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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리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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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저자의 프로필을 보고 있자니, 경계심이 인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데, 글 잘써, 얼굴 이뻐, 명문대 다녀. 완벽해도 너무 완벽해 잠시 할 말을 잃는다. 저자의 프로필에 유치한 경계심을 드러낸 것은 부러움 때문이다. 나와 같은 20대인데 이미 오래전부터 글을 썼고, 많은 상을 휩쓸었다는 부러움. 살짝 울적해 질뻔 했지만, 그런 터무니 없는 이유로 쓰러질 수야 없지. 나를 어떤 세계로 이끌 것인지 그녀의 글이 궁금했다. 프로필을 신경 쓰지 않으며 읽을 자신이 없었기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비장했다.
 

  책의 초반을 읽고, 골방에 갇혀 읽기에 적합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밝지 않은 분위기에 휩쓸리다 나까지 우울해지는 건 막고 싶었다. 조카가 치과치료를 받는 동안 읽으면 괜찮다 싶어 대기실에서 읽었다. 그런 곳이라면 책 내용이 우울해도 나까지 휩쓸리지 않을거란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얼마나 넋을 빼고 읽었는지 조카가 아프다고 울어, 그제야 책 속에서 빠져 나올 정도로 흡인력이있었다. 집에서는 읽지 않겠다던 다짐은 사라지고 집에 오자마자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웃기도 하고, 씁쓸해 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우울하지 않아 고마웠다. 도둑질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던 주인공 연이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내내 이런 분위기면 어째야 하나 살짝 걱정을 했었다. 소설의 내용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를 암흑 속으로 데려가지도 않았다.

 

  다른 남자와 떠나버린 엄마, 폐인처럼 지내는 아빠, 늘 부족한 것 투성이인 학교 생활에서도 연이는 담담했다. 자신의 상황이 못마땅하긴 했지만, 자학하거나 좌절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런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힘든 희망을 품거나,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는 나름대로의 절제. 그 절제 덕분에 첫인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풀고 이 책을 읽어갈 수 있었다.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연이의 성장을 통해 내가 이미 겪어온 과정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면 너무 고리타분할까? 10대의 고뇌를 생각해보려고도 했지만, 덤덤하면서 자신의 상황을 즐기는 연이로 인해 편안한 구경꾼이 되었다는게 실은 더 맞는 표현이다.

 

  이 책에는 연이가 11살부터 19살까지의 온갖 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연이가 성장할수록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아 시간이 흐르는 것에 심적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아빠와 훔쳐온 개와 그럭저럭 옥탑방에서 살아가지만, 연이가 딱히 마음 붙일 곳은 없었다. 연이밖에 놀아줄 사람이 없었던 병욱이나, 연이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같은 주택에 살고 있는 소영, 엄마가 일했던 미용실의 희정언니 정도만이 연이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소영은 처음부터 연이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목욕탕을 다녀온 후 친구가 된다. 소영의 부모는 이혼을 해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기에 오히려 연이가 더 삐뚤어지지 않을지 내심 걱정했었다. 연이의 주변 환경은 그 정도로 좋지 않았고, 소영은 그나마 가정환경이 참을만 했다는 것이 선입견으로 둘러쌓인 나의 시선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연이는 맹랑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갔고, 소영은 어긋나기만 했다. 나의 예상대로 흘러가주지 않은 스토리 때문에 우울하지 않았지만, 빤한 시선으로 지켜보던 나의 눈길이 부끄러웠다.

 

  어쩌면 밝지 못한 분위기 가운데서 내가 나름 밝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문체 때문인지도 모른다. 깊이 있게 들어가지 않았지만, 살짝 겉핥기를 하면서도 무언가 상큼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가볍지 않은 저자만의 독특한 언어 유희가 곳곳에서 느껴져 정신빼고 책을 읽다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어이없는 웃음을 뱉어내곤 했다. 짧막하면서도 사뿐히 걷는 듯한 상황 묘사들이 신선했다. 10대의 이야기라면 10대의 언어와 생각들을 잘 드러내야 하는 것도 한 요소가 되듯, 발랄함과 생동감이 언어에서 드러났다. 연이가 책의 중심에 있긴 하지만, 특별히 연이의 많은 것이 드러나 한 소녀만 바라보게 만드는 시점이 되지 않는 것도 10대를 향한 가벼운 들뜸인지도 모르겠다.

