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의 특별한 날 - 타샤 할머니가 들려주는 열두 달 이야기 타샤 튜더 클래식 2
타샤 튜더 글.그림,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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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샤 할머니의 코기빌 시리즈를 읽고 나니 다른 동화책도 무척 궁금했다. 현재 출간된 책은 <타샤의 특별한 날> 뿐이라서(코기빌 시리즈보다 먼저 출간 되었지만), 정말 아껴서 읽었다. 동화책은 여러 번 읽는다고 해도 읽는 시간이 굉장히 짧기에 마음을 정돈하며, 가장 읽고 싶은 시간을 골라서 읽을 정도였다. 책도 얇고, 내용도 짧고, 책 읽는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12달에 대한 추억을 그림을 통해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다. 어린 소녀가 무릎을 꿇고 할머니를 향해 미소 지으며, "할머니, 엄마가 저만 할 때는 어땠어요? 하고 묻는다. 그렇게 책은 시작되고, 할머니는 '정말이지 즐거운 날이 아주 많았지'라는 대답으로 12달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아이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큰 소리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파티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염소 썰매 경주도 벌이고, 재미난 연극을 하기도 하면서 즐거운 겨울을 보냈다. 2월은 특별한 우체국으로부터 밸런타인데이 카드를 받았다. 아이들도, 인형 가족도 코기 강아지들과 고양이까지 모두 선물을 받았다. 워싱턴 탄생일을 맞이해서 파이를 구워 먹고, 아이들이 준비한 연극을 보기도 했다. 3월은 나무즙을 모으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했다. 나무즙은 우리가 봄마다 먹는 고로쇠 물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우리는 그 물을 그냥 마시는데, 여기서는 시럽을 만들어 먹었다.

 

  4월에는 부활절이라는 큰 행사가 있었다. 부활절 달걀로 트리를 만드는 달이 4월이었고, 염소, 송아지, 병아리, 아기 거위들이 나들이를 하거나 놀기에 좋은 달이었다. 5월은 5일제라는 농사가 잘되기를 비는 날이 있었다. 그 날이 되면 아이들은 이웃집 문 앞에 꽃바구니를 가져다 놓았고, 5월제 기둥을 에워싸고 춤을 추기도 했다. 5월제 기둥은 운동회 때 오색실로 꼬아서 만들었던 기둥과 비슷해서 신기하기도 하고, 친근감도 들었다. 정원에 씨앗을 뿌리고, 사과나무 아래서 아이스티와 쿠키를 차려놓고 파티를 열기도 했다. 6월에는 세례요한 축일이 있었다. 그날이 되면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했다. 직접 만들고, 무대 배경도 그리며, 안내문도 칠해서 마차 보관소에서 연극을 했다. 7월에는 독립기념일이 있었고, 아이들은 빈 깡통에 폭죽을 날려서 보냈다. 국기를 내 걸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소풍을 가기도 했다. 그날 저녁 마을 광장에서는 불꽃놀이가 벌어졌고, 높은 풀밭에 앉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회상하고 있다.

 

  8월에는 '엄마'의 생일을 맞아 밤에 강가로 나가 축하 파티를 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음식을 만들기도 했지만, 가장 근사한 것은 강물에 둥둥 떠가는 생일 케이크를 보는 것이었다. 9월에는 잔치가 열리는 달이었다. 모든 인형들이 총출동 하고, 단추를 돈 삼아 시장을 열기도 했다. 가장 예쁜 꽃과 채소를 가진 사람에게는 상을 주었다. 모두 인형 크기에 맞는 것들이었고, 딱정벌레 경주, 활쏘기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10월은 추수를 하는 달이었다. 사과 주스를 짜고, 할로윈 호박등도 만들고, 할로윈 파티는 멋지게 지나갔다. 11월은 추수감사절이 있었다. 친척들이 많이 찾아와 아이들은 헛간에서 잤지만, 연극도 하고 게임도 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들었다. 1년 동안 쓸 양초도 만들었다. 12월은 크리스마스가 있기에 일 년 중 가장 특별한 날이었다. 강림절 달력을 만들기도 하고, 화환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성니콜라스 케이크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숲속으로 가 신비로운 아기 구유 행사를 하기도 했다. 성탄절이 되면 예쁜 트리르 보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었다.

