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 특별판 트와일라잇 1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변용란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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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날 밤은 몹시 지쳐 있었다. 몸도 피로했고, 정신도 흐트러져 나약한 생각들이 나를 파고 드는 밤이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늦은 밤. 그런 나를 잊고 싶을 정도로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날 내게 도착한 10권의 책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이 책에 눈길이 꽂혔다. 10권의 책 중에서 가장 두꺼워 읽기가 싫었는데, '최강 로멘스'라 칭찬했던 몇몇 지인들의 말이 떠올라 꺼내 들었다. 그런 책이라면 분명 빠져들 수 있을테고, 요즘같이 마음이 헛헛할 때는 로멘스도 괜찮다 싶었다. 그런 깨달음이 좀 빨리 오면 좋으련만. 꼭 잠들기 전인 깊은 밤에 행동을 취하게 된다. 그러다 흡인력 있는 책을 만나게 되면, 늦게 자고, 다음 날 피곤해 할꺼 뻔하면서. 역시나 이런 후회는 새벽이 되어서야, 졸려서 책을 덮지 않을 수 없을 때야 뒤늦게 하게 된다.

 

  미친듯이 책을 읽었지만, 절반 밖에 못 읽었는데도 시간은 새벽 3시를 넘기고 있었다. 중요한 사건도 어느 정도 지나가고, 로멘스도 넉넉히 즐긴 터라 책을 덮었다. 퇴근 후 고요한 시간에 방구석에 틀어 박혀 읽고 싶었지만, 아침에 출근준비를 하면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가방에 넣고 말았다. 사무실에서 이 책을 펼치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결국은 펼쳤고 빠져 들어 버렸다. 이런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어 다음 시리즈를 주문해 놓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지금 당장 다음 책을 읽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 꼼짝없이 내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현실이 공허하게 다가왔다. 이 책에 마음을 뺏긴 내가 한심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잠시나마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게 여겨지기도 했다. 어차피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니 상상속에서라도 실컷 꿈꿔 보고 싶었다. 여자 주인공은 잠시 밀쳐내고, 남자 주인공의 눈빛을 내게로 돌려놓는 말도 안되는 설정을 해 놓은채로 말이다.

 

  이 책의 저자가 여자라는 사실이 책 속에 속속들이 드러났지만, 그 사실이 무척 감사했다. 많은 여성들이 어떤 로멘스를 꿈꾸는지, 어떤 상황을 좋아하는지 안다는 사실 때문일까. 섬세한 묘사를 뒷받침 해주는 세세함이 허영을 몽땅 불어 넣어 주었지만, 여심을 휘어잡는 매력을 거부할 수 없었다. 설령 그가 뱀파이어라도 해도 장생긴 외모,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미소, 정신을 혼란하게 하는 눈빛이라면 어떤 사람이 거부할 수 있겠는가. 거기다 온통 자신에게 빠져 있는 남자라면 더할나위 없는 헛된 상상에 온 몸과 마음을 맡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이렇게 감칠맛 나게 써 내려가다니. 설레임에 몸부림 치며, 나의 예상대로 흘러가주는 뻔한 스토리에서 도무지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1901년 태생인 에드워드 컬렌과 17살 소녀 벨라.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면서도 빠져듬을 멈출 수 없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정체를 들통나지 않기 위해 독특한 가족 구성원들과 포크스에 정착했고, 벨라는 재혼한 엄마를 떠나 아빠가 살고 있는 포크스에 오게 되었다. 어린 나이로 보여야만 한 곳에 오래 정착할 수 있다던 에드워드는 고등학교에 재학중이었고, 벨라는 전학을 온 터라 그들의 첫 만남은 학교였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순탄치 않았다. 외모만으로도 충분히 빠져들 수 밖에 없는데, 에드워드는 벨라를 벌레보듯 한다. 그러다 벨라가 차에 깔릴뻔 한 일이 생겼고, 에드워드는 순식간에 나타나 벨라를 구해준다. 그런 일들이 조금씩 쌓여 가는 가운데, 그들은 서로에 대한 수 많은 궁금증을 안고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의 힘에 빨려들고 만다. 

