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그래픽 노블)>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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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공보경 옮김, 케빈 코넬 그림, 눈지오 드필리피스.크리스티나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독특한 경험이었다. 한 단편을 세 번에 걸쳐서 읽은 일은. 영화화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러 출판사에서 앞다투어 피츠제럴드 단편을 출간했다. 국내 독자들도 갑자기 쏟아진 여러 출판사의 번역물 중에서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급격한 부흥을 일으켰다. 내가 먼저 접하게 된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는 피츠제럴드의 다른 단편도 실려 있는 두툼한 책이었다. 처음엔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가 단편인지 모르고 읽었다가 잠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단행본으로 나온 이 책에는 그래픽 노블과 단편 소설이 따로 실려 있어 똑같은 내용을 세 번 읽게 된 것이다.
똑같은 내용을 세 번 읽었다고는 하지만, 느낌이 조금씩 달랐다. 먼저 만난 피츠제럴드 단편집에서의 '벤자민 버튼'과 이 책의 '벤자민 버튼'은 번역이 조금 달랐고, 그래픽 노블은 머릿속에 그렸던 그림을 질감을 통해 만난 경험이었다. 이 책에는 그래픽 노블이 먼저였고, 다음에 단편이 실려 있어서 상상력의 제약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먼저 단편을 읽고 그래픽 노블을 만났기에 세세한 비교를 해가는 재미가 있었다. 세 번 모두 제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채 다가왔지만,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는 변함이 없었다. 70살의 나이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은 거꾸로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의 부모님은 재정적, 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던 터라 벤자민 버튼의 탄생이 기쁠 리 없었다. 병원에서 한바탕 난리를 일으키고,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며 이슈가 될 정도로 시끄러운 탄생이었다. 신생아들이 가득한 곳에 노인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그의 부모도 부모지만 독자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태어남을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벤자민 버튼 자신이며, 가족들이 앞으로 펼쳐질 거꾸로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벤자민의 아버지 로저 버튼은 노인의 몰골을 하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아이로 받아들였다. 인생이 거꾸로 펼쳐진다고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이런저런 투닥거림이 있었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흘러갔다. 벤자민이 18살이 된 해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을 18살로 보지 않아 처음으로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경험한다. 그 이후로 벤자민은 보이는 모습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기로 다짐한다. 사교계에서 만난 몽크리프 양 앞에서도 자신의 실제 나이를 말하지 않고, 겉으로 보여지는 엄청난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한다. 그러나 벤자민은 자신이 점점 젊어진다는 것을 눈치챈다. 부인이 나이들어감에 따라 매력을 잃어 갔지만, 자신은 점점 젊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실제 나이와 신체 나이 가운데 펼쳐진 삶은 확연하게 드러났고 그에 따라 주관이 달라졌다. 나이에 따라 관심사가 달라지고, 과거의 모습을 생각하다(거꾸로 거슬러 올라온 이력) 퇴짜를 맞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심지어 자신의 아들조차도) 벤자민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벤자민 자신도 거꾸로 펼쳐지는 인생 앞에서 속수 무책이듯,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당연했음은 자명했다.
벤자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삶에 의외로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변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든지간에 비교적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잘 따랐다. 주변의 충고도 적절히 들어가면서(단, 젊음을 멈추라는 충고만 빼고) 신체나이에 어울리는 삶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는 실제 나이에 따라 행동했다가 부딪힌 뼈 아픈 경험이 있었기에 현실에 충실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벤자민은 거꾸로 된 삶을 살았고, 자신의 손자와 유치원을 같이 다니다 갓난아이로 돌아가 죽음을 맞는다. '우리네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 맨 처음에 오고 최악의 순간은 맨 마지막에 온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에 영감을 받아 이 단편을 구상했다는 피츠제럴드.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이 뒤집힌 한 사내의 삶을 지켜보긴 했지만, 과연 그러한 순간들이 적절한지에 대한 여부는 불확실하다. 오히려 남들과 달랐기에 외톨이 삶을 살아간 벤자민 버튼이 가여울 뿐이다.
벤자민 버튼의 인생을 이해한 이가 있을까. 자신 조차도 자신이 거꾸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채, 주어진 신체나이에 맞춰 살기 급급했는데. 그의 부모, 자식, 부인도 이해해 주지 않은 벤자민 버튼의 거꾸로의 삶은 독특했지만 서글플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었다. 한가지 다행이라면 신체나이에 맞게 사고도 따라갔다는 사실일까. 70세의 노인으로 태어났지만 그에 맞는 사고력이 있었고, 나이가 점점 어려질수록 정신연령도 맞춰졌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쇠퇴해지는 것처럼 벤자민 버튼도 나이가 줄어들수록 과거의 파란만장한 삶의 기억이 지워졌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한 그가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갓난 아이의 죽음이 잠시 서글플 수도 있겠으나, 그가 70세의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났던 것을 떠올린다면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태어남과 죽음은 직전의 모습이 아니라 삶의 꾸려짐으로 판가름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독특한 소설이었다.
피츠제럴드는 이 작품을 구상하면서부터 영화화 하려 했었다고 한다. 주목을 받지 못해 그의 생전에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후 86년이 지난 2008년에 영화화 되고 여러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는 모습을 과연 상상할 수 있었을까. 미국 현대 문학 작가로 재발굴 되고, 그의 작품이 새로운 관심을 받는 것은 좋을 일이다. 그러나 특정한 작품이 영화화 되었다고 너도 나도 출간이 되는 것보다 지속적인 관심으로 그의 많은 작품들이 독자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독특한 소설이다. 삶을 재조명 해 볼 여지를 품고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독특한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그만 방향을 돌려서 남들처럼 늙어가야죠. 장난이 지나치잖아요. 더는 재미도 없어요. 처신을 똑바로 하시란 말입니다!" -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