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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 ㅣ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 2
칼렙 카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가 너무 강렬해 저자의 다른 작품을 찾아 보았다. 국내에는 셜록 홈즈 탄생 120주년을 기념한 기획작품밖에 번역되어 있지 않았다. 한 권이라도 번역되어 있는게 어디냐머 바로 책을 주문했다. 도무지 눈길을 뗄 수 없는 흡인력에 이끌려 순식간에 읽었다. 저자가 셜록 홈즈의 팬이라는 사실이 나에까지 미쳐 셜록 홈즈의 활약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코난 도일의 책을 세트로 주문하고 싶어 안절부절 견딜 수가 없다. 지름신이 강령하지 않기를 바라는 수 밖에.
코난 도일, 뤼팽 등 전설로 내려오는 추리소설의 캐릭터가 있지만, 추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지금껏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 내게 불을 붙인 작가가 바로 칼렙 카였고, 그의 작품을 통해 그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코난 도일의 책들이 궁금해졌다. 탄탄한 구성과 높은 완성도 덕분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 같은 독자들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가 셜록 홈즈를 바탕으로 정신학과 접목시켜 썼다면, <이탈리안 비서관>은 셜록 홈즈에 좀 더 가까운 작품이다. 기획작품인 이상 많은 부분이 비슷하겠지만,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어보지 않았기에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와 비교하며 읽었다. 한 작가의 작품이지만, 두 작품은 비슷하면서도 달랐고 칼렙 카라는 작가를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새로운 셜록 홈즈 이야기'라고 해도 무색할 정도로 이야기의 흐름이나 완성도는 절대 뒤지지 않았다.
이 책에는 셜록 홈즈와 그의 친구 왓슨, 사건을 의뢰한 셜록 홈즈의 형 마이크로프트가 등장한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지 않아 인물의 배경을 잘 모르지만, 워낙 캐릭터가 독특해서 쉽게 구분하며 읽을 수 있었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었다면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고, 꼭 읽지 않았더라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인 셈이다. 홈즈와 왓슨은 마이크로프가 보내 이상한 전보로 사건에 끼어들게 된다. 정부 기관이 알지 못하도록 암호로 되어 있는 전보를 해석하면서 마이크로프트가 지정한 장소로 떠나게 된다. 그곳은 다름아닌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가끔 머무르기도 하는 궁전으로 오라 하니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셜록 홈즈는 자신이 형이 빅토리아 여왕을 비밀리에 수행하고 있는 것과 궁전에서 일어난 두 건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러 간다는 사실을 왓슨에게 알려준다. 최근 홀리루드 궁전에서는 서탑을 복원하던 관리인 두 명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언론은 교묘히 사고로 덮어 버렸다. 이면에는 마이크로프트가 사건화되지 않도록 손을 썼고, 여왕 암살의 전조라며 두 사람을 불러들인 것이다.
그러나 홀리루드 궁전으로 가는 길부터 난관이 생겼다. 폭탄테러를 당하는가 하면, 궁전에서 기이한 하인들을 만나게 된다. 궁전으로 오는 동안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셜록 홈즈로부터 설명을 들은 왓슨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300년 전,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의 절친한 신하인 다비드 리치오의 사건과 연관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은 리치오가 복수를 하기 위해 살인을 했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유령을 믿지 않는 왓슨은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궁전에 도착해서 둘러보니 오히려 홈즈의 말이 사실인 것 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성 안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울음 소리, 리치오의 유령이라 믿는 발자국과 노랫소리등이 300년전의 분위기를 연상시켜 주고 있었다. 그러나 홈즈와 왓슨은 궁전의 하인, 죽은 관리인의 시체, 궁전의 이상한 현상에 대해 꼼꼼하면서도 차분하게 조사해 나간다. 복선을 깔아주었다가 전말을 밝혀주기도 하고, 그야말로 빈틈없이 흡인력 있게 사건의 전말로 독자를 끌어 당기고 있었다.
기이한 일들이 하나하나 조사되고 밝혀질 수록 사건은 정점에 이르렀고, 마이크로프트가 걱정했던 여왕 암살의 전조라고 보기 힘들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영국을 견제하는 독일 세력과 권력의 편협함이 숨어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아갈수록 사건은 복잡하게 얽혀들어간듯 했으나, 홈즈의 통찰력으로 중심 가닥을 잡아 간다. 리치오가 잔인하게 살해 되었던 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기이한 일들에는 돈을 목적으로 한 얄팍한 술수가 있었다. 전설과 유령을 접목시켜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돈 벌이 수단으로 이용해 왔던 무리들은 의외로 궁전에 가까이 있는 인물이었다. 작은 것 하나가 단서가 되고, 홈즈의 추리로 사건은 조금씩 실마리를 향해 간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질 수록 위험해 지는 법. 그들에게도 서서히 위기가 닥치고 있었다.
리치오가 잔인하게 살해된 방의 이면이 밝혀지고, 유령의 짓으로 몰고간 파렴치한 인간들의 속내도 속속들이 드러난다. 능숙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이중생활을 해 온 관리인들의 소행으로 밝혀지지만 그들이 쉽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리 없다. 홀리루드 궁전에서는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고, 홈즈와 왓슨, 마이크로프는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을 꾸몄던 관리는 비참한 결말을 맞았고, 하나씩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면서 위험요소도 감소하게 된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추리의 묘미와 재미를 만끽했기에, 결론으로 갈수록 차분해 질 수 있었다. 과정이 충실했기에 결말이 뻥 하고 터지는 조잡함이 없었고, 결말에 다가갈수록 그동안의 사건 전말을 더듬어보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사건의 중심부로 치닿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독자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덧대어 주어서 즐겁게 읽게 되었다.
작품 해설을 보면 이 책의 저자가 셜록 홈즈와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의 정신과 의사인 크라이즐러를 중심으로 새로운 작품을 써주길 기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셜록 홈즈 시리즈보다 이스트 사이드의 남자를 먼저 읽었기에 나 또한 두 책을 비교하며 읽어 나름 기대하는 바이다. 자신의 스타일과 셜록 홈즈의 특징을 잘 살려내서 책을 쓸 수 있는 작가 칼렙 카. 단 두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비슷하면서도 뚜렷한 구성에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기획된 책이라고 해도 이렇게 많은 요소를 두루 갖춘 책을 읽게 되어서 무척 기뻤다. 새로운 장르에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셜록 홈즈에 무한한 관심을 쏟게 만들었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게 된다면, 좀 더 비교하며 회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