 

  그렇게 '엄마'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12달 동안 특별하지 않은 달이 없었고, 타샤 할머니의 섬세하고 예쁜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생긴다. 책 속의 이야기는 모두 타샤 할머니가 지금까지 해왔고, 자식들과 손자들에게까지 내려온 관습이다. 타샤 할머니의 책들을 통해서 모두 들었던 이야기었지만, 동화책으로 재탄생 되니 마치 환상 속으로 여행한 듯한 착각이 일었다. 글은 짧지만, 그림 속에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고, 공들여 그린 배경들과 그림 속에서 타샤 할머니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의 집과 할머니의 생활 곳곳에 이 모든 흔적들이 남아 있었기에 다시 한 번 타샤 할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림으로 표현해도 이렇게 멋지고 좋은데, 그 모든 일이 삶 속에 모두 녹아 있는 타샤 할머니는 어땠을까. 지켜 보는 사람도 이렇게 행복해 지는데, 타샤 할머니는 행복의 주역이었으니 더 기쁜 날들이었을거라 생각한다. 이 책을 보며 한 달을 살아가고, 일 년을 살아간다면 하루하루가 무의미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까지 든다. 가끔 나의 일상이 지치고 힘들 때, 이 짧은 동화책 한 권으로 앞날의 즐거움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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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의 하이쿠 기행 1 - 오쿠로 가는 작은 길 바쇼의 하이쿠 기행 1
마쓰오 바쇼 지음, 김정례 옮김 / 바다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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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봄, 이 책의 개정판이 나왔을 때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른다. 어떤 책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바쇼의 하이쿠 기행' 제목을 본 터라 구입하려고 보니 절판된 상태였다. 절판된 책은 소유욕이 더 간절해 지는 터라 안타까움으로 일관하고 있었는데, 개정판이 나온 것이다. 책 내용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음에도 무조건 구입했다. 그러나 몇 장 읽지도 않고 책을 덮어 버렸다. 내가 생각했던 하이쿠 기행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얼마 전 서점에서 바쇼의 하이쿠 기행 3권 세트를 보니 마음이 동했다. 얼른 1권을 읽고, 다음 권도 사서 읽고 싶었다. 하지만 1권을 읽기가 녹록치 않았다.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주석이 1/3을 차지하고 있었고, 책을 읽으랴 주석 보랴 흐름이 자꾸 끊겼다. 이 책을 갖고 있는 지인에게 투덜대자 내용을 먼저 읽고, 그 다음에 주석을 따로 읽던지 아니면 두 번째 읽을 때에 주석을 찾아서 읽으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책을 절반쯤 읽다가 지인의 말대로 내용을 읽고 주석을 몰아서 읽었다. 내용은 조금 잡히는 듯 했지만, 역시 주석 내용이 겉돌아서 애를 먹었다. 내용을 쭉 읽어나가면서 궁금한 부분만 주석을 찾아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주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더군다나 책의 뒷면에 있는 주석은 찾아보는 불편함과 귀찮음이 공존하다.), 가장 큰 난관이 주석이었다. 바쇼가 1689년에 일본의 동북지방을 여행한 수기였기에 시대적 동떨어짐이 장애로 다가올 거라 생각했었다. 장애를 덜어주기 위해 기입된 주석이 오히려 난관이 되고 있었으니, 아이러니 하면서도 읽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300년 전의 하이쿠 시인이 무엇을 위해 150일에 거쳐 2,400킬로미터를 여행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일었고, 그 과정을 알고 싶었다. 그 시절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배낭여행이라든가 자유를 갈망한 여행의 성격이 아니었다. 바쇼가 여행한 시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개막된 에도 바쿠후가 안정기에 접어들던 시기였다고 한다. 문화가 도시를 중심으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던 시절, 바쇼는 변방인 오쿠를 향해 여행을 떠났다. 세속적인 용무를 빼고, 오로지 시인으로서의 순수한 무상의 행위로, 여행 그 자체를 순수한 예술적 실천으로 삼았다고 한다. 걸식여행을 각오하면서까지 제자 '소라'와 함께 먼 여행길에 오른다.