 

  10대가 영원할 것처럼 지루하던 시간은 흘러가고, 연이는 성장한다. 늘 붙어다니던 병욱이 남고를 가고, 아빠와 만나는 아주머니가 생기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연이에게는 새로운 변화라면 변화일까? 집을 나간 엄마가 죽음 앞에서도 처연할 수 있는 것도 성장의 바탕이 될수 있을까? 연이의 파란만장한 10대는 그렇게 저물어 가지만, 연이의 속마음은 구구절절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연이의 성장을 통해 독자에게 짐을 나눠 갖듯, 처량한 나의 10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어느 누구의 삶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의 유년시절이자 모두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낱낱이 비춰지고 있었다. 무엇이 자신의 마음에 각인되었는지는, 잠시 과거를 떠올려 보며 찾아보는 것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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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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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도무지 무엇에 관한 책인지 알 수 없었다. 부제목은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을 위하여'라고 되어 있었지만, 만화로 된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최근에 이스라엘이 가좌지구를 공격한 것으로 인해 나온 책인가보다라고 생각했지만, 1982년에 일어난 사건을 다뤘다는 것을 작품배경을 보고 알 수 있었다. 1982년, 팔레스타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때의 일을 만화로 다룰 정도라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예감했지만 현재 팔레스타인들에게 처해진 상황을 보건데 썩 유쾌한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그들의 고통을 헤아려주지 못하고 있는데(과연 헤아여 줄 수 있는 고통일까), 거기다 오래전의 대량학살을 알아가야 한다니. 책은 두껍지 않았는데 책을 향한 나의 손길은 무겁기 짝이 없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배경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배경을 알아야지만 만화 속의 인물들의 행보며, 그들의 대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반쪽 밖에 차지하지 않는 작품 배경은 읽어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그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짧은 내용속에 담긴 것은 엄청났다. 3000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한 과정은 너무 터무니 없었고, 그 숫자가 믿기지 않았다. 정치적인 이유로, 잘못된 분노와 무절제로 그 수많은 사람들이 3일만에 사라져 버렸다.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접경지역에 안전지대를 설치하기 위해 방위군을 동원헤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다. 하지만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점령 후 자신의 기독교 동맹인 바시르 제마엘을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지명하는 계획으로 바꿔 버렸다. 이스라엘 북부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 시리아를 견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스라엘 방위군은 베이루트 외곽을 포위하고 진압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기에 레바논 주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베이루트에서 튀니지로의 퇴로를 확보하는 조약을 체결한 상태라 이스라엘 방위군이 베이루트 침입 위협은 사라진 상태였다. 제마엘은 아리엘 샤론의 계획대로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두 나라의 긴장이 양화될 거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을 9일 앞둔 1982년 9월 14일, 제마엘은 폭탄 테러로 살해되었다. 누구의 소행인지 현재까지 밝혀지고 있지 않지만, 그 날 팔레스타인 난민촌에는 끔찍한 학살이 벌어지고 만다. 기독교 민병대의 진입 목적은 무장 세력을 색출한다는 이유였지만,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이미 튀니지로 떠난 후였고 난민촌에는 노인들과 여자들, 아이들만 남아 있었다. 민병대는 바시르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3000명이나 되는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다. 이 소식은 전 세계에 알려져 이스라엘 시민들은 공식 조사 위원회를 만들라고 이스라엘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조사 위원회는 아리엘 샤론 국방장관이 대량학살을 인지하고도 그 학살을 멈추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 샤론은 해임되었지만, 20년 뒤 그가 이스라엘 총리가 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작품배경으로 실린 짧막한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사실이 들어 있었고, 도무지 믿기 힘든 내용들이었다. 이 배경을 바탕으로 주인공이자 저자 자신인 아리 폴먼의 기억을 좇는 만화가 이어진다. 아리는 1982년에 자행된 대량학살에 참여한 군인이었지만, 기억을 잃어 버렸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전우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 학살에 참여했던 전우들도 말이 아니었다. 21년동안 악몽을 꾸는 친구, 성공은 했지만 그때의 기억이 탐탁치 못한 친구, 의사로써 그를 도와주려는 친구를 통해 그는 학살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작품배경이 아니었다면,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억의 상실이라고 생각해 버렸을 것이다. 전체적인 맥락을 알았기에 그들의 증언과 기억이 생생하게 전해졌고, 그 당시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시점에서 씌여졌으므로 얼마나 긴박하고 잔인했는지를 몸서리 치게 느껴졌다. 그들의 기억을 좇다보니 학살된 양민들도 양민들이지만, 잘못된 것인지를 알면서도 명령이기에 따라야 했던 군인들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했다. 권력과 정치에 비유상함만 느끼고 말기에는 탐탁치 않은 점이 너무나 많았다.

