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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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 번 읽을 책은 두 번 읽지 않는다. 그러다 종종 한 번 더 읽고 싶은 책을 만나지만, 다시 읽을 기회는 좀처럼 쉽게 오지 않는다.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도 그랬다. 2004년에 읽고,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볼 때마다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지만 이제야 겨우 기회가 닿았다. 두 번을 읽고 보니, 진작 다시 꺼내 읽을 걸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감흥이 새로웠다. 처음 읽었을 때도 강렬한 느낌을 주었지만 차근차근 다시 읽어보니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어 더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 이 책을 마주할 때는 경계심이 많았었다. 의학과 의사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이었지만, 고운 시선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외로 진솔하고 담담한 글에 빠져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의사가 있다면, 의학에 대한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이가 있다면 내가 갖는 일반적인 편견도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과 의사인 저자의 글은 고백이라고 볼 수 있었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얘기하기 껄끄러워 하는 문제들을 과감히 드러내지만, 힐난조가 아닌 담담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그의 고백을 듣다보면 시각과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확장의 범위가 독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확연히 볼 수 있었다. 큰 틀에 의학의 불확실성을 두고 조금씩 구체화 시켜가며 여러 가지를 되짚어 보는 일. 그 일에 저자의 문체가 독자를 끌어당겼고,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고 있었다.

 

  첫 단락 ‘오류가능성’은 저자가 인턴생활을 하면서 의사가 되는 과정과 의사들의 세계, 의사가 범하는 ‘오류’에 대해 담담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담아냈다. 인턴과정을 밟고 있더라도 초보 의사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로 익혀야 했다. 우리가 회사에 입사해서 일을 배우는 것처럼 의사도 마찬가지였고, 다만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에 모든 것이 완벽할 거라 사람들은 착각하게 된다. 인간의 몸을 치료하고 목숨을 다루기에 더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지만 의사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범하게 되는 오류와 실수를 숨기지 않는다. 그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너무 진솔해 겁을 먹기도 하지만, 오히려 실수를 하는 모습, 경험을 익혀가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끼기도 했다. 의사를 한 인간으로 보는 마음, 환자에게 최선을 다 하고자 하는 의사를 재발견하게 된 셈이었다.




