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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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지즈 네신의 작품을 읽으니 다른 작품도 읽고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책장을 뒤져보았다. 풍부한 책을 자랑하고 있는 책장에서(도대체 언제 다 읽을는지) 아지즈 네신 책 두 권을 찾아내 바로 읽었다. 직전에 저자의 풍자소설을 읽은 터라 이 책도 비슷한 책인 줄 알았다. 서문을 보고 아지즈 네신이 유배 생활에 대한 회고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세 번째로 만나는 그의 작품이지만 각각 성격이 다른 작품 세계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작가 소개를 통해 글쓰기의 범주를 알았지만 직접 마주하고 나니 그제야 실감이 밀려온다.
 

  간단한 책 소개를 보고 암울한 내용일 거라 단정 지었다. 작가가 유배 생활을 했다면 유쾌한 내용을 아닐 테고, 짐짓 도스또예프스끼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생각하며 그와 비슷한 내용이지 않을까 짐작했다. 그러나 아지즈 네신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섣부름도 잠시, 저자의 힘든 유배 생활에 아랑곳없이 즐겁게 읽고 말았다. 저자 자신도 '고통스럽던 시절도 세월이 흘러 추억으로 회고될 때는 조금은 달콤하게 떠오르는 법'이라 했으니 유쾌한 마음으로 저자의 추억을 따라갔다. 유배지의 도착으로 시작을 알리는 책장을 조심스레 넘기다 킥킥거리며 읽는 나를 보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의 글에는 익살이 넘쳐났다. 풍자 문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답게 유배 생활을 회고하는 글에서도 재치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유배 생활은 처절했다. 관광을 온 것도 아닌 낯선 도시에서 생활이 편할 리 없겠지만,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알려진 자신의 이름과 유배를 왔다는 딱지는 늘 붙어 다녀 모든 사람들이 그를 회피했다. 친구들은 물론, 낯선 사람들까지 저자를 피하는 통에 고충은 더욱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관할 파출소에 매일 사인을 하러 가야 하는 일 이외에 특별한 일거리가 없는 그는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았고, 힘겹게 받는 지인들의 보조로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책의 전반부에 걸쳐 드러난 그 시절의 배고픔을 보고 있노라면, 이 책의 제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야 하는지에 대해선 누구나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런 환경 가운데도 저자는 꿋꿋했다(꿋꿋함을 빼면 유배 생활에 남는 게 없었다). 오히려 독자를 안심시키고 위로하듯 유배 생활의 일부를 솔직하지만 처지지 않도록 써내려 간다. 저자의 고충이 가슴 시리게 다가오면서도 유배 생활을 견뎌 낸 시간을 회피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지켜보는 것 밖에 없지만, 그런 지켜봄을 통해 오히려 내가 더 즐거워졌다. 특히 저자가 유배 생활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본 온천에서의 일화는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웃다가 서럽게 운다는 웃음을 실감하게 되는 사연이었는데, 이미 지난 일이니 무거운 마음은 털어내자는 생각으로 마냥 즐겁게 웃었다. 그런 사연을 이렇게 쓸 수 있는 저자에 대해 경외감과 함께 꿋꿋하게 잘 견뎌 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자신을 배척하고 이용하며 벌레 보듯 피하는 곳에서도 도움의 손길이은 있었고, 나름대로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절망하지 않고 희망의 날을 기다리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런 마음으로 버텨낸 시간들은 참으로 귀중했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기관이나 사람들에 대해 비난을 하기보다 현재에 충실한 모습(늘 배고프다는 소리조차) 자체가 희망이 되어 주었다.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유쾌하게 써 내려간 필치도 한 몫 했지만, 자신의 아픈 과거를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되레 용기를 얻었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개정판을 내면서 자신이 왜 유배를 떠나야 했는지에 대해 말함으로 책은 마무리 된다. 그 이유라는 것이 지금은 이해를 이끌어 내지 못한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난처한 상황에서 진정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런 힘들었던 세월을 이겨낸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을 통해 삶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시각을 키워야 한다. 웃다가 넘겨버릴 수 있는 책이지만, 좀 더 깊은 곳을 내려다보면 숨겨진 또 다른 의미를 알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보며 현재의 세계의 자유를 만끽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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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남긴 한 마디 - 아지즈 네신의 삐뚜름한 세상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19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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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낯선 터키 작가 아지즈 네신은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을 통해 알게 되었다. 독특한 소설이란 기억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만난 <개가 남긴 한마디>는 아지즈 네신이란 작가의 다양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만나 그의 첫 작품은 소설이었기에 풍자적 성격을 띤 <개가 남긴 한마디>는 한 작가의 작품이란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출간되었지만, 동화를 읽는 느낌에 어른들의 세계를 비꼬는 것이 많아서였다. 차츰차츰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런 점을 밀어내니 작품 본연의 색깔이 드러났다.
 