 

  양민들의 학살 현장에 들어간 기억으로 마무리 될 줄 알았던 책의 끝은, 너무나 끔찍한 사진 몇장을 싣고 있었다. 학살 당한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시신들을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의 가족, 생활, 삶의 언저리는 커녕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이었지만, 무차별적으로 자행된 학살의 희생자라는 생각에 사진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과연 죽어 있는 그들을 사람으로 볼 수 있을까. 저런 사람들이 3000명이나 된다면 그 사람들을 죽인 군인들에게 과연 그들이 사람으로 보였을까. 너무나 아이러니한 상황이(어찌되었든 이 만화는 학살에 참여했던 군인의 고백으로 이루어졌으므로) 끔찍했다. 사람 목숨이 아무런 가치도 없게 느껴지는 사건 속에서 그 일을 자행했던 사람은 이스라엘 총리까지 되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은 비극이다. 가장 비극적이고 비참한 사람들은 희생된 팔레스타인들이지만, 그 일에 조연을 맡았던 군인들 까지도 비극의 연장선상에 있다. 옮긴이는 아리 폴먼이 이스라엘의 미묘하기 그지없는 정치지형에 신경 쓴 나머지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제대로 다 못전했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러면서 5.18 광주학살에 투입됐던 병사들을 주인공으로 한 고발적인 영화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고 했다. 제목부터 미리 정해 <전두환과 왈츠를>이라고. 참으로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몇장의 사진으로 보여졌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미 우리나라의 역사에 존재했다는 것이 마음 아프고 분노가 인다. 과연 그들에게 전쟁은 끝난 것일까. 대답 없는 질문으로 널뛰는 마음을 안정시켜 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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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인형 - 가브리엘 뱅상의 그림 이야기
가브리엘 벵상 지음 / 열린책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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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이 내 품에 안긴 것은 순전히 끌림 때문이었다. 서점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열린책들 진열대 앞에서 서성 거렸고, 이 책을 발견했다. 비닐로 쌓여 있는 책이어서 궁금증이 일기도 했지만, 겉표지의 소년이 꼭 나 같았다. 진열상 속의 인형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 책을 갈망하는 나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너무나 많은 책이 집에 쌓여 있기에 선뜻 집어들 수 없어 같이 간 지인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 책 궁금하지 않냐고. 지인은 내 질문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구입한 책을 계산할 때 이 책을 슬쩍 끼워 주었다. 이런 식으로 책을 뺏은(?)게 꽤 많지만, 그래도 강한 끌림을 거부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책을 펼쳤지만, 5분도 안되어서 다 읽어 버렸다. 이 책은 읽었다기 보다 보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겉표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연필로 쓱쓱 그린 그림이 대부분이었고, 짧막한 설명이 곁들어 있었다.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당황했었다. 데생이라고 하지만, 정성스레 그렸다기 보다는 두꺼운 4B연필로 순간포착을 한 것 같았다. 거침없이 그려진 세계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고,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지우개로 지워버린다면 지워질 것 같은 생생함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침이 나를 더 이끌었다. 짧은 글은 여러 페이지가 지나야 나왔지만, 그림 곁의 공백에 수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었다. 내 머릿속에 벵상의 그림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들어왔고, 어느새 그 곳에 머물러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말 소박한 데생이었지만 너무 많은 것이 나의 내면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잠시 그림 속의 아이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아이는 상점 속의 인형을 발견한다. 조그만 인형이었는데 둘은 수줍게 서로를 쳐다보며 미소를 나눈다. 인형이 움직이는 모습에 웃기도 하며, 서로를 즐겁게 관찰하다 아이는 문득 그 인형과 놀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상점의 주인 할아버지에게 혼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선뜻 꼬마인형에게 말을 건네지 못한다. 그러나 꼬마인형은 자꾸 숨으려고 한다. 무엇 때문일까. 아이가 놀러 나가자고 해서일까? 꼬마인형은 다른 곳에 걸려있는 늑대인형을 무서워 하고 있었다. 아이는 꼬마인형이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꼬마인형을 지켜주려 한다. 아이는 꼬마인형을 꼭 껴안아 늑대로부터 보호해준다. 꼬마인형을 보호해주는 아이를 지켜보던 주인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말을 걸려고 하지만, 아이는 꼬마인형을 안고 도망친다. 할아버지가 자신을 혼내려 하는 줄 알고 착각한 것이다. 아이는 도망가고, 할아버지는 뒤쫓다 대화를 통해 오해를 푼다. 인형을 돌려주려던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다시 인형을 주고, 둘은 친구가 된다. 둘은 인형을 잡고 춤을 추기도 하고 거리를 걷기도 한다. 또 오라는 할아버지의 인사에 아이는 '그럴게요' 라고 대답한다.

