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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난장이 미짓
팀 보울러 지음, 김은경 옮김 / 놀(다산북스)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팀 보울러의 책을 다 읽어서인지, 신간이 나올때마다 관심이 간다. 그의 소설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 소설은 10년 동안 쓴 소설이라고 한다. 그때는 전업 작가가 아니라서 일과 병행해서 글을 써야 했기에 더뎠고, 많은 포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첫 소설이기도 하고, 그런 면이 숨겨져 있어서인지 '미짓'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저자가 공들여온 시간, 미짓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정도 일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짓은 꼬마 난장이로, 못생긴 얼굴과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회의 약자 모습을 갖추고 있다. 처음엔 그런 미짓을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었지만, 책이 끝을 향할때 쯤 곱지 않은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내 안에, 혹은 누군가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또 따른 내가 미짓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인물이라고,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불행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짓의 겉모습과 미짓을 둘러싸고 있는 기묘한 힘이, 내 안에 꽁꽁 숨겨두었던 불결한 '나'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의 상태만 바라보기도 힘든 미짓은 아픈 상처를 안고 있다. 아빠는 자신에게 헌신하지만, 엄마는 자신을 낳다 돌아가셨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착하다고 여기는 형의 이중성에 고통 당하고 있었다. 스포츠 광이고, 모범적이고, 미짓 같은 동생에게도 친절하다 칭찬 받는 형 셉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공간에서 미짓을 학대한다. 셉의 이중성은 너무 철저해서 다른 사람들은 미짓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형을 증오할 수 밖에 없는 미짓. 자신의 처지와 형의 학대, 찾은 발작으로 인해 무척 고통 당하고 있었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었기에 답답할 때마다, 위로를 받고 싶을 때마다 집 근처의 조선소를 찾아가곤 했다.
조선소에는 페인트칠이 덜 된 노란 요트가 한 대 있었다. 미짓은 그 요트를 가질수도, 탈 수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요트를 보러 자주 조선소를 찾았다. 왜 그 요트를 가질 수 없는지 아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유를 들었지만, 상관 없었다. 그 요트만이 미짓의 희망이었고, 위로의 대상이었다. 형은 더 멋진 요트로 대회마다 우승을 하는 인기인 이었지만, 미짓은 요트조차 갖을 수 없는 현실이 늘 견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요트의 페인트 칠은 완성되고 요트를 판다는 안내문이 걸린다. 미짓의 마음이 혼라스러운 가운데, 요트를 완성했던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는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았지만, 미짓에게 이상한 말을 한다. 미짓이 요트를 원한다는 것을 안 노인은, 기적을 좀 더 상세하게 그려보며 간절하게 믿으며 완전히 믿으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기에 미짓은 혼란스울 뿐이었다.
하지만 노인의 말은 미짓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자신을 치료해 주는 박사 앞에서 기적의 미미함을 발견한다. 즉, 자신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면, 그 일이 실재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을 기적으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요트를 만들었던 노인은 죽고 조선소를 운영하는 켐프씨는 노인의 유언을 따라 미짓에게 요트를 준다. 자신의 내면에 이상한 힘이 생긴 것을 깨닫고, 요트에 대한 열망을 키울 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일로 인해 기적을 확신하게 된 미짓은 하나의 욕망에 사로잡힌다. 자신을 괴롭힌 형 셉에 대한 복수. 머리속에 그려지는 요트의 향방을 알고, 우승을 거머쥐며 셉을 난처하게 만들던 미짓은 점점 내면의 이상한 힘에 끌려 가게 된다.
미짓이 두드러 질수록, 셉의 학대는 심해졌고 미짓은 셉에 대한 복수를 멈출 수가 없다. 조선소의 노인은 '나쁜 기적을 바라면 대가가, 악이 뒤따른다고' 말했지만, 미짓의 내면은 슬픔과 고통, 증오로 넘쳐날 뿐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셉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든 미짓. 셉의 여자친구이기도 하고, 평소에 자신에게 잘해 주었던 제니는 셉이 평상시에 미짓을 괴롭했다는 것도, 셉을 위험하게 만든 것도 미짓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그런 셉을 용서하라고 말하는 제니 앞에서도 자신을 지배하는 어두운 그림자의 형상은 셉의 죽음을 그려내고 있었다. 미짓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셉을 살릴 수 있지만, 반드시 대가가 따른 다는 것을. 또한 그 대가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미짓의 내면에 소용돌이쳤던 감정들은 내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는데, 미짓은 다른 세계로 가버렸다. 혼란스럽고, 아프고, 복잡미묘한 소설의 결말은 극단적이었다. 미짓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내면의 악을 이긴 것인지, 악에 대한 희생양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미짓같은 아이를 따스하게 대해 주지 못했다는 반성은 제쳐두고라도, '기적'이 기적이 되지 못하고, '희망'이 희망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반대로 '이것이 지극한 현실이다'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구경꾼의 입장 밖에 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미짓을 지배했던 어두운 기적이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인정하기 싫었고, 자세히 들여다 보기도 싫었다. 미짓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 마냥 안타까웠다. 모든 것에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과, 나쁜 기적에는 악이 따른 다는 사실만 처절하게 경험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