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겉 알베르 카뮈 전집 6
알베르 까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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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문학을 탐독하다보면, 꼭 전작해보고 싶은 작가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작을 실현할 수 있는 작가와 아직 내공이 부족해 이상으로 남아있는 작가들이 있다. 알베르 카뮈는 후자에 속했다. 고등학교 때 문학을 읽는답시고 <이방인>과 <전락>을 읽었지만,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전작하고 싶은 작가의 대열에 올려놓고도 읽을 엄두를 못냈는데, 그의 책을 사들인 것은 다른 책에서 언급된 이유도 있었고, 절판되려는 낌새가 보여서였다. 그렇게 한 권씩 사다보니 19권의 전집 중 9권을 모았지만, 섣불리 읽을 수 있는 책은 없었다. 책을 펼쳤다 덮었다를 반복하다 겨우 내 손에 쥐어진 작품은 <안과 겉>이었다.

 

  카뮈 전집 no.6을 달고 있지만, 비교적 초기 작이다. 카뮈의 나이 22살 때인 1935~1936년 사이에 씌여진 글로 아주 적은 부수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절판이 된 후에 재판을 거절했던 것은 '예술에 대하여 나도 모르게 품게 된 선입관 때문에' 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어떠한 선입관을 가졌기에 재판을 거절했는지 이 책을 읽고도 정확히 알지 못해 의아했던게 사실이다. 자신의 초기작에 대한 부끄러움 내지는 부족함에 대한 겸손이라고 생각할 뿐, 그의 작품을 전작하기로 마음 먹은 나는 마냥 감격할 뿐이었다. 작품의 제작은 오랜 고역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글을 써나가면서 점철되어지는 사고의 확장에 대한 거리감 때문에 <안과 겉>에 대한 출판은 더 미루졌는지도 모르겠다.

 

  6편의 산문은(서문 포함) 카뮈의 경험과 들음, 생각이 어우러진 글이었다. 얼핏 수필로 구별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카뮈의 세계를 따라가다보면 그의 깊숙한 사고의 언저리에 머무는 기분이 들곤 했다. 글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사건과 동떨어지기도 하는 성찰의 깊이 혹은 사고의 나열은 감성을 풍부하게 일깨워 주기도 했다. 내가 완성시키지 못했던 자잘한 생각의 스침을 굳건히 만들어 주기도 했고, 타인의 생각을 탐한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도 덧대어 주었다. 친구들과의 여행기나 다른이에게 들은 이야기 속에서도 카뮈의 감성은 늘 충만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흔적 속에서도 '글이란 이렇게 탄생되는 구나'를 연발하게 만드는 천부적인 재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다만 초기작이라서 좀더 다듬어지지 못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서투름에 대한 자괴심이었음을 깨달을 뿐 그의 글을 읽는 동안 무척 행복했다.

 

  카뮈의 책을 읽고 느낌을 남긴다는 것은 책을 집어 든 순간부터 무리라는 것을 감지했다. 나의 내공의 부족함을 알기에 카뮈의 책을 읽는 것 자체에 큰 의의를 두었던게 사실이다. 어떤 작가가 유명하고, 어떤 작품이 유명하냐를 따지기 보다 나와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 기본기에 충실해 나에게 맞는 작가와 작품을 탐독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지만, 카뮈 같은 작가는 읽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느낌을 남기는 것은 더 큰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드러내는 본질의 언저리만이라도 멤돌면 감사하련만. 단순한 읽기에 치중한 독서라 내 안에 멤도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카뮈의 전작을 읽어보기로 다짐하고 소소한 출발을 했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나에겐 벅참 그 자체였다.

 

