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기록 - 시 소묘 사진 1956-1996
존 버거 지음, 장경렬 옮김 / 열화당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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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버거의 직업으로 거론되는 명칭은 너무 많다.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외에도 너무 많은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닌다. 한 인간이 이렇게 다방면에 능할 수 있음을 존 버거를 볼 때마다 느끼곤 한다. 그러나 그가 문학적인 면모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소설과 산문이었다. 산문에서 종종 그의 시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시집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의 주된 활동 영역에 시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 그래서 존 버거를 '시인'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옮긴이는 말하고 있다. 번역을 하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옮긴이는 존 버거를 '시인'의 영역으로 들여 놓지만, 그의 시가 낯선 나에게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아픔의 기록>에 주로 실린 것은 시詩지만, 간간히 소묘와 사진이 보이기도 한다. 중간중간 감칠맛 나게 묶여있는 소묘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소묘와 사진을 구경하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은 존 버거의 시였다.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문학 장르가 '시'라고 생각하는 나는, 시를 좋아하지만 잘 알지 못한다. 한 권의 시집을 읽을 때 시 한편만 건져도 읽은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시인'이라는 표현의 적절 여부가 확실치 않은 존 버거의 시가 내게 어려웠음은 당연했다. 개인적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시보다 읊었을 때 읽기 좋은, 운문이 맞고 정갈한 시를 좋아한다. 많은 시를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생면부지의 시인에게서 나온 괜찮을 시를 만났을 때 문학의 즐거움을 느낀다. 몇 번의 그런 경험으로 시집을 가끔 구입하지만, 존 버거와 비슷한 시를 만났을 때는 잠시 갖었던 용기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존 버거의 산문을 읽어 보았다면, 그의 깊이 있는 성찰에 감탄 혹은 난해함을 느껴 보았을 것이다. 그의 문체를 조금이나마 안다고 자부하던 나는, 산문에서 보았던 깊이를 시에서도 마주하자 당황하고 말았다. 이 책에 실린 첫 시 <길 안내>는 내가 발견한 존 버거의 가장 좋아하는 시라고 찜해놓을 정도로 명확한 안내를 해주었지만 말이다. 한 편의 시만 건져도 좋다는 평소의 다짐이 있었기에, 나머지 시가 어려워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언젠간 기회가 되면 다시 읽고, 새로운 느낌을 갖을 수 있을거란 느긋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길 안내>는 첫 연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열두 살 때부터 시를 썼다. 무엇이든 다른 것을 할 수가 없을 때면. 시는 무력감에서 탄생한다. 그러므로 시의 힘은 무력감에서 나온다.]
 
  지극히 단순한 고백에서부 시작해 시의 탄생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고백에 마음이 동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시를 썼던 무력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3연에 보면 '시는 사실事實앞에서 무력하다. (중략) 시는 결과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지,결정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지 않는다' 라고 했다. 시의 무력감과 시의 재료가 될 수 없는 '사실' 앞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고, '시는 우리 앞에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던 그의 시는 시작에 불과했다.
 
  옮긴이는 존 버거의 시를 번역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고 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절절해 지기도 하고, 깊은 감동을 받기도 했지만 역시나 자신이 옮긴 시에 대해 많이 자신 없어 했다. 그가 한 줄의 시를 옮길 때의 어려움에 대해서 피력하는 부분을 이해 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나에게도 그런 어려움으로 존 버거의 시가 다가왔던게 사실이다. 그의 첫 시는 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지만, 중간 중간 나의 역량에 맞는 시 몇 편을 발견하는 것 외에는 모호함과 낯선 세계의 배경이 된 시들을 마음껏 흡수하지 못했다. 일일이 시의 배경이 된 시대를 들춰서 공부 한 후 시를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옮긴이는 공부를 하면서 시를 옮겼다.), 주석을 읽어 보아도 약간의 수긍이 갔을 뿐, 온전한 이해를 하지 못했다. 시를 읽는데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 읽기 좋겠지만, 마음으로 읽을 때 시가 가장 와 닿으므로 낯선 세계로 여행하는 듯한 느낌 밖에 없었다.
 