 

  위험할 때마다 자신을 구해주고 한없이 감미롭게 헌신을 다하는 에드워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만, 벨라는 그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에게 드러나는 이상한 능력, 들려오는 소문을 간추리고 직접 물어 알게 되었지만, 이미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기에 벨라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착한(?) 뱀파이어였고, 그녀의 피를 너무도 원하지만 벨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절재해 간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흘러가는 둘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에드워드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조차 무기력하게 다가왔다. 그로인해 벨라의 가족과 에드워드 가족을 잃을 뻔하고, 벨라의 목숨까지 위험해 지기도 했다. 하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에드워드를 벨라는 거부할 수 없었다. 90년만에 첫 사랑을 하게 된 에드워드는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의 생명이라는 고백과 함께 벨라를 깊이 사랑하고 지켜준다. 벨라는 에드워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둘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을 에드워드는 너무도 간단히 대답해 주었다. 벨라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 이 세상 모든 걸 다 합친 겁보다 사랑하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냐는 에드워드의 말에 벨라도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둘의 사랑놀음에 깊은 대리만족을 하면서도 약간은 진부하기도 했지만, 풋풋한 마음을 찾아 나서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빠져드는지, 이런 상황에서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훤하게 꿰고 있는 저자와 곧바로 행동을 취하는 에드워드 덕분이었다. 에드워드가 뱀파이어라서 위험하고, 고통스럽고, 불행한 것이 아닌 순수하고 세상에 존재 이유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랑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시련과 위험이 어느정도일지 상상할 수 없지만, 1권에서는 모든 위험요소를 덮어 버릴 만큼 둘의 사랑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스토리의 흐름과 결말도 중요하지만, 철저히 과정을 즐긴 책이었다. 책의 곳곳에 나의 감정을 흩부려 놓아 자꾸 떠들러 보고 싶을 정도로 내가 만들어 놓은 달콤한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사랑에 목말라 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이런 환상을 키워가느라 사랑을 못하는 것일까. 어떠한 질문도 대답이 되어 주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하나된 마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행복해 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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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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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을 처음 마주한 것은 10년 전이다. 당시에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인기가 지금처럼 높지 않아서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고, 하필 리뷰를 남기지 않은 기간에 '키친'을 읽어서 책 내용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 뒤로 세 권의 책을 더 읽었지만, 바나나 책을 직접 구입해서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미묘한 감정이 벽을 만들고 있는 부족함. 누군가 내게 바나나 책을 선물해 준다면 열심히 읽어보겠다는 속물근성만 드러내고 있던 찰나, 드디어 내 손에 두툼한 바나나 책이 쥐어졌다.

 

  지금껏 얇은 책만 읽어서인지 500페이지에 달하는 바나나 책을 보고 있자니 읽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두껍긴 했지만,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부담없이 펼쳐 들었다. 나의 예상대로 책장은 편안히 넘어갔고, 이런 느낌의 책은 두께와 상관없이 평이하게 만끽할 수 있었다. 바나나 특유의 흡인력과 함께 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너무 빨리 읽어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 속의 인물들과 함께 한 기억 때문이지만, '암리타'는 줄거리보다 소소한 감정의 나열이 더 많았던 책이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감정속에 파묻히다 보니, 나의 단면을 보는 듯한 착각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책의 줄거리는 딱히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던 주인공 사쿠의 가족과 주변인물들이, 뒤로 갈수록 독특함에 날개를 단 듯 더 가관이 되어간다고나 할까. 애매모호한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는지, 낯선 느낌들이 나를 훑고 있을 뿐이었다.