  분명 두껍지 않은 책이었음에도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두께와 책 내용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그다지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카뮈의 작품보다 작품 해설이 더 어려웠다. 서문부터 긴장했지만, 오히려 작품 하나하나의 다가가면서부터 긴장감은 풀어졌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양의 작품해설은 기껏 카뮈에게 다가간 용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읽으면 되고, 작품해설에 큰 비중을 두지 않기에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읽어나가면 되지만, 그렇다고 안 읽고 넘어갈 수 없어 조금 힘들었다. 앞으로 18권의 책을 더 읽어나가야 하는 나로써는 카뮈와의 지속적인 만남에 중점을 두려고 한다. 한 권씩 정독하면서 카뮈를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는 이 마음은 무얼까. 오랜 바람에 한 발짝씩 내미는 발걸음의 즐거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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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리뷰해주세요.
루머의 루머의 루머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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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무척 소심한 편이다. 누군가 나한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쉽게 상처 받는다. 겉으로 티는 안내지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해결 될때까지 가슴이 벌떡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그런 폐를 끼쳤을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나, 행동에 상대방에게 피해가 갔다면 역시 고민에 빠져 오버하고 만다.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급기야 깊이 사과하면, 상대방이 당황할 정도로 미련한 구석이 있다. 냉철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감정을 담뿍 넣어 어리석게 군다. 그런데 둘 중 어느것이 더 치명적인 상처가 될까. 내가 받는 상처, 내가 주는 상처 중에서. 상황에 따라, 농도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상처는 상처일 뿐 절대 흔적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내가 보인 행동이 상대방에게 세상을 등질 이유가 되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죄책감이 범벅된 괴로운 날의 연속일까. 아니면 아무일 없던 듯 일상을 살아갈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며 살아가다, '너 때문에 난 자살을 하게 됐어'라고 말하는 테입이 도착한다면 과연 어떨까.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그제서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게 될지 모르겠다. 그것도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한 사람의 삶이 막을 내렸다면, 그 이후에 남겨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만으로도 치가 떨린다. 그러나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인물들은 상상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2주 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같은 반 친구 해나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테잎을 받는다.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고간 리스트에 포함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해나를 짝사랑했던 클레이는 자신이 이 테입을 받는 순간부터 혼란과 충격에 빠지고 만다.

 

  이미 죽은 해나의 목소리가 테입을 통해 흘러나오니 클레이는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해나의 테입을 들어가면 갈수록 엄습하는 불안감을 지울 길이 없었다. 왜 자신이 이 테입을 받아야 했는지 궁금했지만, 해나가 리스트에 올린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질때마다 충격에 휩싸였다. 이 테입을 들은 다른 아이로부터 자신에게 건너온 테입 7개. 그 안에는 해나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낱낱이 들어 있었다. 장난삼아 흘린 말들,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린 일,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정정하지 못한 사이에 한 아이는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친구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열거되고, 사연이 나올때마다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힘들어야 했을 해나가 떠올라 클레이는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해나에게 무슨 짓을 해서 이 테입을 듣고 있는 것인지 몰랐지만, 해나가 그리웠고 미치도록 미안했다.

 

