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군화>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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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군화 ㅣ 잭 런던 걸작선 3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을 마주할 때만 해도 남다른 포부가 있었다. 소설 장르 안에서라도 다양한 책 읽기를 통해 사고 확장을 꾀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자주 접하지 않는 장르였고, 모르는 것이 많았기에 책 읽기를 통해 내가 많은 것들을 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서문을 볼 때만 해도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인지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나갈수록 내가 초반에 먹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 쟁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조차 없는 혼란스러움이 내재했다.
이 책은 서기 27세기 통일된 사회민주주의의 한 문헌학자가 에이비스 에버하드의 원고를 공개하며 시작된다. 원고는 에이비스가 그녀의 남편이자, 120세기 초 노동자 대중을 위한 투쟁에 목숨을 바친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이었다. 일대기가 쓰인 시기는 미국에서 과두지배체제(Oligarchy,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이 사회의 정치, 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하는 정치 체제)가 일어난 1912년과 1932년 사이라고 한다. 옮긴이의 글을 보면 이렇게 간략히 요약이 되지만, 일대기를 읽는 나는 이런 요약의 이면을 살펴볼 수 없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 뿐이었고, 사회주의 사상이라든가 자본주의가 어떠한 병폐를 낳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도 내게는 벅찼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회주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태백산맥>의 몇몇 인물들이 떠올랐을 뿐, 그 이상으로 나가지 못했다. 기본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책을 통한 얻음이 배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뼈저리게 깨다는 계기를 마련해줄 뿐이었다. 이야기의 흐름은 어느 정도 짚어나가더라도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데서 오는 동떨어짐은 끝끝내 이겨내지 못했다. 어니스트가 어떠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과두제의 선봉에 선 사람들을 토론으로 뭉갰는지에 대한 여부는 여전히 뜬구름 상태로 남아있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어도 배경지식이 없어 헤맬 뿐,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이 거의 없었다.
거기다 27세기에 원고가 발견된다는 설정 또한 이질적이었다. 어니스트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예언들이 현재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도무지 27세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문서가 발견된 당시의 이야기는 책에 거의 나오지 않고 주석을 통해 대부분 드러났다. 주석이라는 것이 간단한 설명을 해주는 것도 있고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이 들어가 있는 주석이 있는 반면, 원고가 발견된 당시의 시선으로 덧붙여진 것도 많아 시선의 흐트러짐이 잦았다. 원고가 쓰인 20세기 초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시각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27세기의 시선으로 봐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27세기의 시선으로 보기에 아는 것도 없을 뿐더러 현실감이 떨어졌고, 20세기 초를 대상으로 바라보기에도 가까우면서도 먼 과거로 느껴졌다.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허구와 실재가 공존하는 소설 내용을 이해하기엔 나의 지식이 부족했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나는 무엇을 읽는지, 무엇을 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기란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소설의 이야기 중에 당시의 미국 현실을 반영한 면이 많아 당시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 힘없는 노동자의 이야기는 현재에도 비일비재 했고,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계적인 경제난에 과두제에 대한 비판의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사회주의는 이상일 뿐이라는 의견이 들려와도 그 사회에 대한 열망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은 이상과 현실이 공존하지 못한 공백을 메울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핍박당하고 힘없는 하층민들과 소수의 사람이 독점하며 풍요로운 부유층, 그 사이에서 적절한 줄타기를 통해 배를 불리고 있는 중산층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현재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책 속의 몇몇 인물들만 떠올려도 사회주의의 이상이 현실과 접목되지 못하는, 반대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흡수하지 못하는 세계에 맞닥뜨리는 것을 처절하게 경험하게 된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내가 무엇을 꾀할 수 있을까. 어느 곳에 기울이지도 못하고, 논쟁의 중점에 서서 통찰력을 발휘할 수도 없는 나의 부족함과 힘없음에 망연자실 할 뿐이었다.
어니스트의 연대기를 기록한 에이비스나 어니스트나, 그들이 추구했던 사회주의의 붕괴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편치 않았다. 빤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희망을 걸어야 할지 알 수 없을 뿐더러 나만의 생각을 캐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느 편에 서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리는 존재감이 없는 민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숨만 터져 나왔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고, 내가 겪은 것은 무엇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혼란스러움이 나의 내면을 지배했다. 사회주의, 자본주의,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 따위는 들어올 틈이 없이 사라지고 있는 '나' 앞에서 마냥 부끄러웠다. 나의 내면을 어지럽히고 사라져 버린 <강철군화>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자본주의 체제의 전개에 대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점.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어느 정도 기본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우리를 약하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여러분이 부호계급의 힘에 맞서 더 강해지는 건 아니지요. <1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