 

  큰 사건들이 드러나지 않을 때는 사쿠의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어느정도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나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세계에서 충분히 마주할 수 있는 인생이라 착각하면서.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을 거라는 생각에 특별한 흐트러짐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타나는 사쿠의 동생과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거라는 맹목적인 상상보다 말도 안된다는 현실감이 더 밀려왔다. 소설을 소설로 보지 못한 이유는 사쿠의 내면을 통해 전달된 일상과 생각들이 친근했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삶에서 느껴지는 지극한 현실감에 빠져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현실적인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 만나게 되는 거부감인지도 몰랐다.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대했음에도,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평행적인 흐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쿠는 엄마와 배다른 남동생, 사촌 여동생, 집을 나온 엄마의 친구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아빠가 같은 여동생 마유는 자살했고, 여동생의 남자친구였던 류이치로와 미묘한 관계속에 있다. 책은 마유와 류이치로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간단하게나마 사쿠의 현재를 정리해놓고 보면, 특별할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굉장히 특별할 수도 있는 상황을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소소한 감정을 다 쏟아부으며 얘기하고 있어서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줄거리라고 할 수 있는 전개는 더뎠다. 사쿠의 머리속에 꽉 차 있는 수 많은 상념들을 쏟아내느라 줄거리를 추려 내기가 어색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쿠의 주변은 평범함을 넘어 비현실적인 세계로 노선을 갈아타고 만다.

 

  첫 낌새는 초등학생인 동생 요시오의 변화에서 찾아온다. 평범하기만 한 요시오는 어느날부터 소설을 쓴다고 방에 틀어박히더니, 급기야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사쿠가 동생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을 직접 보여준 일화 때문이었다. 어떤 현상을 미리 보고,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초등학생인 동생에게 나타난 것이다. 살짝 판타지적으로 흐를 수 있었던 분위기를 어느정도 잡아주었던 것은 사쿠였다. 책의 곳곳에서 중재자 역할을 감당했던 사쿠는 동생의 상태에 대해 흥분하거나 좌절하지 않았고, 멘토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최선을 다해갔다. 자신이 머리를 다치고 부분부분 기억을 잃어버린 후에도, 동생의 능력을 알아보며 진솔하게 대해주는 사람들 앞에서도 담백하게 동생을 대해 주었다. 그런 사쿠가 있었기에 요시오의 광활한 내면이 많은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엄마나 주변사람이 보기에 걱정스러울 행동을 하긴 했지만, 동생의 내면에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에 묵묵히 도와줄 수 밖에 없었다.

 

  동생과 류이치로를 통해 알게 된, 혼을 알아보는 사람과 독특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서도 사쿠는 묵묵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쿠의 주변에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런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과 지극히 평범한 자신과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 틈에서 사쿠는 잘 어울렸다. 많은 일을 겪고, 여러가지 변화를 거치면서도 그녀가 그렇게 느껴졌던 것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대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행 속에서도,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가운데서도, 집안의 변화에 대해서도 사쿠는 자신을 늘 마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없이 쏟아내는 감정들이 그것이었고, 특별한 일들 가운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냈다. 수없이 얽혀있는 사람과 사람, 혼과 넋,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은 그렇게 또다른 조용함을 간직한 채 흘러갔다.

 

  시간이 흐르면 변화가 찾아오는 것처럼, 사쿠의 주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말이 무척 궁금했었는데, 처음 예상했던 것처럼 똑부러진 결말이 아닌 흐르는 그대로 마무리 지어졌다. 어느 순간 그 뒤를 이어 글을 써 내려간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흐름. 사쿠와 류이치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혼란을 거듭하고 어떤 것이 최선인지 모를 요시오의 문제는 의외로 싱겁게 흘러갔다. 신비한 능력이 쇠퇴해 갔고, 중학교에 다닌 뒤 탁구에 빠져 과거의 요시오를 떠올릴 수 없게 만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기억이 되살아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쿠의 모습이 담담했다.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너무 서정적이라고, 혹은 너무 주관적이라고 생각했던 얘기들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쿠가 기억을 잃어버린 뒤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갔던 것처럼, 인생은 앞서서 전진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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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그림 (리커버)
타샤 튜더.해리 데이비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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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타샤 할머니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이 책 만큼 가슴이 먹먹해지는 책은 없었다. 타샤 할머니를 동화작가가 아닌, 30만평의 정원을 일구는 정원사이자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만난던 이유도 있었다. 정원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뺐겨,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이라던가 과거의 삶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었다. 타샤 할머니에 관해 읽을 책이 없어 그제서야 동화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타샤 할머니의 정원이 너무 좋아서 오로지 그에 관한 책만 읽고 싶었다. 이 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타샤 할머니에 대해 지극히 일부분만 알고 지나쳐 버렸을 거라는 생각에 아찔해져 온다.