  존 버거의 시들은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재 또한 다양했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세월을 뛰어넘는 시들도 많았다. 일상을 노래하고,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며,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그의 시에서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은 감수성을 느끼기도 했다. 그가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그는 썼고(시를), 우리는 읽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시를 읽는 시간 내내 공감하지 못하고 띄엄띄엄 존 버거의 마음을 읽었지만, 그와 함께 했던 모든 것이 좋았다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낯섬, 이질감, 난해함, 색다른 공감 등 많은 감정이 지배했던 존 버거의 새로운(역시나 '시인'이라는 표현을 나 또한 어찌해야 할지 모르므로) 시와 함께 한 시간은 묘한 공감각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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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클래식 05: 코기빌의 크리스마스 - 코기빌 시리즈 3 타샤 튜더 클래식 5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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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성탄절을 잠시 떠올려 보면, 특별한 기억이 없다. 이브에는 교회에서 행사로 바빴고, 성탄절은 예배를 드리고 집에서 잔 기억 밖에 없다. 몇 년째 교회에서 성탄절을 보내다 보니 이렇게 짧은 단상 밖에 남지 않는다. 이브 행사 준비도 늘 닥쳐야 하다보니 맘적 여유가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이러다 성탄절의 의미를 잃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나의 성탄절을 일 년의 가장 큰 축제로 환기시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타샤 할머니다. 코기빌 시리즈를 읽기 전에 <타샤의 크리스마스>를 읽었다. 성탄절이 두달 정도 남아 있던 시기에 읽어서인지, 차분하게 읽을 수 있었고 성탄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어 개인적으로 참 좋았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또다시 똑같은 성탄절을 보내 버리고 말았는데, 코기빌 시리즈를 통해 다시 한 번 성탄절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코기빌의 크리스마스>는 코기빌 시리즈 1,2 권을 읽고 읽으면 더 재미나겠지만, <타샤의 크리스마스>를 먼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코기빌 축제>,<코기빌 납치 대소동>과 이어지는 시리즈지만, 이 책들처럼 어떠한 사건(크리스마스 자체가 큰 사건이긴 하지만)을 중심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코기빌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잔잔하게 담아 냈다. 책 속의 크리스마스 행사의 대부분은 타샤 할머니가 크리스마스 때 직접 하는 행사였다. <타샤의 크리스마스>에는 타샤 할머니가 얼마나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즐겁고도 경건한 크리스마스가 어떤 것인지 다양하게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타샤 할머니의 어릴적 추억과 집에서 이뤄지는 크리스마스 파티, 함께 살고 있는 동물들을 모델로 씌여진 책이다. 전반적인 배경을 알고 읽어서인지, 다른 코기빌 시리즈에 비해 잔잔했지만 마음 속에 남겨지는 것은 더 진했다.

 