 

  하이쿠 기행이라고 하기에, 하이쿠가 주를 이루는 책일 거라 생각했다. 여행을 하면서 하이쿠를 짓기도 하고, 지방 시인들과 하이카이로 교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하이쿠의 나열보다는 여행의 배경과 하이쿠를 짓게 된 사연들이 더 많았다. 책 제목 그대로 하이쿠를 통한 여행을 했고, 시인으로써 갈망했던 여행을 한 것이다. 바쇼가 기록한 것과 제자 소라가 기록한 것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상세한 주석에 모두 설명되어 있으니 바쇼가 걸었던 길을 상상하며 하이쿠 시인이 되어보는 착각에 빠지며 읽는 방법이 가장 좋아 보였다. 바쇼가 오쿠지방을 선택한 연유는 크게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와카의 명소인 우타마쿠라 탐방과, 공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허무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진혼, 그리고 자시이 확립한 바쇼 풍 하이카이의 지방화 시도였다고 한다. 해설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곳곳에 바쇼의 뜻은 잘 나타나 있다. 여행을 하면서 명소에 대한 찬사와 감탄, 참배를 하고 애도하는 모습, 많은 사람과 시를 나누고 읊던 모습은 책을 읽는 독자의 눈에도 잘 띄었다.

 

  내가 읽은 하이쿠들은 현대의 하이쿠이기도 했고, 몇 수 되지 않아 하이쿠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다. 하지만 짧은 시구 속에 들어있는 함축적인 의미와 묘사에 감탄을 터트렸던 기억이 난다. 하이쿠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바쇼의 하이쿠를 읽다보면 마음에 와닿는 시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함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설명이 필요한 것이었다. 책의 성격만 보자면, 하이쿠 기행이라기 보다 기행문에 하이쿠가 감칠맛나게 곁들어진 느낌이었다. 바쇼의 하이쿠의 진수는 2,3권에서 만끽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바쇼가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의 기행문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훨씬 더 크고 많다. 책과 주석만 읽었더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고, 무의미하게 지나쳐 버렸을 것들을 해설에서 아주 상세히 다뤄주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의 옮긴이는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을 번역하고, 10년만에 2, 3권을 번역했다고 한다. 그만큼 바쇼에 대한 열정도, 그런 바쇼를 한국 독자에게 알리겠다는 신념도 강했다. 주석이나 해설을 보면 그런 애정이 듬뿍 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내가 느낀 바쇼의 하이쿠 기행의 의미를 옮긴이는 '기행이라는 문예 형식을 빌려서 묘사한 풍아風雅의 이상도라고 말할 수 있다' 라고 했다. 그의 해설을 듣고 있자니 두리뭉실하게 뭉쳐있던 느낌들이 명확해 지는 기분이었다. 일본의 고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바쇼의 하이쿠 기행이 국내에 번역된 것이 너무 기쁘다. 나에게 이 책을 언급해주었던 또 다른 책의 저자에게도 감사한 마음이다. 현실을 벗어나 오로지 예술의 세계를 살다 간 바쇼의 삶의 방식에 많은 동경을 품은 사람들. 오로지 문학적인 태도만을 고수했던 바쇼의 태도는 우리가 앞으로 눈여겨 보아야 할 태도라며 옮긴이는 글을 마치고 있다. 바쇼를 따라 17세기 후반의 일본을 여행한 듯한 느낌. 곳곳에 배어나오는 바쇼의 감성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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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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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실격>을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작이라고 하는데, 데카당스라는 표현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퇴폐주의. 다자이 오사무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퇴폐를 최대한 끌어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요조'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인간 실격>은 그래서 더 피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책을 읽어나갈 수록 표정은 굳어지고, 인간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요조'를 이해할 수 없고, 싫어하면서도 누군가와 닮아 있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 같은 사람은 인간의 병폐를 깊숙이 숨기고 살아간다면, '요조'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살았다. 그것이 솔직함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보통 사람과 다르게 흘러가는 요조를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요조는 병약하고, 자신을 잘 표현할 줄 몰랐다. 대가족 속에 자라다보면 부모에게 사랑받으려 자신을 더 드러내기 마련인데, 요조는 그 반대였다.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를 말도 하지 못했고, 가족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집은 요조에게 편안한 공간이라기 보다 갑갑하고 자유를 침해하는 공간이었다. 그런 표현을 절대 하지 않았고, 익살로 자신을 포장해 갔다.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익살로 많은 사람들을 웃겼고, 그것이 속임수라는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익살로도 다른 사람들과 동화되지 못했다. 학교를 빌미로 타지로 나가게 된 요조는 여자와 마약, 술에 의지하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많은 여자들이 자신을 사랑했고, 그런 여자들에 얹혀 되는대로 삶을 살았다. 청춘을 발산하기에 충분한 젊은 나이에 그는 삶의 끝을 기다리는 인간 실격자였다.

