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Book, The Cities of Ballpark : New York, Boston, Chicago, Atlanta, Los Angeles - 전5권 - 뉴욕, 보스턴, 시카고, 애틀란타, 로스엔젤레스에서 만나는 야구의 모든 것
F & F 엮음 / 삼성출판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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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신경이 무뎌서인지 스포츠를 관람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스포츠와는 거리가 먼 내가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 때문이었다. 몇년 전, 아는 동생을 따라서 잠실구장에서 삼성과 두산 경기를 딱 한번 보러 간 것 외에 야구와는 담을 쌓고 있었다. 그런 내게 야구를 너무 좋아하는 친구가 틈만 나면 내게 문자를 해서 경기 중계를 해달라는게 아닌가. 시도 때도 없이 동영상을 보며 중계를 해주다 보니, 자잘한 규칙과 에피소드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2008년 시즌 내내 중계를 하다 올림픽 경기를 보니 어찌나 재미나던지. 그 기억 때문에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야구에 대한 나의 관심은 아주 소소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처음 이 책을 보면서도 어떤 취지로 만들어 진 것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 했다. MLB라고 하면, 모자를 사러 들른 매장 정도가 떠올랐기에 책이 발행된 걸 보고 의아했음음 당연하다. 미국의 유명한 도시가 찍힌 다섯 권의 책을 보고도 감을 잡지 못했다. 야구에 관한 책인 것 같은데, 야구에 치중한 것도 아니고 도시에 치중한 것도 아니여서 헷갈렸다. 한참 뒤에야 '야구'와 '여행'을 연계해서 기획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키워드를 인식하고 읽으니 어리둥절함은 사라지고 그제야 호기심이 일었다.

 