  코기빌에서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는 역시 크리스마스다. 흰 눈이 쌓이는 겨울이 오면 코기빌 마을 주민들은 들뜨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손길로 바쁘지만 즐거운 시기임은 분명하다. 각자 소신껏 크리스마스를 위해서 장식을 하고, 먹을 것을 준비하는 가운데 브라운 가족은 12월 6일 성 니콜라스 탄생일을 맞이하여 식탁 위에 화환을 단다. 크리스마스 달력도 붙이고, 차 마시는 시간에는 10월에 미리 만들어 둔 던디 케이크를 먹는다. 모두들 크리스마스를 설레임과 기쁨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코기빌에는 세 가족이 이사를 왔다. 첫 번째로 이사온 치카호미니씨네 가족은 코기빌에 이사를 와서 멋진 가게를 열었다. 코기빌 마을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팔았고 없는 게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염소 썰매를 몰며 가게 광고도 하고, 눈이 쌓여서 가게까기 못 오는 손님들을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두 번째 가족은 스타우퍼 가족으로 약국을 열었다. 스타우퍼 가족의 두 아들은 약사였고, 세 딸들은 허브 풀로 병을 잘 고쳤다. 약국에서는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도 팔았고 인기가 좋았다. 어린 고양이와 코기들, 토끼들은 스타우퍼 약국에서 치료를 받았다. 세 번째로 카디건 코기 가족이 이사를 왔다. 이 가족은 친구 사귀기를 좋아해서 손님들이 오면 정성을 다해 대접했다. 여행을 많이 다닌 카디건 가족은 재미난 이야기로 주민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마을은 스키를 타는 아이들, 장난감을 만드는 머트 보거트, 맛 좋은 음식을 파는 음식점들의 분주함으로 더 들썩인다. 마을의 호수가 얼면 스케이트 시합도 벌이고 모닥불 파티를 열기도 한다. 그러다 12월 23일이 되면 트리로 쓸 나무를 베러 숲에 가야 하기 때문에,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한다.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트리로 쓸 나무를 싣고 집으로 돌아오면 정말 크리스마스가 코 앞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드디어 12월 25일 밤이 되었고, 브라운 씨 집에는 친척들과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응접실에는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우뚝 서 있고 모두들 놀람과 기쁨으로 트리 주변을 빙빙 돌며 마음 속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친다.

 

  코기빌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큰 행사지만 비교적 잔잔하게 그려져 있다. 그림도 글도 차분해서 크리스마스 의의를 잃지 않으려는 타샤 할머니의 숨은 의도가 보이기도 한다. 코비길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있으면,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겨울이 오면서부터 준비하고 들뜬 주민들을 지켜보는 것이 더 즐거웠다. 크리스마스를 위해서 즐기고 준비하는 손길이 더 행복해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을 끝으로 타샤 할머니의 작품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은 타샤 할머니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떠들썩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차분한 모습이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이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타샤 할머니가 떠오를 것 같다. 실재로 존재했던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와 코기빌의 크리스마스를 모두 떠올리며 잠시나마 타샤 할머니를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지금쯤 타샤 할머니의 정원에는 함박눈이 가득 쌓여 순백의 아름다움을 발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독 타샤 할머니가 그리워지는 겨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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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클래식 04: 코기빌 납치 대소동 - 코기빌 시리즈 2 타샤 튜더 클래식 4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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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샤 할머니의 코기빌 시리즈 1권을 읽고 나니 다른 책들도 너무 궁금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나머지 두 권을 구입하고, 책을 조금 아껴두다 깊은 밤에 탸샤 할머니 책을 꺼내 들었다. 아무때나 읽어도 타샤 할머니의 책은 늘 좋지만, 더 깊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깊은 밤에 읽었다. 동화책이라서 책 읽는 시간은 짧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흐뭇해지고 말았다.

 

  이 책은 코기빌 시리즈 두 번째 책이기 때문에, <코기빌 마을 축제>를 읽었다면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 전 권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던 칼렙의 활약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경주에서 받은 우승 상금을 저축해 두었다는 추신으로 마무리 지어진 <코기빌 마을 축제>에 이어, 대학을 졸업한 후의 칼렙 모습부터 이어진다. 칼렙은 대학을 졸업하고, 코기빌 마을의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의 후각과 범죄의 관계'라는 글을 쓰고 있던 중, 마을의 이상한 낌새를 느낀다. 마을에 돌아다니는 너구리 수가 늘어난 것에 의아심을 품은 것이다. 너구리는 약삭빠른 동물이기에 그러한 들썩거림이 수상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곳곳에서 너구리의 수상한 행동이 포착이 되었다. 다람쥐를 쓰레기통에 가두고, 요리책을 몽땅 구입하고, 닭구이에 넣는 양념과 허브를 몽땅 사간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다 대학 친구인 까마귀 찰리의 편지를 받게 되고, 찰리는 너구리들의 소란에 관한 귀한 정보를 흘려준다. 너구리 대장인 제불론이 뉴잉글랜드까지 긴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칼렙은 찰리의 편지로 인해 너구리들이 소란스럽게 군 이유를 알게 된다.