 

  그런 자신을 이기지 못해 자살 시도를 하다 본가와 의절을 당하고, 요조는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많은 여자들과의 적절치 못한 관계, 마약, 알콜 중독만으로도 엉망진창인데, 그를 더 갉아먹은 친구라고 할 수 없는 인간의 괴롭힘까지 더해진다. 그에게 처해진, 혹은 그가 만들어간 삶의 배경은 그야말로 우울하고, 암울하며, 음산하기까지 하다. 자신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며, 인간 실격이라며 죽음을 기다리는 그가 이제 27살이 되었다는 사실은 독자를 안타깝고 허무하게 만들고 만다.

 

  책의 시작과 끝은 '나'라는 사람의 서문과 후기로 끝이 난다. 요조의 사진을 보고, 그를 마지막즈음 지켜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요조가 써온 수기도 끝이 난다. 다사이 오사무는 자신의 얘기를 허구화 시켜 써낸 작가지만, 작품에 씌인 것을 실재 작가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나 요조와 다사이 오사무의 단편적인 삶을 비교해 보더라도 그 둘은 닮아도 너무 닮아 있었다. 사랑에 대한 갈망, 사랑 받고 싶은 마음, 많은 사람에게 배반 당해 심연으로 떨어진 요조. 그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책을 읽는 내내 우울하게 만드는 분위기에 온갖 비방을 하고, 요조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며칠이 지난 뒤 곰곰히 생각해보니 측은함이 일었다. 그를 감싸주지 못한 마음, 나와 조금 다르다고 몰아세웠던 모습들이 부끄러웠지만 역시나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내겐 벅찼다.

 

