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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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마주한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저자의 이름을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그녀의 프로필을 보니 그나마 낯익었다는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쓴 드라마 작품들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몇몇 작품이 눈이 익어 검색을 해 보니, 최근에 종영된 '그들이 사는 세상'도 그녀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없기에 나의 기억력은 더 협소해지고 말았다. 그러다 겨우 고두심씨의 연기가 인상 깊었던 ‘꽃보다 아름다워’를 발견하고 체면치레를 하게 되었다.


과연 그녀가 쓴 드라마를 아는 것이 중요할까? 그녀의 작품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글을 읽을 수 있었지만, 배경지식이 충분하지 않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부족했다. 꼭 드라마 이야기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후반부에 펼쳐지는 드라마 주인공 각자의 마음을 써내려간 글은 이질감이 가득했다. 어쩌면 그녀의 글을 온 마음을 열지 못하고 접한대서 오는 역효과 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글은 고백으로부터 시작한다. 첫 사랑의 고백부터 자신의 태생, 가족 이야기 등등 말 그대로 고백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탐탁지 않음이 처음부터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아웃사이더로 보였던 그녀의 학창시절을 보아서일까? 자신을 굶어 죽게 하려 했던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해할 수 없음 때문일까? 그녀의 글은 뿌연 안개처럼 앞을 보여주지 않았다. 지나온 과거, 자신이 써 내려간 드라마 속 인물들, 그들의 내면을 보여줄 뿐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의 글에서 내가 마음을 열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드라마 작가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작가들은 책을 통해서 모든 것을 드러내 놓지만(독자가 차지하는 부분은 잠시 제쳐두고.), 드라마 작가는 대본을 쓴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감독과 스태프와의 호흡, 연기자들과의 소통, 시청자들의 반응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드라마 작가에 대해서 빈약한 지식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그러하기에 그녀의 글에서도 무언가를 더 남겨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섣부른 추측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글에서 내가 느끼는 느낌은 그랬다.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느낌, 내게로 확연히 다가오지 않고 저만치에서 나에게 조근 조근 자신의 내면을 들려주는 느낌이 강했다.


그녀는 사랑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자신의 사랑부터 타인의 사랑과 아직 완성시키지 못한 사랑까지 책 전체가 사랑이야기로 넘쳐났다. 책 제목처럼,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또는 사랑한 경험이 없다면 죄를 안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야기도 나와는 큰 소통을 나누지 못했다. 그녀는 글을 통해서 그녀는 자기 안에 무궁무진한 자신을 꺼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상처가 많을수록 좋다’는 말로 자신을 드러내며 모든 것은 드라마의 소재가 된다는 그녀. 그 과정을 통해서 자기치유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얘기를 털어 놓는 것보다, 글로 써내려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안다. 글로 인해 모든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터인데, 용기가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고백을 그녀는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있었다. 예전에 써 놓은 글을 실은 것들도 있지만, 그녀에 대해서 모두 처음 아는 것들이니 내게는 첫 고백처럼 느껴졌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든, 타인에 대한 사랑이든, 자신이 그려내고자 하는 사랑이던지 간에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말 한 자신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많은 것들이 모호하게 느껴졌다. 글의 형식에, 글이 묶여진 형태에 헤맬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와 나의 소통은 많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씁쓸함이 맴도는 것은, 그녀가 드러내는 사랑에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며 실천하고 있는 가였다. 그녀와 내가 살아온 삶이 판이하게 다르지만, 삶에서 사랑을 뺀다면 많은 부분이 무미건조 할 것이다. 그런 무미건조함을 좀 더 말랑하게 해 주는 노력이 그녀의 의도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더 건조해지고 말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사랑에 마음을 열지 못하거나,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자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애정 결핍이란 말은 애정을 받지 못해 생기는 병이 아니라 애정을 주지 못해 생기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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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행복해요 - 자유로운 영혼 타샤튜더 포토에세이
타샤 튜더 지음, 리처드 브라운 사진, 천양희 옮김 / 종이나라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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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타샤 할머니의 책을 열심히 읽다보니, 이젠 정말 읽을 책이 별로 없다. 타샤 할머니의 그림과 관련된 책을 빼면 <타샤의 식탁> 밖에 남지 않는다. 그 책을 서점에서 살짝 살펴보니 완전 요리책이여서 구입하기가 망설여 졌다. 요리와는 거리가 아주 멀기에 다른 책을 기웃 거리다 이 책을 구입했다. 책 제목만으로도 지금껏 읽어왔던 책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을 간파했다. 하지만 타샤 할머니에 관한 책이라면 무조건 읽어 보고 싶었고,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었다.