 

  제불론이 오기 때문에 너구리들은 잔치를 벌여 주려는 것이었다. 닭 구이 양념과 허브와 요리책을 구입한 것을 보고 머트 보거트가 키우는 '세상에서 가장 큰 닭' 베이브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리러 머트 보거트에게 가지만, 보거트는 외출 중이었다. 쪽지를 남기고 집으로 돌아온 칼렙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마을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베이브가 없어 진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베이브를 보고 납치를 당한 것이라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은 안절부절이었다. 마을의 명물인 베이브가 사라진 것은 주민들을 공황상태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칼렙은 자신이 이 사건을 해결하겠다며 아버지에게 4 시간을 달라고 부탁한다.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짐을 챙겨 호수 근처의 너구리 굴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너구리들의 회의 내용을 들어보니, 닭 요리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고 베이브를 납치한 것에 대해 공치사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새들 때문에 너구리들에게 발각당할 위기에 놓인 칼렙은 겨우 몸을 숨겼고, 자신을 넘어뜨린 밧줄이 베이브와 연관 있을 거라 추측한다.

 

  밧줄을 따라가보니 과연 베이브는 큰 바구니에 묶여 있었다. 칼렙은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질러 버렸고, 너구리들이 쫓아 나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그 바구니는 다름 아닌 열기구였는데, 겨우 너구리를 무찌르고 칼렙과 탈출한다. 하지만 열기구는 빠르게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으므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베이브는 큰 등치로 열기구의 방향을 혼란스럽게 했고,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열기구 안에서 칼렙은 당황하고 말았다. 마침 그때 찰리가 나타났다. 주민들에게 조취를 취하고 칼렙에게 날아온 찰리는 그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베이브와 칼렙은 낙하산을 메고 열기구에서 뛰어 내렸고, 다행히 대학 시절의 은사 파이퍼 선생님 집에 착지할 수 있었다. 파이퍼 선생님 집에서 하룻 밤을 보내고 마을로 돌아오니, 마을에서는 환영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베이브와 칼렙은 환영 행사에 기꺼이 참여했고, 너구리들은 닭 구이 대신 가면을 쓰고 마을에서 훔쳐낸 파이로 제불론의 잔치상을 차려 주었다는 얘기로 납치 대소동은 막을 내린다.

 