 

  부유하고 사교계에서 영향력을 끼쳤던 집안에서 태어났던 타샤 할머니는 부모의 이혼으로 첫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타샤 집안과 친분이 있던 미켈슨 가족에게 맡겨진 그녀는, 오히려 그곳에서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그림에 대한 열정을 키울 수 있었다. 그녀가 그림을 좋아하고, 삽화가를 꿈꾸었던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컸지만 미켈슨 가족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활짝 펼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림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그녀는 학교에서 그림을 배우기도 했지만, 그녀가 향한 삶의 방향을 보면 점점 그림과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23살때 결혼을 하고, 첫 그림책을 펴내긴 했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소원해져 갔다. 사랑해서 한 결혼이 아니었기에 남편은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에 동조해 주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헤어지고 타샤는 네명의 아이들을 기르며, 엄청난 집안일과 함께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타샤의 인생을 바꿔 주었다. 아이들은 타샤의 동화책 속의 훌륭한 모델이 되어 주었고, 그녀의 그림은 너무나 생생해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 책의 저자는 타샤의 남편이 타샤에게 끼쳤던 영향에 대해서 분개(?)했지만(타샤 할머니가 너무 고생했기에), 타샤에 대한 애정으로 보게 되었고, 소중한 아이들이 있었으니 남편에 대한 기억을 나 또한 가볍게 떨쳐 버렸다.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은 지금 봐도 너무나 예쁘고, 생생한데 출간된 시기를 보면 내가 태어나기 전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래서인지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더 특별하다.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을 커서도 보고, 몇 대가 걸쳐서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을 사랑하는 사람까지 있었으니 꾸준한 창작의 활동은 색다른 감동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부수적인 효과였다. 타샤 할머니의 그림은 보고만 있어도 동화책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착각이 일었고, 잊고 지냈던 동심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예쁜 세계가 대부분 보고 그린 것들이라는 사실은 환상과 현실 속을 오르내리게 해주기도 했다. 타샤 할머니는 많은 동화책을 그렸고, 그렇게 그린 동화책들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추억 속에 많은 것을 남겨 주었다. 이렇듯 타샤 할머니의 인생을 되짚어 보지 않고서는 맛볼 수 없는 감동이 책의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 졌다고 서두에 밝혔던 것은, 타샤 할머니의 삶 속에 그림이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할머니의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았음에도 언제나 즐겁게 많은 일들을 해 나가는 모습에 가슴이 아렸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큰 선물로 타샤 할머니에게 보답을 했을 때가 감격 그 자체였다. 타샤 할머니도 자신이 그림이 이렇게 대단하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했으니, 할머니의 삶이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얼마나 꾸준했는지 여실히 보여준 것은 그림이었다. 그림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생계를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렸던 그림들이 타샤 할머니에게 많은 것을 안겨 주었다.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타샤 할머니를 알게 되었고, 그녀의 삶과 그녀의 그림 세계에 매료 되었다. 그녀야 말로 평범한 나 같은 사람에게 희망을 던져 줄 수 있는 예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타샤 할머니의 삶 자체가 특별했지만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타샤 할머니가 아닌 좀더 진솔한 타샤 할머니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할머니의 정원과 라이프 스타일은 이미 알고 있기에 잠시 제쳐두고, 또 다른 타샤 할머니를 만났다. 그런 할머니는 여전히 매력이 넘쳤고, 대단했고,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힘든 시기를 견뎌냈고, 노력했기에 가능했지만 타샤 할머니의 그림인생을 통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일상이 언젠가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타샤 할머니의 힘들었을 삶에 가슴이 아파오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을 알고 독특한 삶을 알아갔기에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가 남겨 놓은 것은 이렇게 무궁무진하므로,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거나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할머니가 남겨 놓은 것을 즐기기에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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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난장이 미짓
팀 보울러 지음, 김은경 옮김 / 놀(다산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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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보울러의 책을 다 읽어서인지, 신간이 나올때마다 관심이 간다. 그의 소설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 소설은 10년 동안 쓴 소설이라고 한다. 그때는 전업 작가가 아니라서 일과 병행해서 글을 써야 했기에 더뎠고, 많은 포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첫 소설이기도 하고, 그런 면이 숨겨져 있어서인지 '미짓'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저자가 공들여온 시간, 미짓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정도 일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짓은 꼬마 난장이로, 못생긴 얼굴과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회의 약자 모습을 갖추고 있다. 처음엔 그런 미짓을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었지만, 책이 끝을 향할때 쯤 곱지 않은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내 안에, 혹은 누군가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또 따른 내가 미짓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인물이라고,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불행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짓의 겉모습과 미짓을 둘러싸고 있는 기묘한 힘이, 내 안에 꽁꽁 숨겨두었던 불결한 '나'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자신의 상태만 바라보기도 힘든 미짓은 아픈 상처를 안고 있다. 아빠는 자신에게 헌신하지만, 엄마는 자신을 낳다 돌아가셨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착하다고 여기는 형의 이중성에 고통 당하고 있었다. 스포츠 광이고, 모범적이고, 미짓 같은 동생에게도 친절하다 칭찬 받는 형 셉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공간에서 미짓을 학대한다. 셉의 이중성은 너무 철저해서 다른 사람들은 미짓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형을 증오할 수 밖에 없는 미짓. 자신의 처지와 형의 학대, 찾은 발작으로 인해 무척 고통 당하고 있었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었기에 답답할 때마다, 위로를 받고 싶을 때마다 집 근처의 조선소를 찾아가곤 했다.