  15편의 단편은 풍자를 드러내고 있어 여러 가지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웃기도 하고, 어이없어 하면서도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책장을 놓을 수 없는 흡인력 때문에 순식간에 읽어버렸지만, 단편의 내용들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먼저 든 생각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이해여부와 어른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창피함이었다. 소설이더라도 현실에 대한 단점을 들추어내니 긍정적인 시선일 리가 없었다. 감출 수 있다면 감추고 싶었고,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의 세계가 꼭 이렇지만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 사이에서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책 내용들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 책들에는 동물들이 무척 많이 나온다. 이솝우화가 자연스레 떠오를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갖가지 동물들은 어른들의 세계를 신랄하게 비꼰다. 파디샤(이슬람권 국가의 군주)를 뽑는 까마귀하며 국세청 부활의 신화를 이끈 고양이,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원숭이 등 인간의 삶에 밀접한 형태로 나타나 모순과 부패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오히려 동물의 눈에 비친 인간의 세계가 더 또렷하고, 인간끼리 얽혀있는 세상은 아둔해 보일 정도였다. 물질만능, 욕심, 권력에 치우친 인간의 모습은 어느 장단에 장단을 맞추며 읽어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이 책을 읽고 찔림을 받았다면,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면서 무언가 석연치 않다면 그냥 읽고만 넘길 것이 아니라 변화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상적인 것이 없어 보였다.

 

  우화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스토리의 맥락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으나 읽는 재미를 던져주는 목적은 충분했다. 독자에게 던져주는 메시지 전달도 정확했고, 비교적 자주 접하지 못한 풍자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이끌기도 했다. 허구와 사실을 적절히 섞어낸 내용은 청소년층뿐 아니라 성인 독자들도 충분히 흡수할 만한 내용이었다. 긍정적인 시각이 아닌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간세계를 비꼬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나의 모습과 위치, 더 나아가 내가 속해있는 사회의 일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지나쳐 버릴지 모르지만, 조금 다른 각도로 지켜보면 충분히 나의 이야기가 되고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그런 사실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은 1958년에 출간 되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읽었음에도 현실과 다를 바 없는 내용들에 놀라 다시 한 번 훑어보게 되었다. 그 놀람은 저자의 안목에 대한 감탄이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현재와 별 차이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지만, 언제까지고 책 내용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이미지로 각인되지 않도록 조그마한 변화를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풍자문학으로 지나치기엔 석연치 않은 것들이 나의 내면을 어지럽혔다. 이런 풍자가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부정하지 못하고 씁쓸한 미소만 날리는 내가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아지즈 네신의 풍자는 신랄하긴 해도 독자에게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조금씩 작가들이 이런 문학을 쓸 소재가 닳아지게 하는 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웃음 뒤에, 찔림 뒤에는 그런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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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날들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2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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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인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었다. 공휴일밖에 늦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라 오랜만에 늘어지게 잠을 잤다. 아침 일찍 언니와 형부는 조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고, 덕분에 조용히 늦잠을 잤다. 깨어보니 12시. 집은 그야말로 적막했고, 일어나서 창밖을 보니 날씨가 무척 화창했다. 잠시 잠으로 오전을 보내버린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허리가 아플 정도로 잠을 잔 뒤라 기분은 그럭저럭 상쾌했다. 화장한 날씨에 집에 있는 내 신세가 조금 처량하기도 했지만 그런 푸념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어서 부랴부랴 책을 펼쳤다. 그 동안 게으름을 부리느라 읽지 못한 책이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가장 먼저 꺼내든 책은 상뻬 책이었다. 읽을 순서를 재촉하는 책들이 여전히 많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상뻬 책으로 워밍업을 하고 싶었다. 제풀에 꺾여 지치는 것보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다른 책들을 즐겁게 읽고 싶었다. 최근에 구입한 상뻬의 큼지막한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졌다. 똑같은 데생일지라도 큰 책에 그려진 상뻬의 데생이 더 마음에 든다. 시각 더 트이고 그 순간만큼은 데생 속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색色도 없이 펼쳐지는 선의 향연은 데생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상뻬의 데생을 보아온 사람들은 한 페이지만 보더라도 이것이 상뻬 데생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데생이던 간에 상뻬만의 독특한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다.