 

  타샤 할머니 책은 깊은 밤, 고요할 때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내게 책이 도착한 날은 공교롭게도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이었고, 예약을 했기에 시간을 걸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갔다. 그러나 어딜가든 책이 없으면 허전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타샤 할머니 책을 들고 갔다. 아닌 다를까 그 혹시나가 현실로 나타나 예약을 했음에도 1시간 반이나 기다려 겨우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거듭 사과를 했지만, 내가 화를 내지 않고 웃는 얼굴로 '괜찮아요'라고 말한 건 순전히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책을 가져 오지 않았더라면, 정말 불쾌해 졌을 것이다. 그러나 타샤 할머니 책은 사진이 절반이고, 글씨도 큼지막해서 병원에서 대기하는 동안 다 읽어 버렸다. 타샤 할머니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포근해졌는데, 늦는다고 병원측에 화를 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짜증을 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부터 타샤 할머니 책을 읽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책이 있더라도 타샤 할머니 책이 아니였더라면 분명 짜증이 났을 것이다. 할머니의 정원과 삶을 보고 어찌 짜증을 낼 수 있겠는가. 효력이 오래 가지 않더라도 책을 읽는 과정에서 따뜻함은 지속 되었다. 더군다나 한 해의 말미에서 회의감이 느껴질 때, 타샤 할머니는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해 봤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무리하지 말고,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즐겨보는 것이 어떠겠냐고. 그 말 한마디에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타샤 할머니의 책을 몇 권 읽고서 이 책을 만나니, 더 큰 묘미를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니가 얘기해 주는 것들, 사진 속의 풍경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샤 할머니가 상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아도, 다른 책들에서 배경지식이 쌓였기 때문에 다시 한번 떠올리며 읽을 수 있었다. 사진은 아름답고 황홀했으며, 타샤 할머니의 말투는 상냥했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과, 정원과 삶에 대해 느끼는 것들을 서슴없이 드러내셨다. 그 안에서 확고한 의견들도 보였지만, 그런 것들로 할머니의 정원을 보지 못하면 큰 손해다. 할머니의 글이 아니더라도 사진만 보고 있어도 감탄사가 터진다. 거기에 타샤 할머니의 글을 읽으면, 사진 속의 세계에 상상을 덧댈 수가 있다. 나에게는 사진 속의 세계가 멀게만 느껴지지만, 타샤 할머니는 그 세계를 가꾸고 같이 생활하신 분이기에 더 진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책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은 포토 에세이다. 타샤 할머니의 세세한 설명은 없더라도 사진과 타샤 할머니의 글을 통해서, 충분히 색다른 삶을 만끽할 수 있다. 타샤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책을 통해서 타샤 할머니를 조금 안 후에 편안한 마음으로 이 책을 본다면 재미가 배가 될 거라 생각한다. 날씨가 추워 마음까지 스산해지는 요즘, 타샤 할머니를 통해서 소중한 시간을 갖어보길 바란다. 타샤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언제든지 마음은 푸근해지고 따듯해지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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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의 의도 장 자끄 상뻬의 그림 이야기 1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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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읽을 책이 많다보니 책들에게 무척 관대한 편이다. 한참 열을 올리고 읽던 작가도 어느 순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책장에 묵혀둔다. 그렇게 묵혀둔 책들이 꽤 되지만, 읽고 싶을 때 꺼내서 읽으면 그렇게 새로울 수가 없다. 상뻬 책도 그랬다. 한참 불이 붙었을 때는 전 작품을 탐독할 것처럼 구입해서 읽었는데, 어느 순간 시들해져서 책장에 꽂아두었었다. 그러다 순전히 내 기분 때문에 눈에 띄게 되었고, 따뜻한 난롯가에 앉아 책을 펼치니 푹 빠져들었다. 현재 내가 속해 있는 공간은 잊은 채, 상뻬가 그려 놓은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흐뭇한 미소가 나를 지배하고, 책장은 쉼 없이 넘어가는 그 평화로움. 그 기분이 내 몸과 마음을 순식간에 훑고 지나갔다.