 

  생명이 없는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아이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런 따뜻함은 말로 설명하기 보다 직접 보는 것이 충만함을 훨씬 더 준다. 할아버지와 꼬마의 대화가 무척 짧지만, 데생에서 느껴지는 사연은 무궁무진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섬세한 배경, 상황과 분위기 이입을 통해 더 풍부하게 채워 나갈 수 있었다. 아이와 인형의 표정만 달랑 그려진 데생만 보아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든 감정이 다 내게 쏟아지는 것 같아 마음이 벅찼다. 간단하면서도 별 내용이 없는 것 같은 데생으로 벵상은 독자의 연령층, 성별에 상관없이 광할한 상상의 바다를 선물해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벵상의 탁월한 능력이 아닐까. 지우개로 지워버릴 수 있는 생생함, 깊은 감정 표현을 너무나 간단하게 드러냈기에 그의 데생을 덮지 못하고 계속 서성이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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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 독자서평단 활동 종료 설문

•  서평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엄마를 부탁해> 

- 단순히 엄마에 관한 책이겠거니 했는데, 너무 많이 울어 버렸던 책이었습니다. 엄마가 계시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고, 엄마가 내 곁에 있어주는게 너무나도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  서평단 도서의 문장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절 

- 엄마라는 말에는 친근감만이 아니라 나 좀 돌봐줘,라는 호소가 배어 있다. 혼만 내지 말고 머리를 쓰다듬어줘, 옳고 그름을 떠나 내 편이 되어줘,라는. -27쪽

•  서평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 엄마를 부탁해 - 신경숙

2. 바다의 기별 - 김훈

3. 미트포트 이야기 - 잰 캐론

4. 작은 기적들 - 이타 핼버스탬, 주디스 레벤탈

5. 혼자놀기 - 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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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문 - 나의 뱀파이어 연인 트와일라잇 2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변용란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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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생활이 말이 아니다. 조금씩 삶의 기운을 잃어가는 가운데, 트와일라잇을 만나 생기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되고 있다. 트와일라잇을 읽었을 때의 흥분과 영화를 봤을 때의 실망감이 뒤섞여서 혼란스러웠지만, 도저히 에드워드의 매력에 빠져 나올 수 없었다. 부랴부랴 2,3부를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1부에서의 에드워드를 기대했기에 2부를 읽다 지쳐버리고 말았다. 에드워드는 갑자기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진 벨라의 생활이 썩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읽어버리려 했던 나의 마음은 사라졌고, 100페이정도 읽다가 책을 덮어 버렸다. 그런 멈춤이 에드워드에 대한 환상을 깨어줄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책의 내용에 따라 나의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해 기분이 씁쓸해지고 말았다.
 

  뉴문을 읽는동안 에드워드가 나오지 않아서 기분이 쳐지는 것도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괴롭혔던 것 같다. 완벽한 에드워드를 상상속에 띄워놓다보니 정상적인 생활을 할수 없을 정도로 신세타령이 늘어 버렸다. 외로움에 사무쳐, 최소한 사랑을 할때 서로를 알아 볼 수 있지 않냐는 푸념아닌 푸념을 해대고 있다. 에드워드와 벨라처럼 강렬하고 운명적인 만남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그런 만남을 갈망하게 되는 헛바람은 도무지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존재 때문에 벨라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살 것이라는 것이 괴로워 이별을 한다. 1권에서 그렇게 달콤했던 에드워드가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함으로써 남녀 사이의 빤한 스토리가 전개 되지만, 그런 단계를 밟아 가는 것이 싫었다. 둘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해야 했다. 그런 바람이 내게 허영을 부풀려주는 계기가 되더라도 무조건 그들은 함께 해야 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할때마다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벨라의 두고 훌쩍 떠나 버린다. 그들은 이별을 감당할 수 있을까. 벨라는 산 시체가 되어가지만, 몇 달이 흘러도 에드워드에게 아무런 연락조차 없다. 그런 벨라를 위로해 주었던 건, 아버지 친구 아들 제이콥이었다. 에드워드가 벨라 곁을 떠난 사실을 주변 사람들도 모두 알지만, 벨라가 마음을 열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도 위로해 줄 수 없는 아픔이자 슬픔이었다.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벨라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는데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학교와 집, 잠을 잘때조차 벨라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벨라가 제이콥에게 다가가게 된 계기는 에드워드 때문이었다. 그를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 벨라는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린다 믿고,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제이콥을 찾아가는 계기를 만든다.