  두 번째 단락인 ‘불가사의’에서는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들을 좀 더 부각시켜 의학의 불가사의에 대해 얘기한다. 저자가 주로 책에서 다루고 있는 환자들은 일반적인 치료가 먹히지 않는 의학의 경계를 뛰어넘는 다고 할 수 있는 사례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그들이 겪는 고초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례가 없었던 환자들의 경우가 더 많아 의학으로 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서 도리어 의아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부분이었다. 그들을 단순히 치료해 가는 것뿐만 아니라 '불가사의'한 사례들을 어떻게 의학으로 해결해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끊임없이 한다. '불가사의' 자체가 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일지 몰라도 어떻게 대응하고 해결해 나가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단락 ‘불확실성’은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의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감추고 싶은 실수, 미스터리, 증명되지 않은 것들을 숨기지 않는다. 의사들이 가장 많이 좌절하는 단계로 비추기도 하는 '불확실성'은 의학에 대한 신념을 깨트리기도 한다. '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다 보면 아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과 싸우는 일이 더 많음을 깨닫게 된다.' 라고 말했듯이 그만큼 어려움도 따르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불확실성을 고백하고 인정하므로 일반인들이 갖는 일반적인 편견,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불신을 조금은 녹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불완전한 과학으로 우리를 이끈 것, 의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나름대로 정말 바라는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다.' 란 확신으로 의학에 몸담고 있는 저자. 그런 사람들이 늘어갈수록 좀 더 기댈 곳이 많아짐에 희망을 갖고 싶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책이었다. 의학책이 이렇게도 씌일 수 있다는 사실과 감성이 적절히 내포된 글은 문인들의 산문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무엇보다 의사로써 글쓴이로써도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의학이 감추고 있고, 곡해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오해가 풀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기보다 덜 완벽하며, 동시에 보기보다 더 특별’한 의학에 관해 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다. 그 내면이 궁금하다면 편견은 조금 내려놓은 채 매력적인 저자의 글에 빠져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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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토르소맨>을 리뷰해주세요.
꿈꾸는 토르소맨 - 팔다리 없는 운명에 맞서 승리한 소년 레슬러 이야기
K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최석순 감수 / 글담출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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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일본에 가서 아주 값진 경험을 안고 돌아왔다. 처음 나가본 해외에 대한 감격도, 일본의 아름다웠던 야경도 좋았지만 밤을 새워가며 나의 앞날에 대해 조언을 들은 경험이었다. 일행 중 우연히 어느 교수님과 책 이야기로 말을 트게 되었고, 그렇게 이어진 궁금증은 밤이 새도록 이어졌다. 책에 대한 궁금증, 앞으로의 행보, 나의 고민들을 어느새 줄줄이 털어놓게 되었고 소중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뜨거웠던 열기를 안고 한국에 도착하니, 이 책이 도착해 있었다. 겉표지만 보고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싶다면' 의 문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식상하게 비추기만 했던 흔한 문구였지만, 일본에서의 뜨거웠던 밤에 나누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다. 화면이 작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이 소년이 레슬링을 하는 장면에서는 감격하다 못해 눈물이 났다. 팔다리가 없는 소년이 레슬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었는데 격렬한 움직임과 힘이 여느 선수 못지않아 놀라고 말았다. 거기다 짧은 팔과 다리로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모습은 그를 과소평가 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무엇이 팔 다리가 불편한 18살의 소년을 저렇게 불타오르도록 만들었을까. 그의 사연과 내면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몸통밖에 없는 더스틴의 별명은 토르소다. 미술시간에 흔히 보고 그리는 토르소와 닮았다고 해서 더스틴의 별명이 되었다. 그러나 그냥 토르소가 아니라 '날아다니는 토르소'로 불리는 더스틴은 늘 활기차 장애가 느껴지지 않는다. 다섯 살 때 '수막구균혈증'에 걸려 팔 다리를 잘라 냈고, 겨우 목숨만 건진 더스틴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화장실을 혼자 가는데 2년이 걸리고, 글씨는 쓰는데 5년이 걸리고, 계단을 오르는데 수 없이 넘어져야 했던 더스틴. 가족과 주변의 도움이 있었지만, 자신의 내면에 갇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화만 내고 있던 그에게 아버지는 단호했다. "나중에 네가 혼자 해야 할 때는 어떡할 거니?" 란 말에 더스틴은 스스로 하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과 노력 끝에 지금의 모습을 만든 것이었다. 평소에 운동을 좋아했던 더스틴은 형을 따라갔다 레슬링을 하게 되었고, 매력을 느껴 흠뻑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더스틴의 제 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더스틴이 짧은 팔 다리로 생활에 많은 부분을 새로운 방식으로 익혀 갔지만, 그것은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목표가 되지 않았다. 의지를 키워주고, 자신을 비관하지 않는 행위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더스틴 자신을 끌어낼 수 있는 활력소는 아니었다. 더스틴은 그런 활력소를 레슬링에서 찾았다. 그에게 레슬링이 없었다면 삶을 사랑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통 사람보다 판이하게 다른 신체조건으로 레슬링을 하자면 남들보다 수 없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다. 그를 지도해주는 훌륭한 코치를 많이 만나서 더스틴은 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은 혹독하다 못해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의 연속이었다. 상대방을 잡을 팔이 없고, 버틸 다리가 없기에 목과 어깨, 엉덩이 근육을 키우는 일과 자신의 신체에 맞는 기술을 익히는 일들이 그랬다. 그래도 더스틴은 열심히 해 주었고, '더스틴 자체가 희망'이 될 정도로 코치진과 다른 선수들에게 많은 용기가 되어 주었다.