  해나는 테입과 함께 지도 한 장을 남겼다. 자신의 사물함에 꽂혀 있던 한 장의 지도는 아이들이 만들어낸 이상한 소문의 발원지이기도 했고, 외로움을 달래거나, 첫 키스를 했던 장소가 나와 있기도 했다. 그 곳을 일일이 찾아가며 해나의 테입을 듣고 있다보니, 이미 그 곳을 다녀간 리스트 속의 몇몇 인물들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다 해나가 또 다른 복사본을 남겼다는 인물(클레이의 친구인 토니)도 만나고, 서서히 해나가 당했던 고통의 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클레이가 이 테입을 듣고 있는 이유도 드러났고, 그 이유에 클레이는 몹시 괴로웠다. 조금만 손을 더 내밀었더라면 해나가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후회와 그리움이 뒤범벅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해나가 목숨을 끊게 된 고통을 들여다보며 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러나 테입을 다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허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았다. 해나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 친구들의 장난과 거리낌없는 행동들이 있긴 했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미미한 것들이었다는데서 오는 충격이었다. 지나침, 무관심, 겉으로만 판단했던 일들이 해나에게 차곡차곡 쌓여 궁지로 몰고 갔고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나가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극단적인 방법까지 가지 않기를 기대하며,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알아봐주고 진실된 내면을 바라봐주길 바랐다. 하지만 번번히 그런 기회는 날아가버렸고, 결국 해나는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궁지로 몰고간 친구들에 대한 복수라기보다 무고한 한 사람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채 죽게 만든 억울함의 호소였다. 그러나 해나는 이 세상에 없고, 친구들은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모두 알고 있다. 그 친구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지 않은 채 또 다른 리스트의 친구에게 테입을 보내는 클레이의 모습으로 책은 마무리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남겨진 친구들의 내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해나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속에서 이미 남겨진 자의 고통까지 다 듣게 되었다. 해나의 고통이 가장 컸고, 안타까움이 나를 지배했지만 섬뜩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가 가까운 지인이나 타인을 대했던 행동 속에서 그런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을 수도 있다 생각하자 안절부절이었다. 멀리 갈것도 없이 루머로 힘들어하다 자살한 톱 탤런트 사건만 떠올려도 충분히 상처 입힐 수 있고, 충분히 상처 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런 메세지를 담고 있어서인지 책을 읽는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너무도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한 소녀의 죽음앞에 쉽게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일상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사소하게 시작된 루머가 한 사람을 어떻게 몰고 갔는지 녹음된 테입을 통해 낱낱이 파헤친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요즘 누리꾼들의 댓글이 심심치 않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나의 행위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봤음 좋겠다. 누리꾼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인간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으므로 누구나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다들 날 해코지 할 뜻은 없었을 거야.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겠지. 자기가 저지른 일인데도. -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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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
아널드 베넷 지음, 이은순 옮김 / 범우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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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의 일상에 조금씩 활기가 돋고있다. 남들이 느낄 정도는 아니고, 내 스스로 돌아봤을 때 그런 기분이 든다는 뜻이다.  혼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시간이 축적되어 감에 따라 그런 느낌은 짙어진다. 최근 나에게 그런 활력소가 되어 준 것은 다시 시작한 수능 공부다. 두 번이나 봤지만,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 터라 결과가 좋지 않았다. 제대로 도전해 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한번 더 용기를 냈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공부라 큰 자극이 없어서인지 번번히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지인의 충고에 따라 블로그에 하루 공부에 대한 후기를 남기면서부터 자신감이 생겼고, 많은 분들의 격려 가운데 힘을 얻고 있어 살아 있다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된 시간은 정말 얼마 되지 않지만, 그 전의 생활을 돌아봤을 때 괜찮은 하루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책에 관심이 많아 온통 책에 짓눌린 나날을 보내다보니,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책을 좋아하지만, 리뷰를 쓰는 일이나 쌓여가는 책을 바라보는 일에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물론 내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일이었고, 앞으로도 멈출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온통 책에만 쏠려 있는 시간들 속에 나를 돌아볼 여유가 줄어 들고 있었다. 즐거운 자세로 임하고 있으면서도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 그 느낌을 내버려둘 수 없어 시작한 공부였는데, 뜻 밖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작은 변화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은 <하루 24시간 어떻게 살 것인가>란 책의 가치를 말하기 위함이다. 지인에게 이 책을 선물 받았을 때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이었고, 책에 치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시기였다. 그랬으니 더더욱 이 책이 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흔히 보아온 자계서나 처세서로 치부하고 들여다 보는 것 조차 귀찮았다. 심지어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의 예상을 뛰어넘어 주지 못하는 책 내용에 실망하고 있었다. 책을 사준 지인에게 그런 푸념을 해대자 '무척 철학적인 책이니 꼼꼼히 읽어 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샐쭉한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대충 눈으로 읽어 나가고 있었는데, 현재의 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 많아 결국은 메모지를 덕지덕지 붙이며 읽고 말았다.

 

  이 책의 무엇이 나의 현재를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일까. 앞에서 장황하게 늘어 놓았던 내 일상의 작은 변화였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독서생활의 염증을 새로운 목표로 전환을 시킨 일. 그 일이 주는 파급효과를 알아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식상했다.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시도하지 못하고 미적거리던 부분을 유머스러우면서도 가볍게, 그러면서도 충분한 메세지를 전해 주고 있었다. 일상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읽었더라면 지나쳤을 책이다.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기에 자신이 경험한 후에야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많다. 나같이 평범한 인간에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런 이들을 위해 좀더 빠른 깨달음을 제시해 주는 책들이 널려 있음에도 깨닫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기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책을 만났으니 기분이 묘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각자의 일상은 너무나도 각양각생이라 똑같이 주어진 조건은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 책의 주요대상은 하루의 1/3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고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이었다. 퇴근 후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화두가 주류다. 그렇지만 꼭 회사원들에게 국한된 제안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읽으며 자신의 상황에 대입시켜 볼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5분의 효과, 무언가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 만들기, 여러가지의 방법 제시를 통해 일상에서 충분히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별한 내용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였기에 더 지나치기 쉬운 내용들이 내가 직접 겪고 있으니 더 감격적으로 다가왔다.

