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토르소맨>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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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토르소맨 - 팔다리 없는 운명에 맞서 승리한 소년 레슬러 이야기
K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최석순 감수 / 글담출판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일본에 가서 아주 값진 경험을 안고 돌아왔다. 처음 나가본 해외에 대한 감격도, 일본의 아름다웠던 야경도 좋았지만 밤을 새워가며 나의 앞날에 대해 조언을 들은 경험이었다. 일행 중 우연히 어느 교수님과 책 이야기로 말을 트게 되었고, 그렇게 이어진 궁금증은 밤이 새도록 이어졌다. 책에 대한 궁금증, 앞으로의 행보, 나의 고민들을 어느새 줄줄이 털어놓게 되었고 소중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뜨거웠던 열기를 안고 한국에 도착하니, 이 책이 도착해 있었다. 겉표지만 보고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싶다면' 의 문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식상하게 비추기만 했던 흔한 문구였지만, 일본에서의 뜨거웠던 밤에 나누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전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았다. 화면이 작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이 소년이 레슬링을 하는 장면에서는 감격하다 못해 눈물이 났다. 팔다리가 없는 소년이 레슬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었는데 격렬한 움직임과 힘이 여느 선수 못지않아 놀라고 말았다. 거기다 짧은 팔과 다리로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모습은 그를 과소평가 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무엇이 팔 다리가 불편한 18살의 소년을 저렇게 불타오르도록 만들었을까. 그의 사연과 내면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몸통밖에 없는 더스틴의 별명은 토르소다. 미술시간에 흔히 보고 그리는 토르소와 닮았다고 해서 더스틴의 별명이 되었다. 그러나 그냥 토르소가 아니라 '날아다니는 토르소'로 불리는 더스틴은 늘 활기차 장애가 느껴지지 않는다. 다섯 살 때 '수막구균혈증'에 걸려 팔 다리를 잘라 냈고, 겨우 목숨만 건진 더스틴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화장실을 혼자 가는데 2년이 걸리고, 글씨는 쓰는데 5년이 걸리고, 계단을 오르는데 수 없이 넘어져야 했던 더스틴. 가족과 주변의 도움이 있었지만, 자신의 내면에 갇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화만 내고 있던 그에게 아버지는 단호했다. "나중에 네가 혼자 해야 할 때는 어떡할 거니?" 란 말에 더스틴은 스스로 하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과 노력 끝에 지금의 모습을 만든 것이었다. 평소에 운동을 좋아했던 더스틴은 형을 따라갔다 레슬링을 하게 되었고, 매력을 느껴 흠뻑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더스틴의 제 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더스틴이 짧은 팔 다리로 생활에 많은 부분을 새로운 방식으로 익혀 갔지만, 그것은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목표가 되지 않았다. 의지를 키워주고, 자신을 비관하지 않는 행위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더스틴 자신을 끌어낼 수 있는 활력소는 아니었다. 더스틴은 그런 활력소를 레슬링에서 찾았다. 그에게 레슬링이 없었다면 삶을 사랑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통 사람보다 판이하게 다른 신체조건으로 레슬링을 하자면 남들보다 수 없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다. 그를 지도해주는 훌륭한 코치를 많이 만나서 더스틴은 성장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은 혹독하다 못해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의 연속이었다. 상대방을 잡을 팔이 없고, 버틸 다리가 없기에 목과 어깨, 엉덩이 근육을 키우는 일과 자신의 신체에 맞는 기술을 익히는 일들이 그랬다. 그래도 더스틴은 열심히 해 주었고, '더스틴 자체가 희망'이 될 정도로 코치진과 다른 선수들에게 많은 용기가 되어 주었다.
더스틴에게도 목표가 있었다. 레슬링으로 유서 깊은 오하이오 주 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5년을 준비해 그렇게 고대하던 경기에서 아깝게 8강에서 탈락했지만, 더스틴이 거기까지 간 것만 해도 보통 사람인 나에겐 큰 용기가 되어 주었다. 8강전에서 종료 휘슬이 울리자 망연자실하게 허공을 보는 더스틴을 향해 천여 명의 관중이 일어나 박수를 쳐주는 장면은 아름다웠다.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습이었고, 더스틴이 그동안 흘려온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음을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나도 한참을 눈시울을 붉혔지만, 마음속으로 '장하다'를 얼마나 연발했는지 모른다. 내 손과 발을 내려다보며 '더스틴이 없는 것을 가진 것에 대한 우월함이나 자책'이 아닌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샘솟았다. 꼭 손과 발로해야 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가 꿈꾸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갈망의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더스틴은 명랑한 아이다. 쾌활하고 도전하기 좋아하고, 그의 곁에 있으면 즐거워 질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 빛을 발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대답은 간단했다. 더스틴은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신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팔 다리가 다시 생기는 것을 원치 않을 정도로 현재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우리가 모든 것에 불만족스러워 하고, 지지부진한 일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신과 대화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관심이었다. 일본에서의 어느 뜨거웠던 밤에 그 얘기를 들었다. 자신만 잘 다스리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달리 보일 수 있다고. 더스틴이 가장 모범적인 일례였다. 자신을 사랑하고, 만족하며, 세상을 향해 뚜렷한 발걸음을 떼는 모습. 더스틴을 보면서 나 역시 많은 용기를 얻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더라면 스쳐 지나쳤을 더스틴의 이야기는, 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만든 후에 만나니 더욱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교묘하게 연결이 된 일본여행과 더스틴과의 만남. 그 둘의 연속 속에서 나의 삶의 방향을 가늠해 보려 한다.
더스틴이 가족의 허락을 겨우 받고 레슬링 부에 들어가고자 할 때, 교장선생님이 브라이언 코치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레슬링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는데 문제가 있어요. 팔 다리가 없어요." 막상 더스틴을 만나고 나니 브라이언 코치는 더 당황스러웠단다. 그러나 오랜 침묵 끝에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말을 곱씹어 보며 평소에 많은 것들을 해보지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연 그것들이 왜 안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의 차이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거기다 나의 인생이 바뀔 수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용기를 얻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삶을 연명하는 나에게 큰 용기가 되어 주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오체불만족>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나 용기를 얻고 위로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 그 당시 교장선생님이 제게 말했죠. 레슬링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이 있는데, 문제가 있어요. 팔과 다리가 없어요. <중략> 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전 곧 생각했어요. '왜 안되지?'라고요. (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