  타샤 할머니의 동화는 읽는이로 하여금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친근한 코기빌 마을 덕분에 이번 책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동물들은 타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기에 할머니에게 상상력을 달아 주었다고 한다. 너구리들은 정원의 열매를 훔쳐가는 악동이었고, 토끼, 닭, 코기들은 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동물들이었다. 집에서 기르는 동물들로 인해 상상을 하고, 동화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타샤 할머니의 동화책은 그래서 더 재미 있었다. 할머니가 길렀던 동물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니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던 <코기빌 납치 대소동>. 이제 한 권 남은 코기빌 시리즈를 읽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서운한 마음이 든다. 타샤 할머니와의 만남이 줄어들고, 코기빌 시리즈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울적하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품기 보다 할머니가 펼쳐 놓은 세계에서 맘껏 뛰어논다면 타샤 할머니도 좋아하실 거라 생각한다. 타샤 할머니가 상상력을 얻었던 코기빌의 동물들의 세계에 푹 빠져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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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그림책
헤르타 뮐러.밀란 쿤데라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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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헌책방에 갔다. 새책을 사러 가기엔 조금은 부담스럽고, 어떤 헌책들이 들어왔나 궁금하기도 해서였다. 오랜만에 가서인지 못 보던 책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었다. 그 책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열심히 목록을 훑고 다녔다. 좀처럼 맘에 드는 책이 나타나지 않더니,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책 제목과 저자보다는 그림이 낯이 익었다. 온라인에서 자주 본 그림이었고, 책 안의 몇몇 삽화들도 눈에 익었다. 그림을 살펴본 후에야 저자를 보게 되었는데, 내로라 하는 여러 작가들의 글이 실려 있었다. 단박에 매료 되어 구입해 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약간 비싸게 구입하긴 했어도 이런 책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집에 와서 책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제서야 이 책의 구성이 보였다. 여러 나라의 46명의 작가에게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을 보내, 그림 속에 들어 있는 내용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해서 만들어진 책이라고 했다. 1996년에 만들어진 책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이런 사연을 담고 만들어졌다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에 읽었더라면, 아는 작가는 거의 없었을 것이고 특별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그나마 책에 실린 몇몇 작가를 알게된 후 이 책을 마주하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책을 모티브로 한 크빈트의 그림들은 나의 관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았듯이 다양한 저자들의 글은 요청에 의해 씌여진 것이다. 어떠한 주제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그림을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느낌을 적어오라는 부탁이 있었다. 아무리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작가라 하더라도, 한 장의 그림을 보며 글을 써낸다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글의 형식은 자유롭더라도 비교적 짧은 글에 느낌을 살려 내는 것은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을 거라고 본다. 그림에 글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장 심하지 않았을까? 스토리를 만들어 내어 주어진 그림의 상황을 드러내야 한다는 사실이 상상의 나래를 좁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걱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하지만 내가 했던 걱정이 드러난 여러 저자의 글은 모호하고 난해했다. 저자들이 써 놓은 글에 그림을 맞출 필요도 없고, 온전히 독자가 그림을 통해 독자적인 상상을 해도 되지만, 그런 그림 앞에 펼쳐진 글은 나의 상상의 영역을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복잡하게 얽혀가는 글도 있었고, 독창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글, 촘촘히 엮인 글, 여러가지 상황을 요약해 놓은 글까지 실로 다양했다. 그러나 그런 글과 그림이 매치되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글과 그림 사이에 장애물이 느껴졌다. 그 장애물이 화가와 저자, 그리고 독자와의 화합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글과 그림이 놓여 있으면 그림을 먼저 보게 되고, 그림에 대한 느낌을 어떻게 펼쳐 놓았을지 궁금해 하며 읽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의 상상을 뛰어넘거나, 너무 깊이 있게 다가간 글들이 대부분이어서 무엇을 독자적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헷갈렸다.

 

  크빈트의 그림이 독특했던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 책과 연관된 그림들은 일전에 볼수 없었던 독특한 그림들이었다. 책을 덮고 자는 아이, 혀를 내밀고 있는 책, 책에 귀를 기울이는 노인 등 얼핏 봐도 쉽게 이야기를 끌어낼 수 없는 그림들이었다. 그런 그림들에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글을 썼다. 그렇다면 각자의 생각이 다를 것이고, 거기에 상상력을 덧댄다면 어떠한 세계가 펼쳐질지 가늠할 수 없다. 거기다 작가들의 문화와 국적이 다양하다 보니, 모두를 아우를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장애물의 존재를 인식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교감이 있어야 하는데, 나의 부족함 때문인지 많은 소통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도 여러 갈래로 갈리어서 혼란이 오는 마당에, 글 속에 감추어진 무언가를 캐내는 것은 어려웠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림을 묘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간단하고 사실적으로 설명해주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림 속으로 직접 들어가 허구를 끌어내는 글이 많았다. 그런 상상력에 놀랄 때도 많았고, 한 장의 그림으로 깊이 있게 들어가는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나의 공감을 끌어 내지 못했고, 각각의 그림에 따른 다양한 시각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림에 대한 느낌을 적어달라고 했다면, 단순한 묘사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림 속에 있는 내용을 부탁했기에 작가들은 몰입해야 했고, 색다른 세계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런 독창적인 상상이 오히려 크빈트의 그림에 대한 느낌을 좁혀 버리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관련된 그림, 내로라 하는 작가들의 글. 이 두가지만 보더라도 충분히 흥미를 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마주치고 보니, 지난함 때문에 겉돌고 말았다. 저자의 글에 국한하지 않고 자신만의 상상으로 그림을 바라볼 수 있다면 독특함을 맛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저자의 글에 너무 몰입해 역효과를 내버린 나 같은 독자들도 존재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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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1-1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나는 이 책을 그림 보는 맛으로 봐요~~ 글 내용은 별로 기억나는 것도 없어요.
오래 전에 'TV책으로 말하다'에 소개돼서 샀는데, 내용보다는 그림이 좋았어요.^^

