다.
앨리스를 따라 절반 정도 여행을 할 때쯤 그런 예감이 들었다. 정신없이 등장하는 괴상한 등장인물들과 계획되지 않은 앨리스의 방향(발걸음이든, 앨리스가 가고자 하는 길이든)은 순간적인 상상력에서 나왔다는 희미한 추측이었다(아니나 다를까 루이스 캐럴은 이 이야기를 쓸 때, 다음 이야기를 생각해 보지 않고 우선 앨리스를 토끼 굴로 내려 보낸 후, 그때그때 사건을 엮어 나갔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앨리스의 이야기를 앨리스의 수준에서 따라가려면 대상이 누구인지, 그들의 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나처럼 나이를 먹은 어른은 아니기에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상상하며 그들의 시선이 조금 느껴지기도 했다. 촘촘한 구조를 원하기보다 조금은 헐거워도 신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좋아할 거라 생각하니 나를 옥죄던 불발 같던 이야기의 흐름은 안정되기 시작했다. 엉뚱하고 생뚱맞다는 생각을 잠시 밀쳐둔 채 앨리스의 발걸음을 따라 앨리스가 보는 세계에 관심을 돌리자 아이들이 앨리스의 시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쉼 없이 만나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등장인물들. 앨리스가 이상한 여행을 하도록 자극한 흰 토끼부터 못생긴 공작부인, 웃고 있는 체셔 고양이, '당장 목을 베라'라고 말하는 여왕 등 모두들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동화 속의 등장인물들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괴상할 것도 없었는데, 앨리스라는 존재는 이미 내게 너무나 친숙했고 이제야 앨리스를 알아가려는 시도를 하다 보니 너무 진지하게 임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앨리스가 만나는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앨리스를 현실의 아이로 끌어다 놓고 이상한 여행을 하는 것을 그야말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책의 제목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임에도 '앨리스'와 '이상한 나라'를 동시에 인식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 내가 느꼈을 허탈감과 의문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실망감이 교차한다. 내가 상상한 앨리스, 내가 만나고 싶었던 앨리스는 이런 모습이 아니라는 제멋대로의 판단으로 엉망이 되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앨리스가 체험한 괴상한 여행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난감해 하고 있던 찰나 잠에서 깨어난 앨리스를 만났으니 내 마음은 오죽했을까. 다짜고짜 내 책장에서 주석이 달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꺼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될 정도였다. 엄밀히 말하면 앨리스와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앨리스만의 독특함과 발랄함을 따라가지 못했고, 즐기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고, 누군가에게 설명을 요하고 내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나를 다독이는 것 또한 새로운 난관으로 다가왔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한 번의 만남으로 앨리스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앨리스에 집착을 하고, 내가 만들어 놓은 세계로 끌어들이려는 편협한 생각이 있더라도 주석아 딸려 있든 새로운 번역본이든 앨리스를 어떤 마음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 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 게 되었다. 동화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순수한 내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어른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앨리스와의 만남이 당혹스러웠더라도 다음의 만남이 있다는 확신 때문에 마음이 편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앨리스를 내 안에 가두려 하지 말고, 나만의 앨리스를 만들어가며 내면을 살펴야 한다는 깨달음이 책을 읽고 난 뒤 한참인 지금에서야 나의 내면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