 

  요즘 내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생각은 어떠한 결과는 하루아침에 뚝딱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적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노력의 축적에 따라 나타난다는 것. 생각에만 그치다 겨우 행동으로 시도해 본 나에게 가벼우면서도 깊이 있는 말들은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거기다 문학을 즐기라는 충고는 '독서'의 시간을 줄인 나에게 보상을 해 주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좀더 도약할 수 있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보라는 제안. 절대 불가능 한 것들이 아니고,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습관을 바꾸고 생각을 바꾼다는 사실이 쉽지는 않지만, 조그만 변화를 시도해 봄으로써 갖게 되는 뿌듯함은 분명 남다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그 느낌을 조금 알고 있기에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처지와 스타일에 맞게 충고에 따라 시간 조율을 한다면 '살아있다'라는 기분이 들 것이다. 능력이 부족해 이 책이 주는 메세지를 충분히 전하지 못했지만, 현재의 자신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작은 시작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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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기다리며
츠지 히토나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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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지 히토나리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를 연애소설 작가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도 비슷한 분위기일거라 생각했다. 책이 좀 두꺼웠지만, 흡인력 있는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에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는 시간은 무척 더뎠고, 지금껏 만나온 그의 소설과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 소설로 인해 그에게 붙은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를 부정할 수 없었을 뿐, 오랜만에 일본소설을 폄하하지 않으며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일본 현대 소설은 가볍고, 남는게 없다는 인식이 깊이 뿌리 박혀 있기에 지극히 편안한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 최근에 읽은 일본소설도 그런 인식을 깨트려주지 못해 책을 대하는 나의 시선은 좀 시들했다. 얼른 읽어버리자라는 마음만 팽배했던 내게 <태양을 기다리며>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소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용이 묵직하거나 잘 읽히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가볍다고 할 수도 없지만, 쉽게 넘겨버릴 수 없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소설이라기 보다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장면을 전환하는 것처럼 이어진 탓이었다. 전쟁 중인 중국의 난징,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의 히로시마, 뇌사 상태인 사람에게 펼쳐지는 세계 등등 시대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로 독자를 이끌었다.

 

  이야기의 조각을 잘 맞춰나가는 저자의 이끔을 따라가다 보면, 현재의 나를 잊게 된다. 한 권의 책속에 펼쳐지는 다양한 시대와 상황들은 나를 챙길 겨를도 없이 흘러갔고, 상황에 따라 이동하기 바빴다. 책의 시작은 영화 촬영 현장부터 시작된다. 천 명의 엑스트라와 감독, 스탭들이 촬영하기 적절한 태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을 다룬 영화였고, 이노우에 감독은 이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될 정도로 노쇠했다. 하지만 깐깐한 일처리 탓에 벌써 2주 째 맘에 드는 태양이 나타나지 않아 모두들 제작비만 까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술부 담당인 시로와 혼수상태에 빠진 형의 옛 애인이자 스크립터인 도모코가 그나마 이노우에 감독을 이해하고 있는 정도였다. 

 

  시로의 형 지로는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마약을 밀매하던 형은 공원에서 총을 맞았고 여지껏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로는 총을 맞기 전, 위험한 일에 몸담았던 듯 시로에게 계속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자꾸 란도셀(에도시대 일본을 방문했던 네덜란드 군인의 군장 가방 란셀(Rancel)을 보고 제작하면서 유래된 일본의 어린이용 책가방)을 돌려 달라는 후지사와라는 남자의 전화는 끈질겼다. 형의 혼수상태만 해도 시로의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데, 느닷없는 한 남자의 전화가 반가울 리 없었다. 형이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한 도모코에 대한 묘한 마음도, 영화촬영의 진전 없는 압박감도 벅차오르는데 그에겐 다른 사람들의 과거가 끊이질 않는다.

 

  시로의 현실을 제외하고 이 책에서 거듭되어지는 이야기는 많다. 이노우에 감독이 잊지 못하는 '훼이팡'이라는 여성의 이야기, 자신을 협박한 후지사와의 이야기, 후지사와의 아버지인 '크레이크 부샤르의 수기', 혼수상태에 빠진 지로의 세계 등 이야기의 갈래와 연결은 계속 이어진다. 이노우에 감독은 1937년 난징에서 보았던 태양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기억의 이면에는 '훼이팡'이라는 사랑하는 여성과 '난징 대학살'이 있었다. 후지사와는 미군 파일럿인 크레이크 부샤르와 간호사였던 레이코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으로 사망하기 전까지의 기록이 담긴 이야기가 '크레이크 부샤르의 수기'였고, 유일한 부모의 흔적인 셈이었다. 독특한 외모 때문에 더욱 더 외로운 삶을 살아온 그는 마약 밀매범이긴 하지만, '란도셀'의 행방을 찾기 위해 시로와 만나 자신의 삶과 아버지의 삶에 대해서 모두 들려준다. 혼수상태에 빠진 지로는 좀더 광범위한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란도셀을 메고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책 속의 시대를 거리낌없이 이동하는 인물이다. 지로의 행동반경으로 인해 잠시 헷갈리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교묘하게 엮어주는 지로의 등장은 보통 사람이 닿을 수 없는 세계였다.