 

  더스틴에게도 목표가 있었다. 레슬링으로 유서 깊은 오하이오 주 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5년을 준비해 그렇게 고대하던 경기에서 아깝게 8강에서 탈락했지만, 더스틴이 거기까지 간 것만 해도 보통 사람인 나에겐 큰 용기가 되어 주었다. 8강전에서 종료 휘슬이 울리자 망연자실하게 허공을 보는 더스틴을 향해 천여 명의 관중이 일어나 박수를 쳐주는 장면은 아름다웠다.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습이었고, 더스틴이 그동안 흘려온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음을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나도 한참을 눈시울을 붉혔지만, 마음속으로 '장하다'를 얼마나 연발했는지 모른다. 내 손과 발을 내려다보며 '더스틴이 없는 것을 가진 것에 대한 우월함이나 자책'이 아닌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샘솟았다. 꼭 손과 발로해야 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갈망의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더스틴은 명랑한 아이다. 쾌활하고 도전하기 좋아하고, 그의 곁에 있으면 즐거워 질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 빛을 발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대답은 간단했다. 더스틴은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신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팔 다리가 다시 생기는 것을 원치 않을 정도로 현재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가 모든 것에 불만족스러워 하고, 지지부진한 일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과 대화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관심이었다. 일본에서의 어느 뜨거웠던 밤에 그 얘기를 들었다. 자신만 잘 다스리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달리 보일 수 있다고. 더스틴이 가장 모범적인 일례였다. 자신을 사랑하고, 만족하며, 세상을 향해 뚜렷한 발걸음을 떼는 모습. 더스틴을 보면서 나 역시 많은 용기를 얻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더라면 스쳐 지나쳤을 더스틴의 이야기는, 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만든 후에 만나니 더욱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교묘하게 연결이 된 일본여행과 더스틴과의 만남. 그 둘의 연속 속에서 나의 삶의 방향을 가늠해 보려 한다.

 

  더스틴이 가족의 허락을 겨우 받고 레슬링 부에 들어가고자 할 때, 교장선생님이 브라이언 코치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레슬링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는데 문제가 있어요. 팔 다리가 없어요." 막상 더스틴을 만나고 나니 브라이언 코치는 더 당황스러웠단다. 그러나 오랜 침묵 끝에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말을 곱씹어 보며 평소에 많은 것들을 해보지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연 그것들이 왜 안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의 차이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거기다 나의 인생이 바뀔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용기를 얻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삶을 연명하는 나에게 큰 용기가 되어 주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오체불만족>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나 용기를 얻고 위로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 그 당시 교장선생님이 제게 말했죠. 레슬링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이 있는데, 문제가 있어요. 팔과 다리가 없어요. <중략> 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전 곧 생각했어요. '왜 안되지?'라고요.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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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전산 이야기 - 불황기 10배 성장, 손대는 분야마다 세계 1위, 신화가 된 회사
김성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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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상을 지내다 보면 종종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자주는 아니지만, 무언가에 푹 빠져서 내 안에 숨겨진 능력을 끌어 낼 때가 있다. 그 능력이 발휘될 때면 평소에는 만끽하지 못한 뿌듯함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뿌듯함으로 일상이 이뤄지길 바란다. 내가 원하는 일에 몰입해서 하다보면 즐거워지기 마련이고, 즐거우면 살맛이 나게 된다. 자신에게 꼭 주어진 일에 필요할 때마다 몰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런 나의 게으른(?) 생각을 시원하게 깨트리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일본전산'이라는 회사였다.
 