  MLB에 대한 나의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 친구 때문에 야구 중계를 하면서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국내 야구였고 어떤 선수가 어느 팀에 있는지, 선수들의 이름은 무엇인지 여전히 모른다. 그러니 메이저리그는 어떠겠는가. 몇몇 팀만 겨우 들어 보았을 뿐, 어디에 연고지가 있는지 모르기에 각 권의 책에 명시 되어 있는 도시 이름에 팀을 제대로 대지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도시와 팀만 연결을 잘해도 절반은 건진거라는 생각으로 편안하게 보았다. 첫 번째 도시는 뉴욕이었다. 뉴욕하면 '뉴욕 양키즈'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뉴욕 그 자체만으로도 유명하지만,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뉴욕 양키즈에 대한 지식은 호화구단이라는 빈약한 정보 뿐이었다. 그런 뉴욕 양키즈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 책은 바로 야구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대한 느낌과 설명이 먼저 이어졌다. 그런 다음 뉴욕 양키즈를 소개하고 있었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느끼기에도 벅찬데, 거기에 '뉴욕 양키즈'라는 거대한 팀을 소개하고 있었으니 나의 놀람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취재하고 글쓴이의 개인적인 성향이 짙게 배어있었다. 그렇기에 야구가 주류더라도 여행책처럼 느껴졌다. 서문을 여는 도시에 대한 짧은 설명이 지나면, 그 도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야구팀에 대한 설명과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생생한 사진과 함께 실려 있기에 글을 읽기보다 사진을 구경하기에 눈이 더 바쁘다.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가면 도시 곳곳을 둘러보며 도시의 명물을 소개한다. 그 가운데 특히 클럽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젊은층을 대상으로 씌여져서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의 클럽이라고 하면, 단순한 즐김을 위한 곳이지만 미국에서의 클럽은 그런 즐김은 기본으로 깔려 있고, 야구와 얽혀 있는 곳이 참 많았다. 야구장 근처의 클럽은 당연히 야구와 함께 즐기기 위한 조건이 팽배했고, 어딜가나 야구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도시의 숨겨진 곳곳을 알아가는 재미도 재미였지만, 야구장을 구경하고 야구용품을 판매하는 샵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내가 사는 도시의 MLB 매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함과 다양함이 부럽고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각각의 도시마다 야구에 관련된 스패션과 야구를 즐기는 모습도 비교할 수 있었다. 다섯 도시를 둘러보았을 뿐인데도, 놀라움이 그득한데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의 사람들과 라이프 스타일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책에는 뉴욕 양키즈, 보스턴 레드삭스, 시카고 컵스, 애틀란타 브래이브스, 엘에이 다저스를 중심으로 소개된다. 이름은 대부분 들어 봤지만 아는 것은 거의 없었는데, 도시에 연고지를 둔 팀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어느 도시에 무엇이 유명한지도 알게 되었다. 또한 각 도시마다 매력이 모두 달라서 다양함은 물론이고 같은 나라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쩜 이렇게 야구와 열정적으로 얽혀있을까 하고 감탄만 할 뿐이었다. 미국에서는 야구가 생활과 너무나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다. 그에 부합되는 문화형성을 생생히 전해 주었고, 젊은층이라면 관심을 갖을 만한 것도 잔뜩 알려 주었다. 그러나 젊은층에 초점을 두고, 여행과 함께 엮어서 도시를 소개하고 있었으므로 약간의 가벼움을 내재하고 있었다. 각 도시의 관광명소를 소개해 주었지만, 즐기기 위한 곳이 클럽 위주여서 아쉬움을 남기도 했다. 또한 야구에 관한 내용을 잔뜩 기대했다면 조금은 짧은 소개와 설명에 실망을 느낄 수도 있다. 미국의 그 많은 팀들을 다 설명할 수 없어, 다섯 도시를 가려내긴 했지만 각각의 도시마다 광범위하고 색깔이 다양했으므로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의 주된 주제는 야구이다. 도시에 대한 설명, 여행하기 좋은 곳들을 설명해 놓지만 야구로 인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느 구장을 가든지 인상 깊었던 점은 여자 팬들이 많고, 노인과 어린 아이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칫 남자들의 스포츠로 인식될 수 있는 야구가 본거지인 미국에서는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즐기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부산처럼 야구가 화두로 떠오르지 않으면, 얘기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훨씬 오래 묵은 열정이 그곳에 존재했다. 조금은 가벼웠지만, 책의 구석구석, 각각의 도시에서 야구를 자신의 삶에 푹 담그고 사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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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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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마주한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저자의 이름을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그녀의 프로필을 보니 그나마 낯익었다는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쓴 드라마 작품들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몇몇 작품이 눈이 익어 검색을 해 보니, 최근에 종영된 '그들이 사는 세상'도 그녀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없기에 나의 기억력은 더 협소해지고 말았다. 그러다 겨우 고두심씨의 연기가 인상 깊었던 ‘꽃보다 아름다워’를 발견하고 체면치레를 하게 되었다.


과연 그녀가 쓴 드라마를 아는 것이 중요할까? 그녀의 작품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글을 읽을 수 있었지만, 배경지식이 충분하지 않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부족했다. 꼭 드라마 이야기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후반부에 펼쳐지는 드라마 주인공 각자의 마음을 써내려간 글은 이질감이 가득했다. 어쩌면 그녀의 글을 온 마음을 열지 못하고 접한대서 오는 역효과 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글은 고백으로부터 시작한다. 첫 사랑의 고백부터 자신의 태생, 가족 이야기 등등 말 그대로 고백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탐탁지 않음이 처음부터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아웃사이더로 보였던 그녀의 학창시절을 보아서일까? 자신을 굶어 죽게 하려 했던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해할 수 없음 때문일까? 그녀의 글은 뿌연 안개처럼 앞을 보여주지 않았다. 지나온 과거, 자신이 써 내려간 드라마 속 인물들, 그들의 내면을 보여줄 뿐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의 글에서 내가 마음을 열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드라마 작가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작가들은 책을 통해서 모든 것을 드러내 놓지만(독자가 차지하는 부분은 잠시 제쳐두고.), 드라마 작가는 대본을 쓴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감독과 스태프와의 호흡, 연기자들과의 소통, 시청자들의 반응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드라마 작가에 대해서 빈약한 지식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그러하기에 그녀의 글에서도 무언가를 더 남겨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섣부른 추측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글에서 내가 느끼는 느낌은 그랬다.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느낌, 내게로 확연히 다가오지 않고 저만치에서 나에게 조근 조근 자신의 내면을 들려주는 느낌이 강했다.