 

  상뻬의 여러 작품을 보았지만, <아름다운 날들>은 그 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늘 대하는 상뻬의 데생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며 지나칠 뻔 했는데, 기존의 작품보다 더 발랄해진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어지럽고 빽빽이 들어찬 데생 속에는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즐거움일 수도 있고, 오늘 내가 맞이한 휴일의 화장함과 같은 흥분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얘기하는 인물들은 주변과 상반되는 경우도 있었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분위기 속에서 몇 줄의 대사 같은 글을 던져주는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기도 했고, 모두가 어두운 표정에 혼자만 유쾌한 표정을 짓고 있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는 상뻬의 의도를 돋보여 주었다. 유머에 더 빛을 발했고, 생뚱맞음에 날개를 달아 주었으며, 당황스러움의 능숙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제목 때문인지 배경이 좀 더 풍부한 상뻬의 데생 집은 눈요깃거리가 풍부했다. 배경을 실컷 보다 대화하는 사람들을 찾기도 했고, 대화하는 사람들을 찾다 배경을 보는 시각을 넓혀가기도 했다. 무엇보다 데생을 보면서 그 상황에 나를 대입시킬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때로 상뻬의 의도가 이해가 안가는 데생을 만나기도 하지만, 보고만 있어도 그 안에 몰두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해가 안가는 데생을 만날 때면 한참을 바라보다 상황 속으로 나를 들여보내기도 하고, 이해가 안가면 그냥 넘기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오늘 같이 날씨가 좋은 날에는 좀 무겁더라도 야외에서 상뻬의 데생집을 펴놓고 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좋은 곳에서 봐도 좋고, 커피향이 그윽한 카페에서 봐도 좋았을 것이다.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은 상뻬의 데생집을 그렇게 어느 곳에나 어울린다. 그래서 더욱 더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데생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말하는 것도 힘이 들지만 소소한 일상과 함께 얘기하는 것이 좋다. 큼지막한 도화지 속에 펼쳐진 그의 데생은 그렇게 나를 또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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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 - 화보와 비하인드 스토리 트와일라잇
마크 코타 바즈 지음 / 북폴리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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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 소설을 접한 시점은 영화관에서 상영이 끝난 후였다. 책을 읽으니 미치도록 영화가 보고 싶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화를 찜찜한 기분으로 보았다. 영화는 내가 만들어 놓은 세계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찜찜한 기분은 실망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화질이 엉망이라(불법 루트로 촬영된 영화였기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불쾌해 하고 말았다. 나의 불만에 영화를 본 사람들은 나름 괜찮았다고 하니 더욱 더 영화가 궁금해 DVD 발매일 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 도중에 이 책이 나왔으니 어찌나 반갑던지. 제대로 된 영화를 보지 못한 아쉬움과 DVD 발매일의 기다림 가운데 딱 맞게 내게 온 책이었다.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눈에 불을 켜고 책장을 넘길 정도지만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였고, 소설의 이미지만 가득히 남아 있어 이 책 또한 나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소설 속의 인물들을 더 부각시켜 주는 일이었다.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화보와 비하인드 스토리'이기 때문에 욕구충족은 점점 멀어지고 말았다. 영화 촬영 현장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적었다. 영화 촬영에 대해선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다만 '저 장면은 이렇게 만들었겠지'라며 추측할 뿐이었기에 상세한 설명은 나의 관심을 더 밀어내고 있었다. 오로지 화질이 좋은 DVD가 도착하길 바랐기에, 이 책의 존재는 조금 묻혀진 듯 했다.