  내가 몰입을 일상에서 좀 더 자주 갈망했던 이유는 억지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능력을 갖추기 싫고, 손쉬운 방법으로 쉽게 해결하고 싶은 얄팍한 마음도 한몫했다. 그러나 몰입을 끌어내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그런 갈망도 시들해지고 말았는데,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하라!'고 외치는 일본전산의 경영방침에 더 기가 죽고 말았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잘하고 싶은 것에 그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하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깊이 각인되는 메시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전산은 네 명의 직원과 세 평짜리 창고에서 시작해 계열사 140개에 직원 13만 명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신화를 이루어 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일본전산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을 터, 그 방법이 궁금해 열심히 탐독했지만 특별한 비법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방법들과 말들이 난무했다. 기존의 방식을 무시하고, 새롭고 독특한 방법들로 직원을 뽑고 자신만의 방침으로 기반을 닦아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무식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학력, 경력, 능력을 다 무시한 채 목소리 크고, 밥 빨리 먹는 사람을 뽑는 기이한 채용방식이 이해 될 리가 없었다. 거기다 신제품 개발도 무조건 될 때까지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많이 배웠다는 재원들과 노하우를 알고 있다는 고위급 인사들이 코웃음 치기 좋은 방법들만 시도하고 있는 곳이 일본전산이었다.

 

  하지만 왜 일본전산은 나날이 성장을 하고, 능력과 경력으로 갖추어진 탄탄한 회사들은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하는 것일까.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회장은 독특한 방법으로 회사를 이끌어 갔지만, 기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못할 것'이라는 생각, 관념을 버리게 만들고 직원들을 정열, 열의, 집념으로 똘똘 뭉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밑바닥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화장실 청소' 같은 시험을 한다.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직원들은 나가모리 회장의 방식에 매력을 느껴간다.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 회사에 도움도 되고 존재감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자신감을 천천히 만들어 갔다.

 

  그 결과는 회사의 성장을 통해 단박에 드러났다. 오로지 집념하나만으로 일궈낸 기술력은 평소에 경쟁회사라 칭할 수조차 없었던 대형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게 된다. 기본바탕이 잘 갖춰져 있는 직원들은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이미 체험하고 있었기에 당당하게 맞섰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뒤처지지 않았다. 도리어 하찮게 여겨졌던 이름 없는 회사에 뒤쳐지기 시작한 대기업들은 나가모리 회장에게 찾아와 자신의 회사를 도와달라고 통사정을 할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굳혀갔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끝없는 노력으로 일궈낸 일본전산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으므로, 독특한 경영방식과 사고방식이 또 다른 이들에게도 큰 용기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의 키워드는 '노력'이었다. 다른 중요한 것도 많았지만 능력, 학벌, 개인의 성격을 능가하는 처절한 노력이있었다. 노력을 바탕으로 일본전산의 직원 한 사람 한사람은 자신의 필요존재에 대해 자신감을 얻어갔고, 일본전산의 성장을 도왔다. 필요할 때마다 몰입하면 된다는 나의 얄팍한 생각은(물론 몰입도 중요한 요소이긴 하다.) 성실한 노력 앞에 꺾일 수밖에 없었다. 주먹구구식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에 충실하고 인간 본연의 충실함을 따라가고자 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충분히 느껴보길 바란다.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이 캐내어 나가모리 회장의 방침대로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하라!'를 실행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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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경쟁
장 자끄 상뻬 지음, 이건수 옮김 / 미메시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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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상뻬 책을 최대한 모아보자는 일념 하에 열심히 책을 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내가 상뻬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너무 늦어서인지 절판된 책들이 많았다. 그리고 상뻬를 처음 알게 해 준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구하고 싶은데, 종종 출판사가 갈리는 경우가 있어 망설여지기도 했다. 문의 끝에 미매시스 출판사가 열린책들과 자회사라는 것을 알고 우선 실험 삼아 한 권을 주문해 보았다. 양장에다 재질도 비슷해서 별 차이가 없었지만 책이 조금 작은 것이 아쉬웠다. 상뻬의 데생은 큼지막하게 보는 것이 좋다. 눈에 더 잘 들어올 뿐더러 데생 속에 푹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절판된 책을 이렇게 만난다는 사실이 그냥 고마울 뿐이다.
 