 

  이노우에 감독이 난징에서 보았던 전쟁의 참혹함과 훼이팡에 대한 기억, 크레이크 부샤르의 수기, 지로를 잊지 못하는 도모코의 내면에는 모두 '사랑'이 있었다. 현실의 안락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전쟁 속의 두 남자는 너무 처절했다. 사랑의 광기로 점철되다 비극으로 끝나는 훼이팡의 이야기는 감독이 평생 지고 온 죄책감이었다.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는 임무로 왔지만 부상을 당하고 원자폭탄에 의해 죽게 되는 크레이크 부샤르는 어떤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고, 한 여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의 씨를 남기고 싶어하는 마음은 수기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후지사와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하고, 아버지의 부탁을 위해 뉴욕으로 날아가지만 '수기'를 통해 아버지의 내면을 들여다본 탓인지 일련의 과정들이 마음 아팠다. 혼수상태에 빠진 지로의 기억 때문에 시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도모코도 사랑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시로는 후지사와가 찾는 '란도셀'을 추적하다 형이 훔쳐낸 것이 '루즈 마이 메모리'라는 기억을 없애주는 신종 마약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시로가 그 마약을 훔쳐냈기에, 시로도 모르는 곳에 감춰뒀기에 후지사와는 난처한 입장에 빠졌고 그 수 많은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지 무척 궁금했다. 퍼즐을 맞춰나가듯 끝을 향해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순탄(?)했다고 해야 하나.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훼이팡도, 크레이크 부샤르도, 혼수상태에 빠진 지로도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 이미 돌아가 있는 그들의 세계를 탐험한 듯한 꿰어맞춤을 읽었을지는 몰라도 여러 시대를 넘나드는 대장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결코 지워버릴 수 없는 기억을 간직한 채(루즈 마이 메모리를 자신의 의지와 달리 복용하게 된 이노우에 감독의 기억은 어떨런지.).

 

  그제서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다. 이미 흘러버린 과거도, 흘러가고 있는 현재도 사람들의 기억속에 잠재해 있지만, 복잡한 길을 통해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이노우에 감독이 그토록 찾아 헤메던 새로운 태양이 솟았으므로 그 빛을 향해 나아갔으면 한다. 기억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태양의 빛이 따스하게 비춰지길.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라도 꿋꿋하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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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cat in Paris 파리의 스노우캣
권윤주 지음 / 안그라픽스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파리'라는 단어를 보면 설레임이 드는 것보다 먼저 피하고 싶어진다. 너무나 유명한 도시이기에,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갈망보다 가보지 못한 질투심이 먼저 인다. 어리석은 마음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유명한 도시를 대하는 나의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 밑바탕에는 가보고 싶다는 욕망이 가장 크겠지만, 질투심에 눈이 먼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살까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스노우캣의 다른 버전을 즐겁게 읽었지만 '파리'라는 제목 때문에 경계심이 인 것이다. 결국 스노우캣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구입했는데 참 잘샀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곱지 못한 마음을 철저히 부숴준 파리의 스노우캣은 멋졌다. 거기다 대리만족도 최고였다.
 