그녀는 사랑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자신의 사랑부터 타인의 사랑과 아직 완성시키지 못한 사랑까지 책 전체가 사랑이야기로 넘쳐났다. 책 제목처럼,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또는 사랑한 경험이 없다면 죄를 안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야기도 나와는 큰 소통을 나누지 못했다. 그녀는 글을 통해서 그녀는 자기 안에 무궁무진한 자신을 꺼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가 많을수록 좋다’는 말로 자신을 드러내며 모든 것은 드라마의 소재가 된다는 그녀. 그 과정을 통해서 자기치유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얘기를 털어 놓는 것보다, 글로 써내려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안다. 글로 인해 모든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터인데, 용기가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고백을 그녀는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있었다. 예전에 써 놓은 글을 실은 것들도 있지만, 그녀에 대해서 모두 처음 아는 것들이니 내게는 첫 고백처럼 느껴졌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든, 타인에 대한 사랑이든, 자신이 그려내고자 하는 사랑이던지 간에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말 한 자신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많은 것들이 모호하게 느껴졌다. 글의 형식에, 글이 묶여진 형태에 헤맬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와 나의 소통은 많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씁쓸함이 맴도는 것은, 그녀가 드러내는 사랑에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며 실천하고 있는 가였다. 그녀와 내가 살아온 삶이 판이하게 다르지만, 삶에서 사랑을 뺀다면 많은 부분이 무미건조 할 것이다. 그런 무미건조함을 좀 더 말랑하게 해 주는 노력이 그녀의 의도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더 건조해지고 말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사랑에 마음을 열지 못하거나,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자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애정 결핍이란 말은 애정을 받지 못해 생기는 병이 아니라 애정을 주지 못해 생기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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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행복해요 - 자유로운 영혼 타샤튜더 포토에세이
타샤 튜더 지음, 리처드 브라운 사진, 천양희 옮김 / 종이나라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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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샤 할머니의 책을 열심히 읽다보니, 이젠 정말 읽을 책이 별로 없다. 타샤 할머니의 그림과 관련된 책을 빼면 <타샤의 식탁> 밖에 남지 않는다. 그 책을 서점에서 살짝 살펴보니 완전 요리책이여서 구입하기가 망설여 졌다. 요리와는 거리가 아주 멀기에 다른 책을 기웃 거리다 이 책을 구입했다. 책 제목만으로도 지금껏 읽어왔던 책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을 간파했다. 하지만 타샤 할머니에 관한 책이라면 무조건 읽어 보고 싶었고,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었다.

 