 

  조선소에는 페인트칠이 덜 된 노란 요트가 한 대 있었다. 미짓은 그 요트를 가질수도, 탈 수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요트를 보러 자주 조선소를 찾았다. 왜 그 요트를 가질 수 없는지 아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유를 들었지만, 상관 없었다. 그 요트만이 미짓의 희망이었고, 위로의 대상이었다. 형은 더 멋진 요트로 대회마다 우승을 하는 인기인 이었지만, 미짓은 요트조차 갖을 수 없는 현실이 늘 견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요트의 페인트 칠은 완성되고 요트를 판다는 안내문이 걸린다. 미짓의 마음이 혼라스러운 가운데, 요트를 완성했던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는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았지만, 미짓에게 이상한 말을 한다. 미짓이 요트를 원한다는 것을 안 노인은, 기적을 좀 더 상세하게 그려보며 간절하게 믿으며 완전히 믿으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기에 미짓은 혼란스울 뿐이었다.

 

  하지만 노인의 말은 미짓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자신을 치료해 주는 박사 앞에서 기적의 미미함을 발견한다. 즉, 자신이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면, 그 일이 실재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을 기적으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요트를 만들었던 노인은 죽고 조선소를 운영하는 켐프씨는 노인의 유언을 따라 미짓에게 요트를 준다. 자신의 내면에 이상한 힘이 생긴 것을 깨닫고, 요트에 대한 열망을 키울 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일로 인해 기적을 확신하게 된 미짓은 하나의 욕망에 사로잡힌다. 자신을 괴롭힌 형 셉에 대한 복수. 머리속에 그려지는 요트의 향방을 알고, 우승을 거머쥐며 셉을 난처하게 만들던 미짓은 점점 내면의 이상한 힘에 끌려 가게 된다.