안녕반짝 2009-01-1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림은 아주 좋았는데, 글은 영...

2009-10-15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저도 글보다는 그림이 더 끌립니다..


그림을 보면서 저의 세계를 그려나가고 싶네요.


글보다는 그림세계에 더 푹 빠지고 싶은 현재의 저랍니다.^ ^

안녕반짝 2010-04-12 13:13   좋아요 0 | URL
베이직 아트 시리즈 봐보세요! 그 책 괜찮더라구요.
특히 에드워드 호퍼와 빈센트 반 고흐가 전 괜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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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련의 박살 일본어
조혜련 지음, 요리구치 타즈 감수 / 로그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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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이면 근교에 살고 있는 언니네에 간다. 집에 가봤자 TV를 보면서 뒹굴거리기 일쑤인데, 정규방송 밖에 나오지 않는 우리집에 비해 채널이 훨씬 많은 TV를 보고 있으면 채널 돌리다 시간이 다 가버린다. 그런 재미로 종종 티비를 보는데, 우연히 조혜련씨가 나오는 방송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가 일본말을 하는게 아닌가. 일본에 진출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녀가 출현한 방송은 처음이기에 신기했다. 그녀의 일본어 실력이 너무나 유창해 자막이 나오지 않음에도 계속 지켜보게 되었다. 원래 조혜련씨가 일본어를 잘했던가? 그런 생각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이 많았지만, 일본어를 잘한다는 사실에 놀라며 채널을 돌렸다. 그때는 일본에 진출한 사실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라 지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시큰둥 했다.

 

  그러다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아버지의 이야기로 일본 열도를 슬프게 했다는 동영상이 퍼지면서 조혜련씨의 일본 진출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 동영상을 직접 본 터라 조혜련씨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일본어 책을 낸 것이 아닌가. 일본어라고 하면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조금 배운 기억 밖에 없고, 그나마 선생님이 히라가나만 공부하라고 해서 가타카나를 외우지 못하고 졸업을 했다. 영어도 그렇지만, 그런 기억 때문에 일본어에 대한 회피가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었는데, 조혜련씨는 어떻게 일본어를 습득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누구나 아는 개그우먼이 일본에서 방송 할 정도로 유창하게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기대감이 솟아 올랐다.

 

  조혜련씨도 일본에 진출해야 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없었다면, 일본어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히 일본으로 가족여행을 갔다가 한류열풍으로 들썩이던 신오쿠보 역의 풍경이 잊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때의 이미지로 인해 일본진출을 맘 먹게 했다고 한다. 무모해 보이고,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결심은 확고했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손하씨에게 연락을 해 기획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라 면접(?)을 보지만, 6개월 시간을 주겠으니 일본어를 익히고 오라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거기서 포기할 법도 하지만 그녀는 한국에 돌아와서 일본어 공부를 하기로 한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던 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YBM시사일본어학원 간판을 보고 무작정 전화를 걸어, 사장님과 통화한 후 자기 집과 가까운 곳에 사는 일본어 선생님을 소개 받게 된다. 그 분이 이 책을 감수해주신 요리구찌 타즈씨고, 그렇게 그녀의 일본어 공부는 시작된다.