  이 책에는 <인간 실격> 말고도 직소直訴 라는 작품이 실려 있었다. 요설체饒說體 - 쉬지 않고 떠들어 대는-로 씌여진 예수를 향한 유다의 사랑과 분노, 질투, 광기가 서려 있었다. 유다의 고백을 듣고 있자면, 그의 시선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는 착각이 일었다. 그 착각으로 인해 성경에 씌여진 대목보다 유다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고백은 점차 광기로 이어졌고, 편협함으로 몰아가는 가운데 온전히 그의 뜻에 동조할 수 없었다. 성경에 그를 배신자로 지목한 기록은 없다지만, 유다 스스로는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아는 듯 했다. 그런 고백이 유쾌할 리가 없었다. 유다의 시선으로 그려진 당시의 상황을 더 악화시켰을 뿐, 한 인간의 처절함만이 지배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두 작품을 읽으면서, 많은 감정에 휩싸였다. 대부분 밝지 않은 감정이었고, 책을 읽고 나서 기분이 나빠져 후회스러웠다. 밝고 희망적인 것만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감정의 자극을 잘 받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위험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볼수록,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없다고 부정할 수 없음을 깨달아 갔다. 마치 내 속을 다 끄집어 내놓은 것 같은 불쾌함이 엄습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제대로 된 인간인지, 무엇이 인간 이하의 모습인지를 따지기 전에 자신과 솔직한 대면을 해야 한다. 더 이상의 속임수를 쓰지 못하도록. 요조든 나든 어느 누군가 됐든, 누군가가 실격 당하는 모습을 이제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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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이성 친구 (작은책)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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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때부터 남자 친구들에게 줄곧 들어온 말은, 이성 친구가 아니라 동성 친구 같다는 말이었다. 남녀공학 중학교를 다니다 보니, 남자 애들과 심하게 장난을 치며 놀아 그런 것 같다. 20대 들어서면서 이래저래 알게된 친구들에게도 항상 듣는 소리가 '넌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편하다' 는 말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이러다가 정말 연애도 못하고 이성 친구들만 사귀다 마는게 아닐까라는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런 녀석들 중 한명과 러브라인이 그려져서 첫 연애를 해보기도 했지만, 이제서야 친구와 이성을 대하는 감정은 다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책 제목 때문에 잠시 '이성 친구'들을 떠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상뻬의 글과 그림은 위트와 유머가 넘치기에 제목만 보고 대충 그런 분위기를 상상했다. 남녀 사이의 뻔한 사랑과 우정에 대한 것이라고 지레짐작 하면서 말이다. 43개의 단편이 실려있는 줄 모르고 책을 펼쳤다가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한 장에 걸쳐 짧은 글과 그림은 다음 내용과 이어지지 않아 그 안에 남겨진 단상들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몇 개의 단편을 읽고 또 읽고, 그림을 여러번 보았지만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런 단편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니, 편하게 보자하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다보니 새롭게 다가왔다.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는 책을 주로 읽었기에, 짧은 나뉨이 익숙하지 않았을 뿐 상뻬 특유의 독특함은 여전했다.

 

  책 제목처럼, 이 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이성과의 사랑, 우정, 감정의 변화등에 대한 단편적인 잔상들이다. 거기에 상뻬의 그림은 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기 보다, 글에 대한 상황을 배경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딱 드러맞는 상황이라는 느낌도 들었고, 보여지는 그림에 대해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이성간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 봄직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지만, 좀 더 개방적이고 솔직한 글들이 많았다. 프랑스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가 다르기에 느껴지는 이질감도 있지만, 마음 속 깊이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드러내기 힘든 속 마음들이 때로는 우습게, 때로는 공감할 수 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꼭 이성간이 아니더라도 글과 그림속에 나오는 상황들을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수탉이 하는 얘기, 어린 꼬마 커플의 이야기, 시련당한 남자의 이야기들은 심연 속에 감춰진 자신을 건드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한 번 보고 마는 책이 아니라, 자꾸 펼쳐보며 잔상을 끌어내도록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나의 기분에 맞춰 부담없이 펼쳐 볼 수 있는 책. 그런 책이 흔치 않기에 더 자주 들여다 봤는지도 모르겠다. 즐거울 때보다 조금은 센티멘털할 때, 깊은 상념에 빠질 때 들여다 본 적이 많았다. 가볍게 볼 수도 있지만, 책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독자에게 남겨진 것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툭 하고 던져주는 상뻬의 글과 그림에 당황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들여다 보면서 읽는다면 상뻬의 메세지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메세지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아닐까. 남녀간의 여러 상황 속에서 나 혼자만 겪는 아픔이나 과정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니 작아지지 말라는 그런 뜻이 가장 크게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상뻬의 글과 그림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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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생리대와 함께 하는 건강한 생리
조연경.김경숙 지음 / 위즈온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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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생리통에 대한 에피소드는 책 한 권을 쓰고도 남을 것이다. 중 3때부터 시작된 생리통이 나아지기는 커녕, 갈수록 더 극심해 지고 있어, 생리가 끝나야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한 달 살이 인생이라고 푸념아닌 푸념을 하고 있다.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생리통이 극심해서 출근도 못하고 오후에야 겨우 부스스 일어나서 얼굴만 내비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허리와 아랫배 통증은 기본이고, 오한과 한기에 가장 참기 힘든 구토가 온다. 생리할 때는 무조건 굶는대도 위액까지 빼내는 구토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어 생리통이 오면 늘 기진맥진이다. 