  상뻬 책을 한 권씩 만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그의 데생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흐뭇한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다소 엉뚱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유머로 점철되어 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독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생들이다. 그의 데생집을 보면서 책 제목에 특별한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기 전 제목에 대한 인식을 한다고 해도 데셍을 보다 보면 제목에 대한 의의를 잊고 만다. 종종 제목을 인지하면서 보기도 하지만 미묘한 차이에 제목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다. 오히려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으로 채워졌을지 궁금증이 더 하고, 책을 다 본 후에 왜 이런 제목이 달렸는지 의아해 하는 괴롭힘이 많아 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도 그랬다. 처음에 제목에 무척 신경을 쓰다가 초반의 내용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중간쯤 가서는 제목과 내용의 상관관계를 아예 잊어먹다 마지막에 가서 다시 떠올리는 번복을 했다.

 

  상뻬의 데생은 철저히 과정에서 매력을 느끼기에 다 보고 난 후의 기억은 별로 남는 것이 없다. 한 편의 데생들과 연계된 데생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지 일일이 기록하기란 심히 벅찬 일이다. 그나마 <어설픈 경쟁>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익살스런 몇몇 데생셍들을 기억할 뿐,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할지 난감하다. 상뻬 특유의 익살과 유머, 발랄한 데생에 관한 칭찬은 이제 물릴 정도니 무엇을 드러내야 할지 몰라 잡담이 난무하다. 그렇다고 상뻬의 데생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글을 마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나의 능력이 부족해 시원스레 이 책에 대해 말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만큼 상뻬의 데생은 설명보다 직접 봐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직접 보면, 왜 독자들이 흔적을 남기기 어려워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세계를 그려낸 것 같으면서도 색다른 세계를 그려내는 상뻬의 매력에 빠지다 보면, 누구나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꾸 상뻬의 책을 찾게 될 것이다.

 

  상뻬의 데생집의 또 다른 매력은 짤막하게 남긴 글이다. 데생을 먼저 본 다음 충분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대충 이런 느낌으로 글을 썼을 거라 생각하고 읽어보면 상뻬의 생각의 언저리도 가지 못한 내 자신을 발견하기 일쑤다. 이 데생에 이런 글을 붙인다는 사실이 생뚱맞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그의 익살과 폭 넓은 상상력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그러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데생과 글이 만들어낸 상뻬만의 세계로 빠지기 마련이다. 이 책에는 더 엉뚱한 내용과 무한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데생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랬기에 철저한 과정의 책이라 칭하고 느낌을 남기가 어렵다는 푸념을 더 강력하게 하고 있다.

 

  앞으로 상뻬의 책을 구할 수 있는 데까지 모아 볼 생각이다. 언제라도 부담 없이 꺼내서 휙휙 넘겨볼 수 있기에 너무나 편안하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조금씩 다르므로 그의 책을 꺼내 보는 것은 또 다른 묘미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보다 더 늦게 상뻬를 만날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절판되는 책 없이(절판된 책도 다시 내어주길), 상뻬의 매력에 많은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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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은행통장>을 리뷰해주세요.
엄마의 은행 통장
캐스린 포브즈 지음, 이혜영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시골에 혼자 계신 엄마한테 책 한권을 보내드렸다. 마당 둘레에 화초를 심기 시작한 엄마한테 타샤 할머니 책을 구입했다. 일부러 큰 책에다 글씨가 적은 책을 보냈는데, 막상 보내놓고 전화 한 통 못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우연히 <엄마의 은행통장>을 읽고 보니 엄마가 그 책을 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설명을 해주려고 했었는데 그것마저 못하고 있다가 이 책을 보니 엄마 생각도 나고, 내가 보낸 책 생각도 났다.
 

