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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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머의 루머의 루머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5
제이 아셰르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09년 3월
평점 :
나는 무척 소심한 편이다. 누군가 나한테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쉽게 상처 받는다. 겉으로 티는 안내지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해결 될때까지 가슴이 벌떡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대로 내가 상대방에게 그런 폐를 끼쳤을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나, 행동에 상대방에게 피해가 갔다면 역시 고민에 빠져 오버하고 만다.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급기야 깊이 사과하면, 상대방이 당황할 정도로 미련한 구석이 있다. 냉철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감정을 담뿍 넣어 어리석게 군다. 그런데 둘 중 어느것이 더 치명적인 상처가 될까. 내가 받는 상처, 내가 주는 상처 중에서. 상황에 따라, 농도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상처는 상처일 뿐 절대 흔적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내가 보인 행동이 상대방에게 세상을 등질 이유가 되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죄책감이 범벅된 괴로운 날의 연속일까. 아니면 아무일 없던 듯 일상을 살아갈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며 살아가다, '너 때문에 난 자살을 하게 됐어'라고 말하는 테입이 도착한다면 과연 어떨까.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그제서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게 될지 모르겠다. 그것도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한 사람의 삶이 막을 내렸다면, 그 이후에 남겨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만으로도 치가 떨린다. 그러나 <루머의 루머의 루머>의 인물들은 상상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2주 전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같은 반 친구 해나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테잎을 받는다.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고간 리스트에 포함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해나를 짝사랑했던 클레이는 자신이 이 테입을 받는 순간부터 혼란과 충격에 빠지고 만다.
이미 죽은 해나의 목소리가 테입을 통해 흘러나오니 클레이는 기분이 묘했다. 그러나 해나의 테입을 들어가면 갈수록 엄습하는 불안감을 지울 길이 없었다. 왜 자신이 이 테입을 받아야 했는지 궁금했지만, 해나가 리스트에 올린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질때마다 충격에 휩싸였다. 이 테입을 들은 다른 아이로부터 자신에게 건너온 테입 7개. 그 안에는 해나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이 낱낱이 들어 있었다. 장난삼아 흘린 말들, 무관심하게 지나쳐버린 일,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정정하지 못한 사이에 한 아이는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친구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열거되고, 사연이 나올때마다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힘들어야 했을 해나가 떠올라 클레이는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해나에게 무슨 짓을 해서 이 테입을 듣고 있는 것인지 몰랐지만, 해나가 그리웠고 미치도록 미안했다.
해나는 테입과 함께 지도 한 장을 남겼다. 자신의 사물함에 꽂혀 있던 한 장의 지도는 아이들이 만들어낸 이상한 소문의 발원지이기도 했고, 외로움을 달래거나, 첫 키스를 했던 장소가 나와 있기도 했다. 그 곳을 일일이 찾아가며 해나의 테입을 듣고 있다보니, 이미 그 곳을 다녀간 리스트 속의 몇몇 인물들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다 해나가 또 다른 복사본을 남겼다는 인물(클레이의 친구인 토니)도 만나고, 서서히 해나가 당했던 고통의 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클레이가 이 테입을 듣고 있는 이유도 드러났고, 그 이유에 클레이는 몹시 괴로웠다. 조금만 손을 더 내밀었더라면 해나가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후회와 그리움이 뒤범벅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해나가 목숨을 끊게 된 고통을 들여다보며 왜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러나 테입을 다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허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았다. 해나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 친구들의 장난과 거리낌없는 행동들이 있긴 했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미미한 것들이었다는데서 오는 충격이었다. 지나침, 무관심, 겉으로만 판단했던 일들이 해나에게 차곡차곡 쌓여 궁지로 몰고 갔고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나가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극단적인 방법까지 가지 않기를 기대하며,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알아봐주고 진실된 내면을 바라봐주길 바랐다. 하지만 번번히 그런 기회는 날아가버렸고, 결국 해나는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궁지로 몰고간 친구들에 대한 복수라기보다 무고한 한 사람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채 죽게 만든 억울함의 호소였다. 그러나 해나는 이 세상에 없고, 친구들은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모두 알고 있다. 그 친구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지 않은 채 또 다른 리스트의 친구에게 테입을 보내는 클레이의 모습으로 책은 마무리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남겨진 친구들의 내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해나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속에서 이미 남겨진 자의 고통까지 다 듣게 되었다. 해나의 고통이 가장 컸고, 안타까움이 나를 지배했지만 섬뜩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내가 가까운 지인이나 타인을 대했던 행동 속에서 그런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을 수도 있다 생각하자 안절부절이었다. 멀리 갈것도 없이 루머로 힘들어하다 자살한 톱 탤런트 사건만 떠올려도 충분히 상처 입힐 수 있고, 충분히 상처 받을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런 메세지를 담고 있어서인지 책을 읽는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너무도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한 소녀의 죽음앞에 쉽게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일상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 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사소하게 시작된 루머가 한 사람을 어떻게 몰고 갔는지 녹음된 테입을 통해 낱낱이 파헤친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요즘 누리꾼들의 댓글이 심심치 않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나의 행위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돌아봤음 좋겠다. 누리꾼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인간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으므로 누구나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다들 날 해코지 할 뜻은 없었을 거야.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겠지. 자기가 저지른 일인데도. - 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