 

  한 온라인 서점에서 이 책의 저자와의 만남을 하길래 매일매일 들어가서 상담을 했다. 평소에 극심한 생리통을 앓고 있는 터라 하나의 단서라도 찾고 싶었다. 저자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무척 안타까워 했다. 아름다운 날이 되어야 할 생리일이 고통의 나날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자궁 내막증이 염려된다며 산부인과 진료를 해보라고 했다. 겁이 덜컥 나서 바로 산부인과를 찾았더니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했다. 생리통이 심해 병원을 찾아도 늘 듣는 대답이였기에 생리통에 대한 관심을 거둬 버렸다. 그랬더니 사무실로 이 책이 배송되어 왔다.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몇명을 뽑아서 책을 보내 주는데, 나에게 이 책과 면 생리대 한 개가 온 것이다. 

 

  이 책은 작년 늦 봄에 왔는데, 책을 열어볼 기회가 없었다. 다른 책들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생리가 좀 늦어 걱정스런 마음에 책을 펼쳐 들게 되었다.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읽다가 다시 꺼내서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면 생리대를 써야 겠다는 생각이 강력히 들었다. 책에서는 만들어 쓰는 방법을 알려 주었지만, 게을러서 직접 만들지는 못하겠고 우선 온라인에서 구매를 했다. 면 생리대를 쓰게 되면 다음 생리부터 건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 책은 <생리와 여성 건강>,<여자를 살리는 자연 생리대>,<자연 생리대 만들기>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생리와 건강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나와있다. 생리를 왜 하는지, 생리통은 왜 생기는지, 생리만으로 자신의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법 등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들이 쉽게 기재되어 있다. 나에겐 생리기간 전, 후가 고통의 나날이기에 여러가지 도움이 많이 되었다. 2장에서는 자연 생리대의 필요성과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기가 실려 있었다. 자연 생리대의 필요성 이전에 생리대의 역사와 일회용 생리대의 매력, 문제점들을 말해주고 있었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도 자연 생리대를 써야 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빨아서 써야 한다는 귀찮음과 일회용 생리대의 편리함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연 생리대를 통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는 사람들의 경험은 내 마음을 변화시켰다.

 

  요즘에 나오는 생리대는 갈수록 효과는 좋아지고, 여성들이 활동하기 편하게 만들어진다. 이 책을 통해서 탐폰 외에 여러가지 생리도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환경호르몬의 영향을 알고 나서는 써봐야 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자연 생리대를 쓰면, 생리통도 줄어들기도 하고, 불쾌한 냄새와 가려움증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흔들렸다. 일회용 생리대를 쓰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보는 일들이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직접 만들 수도 있으므로 자시의 사이즈를 맞출 수 있고, 일회용이 아니기에 경제적인 면에서도 생각해 볼 일이었다. 그런 장점에 환경까지 지킬 수 있다면 일석 삼조를 훨씬 넘는 효과가 아닌가.

 

  아직은 자연 생리대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사용해본 사람들은 주변에 자연 생리대의 장점을 많이 알리고 있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의 경험이 있어서 과감하게 자연 생리대를 구입하게 되었지만, 아직 사용해 보지 않아서 내 경험을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회용 생리대보다 훨씬 좋은 점이 많다는 것은 충분히 알았다. 첫 생리를 기다리고 있는 조카, 생리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친구들, 주변에 많은 여성들에게 이 책을 읽히게 하고 자연 생리대를 사용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최소한 귀찮은 날이 되지 않고, 자신의 건강을 체크해보며 여자임을 소중하게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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