  저자가 첫 책을 출간하고 받은 원고료를 엄마에게 주며, 은행통장에 넣으라고 하자 엄마는 은행통장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 고백을 듣는 순간, 도대체 이 책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의아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 엄마의 은행통장을 바라보며 희망을 키웠을 한 가족의 이야기가 이대로 끝나거나, 헛된 기대를 품고 살아온 과거가 드러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은행통장이 없었다는 고백으로 인해 한 가족의 희망과 삶이 무너져 버렸을 거란 생각은 무척 위험했다. 저자로부터 흘러나오는 가족 이야기는 삭막해져 가는 현대사회에 과거를 떠올리며 추억을 떠올리기에 바빴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온 시절이 얼마나 많았던가. 한 가족의 삶을 통해 잠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저자이자 맏딸인 카트린을 통해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노르웨이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이민자인 그들은 모든 것이 힘겨웠다. 익숙한 것을 모두 남겨둔 채 낯선 곳으로 와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던 카트린 가족은 많은 어려움에 처한다. 다행히 아빠가 목수 일을 할 수 있어 바로 일자리를 구하게 됐지만, 늘 쪼들리는 경제적 상황과 식구들의 병치레는 암담하게 만들었다. 이러다 가족 중 누군가가 떠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조마조마 읽어 내려갔지만, 그때마다 '엄마'의 기지는 늘 발휘되었고 듬직하기까지 했다. '엄마'의 존재는 모든 이에게 가슴 아프게 다가오고,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그런 엄마의 이미지 때문인지 책 속의 '엄마'에 대해서 미처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했다. 우리네 엄마들처럼 희생하고 사랑을 나눠주며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좀 더 명랑한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17개의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족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에피소드 중심으로 시선이 맞춰져 있다. 엄마의 시선이 아니라 카트린의 시선이었기에 더 아련했다. 엄마의 힘든 모습, 엄마의 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고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져서 이면을 그려볼 수 있었다. 형제자매들의 성장과 아버지, 엄마의 이모들의 이야기도 펼쳐졌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엄마'이다. 엄마의 활약상이 그려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정의 대소사에 엄마의 역할은 참 컸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빠가 큰 수술을 할 때, 농장으로 이주해서 다시 도시로 돌아 올 때, 이모와 이모할머니의 사이를 조율해 줄 때나 엄마의 역할이 컸다. 학교에서 난처한 일에 빠졌을 때도 엄마가 구원자가 되어 주었다.

 

  이 책의 엄마의 이미지는 명랑하고 밝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비춰진다. 가족들이 돈 걱정을 할까봐 은행통장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던 엄마였던 만큼 가족의 듬직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그런 엄마가 있었으므로 오남매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잘 자라 주었고 낯선 땅에서 정착할 수 있었다. 엄마란 존재가 빛을 발하지 않았다면 팍팍했을 살림살이에 더 팍팍한 삶을 연명했을 것이다. 그만큼 엄마는 단순히 나를 낳아준 존재를 떠나,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이 불안해 할까봐 은행에 통장이 있고, 그 안에는 큰돈이 들어 있을 거라 착각하고 살았지만 그건 속임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통장은 엄마만큼이나 정진적인 지주가 되어주어 한 가족을 삶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엄마의 지혜와 사랑이 녹아 있는 은행 통장. 무형의 존재는 가족들의 가슴에 유형의 존재로 남아 의지할 곳을 마련해 주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아련해지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보다는 직접 집에 가서 책을 같이 보며 설명해주고 엄마의 마당을 가꿀 때 참고해 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힘들었던 순간이 참으로 많았는데, 이렇게 잘 키워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해주고 싶다. 엄마가 만들어준 울타리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듬직했다고.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편안하고 훈훈한 가족소설이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가족의 사랑을 되찾고 싶은 이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어린애들이 불안해 하고 겁을 먹는 건 좋지 않잖니?"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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