 

  미짓이 두드러 질수록, 셉의 학대는 심해졌고 미짓은 셉에 대한 복수를 멈출 수가 없다. 조선소의 노인은 '나쁜 기적을 바라면 대가가, 악이 뒤따른다고' 말했지만, 미짓의 내면은 슬픔과 고통, 증오로 넘쳐날 뿐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던 셉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든 미짓. 셉의 여자친구이기도 하고, 평소에 자신에게 잘해 주었던 제니는 셉이 평상시에 미짓을 괴롭했다는 것도, 셉을 위험하게 만든 것도 미짓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그런 셉을 용서하라고 말하는 제니 앞에서도 자신을 지배하는 어두운 그림자의 형상은 셉의 죽음을 그려내고 있었다. 미짓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셉을 살릴 수 있지만, 반드시 대가가 따른 다는 것을. 또한 그 대가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미짓의 내면에 소용돌이쳤던 감정들은 내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는데, 미짓은 다른 세계로 가버렸다. 혼란스럽고, 아프고, 복잡미묘한 소설의 결말은 극단적이었다. 미짓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내면의 악을 이긴 것인지, 악에 대한 희생양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미짓같은 아이를 따스하게 대해 주지 못했다는 반성은 제쳐두고라도, '기적'이 기적이 되지 못하고, '희망'이 희망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반대로 '이것이 지극한 현실이다'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구경꾼의 입장 밖에 되지 못하는 내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미짓을 지배했던 어두운 기적이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인정하기 싫었고, 자세히 들여다 보기도 싫었다. 미짓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 마냥 안타까웠다. 모든 것에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과, 나쁜 기적에는 악이 따른 다는 사실만 처절하게 경험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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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읽을 책이 몇 권 쌓여 있는지, 지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서점에 들어가서 맘에 드는 책을 사오고 싶은 날. 그날은 약속 시간이 남아서 서점에 들어갔었다. 시간을 때운답시고 들어갔는데, <섬>을 발견하고 '아차' 싶었다. 책이 눈에 들어왔음은 물론, 내 지갑엔 정확히 <섬> 책 값이 들어 있었다(약속하고 나와놓고 왜 책 값 정도 밖에 안 들고 왔을까). 집에 가는 버스비는 교통카드로 해결하면 된다 생각하고, 덜렁 책을 사버렸다. 책 값과 지갑 속 금액의 일치에 신기해 하면서. 그 날 친구와 만나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서점을 서성거리던 기억이며, 계산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들고 나오던 기억은 여전히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그렇게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구입해 왔음에도, 초반을 넘기지 못하면 가차없이 책꽂이에 방치되고 만다. <섬>이 그랬다. 자신의 스승이었던 장 그르니에의 작품에 알베르 카뮈의 헌사 비슷한 서문이 있었는데, 그 서문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어 버린 것이다. 알베르 카뮈가 <섬>을 읽을 당시의 흥분과 작품에 대한 찬사가 씌여져 있었는데, 서문부터 너무 사색이 깊어 부르르 몸을 떨며 책을 내려 놓았다. 서문부터 이런 식이라면 장 그르니에의 작품은 안봐도 뻔하다는 제 멋대로의 생각이 뻗쳐 진저리를 친 것이다. <어느 개의 죽음>은 짧막한 글이라 그럭저럭 읽을 수 있었지만, <섬>은 제목과 같이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언젠가 읽을 날이 올거라는 흐릿한 기대감으로 책장 속에 책을 묵혀 두었다.