 

  그렇게 읽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을 때, 드디어 트와일라잇 DVD가 발매되었고 책은 잠시 제쳐둔 채 DVD를 보다 경악하고 말았다. 이렇게 화질이 좋고, 괜찮은 영화를 인터넷으로 떠도는 화질이 낮은 영화를 보고 판단해 버린 섣부름 때문이었다. 화질이 낮은 영화를 보며 온갖 험담을 했는데, DVD의 영화는 그야말로 새로운 영화를 보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로 훌륭했다. 거기다 '화보와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보았던 세세한 장면 묘사가 기억이 나서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장면 비교에 매력을 느껴 다시 책을 꺼내 들어 읽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영화장면을 각인시키고 책을 보니 탄생배경이 무척 흥미로웠다. 영화 촬영에 대한 문외한은 여전했지만 영화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어 색다른 묘미를 발견해가고 있었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책과 영화를 모두 봐야 한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이 책을 보고 영화를 한 번 더 본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독자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상속의 트와일라잇을 영화와 비교해보며, 촬영진들은 그 내용을 어떻게 녹여내려 했는지 애쓰는 모습을 본다면 영화에도 애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에 대해 높은 평을 주지 않았던 이유는, 책 속의 묘사와 내가 간직한 상상속의 세계를 늘 영화는 제대로 끌어내어 주지 못한 데서 오는 불만이었다.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늘 원작에 멀어지고 변형되어 지는 영화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트와일라잇은 달랐다. 캐서린 하드윅 감독은 원작에 충실하려 애썼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들을 존중하며 소설의 트와일라잇을 영상으로 옮기는데 온 힘을 다했다. 여 감독이어서 더 꼼꼼했다는 편견보다 같은 여자이기에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잘 이해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책과 영화만 봤더라면 여전히 트와일라잇의 환상속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하고 나니 영화 밖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트와일라잇을 읽고 환상에 빠져 지낸 시간이 무척 길었는데, DVD를 보고 나서 또 다시 병이 도지려 할 때 '비하인드 스토리'가 적정선을 유지시켜 주었다. DVD를 보고 있으면 촬영 현장의 뒷얘기가 생각나고,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영화장면이 생각이 나 현실과 환상세계를 부지런히 오갔다. 그러나 트와일라잇의 환상속에 갇히고 싶어 하고 자신의 환상을 깨트릴 생각이 없다면 이 책의 존재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촬영 현장을 보면서 얼마나 원작에 충실했는지, 책 속의 분위기와 같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을 알고 나면 소설이라는 사실을 자각함에도 환상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트와일라잇의 저자도 꿈속에서 힌트를 얻어 소설을 썼다고 할 정도였으니, 독자들이 갖고 있는 환상이 어떨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환상을 깨어주는 동시에 현실로 끌어내는 작업을 한 트와일라잇 화보와 비하인드 스토리는 열렬한 팬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니 선택은 각자가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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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를 리뷰해주세요.
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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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 나니 괜히 빵을 먹기 전에 요리조리 살펴보게 된다. 지금껏 먹어왔던 평범한 빵과 별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독특한 빵집을 알고 나니 미심쩍은 생각이 든다. 우리 동네에서 파는 빵을 먹어 보았지만 뭔가가 달라지는 일 없이 포만감만 느껴졌으므로 미심쩍은 생각은 떨쳐 버렸다. 빵의 맛과 빵의 효과로만 가늠할 수 없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특별함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빵집이 빵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 이외의 목적이 있다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적어도 한 소년에게는 피난처가 되어 주었던 위저드 베이커리. 그곳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무희라는 이복동생을 성추행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소년은 집을 뛰쳐나왔다. 말더듬이에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존재감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는 소년이었다. 어릴 적 친 엄마에 의해 버려지기도 했고, 그런 엄마가 자살을 하자 아빠는 결혼 정보 업체를 통해 배 선생과 결혼했다. 겉으로 보기에 적당한 사회적 위치의 사람들끼리 결혼한 것처럼 보였지만, 가면을 뒤집어 쓴 채 서서히 드러나는 실체는 끔찍했다. 소년이 집에서 밥 한 끼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할 정도로 눈치를 주었고, 아빠와 새엄마의 관계도 의심스러웠다. 그런 형편이다 보니 소년은 매일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빵을 사다 먹었고, 누명을 뒤집어쓰고 빵집으로 도피했을 때 점장은 단골이라는 이유로 머물게 해 주었다.