  타샤 할머니 책은 깊은 밤, 고요할 때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내게 책이 도착한 날은 공교롭게도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이었고, 예약을 했기에 시간을 걸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갔다. 그러나 어딜가든 책이 없으면 허전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타샤 할머니 책을 들고 갔다. 아닌 다를까 그 혹시나가 현실로 나타나 예약을 했음에도 1시간 반이나 기다려 겨우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거듭 사과를 했지만, 내가 화를 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괜찮아요'라고 말한 건 순전히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책을 가져 오지 않았더라면, 정말 불쾌해 졌을 것이다. 그러나 타샤 할머니 책은 사진이 절반이고, 글씨도 큼지막해서 병원에서 대기하는 동안 다 읽어 버렸다. 타샤 할머니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포근해졌는데, 늦는다고 병원측에 화를 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짜증을 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부터 타샤 할머니 책을 읽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책이 있더라도 타샤 할머니 책이 아니였더라면 분명 짜증이 났을 것이다. 할머니의 정원과 삶을 보고 어찌 짜증을 낼 수 있겠는가. 효력이 오래 가지 않더라도 책을 읽는 과정에서 따뜻함은 지속 되었다. 더군다나 한 해의 말미에서 회의감이 느껴질 때, 타샤 할머니는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해 봤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무리하지 말고,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즐겨보는 것이 어떠겠냐고. 그 말 한마디에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타샤 할머니의 책을 몇 권 읽고서 이 책을 만나니, 더 큰 묘미를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가 얘기해 주는 것들, 사진 속의 풍경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샤 할머니가 상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아도, 다른 책들에서 배경지식이 쌓였기 때문에 다시 한번 떠올리며 읽을 수 있었다. 사진은 아름답고 황홀했으며, 타샤 할머니의 말투는 상냥했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과, 정원과 삶에 대해 느끼는 것들을 서슴없이 드러내셨다. 그 안에서 확고한 의견들도 보였지만, 그런 것들로 할머니의 정원을 보지 못하면 큰 손해다. 할머니의 글이 아니더라도 사진만 보고 있어도 감탄사가 터진다. 거기에 타샤 할머니의 글을 읽으면, 사진 속의 세계에 상상을 덧댈 수가 있다. 나에게는 사진 속의 세계가 멀게만 느껴지지만, 타샤 할머니는 그 세계를 가꾸고 같이 생활하신 분이기에 더 진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책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은 포토 에세이다. 타샤 할머니의 세세한 설명은 없더라도 사진과 타샤 할머니의 글을 통해서, 충분히 색다른 삶을 만끽할 수 있다. 타샤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책을 통해서 타샤 할머니를 조금 안 후에 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본다면 재미가 배가 될 거라 생각한다. 날씨가 추워 마음까지 스산해지는 요즘, 타샤 할머니를 통해서 소중한 시간을 갖어보길 바란다. 타샤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언제든지 마음은 푸근해지고 따듯해지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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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의 의도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1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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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읽을 책이 많다보니 책들에게 무척 관대한 편이다. 한참 열을 올리고 읽던 작가도 어느 순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책장에 묵혀둔다. 그렇게 묵혀둔 책들이 꽤 되지만, 읽고 싶을 때 꺼내서 읽으면 그렇게 새로울 수가 없다. 상뻬 책도 그랬다. 한참 불이 붙었을 때는 전 작품을 탐독할 것처럼 구입해서 읽었는데, 어느 순간 시들해져서 책장에 꽂아두었었다. 그러다 순전히 내 기분 때문에 눈에 띄게 되었고, 따뜻한 난롯가에 앉아 책을 펼치니 푹 빠져들었다. 현재 내가 속해 있는 공간은 잊은 채, 상뻬가 그려 놓은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흐뭇한 미소가 나를 지배하고, 책장은 쉼 없이 넘어가는 그 평화로움. 그 기분이 내 몸과 마음을 순식간에 훑고 지나갔다.

 

  이 책이 오자마자 바로 펼쳐 들어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눈을 부릅뜨고 보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처럼 상뻬의 글과 그림이 들어오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책들 덮고 다른 책을 읽다가 이제서야 내 눈에 다시 들어 온 것이다. 오히려 그런 묵혀둠이 더 좋은 결과를 낳아서 책을 읽고 난 지금, 무척 뿌듯한 기분이 든다. 책 제목처럼 <겹겹의 의도>가 곳곳에서 드러났고, 상뻬 특유의 유머와 풍자, 엉뚱함이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크기가 무척 큰 덕분에 종이 가득 그려진 상뻬의 데셍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데셍 아래에는 글이 없거나, 아니면 몇 줄, 길어도 열 줄을 넘기지 않는 글이 실려 있었다. 그림을 보면서 느낀 것들을 상뻬의 글과 비교해 볼 수도 있었고, 글을 먼저 읽고 그림을 봄으로써 상뻬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런 묘미는 책 구석구석에 퍼져 있었기에 기분 내키는대로 만끽하면 되었다.