  '파리'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여기저기서 들은 풍월밖에 없지만, 그 거리를 누벼보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하다. 두려움 때문에 혹은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선뜻 가볼 수 없는 곳이 어디 파리 뿐이겠냐만은, 약 4개월 동안 파리에 머문 저자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계획에 없던 일정을 늘려 버리는 바람에 금전적인 부담감이 상당했다는 저자 앞에서도 부러움은 자꾸만 커져가고 있었다. 유명 도시에 대한 여행책을 보면서 거부감이 드는 것은, 많은 것을 알리기 위해 꼼꼼하게 기록해가지 못한 글과 시각을 현혹하는 시각 때문이었다. 단기적인 체류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런 조건으로 보자면 스노우캣의 여행도 그런 면이 다분하다. 이 책을 여행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사진이 실린 것도 아니고, 세세한 글이 실린 것도 아닌 그림으로 채워지고 짧막한 글이 실린 책. 그러나 지금껏 만난 어떤 여행책들보다 훨씬 좋았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바라본 파리의 무엇이 그토록 좋았을까. 더군다나 다른 책에서 보아온 파리의 모습을 통해 많은 장소는 낯이 익었는데. 아무래도 파리의 모습을 독특하게 그려낸 저자의 시선이 아니였을까. 사진의 생생함도, 파리의 적나라함도 없었지만 저자가 보고 있는 파리의 모습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소소함.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파리와,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의 조화가 적절했다. 파리의 많은 곳을 겉핥기보다 적지만 몇몇 곳에 정을 담뿍 뿌려놓은 저자의 동선이 좋았다. 카페 이름이나 거리의 이름을 말해주어도 어차피 기억을 못하니 그림과 짧은 글을 통해 드러나는 소소함이 대리만족을 시켜주었다. 카페의 나라라고 할만큼 넘쳐나는 카페는 분위기 좋은 곳이 많았으므로, 그곳에 앉아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저자만 바라봐도 행복했다. 파리의 유명한 곳을 구경하는 것보다 자신의 흔적을 조금씩 흘려놓는 모습이 더 아련하게 다가왔다.

 

  파리라는 도시의 특징 때문일까. 저자가 경험한 것들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낼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예술적인 감각이 철철 넘친다는 것이었다. 카페에만 앉아만 있어도 보이는 풍경이 그랬고, 거리 곳곳마다 사람들의 퍼포먼스가 그랬다. 예술의 도시답게 즐비한 예술적 공간들은 거리에도 넘쳐났다. 거대한 미술관안의 그림들도 좋았지만,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름없는 예술가들의 흔적을 만날때마다 도시가 뿜어내는 열기가 벅찼다. 그 거리를 배회하는 저자가 부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내가 혼자서 저런 거리를 걷는다면 느꼈을 고뇌와 걱정들까지도 유쾌하게 보여주었기에 되려 위로가 되기도 했다. 직접 가보지 않고도 마냥 부러워하는 마음만 들지 않는 과정이 소중했다. 거리의 작은 구석을 누빈 발품이 느껴졌고, 그랬기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꿈꾸는 일상이 파리에서 그대로 드러났기에, 저자의 많은 고충은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그런 꿈을 직접 꿔보고 싶었다.

 

  저자가 파리에서 경험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키스 자렛과 팻 매쓰니의 공연 후기였다. 공연관람을 특히 좋아하는 나로써는 눈이 확 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한공연에 기댈 수 밖에 없는 나에게 파리에서 본 그들의 공연은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키스자렛의 음반이 달랑 두장 밖에 없지만, 른 콘서트 음반은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그의 공연을 직접 보다니, 너무너무 부러웠다. 팻 매쓰니의 공연은 좀더 특별했다. 그의 공연 때문에 여행 일정을 연장한 것이나, 표를 구입할 때 그 사실을 들먹이며 좋은 자리를 찾아낸 것이나 그의 공연을 보고 사인을 받았던 일들. 저자가 느꼈을 뿌듯함이 어땠을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파리에서 그런 좋은 공연을 두 번이나 보다니. 정말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책을 덮고나니 파리의 거리거리의 생생함이 나를 짓눌렀다. 그 짓눌림은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무작정의 욕망이 아닌, 한 사람이 체험한 파리의 경험담이 이렇게 가슴 벅차게 다가올 수 있는지에 대한 기쁨이었다. 책을 안고 자면 행복한 꿈을 꿀 것 같은 뿌듯함이 나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다 책의 거의 마지막에 나왔던 팻 매쓰니의 공연을 되새기다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를 잘 모르지만, 낯이 익다는 느낌에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는데 순간 내 음반꽃이에 그의 음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음반꽂이를 정신없이 뒤져보니 그의 음반이 한 장 나왔다. 맙소사! 예전에 재즈를 좋아하는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음반이었다. 한 두번 듣고 그대로 음반꽃이에 넣어 두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환기시킨 것이다. 그런 연결이 너무 뜻밖이기도 했지만, 짜릿했기에 음반을 꺼내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 들을 때는 별 감흥이 없더니, 누군가의 경험이 곁들어 지니 음악이 다르게 들렸다. 헤드폰으로 듣는 음악이지만, 눈을 감으면 파리의 공연장이 떠오를 듯한 기분. 팻 매쓰니의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나는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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