 

  이 책이 오자마자 바로 펼쳐 들어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눈을 부릅뜨고 보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처럼 상뻬의 글과 그림이 들어오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책들 덮고 다른 책을 읽다가 이제서야 내 눈에 다시 들어 온 것이다. 오히려 그런 묵혀둠이 더 좋은 결과를 낳아서 책을 읽고 난 지금, 무척 뿌듯한 기분이 든다. 책 제목처럼 <겹겹의 의도>가 곳곳에서 드러났고, 상뻬 특유의 유머와 풍자, 엉뚱함이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크기가 무척 큰 덕분에 종이 가득 그려진 상뻬의 데셍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데셍 아래에는 글이 없거나, 아니면 몇 줄, 길어도 열 줄을 넘기지 않는 글이 실려 있었다. 그림을 보면서 느낀 것들을 상뻬의 글과 비교해 볼 수도 있었고, 글을 먼저 읽고 그림을 봄으로써 상뻬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런 묘미는 책 구석구석에 퍼져 있었기에 기분 내키는대로 만끽하면 되었다.

 

  상뻬의 데셍도 그렇지만, 그는 짧은 글 속에서 많은 상상을 하게끔 해준다. 섬세한 데셍 속에서 말 하는 주인공을 찾기도 쉽지 않은데, 능청맞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런 인물은 발견된다. 빽빽한 건물과 인파속에서 주인공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고, 배경과 상관이 없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엉뚱함도 즐거웠다. 또한 단 한 줄의 글과 데셍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들도 있었다. 가령 첫 작품에서는 출근하는 남편을 보며 잠옷바람인 부인은 마당에서 춤을 추며, 고독과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며 기뻐한다. 데셍의 배경은 어느 한 곳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장소를 거치며 상뻬의 감각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마라톤 결승점에서 마지막에 달리고 있는 선수는 갑자기 이탈을 한다. 거기에는 단 한 줄이 씌여져 있을 뿐이다. '경승점에 가서 구경해야겠어'. 거대한 데셍 속에서 거의 보일듯 말듯한 한 선수의 이탈과 말 한마디는 데셍 전체를 아우르며 빛을 발한다. 선수의 한 마디 때문에 그려진 수많은 인파들이 헛되었다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는다. 그런 섬세한 배경이 존재하는 것이 상뻬의 데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뻬의 글이 있더라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데셍을 들여다보고 글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어떤 의도인지 파악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 데셍을 만나도 꼭 의미를 파악하기 보다 그냥 스쳐지나가도 된다.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책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 상뻬 책이므로, 곳곳에 있는 재미를 놓치려 한 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글이 없이 그림만 펼쳐지는 것도 있었는데, 그야 말로 독자가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면 되었다. 간단한 데셍이 있을 뿐인데도, 웃기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고, 발랄하기도 했다. 그런 다양한 묘미에 빠질 수 있어서 책을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상뻬의 작품에 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집에 있는 상뻬 책을 본 다음에 없는 책들을 서서히 구해서 봐야 겠다. <겹겹의 의도>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의도를 파악했는지는 몰라도, 보통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도에서 많이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저자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독자에게 친절히 알려 주기도 해서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었다. 상뻬의 데셍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떠한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그의 데셍을 보고 있으면 잔뜩 움츠렸던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단순함이 아닌 마법이 깃든 데셍을 그리는 상뻬의 작품들이 그래서 좋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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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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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은 시류에 휩쓸린 독서를 할 때가 있다. 많은 독자들에게 회자되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를 달리고 있는 책들이 그런 독서를 이끌어 낸다. 오히려 그런 책들을 만나면 너무 인기가 많아서 피해버리곤 하는데, 황석영님의 책은 좀 달랐다. 블로그 연재를 통해서 많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었고, 책으로 엮어서 나왔을 때도 인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그런 인기를 달리지 않았더라면 가볍게 읽었을 책을 구입부터 망설이게 만들었다. 인기 많은 책에 대한 괜한 시기 질투인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어이없어 하면서도 지인이 이 책을 선물해 주었다. 서점에서 어떤 책을 살까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책을 콕 찍더니 계산을 대신 했다. 그렇게 힘겹게 내 품으로 들어온 개밥바라기 별. 책을 선물 받은지 거의 두 달 만에 읽게 되었지만, 그동안 머뭇거린 시간이 억울할 정도로 순식간에 읽어 내려 갔다.