 

  상뻬의 데셍도 그렇지만, 그는 짧은 글 속에서 많은 상상을 하게끔 해준다. 섬세한 데셍 속에서 말 하는 주인공을 찾기도 쉽지 않은데, 능청맞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런 인물은 발견된다. 빽빽한 건물과 인파속에서 주인공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고, 배경과 상관이 없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엉뚱함도 즐거웠다. 또한 단 한 줄의 글과 데셍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들도 있었다. 가령 첫 작품에서는 출근하는 남편을 보며 잠옷바람인 부인은 마당에서 춤을 추며, 고독과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며 기뻐한다. 데셍의 배경은 어느 한 곳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장소를 거치며 상뻬의 감각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마라톤 결승점에서 마지막에 달리고 있는 선수는 갑자기 이탈을 한다. 거기에는 단 한 줄이 씌여져 있을 뿐이다. '경승점에 가서 구경해야겠어'. 거대한 데셍 속에서 거의 보일듯 말듯한 한 선수의 이탈과 말 한마디는 데셍 전체를 아우르며 빛을 발한다. 선수의 한 마디 때문에 그려진 수많은 인파들이 헛되었다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는다. 그런 섬세한 배경이 존재하는 것이 상뻬의 데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뻬의 글이 있더라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데셍을 들여다보고 글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어떤 의도인지 파악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 데셍을 만나도 꼭 의미를 파악하기 보다 그냥 스쳐지나가도 된다.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책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 상뻬 책이므로, 곳곳에 있는 재미를 놓치려 한 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글이 없이 그림만 펼쳐지는 것도 있었는데, 그야 말로 독자가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면 되었다. 간단한 데셍이 있을 뿐인데도, 웃기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고, 발랄하기도 했다. 그런 다양한 묘미에 빠질 수 있어서 책을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상뻬의 작품에 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집에 있는 상뻬 책을 본 다음에 없는 책들을 서서히 구해서 봐야 겠다. <겹겹의 의도>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의도를 파악했는지는 몰라도,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도에서 많이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저자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독자에게 친절히 알려 주기도 해서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다. 상뻬의 데셍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떠한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그의 데셍을 보고 있으면 잔뜩 움츠렸던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단순함이 아닌 마법이 깃든 데셍을 그리는 상뻬의 작품들이 그래서 좋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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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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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은 시류에 휩쓸린 독서를 할 때가 있다. 많은 독자들에게 회자되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를 달리고 있는 책들이 그런 독서를 이끌어 낸다. 오히려 그런 책들을 만나면 너무 인기가 많아서 피해버리곤 하는데, 황석영님의 책은 좀 달랐다. 블로그 연재를 통해서 많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었고, 책으로 엮어서 나왔을 때도 인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그런 인기를 달리지 않았더라면 가볍게 읽었을 책을 구입부터 망설이게 만들었다. 인기 많은 책에 대한 괜한 시기 질투인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어이없어 하면서도 지인이 이 책을 선물해 주었다. 서점에서 어떤 책을 살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책을 콕 찍더니 계산을 대신 했다. 그렇게 힘겹게 내 품으로 들어온 개밥바라기 별. 책을 선물 받은지 거의 두 달 만에 읽게 되었지만, 그동안 머뭇거린 시간이 억울할 정도로 순식간에 읽어 내려 갔다.