 

  그녀의 스케줄에 따라 공부시간이 일정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정말 열심히 했다. 스케줄에 쫓기면서도 일본에 진출해야 겠다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하루에 단어를 백 개씩 외우라는 선생님의 지시에도 굴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 단어를 외울 때, 선생님의 노하우가 드러났는데, 3-3-1 공부법을 알려 주기도 했다. 앞에는 일본어를 쓰고, 뒷면에는 뜻을 쓴 포스트 잇을 세장씩 자신이 자주 가는 곳에 붙여 놓고, 그 단어를 외울 때 메모지를 떼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단어를 안 외울 수가 없다고. 그녀는 화장실, 차 안 심지어 모자 앞에 붙여놓고 외웠다고 한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면접을 보고, 방송 스케줄이 나왔다. 그리고 얼마 후 기획사와 계약을 맺게 되고 그녀는 중고(?) 신인 연예인으로 일본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이 어학 책임을 잊지 말자. 그녀가 일본에 진출 하게 된 계기와 일본어를 마스터 하는 과정을 통해 좀더 친숙하게, 가능성을 품을 수 있게 다가갔다면, 공부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녀의 공부방법을 통해 공부 하는데에 중점을 둬야 한다. 어떤 외국어든지 단어가 생명이지만, 그녀는 말문이 틔이는 외국어를 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에도 문법이라든가, 히라가나 가타카나에 대한 잔소리 없이 바로 본론으로 넘어간다. 그녀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독자를 즐겁게 해줄 뿐만 아니라, 공부도 즐겁게 할 수 있게 해준다. 한글독음만으로도 마치 일본어에 능숙한 것처럼 즐겁게 따라 읽을 수 있었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곳곳의 표현들과 단어를 외우면서 공부해야 겠지만, 전체적인 맥락으로 봤을 때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는 분위기는 충분히 형성되므로 부담감이 없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조혜련씨의 경험이 녹아 있어서 책을 통해서 그대로 흡수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무조건 회화와 어휘만 설명했다면 따분했을 텐데(많은 외국어 책들이 그러하지만), 그녀의 경험을 간접경험하면서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어를 웅얼거리게 된다. 일본어를 공부해야 겠다는 필사적인 신념이 없어서, 열심히 읽지는 않았지만 다른 외국어를 공부할 때에 많은 도움을 될 것 같았다. 그녀는 방송을 하는 사람이었고,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니 일본에서 쓰이는 생생한 언어를 그대로 전해주려 애썼다. 그 나라 언어를 알려면 문화를 알아야 하듯이 그녀에게 닥쳤던 문화적 차이를 느끼고 이해하니 일본어를 좀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언어만 익히게 하려는 의도보다는 문화를 이해하고, 실 생활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말문이 터지도록 만드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었다.

 

  요즘에야 조혜련씨가 일본에서 방송을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아져서 이 책이 급하게 나온것이 아니냐며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1년 4개월동안 꼼꼼히 만들어 졌다고 한다. 일본을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틈틈히 썼고, 인용구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만큼 자신이 배웠던 언어를 다른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알려주려는 그녀의 애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조혜련도 했으니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갖고 해보길 바란다는 그녀의 의도처럼, 깊이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친근하게 언어를 배워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녀를 통해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으므로 늘 치이기만 했던 외국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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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1-10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 사이트 메인에 이 책이 떠 있어서 아침에 우리 딸이랑 이야기 했는데, 님의 리뷰를 읽기 됐어요.^^ 꿈과 열정이 있으면 남들이 무모한 도전이라 할만한 것도 이루어내는 사람들이 대단해요. 그중에 조혜련씨도 들어가지만요~~ 외국어, 하나쯤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워만 한다죠.ㅜㅜ

안녕반짝 2009-01-12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참 알차더라구요.^^ 대단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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