 

  내 책장 속의 간택(?)되지 못한 수 많은 책들이 그렇듯, <섬>도 구입한지 8개월쯤 지나서 빛을 보게 되었다. 어느 밤, 책 사냥(책장에 꽂힌 책들 중에서 그날 기분에 따라 읽을 책을 찾는 것)에 나선 내 눈에 <섬>이 들어왔다. 서문을 보고 덮은 기억이 있었지만,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지친 내게 사색 거리가 필요했다. 그렇게 <섬>을 다시 펼쳐 들었는데, 묵혀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고 난해하던 서문부터 술술 읽히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여기저기 메모지가 덕지덕지 붙여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에 그냥 메모지를 붙이기도 하고, 나의 느낌을 적기도 했다. 그 집중력에 흥분해서 알베르 카뮈의 심정을 이해할 정도라고 혼자서 들떠 있었다. 카뮈가 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단 욕망에 확신을 가진 것도, 우리들의 젊은 불안이 어디에서 오는지 설명해 주고,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 한다는 말까지 모두 내 마음 밭에 뿌려지고 가꾸어졌다.

 

  첫 글 <공의 유혹>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평상시 같았으면 아무 생각 없이 읽고만 지나쳤을 문장들에 나만의 생각들이 샘 솟듯 솟아났다. 나의 유년시절과 그때 갖었던 생각 사이를 오가기 바빴고, 간단하게나마 메모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단순한 생각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생각이 솟아나게 만들어 주는 글을 만난 것이 얼마만이던가. 장 그르니에의 글에 아주 특별한 것이 있는게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본 것을 글로 표현해 내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르니에처럼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끌어내지 못하기에 그가 뱉어낸는 문장마다 메모를 달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문장을 던져주기만 했을 뿐인데, 내 머릿속에 관념들이 생성되었다. 잠재되어 있던 생각들을 살짝 건드려 주기만 했을 뿐인데, 내 자신도 놀랄 정도로 많은 생각과 언어들이 내 안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너무나 평범해서 옮기기가 조촐할 정도다. 그르니에의 글을 통해서 내가 갖었던 생각, 장 그르니에의 평범한 문장들은 소소했다. 하지만 평범한 글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열어 주었던가. 그 가능성의 깊이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그루의 나무가 그르니에라면, 그의 글이 하나의 가지라면, 독자는 저자가 만들어 놓은 가지에 수많은 잔가지를 뻗으며 공중으로, 땅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깊은 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지닌 채 그의 책을 읽어나갔고, 감당하기 버거운 무게 때문에 잠시 책을 덮었다. 이대로 끝까지 읽다간 내 안의 무언가가 터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차라리 무언가가 터져 버리도록 나두지 못했던 것을 다음 날 바로 후회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벅찬 감정이 일었던 전날 밤의 기억을 부여안고, 책을 펼쳤지만 이미 글자들은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잠시 책을 덮고 다음 날 읽은 것 뿐인데. 며칠을 책을 덮었다 펼쳤다를 반복하다, 여러 날 공백을 두고 꾸역꾸역 읽다 마무리 짓고 말았다. 처음에 느꼈던 희열과 뜻 모를 감정의 발산은 다시 재생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에 느꼈던 것들이 이상할 정도로 지지부진하고 힘겹게 <섬>의 나머지를 읽어 나갔고, 책의 반토막은 살아서, 다른 반토막은 죽어서 내 안에 떠돌기도 하고 겉돌기도 했다. 무엇 때문일까. 이렇게 급격한 변화의 양상을 띄게 된 것은. 도무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책을 덮어야 했을 때는 무척 괴로웠다.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 보다는 무언가가 잡힐 듯 하다가 사라져 버린 허망함 때문이었다. 그것이 끝까지 이어졌다면, 내가 어떠한 결심을 하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안타까움도 내제되어 있었다. 내가 젊지 않아서일까. 잠재력이 바닥나 버린 것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결국 찾아 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뜨거운 불덩이가 내 안을 잠시 훑었다 사라져 버린 느낌. 이 책을 읽는 다른 이들은 이런 불덩이가 일었다 싶음, 절대 놓지 말기를 바란다는 충고 밖에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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