 

  내가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보면서, 그때 받지 못했던 위로를 대리만족으로나마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주제가 주어지던지 나의 추억과 책 내용을 뒤범벅해 끈적끈적한 새로운 기억으로 탄생 시킨다. 그런 과정속에서 의문이 들었던 것은 국내 성장소설은 드물다는 점이었다. 국외 성장소설을 읽으면 문화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더라도 10대만의 비슷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국외 성장소설에 익숙해서인지 국내성장 소설을 만났을 때는 익숙한 정서임에도 낯설었다.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빙빙 돌아서 오는 느낌이랄까. 많은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드물게 만난 국내 성장소설에는 그런 터울이 존재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성장소설이는 생각을 못했다. 성장소설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연령대를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호하지만, 고등학교 생활과 졸업 이후를 다룬 내용에 성장소설이라는 명확함을 드러낼 수 없었다. 청소년이라기보다 이제 막 아저씨(?)가 되어가는 단계의 청년들이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또한 저자의 자전적인 소설이었기에 배경이 60년대였다. 80년대 초반 태생인 내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외로움과 번뇌였을 것이다. 그 외에는 배경도, 개개인의 생각도, 사회 분위기도 달랐기에 온전한 흡수를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루하기만 했던 나의 10대를 생각해보고, 20대 초반에 찾아온 사춘기를 떠올리면 그들의 방황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핸드폰을 쥐게 된 것은 20살 때 였으니, 고등학교 때 삐삐를 사용한 것 외에 모든 통신 수단은 집 전화와 편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도 친구들도 잘 만나고, 큰 불편함 없이 살았다. 친구들과의 아지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더라도 물어물어 소식을 구하다 보면 대부분 행동반경이 드러났다. 그 안에서 웃고 떠들며, 고민거리를 나누던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잊고 있었던 시간들과 친구들이 '개밥바라기 별'을 통해 새롭게 재조명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추억은 그들에 비해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회적 분위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고등학생인 그들에게 정의를 불어 넣고, 빨리 성숙하게 만든 그런 분위기를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수도권에서 생활했던 그들의 활동 배경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들과 내가 다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행동과 공상이라는 거대한 벽이었다.

 

  주인공 준이는 베트남으로 군복부를 위해 떠나는 시점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유년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늘 독자를 괴롭히는(?) 것은 준이였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동고동락했던 이야기를 풀어 놓았지만, 정작 책 속의 인물 중에서 가장 파악하기 힘들었던 사람이 준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친구들이 준이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자신의 입장에서 다시 얘기해 주어 이해와 다양한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준이가 그토록 방황을 하고, 남들과 좀더 다른 뜨거운 사춘기를 보낸 이유는 잡히지 않았다. 그런 방황에 이유가 있을까마는, '그냥' 이라는 이유가 붙어도 열정과 무기력함으로 치부할 수 있는 시기가 자아를 찾기 위한 때가 아닐까. 거기에 열정이라는 단어를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들이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관두고 싶으면 관뒀고, 대학의 입학 여부와 선택이 보류 되더라도 자신을 불태워 보았다. 전국 여행을 하고, 산에서 살고, 일용직을 하며 돌아다닌 것을 행동이라고 볼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맘때 마음 속에 품었던 뜨거운 불덩이를 결코 그들처럼 꺼내보지 못했기에 그들의 방황을 '행동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무언가 명확하지 않은, 모호하면서도 흐릿한 그들의 청춘을 성장소설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나와는 상대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행동'과 '공상' 사이의 벽을 깨트릴 수도 없었고, 벌어진 틈을 메울 수도 없었다. 내가 주로 좋아했던 성장소설은 10대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었기에 낯선 오빠(?)들이 아저씨가 되어 가는 과정을 어찌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만 어른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뜨거움을 외면 할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된 후에는 단지 그 이름을 얻기 위해서 세상과 맞섰다는 허무함이 밀려오지만 그들은 알 것이다. 어른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던져진 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가 혼란스러웠을 뿐이였다는 것을. 그런 혼란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 개밥바라기 별이다. 금성이 저녁에 나타날 때에 '개밥바리 별'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 별을 바라볼 때에 자동적으로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이 뜨겁게 지나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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