 

  소년의 처지도 처지지만, 위저드 베이커리는 더 기이한 곳이었다. 손님이 그다지 많이 오는 것 같지도 않은데, 24시간 문을 열었고 빵을 만드는 양도 엄청났다. 빵집 점장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녀의 정체는 물론 빵의 재료, 빵이 팔리는 노선도 독특했다. 매장의 빵은 평범했지만, 점장의 마법이 들어가 있는 빵들은 온라인을 통해 비밀스런 목적으로 팔려 나갔다.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는 쿠키, 사과하는 사람에 주는 스콘, 실연의 상처를 잊게 해주는 마들렌, 부두인형등 다양한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빵은 주문 제작이었다. 소년이 위저드 베이커리에 머물면서 주문서를 정리해 주자 덕분에 빵은 순조롭게 만들어졌지만 부작용이 따라오기도 했다. 긍정적인 의도로 쓰이는 것보다 부정적인 용도로 쓰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종종 빵집에 찾아와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효능을 가진 듯 하지만 결국은 그 욕망을 무너뜨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빵집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 소년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계속 빵집에서 신세를 질 수도 없었고, 점장과 밤이면 새鳥로 변하는 소녀는 특성상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때가 되면 돌아가라고 했지만, 최악의 상황에서 집을 나온 소년의 미래는 막막하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도저히 끼어들 수 없는 그들의 세계 속에 머물 수도 없었다. 서서히 빵집과의 헤어짐의 시간은 다가왔고, 그즈음 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쿠키가 점장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간을 되감는 타임 리와인더였다. 시간을 설정하고 쿠키를 먹으면 자신이 원하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개발 중인 쿠키였고, 먼 과거로 갈수록 가격은 엄청났다. 소년은 자신이 시간을 되돌린다면 언제로 돌아갈지를 생각해 보았다. 엄마가 자살하기 전? 아니면 새엄마인 배 선생이 아빠와 결혼하기 전? 여러 시점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언가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결국 경찰의 추적을 받던 빵집은 문을 닫았고, 소년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집은 자신이 나왔을 때보다 더 최악이었다. 점장은 소년에게 타임 리더와인을 주었지만, 효력을 발휘하는 결말이 아닌 두 가지의 상황 설정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무언가가 아쉽고 미심쩍은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성장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핥기만 한 느낌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정체와 빵의 효능들이 그랬고, 소년이 처해진 상황도, 진척되어가는 흐름도 무언가를 말할 듯 하다 끊긴 기분이다. 흡인력 있게 읽히는 문체는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들었지만, 예측할 수 없는 성장의 혼란을 그리듯 복잡 미묘한 상황에 비해 싱겁게 끝난 느낌이다.

 

  결말로 내용을 단정 짓긴 힘들다. 하지만 결말에서의 두 가지의 상황설정도 그렇고, 더욱 나빠져 가는 현실은 차라리 위저드 베이커리의 판타지적인 면과 뒤바꾸고 싶을 정도로 엉망이 된 것 같았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현실로부터 도피를 하고도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소년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다는 점? 소년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소년 자신에게 시간을 주었던 곳이었다. 어쩔 수 없는 도피였다 하더라도 가식적인 가족과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쿠키를 사가는 사람들 틈에서도 어찌어찌 버텨냈으니 최소한 그런 행보를 밟지 않기를 바랄 뿐, 욕망으로 점철된 나의 시선은 소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무기력해 지고 말았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독특한 성장소설이자 판타지 소설이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청소년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언제나 옳은 답지만 고르면서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인생에서 한 번도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없나요?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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