 

  나 역시 에드워드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벨라처럼 자연스럽게 받아 들였듯, 사랑 앞에서 그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이콥의 변화를 받아들이여 하는 것은 좀 혼란스러웠다. 제이콥으로 인해 희망의 빗줄기를 엿보았던 벨라에게는 제이콥과 에드워드가 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더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자신을 향한 마음 때문이라기 보다, 제이콥을 곁에 두고 하면서도 마음은 에드워드를 향했던 벨라. 그 사실을 알면서도 벨라를 사랑하는 제이콥은 자신의 부족의 전설에 자리한 뱀파이어와 적대적인 관계로 변신하고 만다. 제이콥의 변신으로 1편에서 벨라를 죽이려 했던 제임스의 연인 빅토리아로부터 벨라를 지켜주지만, 에드워드가 비워버린 자리는 결코 벨라에게 이롭지 않았다. 제이콥의 변신도 마음 아프고, 자신을 노리는 뱀파이어, 거기다 에드워드를 그리워 하는 마음은 너무도 처절해서 벨라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 기특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 놓인 벨라를 에드워드는 도대체 알고 있는 것일까. 벨라의 마음을 읽어가다보니 나조차도 그가 못견디게 그리워 세상에 시련을 다 짊어진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책의 80%이상은 벨라가 에드워드를 그리워하는 일, 제이콥과의 우정과 그의 변신으로 채워지지만 벨라가 한 행동 때문에 상황은 급격히 변한다. 지금껏 에드워드가 나오지 않아 실망하고, 큰 사건없이 흘러가는(제이콥의 변신등 사건이 많았지만) 책의 흐름을 견딘 과정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에드워드가 등장한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에드워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절벽에서 다이빙을 한 모습을 에드워드의 누나 앨리스가 내면으로 보게 되고, 에드워드에게도 소식이 전해진다. 오해를 해 벨라가 죽었다고 생각한 에드워드는 죽을 일이 아니면 찾아가지 않는다는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뱀파이어 가문 '볼투리' 일가를 찾아간다. 그런 에드워드를 막아야 했기에 앨리스와 벨라는 이탈리아로 날아가고 상황은 급변하며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벨라처럼 에드워드를 마주하게 될 현실에 가슴이 떨려왔다.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그동안 벨라가 그리워한 마음이 철저히 내면에 박혀 있었으므로 에드워드와 조우를 무척 기다리게 되었다.

 



  에드워드와 벨라는 다시 만났다. 에드워드가 위험에 노출된 그 순간에.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마치 내가 벨라인 것처럼 에드워드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안심 되었다. 무사히 위험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재회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서 단순하게 상황이 끝나는 것이 아닌 더 많은 복잡미묘한 문제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말이다. 에드워드의 등장만으로도 충분히 달콤했고,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제이콥과의 관계, 벨라가 에드워드와 같은 존재가 되는 여부, 앞으로의 진로들이 얽혀있지만 조금씩 풀어가면 될 것이다. 볼투리 일가와의 약속도 고민거리를 남겨 주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벨라 곁에는 에드워드가 있고, 에드워드는 벨라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고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충분히 알게 되었으므로. 잠시 안정된 상황에 내가 다 진이 빠져 약간의 공황상태지만, 당분간은 현실을 직시하려는 노력만 하면 될 것 같다. 에드워드 같은 남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 나는 절대 벨라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 허무하긴 하지만, 책으로만 즐겨야지 절대 현실로 끌어오면 안 될 것 같다. 나의 현실을 더이상 망가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씁쓸함이 밀려온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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