 

  내가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보면서, 그때 받지 못했던 위로를 대리만족으로나마 받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주제가 주어지던지 나의 추억과 책 내용을 뒤범벅해 끈적끈적한 새로운 기억으로 탄생 시킨다. 그런 과정속에서 의문이 들었던 것은 국내 성장소설은 드물다는 점이었다. 국외 성장소설을 읽으면 문화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더라도 10대만의 비슷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국외 성장소설에 익숙해서인지 국내성장 소설을 만났을 때는 익숙한 정서임에도 낯설었다. 직접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빙빙 돌아서 오는 느낌이랄까. 많은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드물게 만난 국내 성장소설에는 그런 터울이 존재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성장소설이는 생각을 못했다. 성장소설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연령대를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호하지만, 고등학교 생활과 졸업 이후를 다룬 내용에 성장소설이라는 명확함을 드러낼 수 없었다. 청소년이라기보다 이제 막 아저씨(?)가 되어가는 단계의 청년들이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또한 저자의 자전적인 소설이었기에 배경이 60년대였다. 80년대 초반 태생인 내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외로움과 번뇌였을 것이다. 그 외에는 배경도, 개개인의 생각도, 사회 분위기도 달랐기에 온전한 흡수를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루하기만 했던 나의 10대를 생각해보고, 20대 초반에 찾아온 사춘기를 떠올리면 그들의 방황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핸드폰을 쥐게 된 것은 20살 때 였으니, 고등학교 때 삐삐를 사용한 것 외에 모든 통신 수단은 집 전화와 편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도 친구들도 잘 만나고, 큰 불편함 없이 살았다. 친구들과의 아지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더라도 물어물어 소식을 구하다 보면 대부분 행동반경이 드러났다. 그 안에서 웃고 떠들며, 고민거리를 나누던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잊고 있었던 시간들과 친구들이 '개밥바라기 별'을 통해 새롭게 재조명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추억은 그들에 비해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회적 분위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 고등학생인 그들에게 정의를 불어 넣고, 빨리 성숙하게 만든 그런 분위기를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수도권에서 생활했던 그들의 활동 배경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들과 내가 다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행동과 공상이라는 거대한 벽이었다.

 

  주인공 준이는 베트남으로 군복부를 위해 떠나는 시점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유년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늘 독자를 괴롭히는(?) 것은 준이였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동고동락했던 이야기를 풀어 놓았지만, 정작 책 속의 인물 중에서 가장 파악하기 힘들었던 사람이 준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친구들이 준이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자신의 입장에서 다시 얘기해 주어 이해와 다양한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준이가 그토록 방황을 하고, 남들과 좀더 다른 뜨거운 사춘기를 보낸 이유는 잡히지 않았다. 그런 방황에 이유가 있을까마는, '그냥' 이라는 이유가 붙어도 열정과 무기력함으로 치부할 수 있는 시기가 자아를 찾기 위한 때가 아닐까. 거기에 열정이라는 단어를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들이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관두고 싶으면 관뒀고, 대학의 입학 여부와 선택이 보류 되더라도 자신을 불태워 보았다. 전국 여행을 하고, 산에서 살고, 일용직을 하며 돌아다닌 것을 행동이라고 볼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맘때 마음 속에 품었던 뜨거운 불덩이를 결코 그들처럼 꺼내보지 못했기에 그들의 방황을 '행동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무언가 명확하지 않은, 모호하면서도 흐릿한 그들의 청춘을 성장소설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나와는 상대적으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행동'과 '공상' 사이의 벽을 깨트릴 수도 없었고, 벌어진 틈을 메울 수도 없었다. 내가 주로 좋아했던 성장소설은 10대 초반에서 중반까지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소설이었기에 낯선 오빠(?)들이 아저씨가 되어 가는 과정을 어찌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만 어른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뜨거움을 외면 할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된 후에는 단지 그 이름을 얻기 위해서 세상과 맞섰다는 허무함이 밀려오지만 그들은 알 것이다. 어른이고 나발이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던져진 나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가 혼란스러웠을 뿐이였다는 것을. 그런 혼란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 개밥바라기 별이다. 금성이 저녁에 나타날 때에 '개밥바리 별'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 별을 바라볼 때에 자동적으로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이 뜨겁게 지나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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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나를 부른다 -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30편의 에세이 APCTP 크로스로드 1
APCTP 기획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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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과 절대 친하지 않지만, 책 표지에 새겨진 몇몇 이름들을 보고 홀랑 마음을 뺏겨 버리고 말았다. 일등 공신인 소설가 김연수, 번역가 정영목, 정재승 교수 정도가 내게 익숙한 이름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손에 책을 쥐고 보니 섣부르게 책을 고른 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밀려 들었다. 운 좋게 정재승 교수님의 사인까지 떡하니 받아왔지만, 과학에 문외한임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책에 대한 걱정을 드러내자 30편의 단편을 순차적으로 읽지 말고, 랜덤으로 읽어보라는 지인의 충고가 따라왔다. 순차적인 얽매임에서 벗어나면 읽기에 좀 더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지인의 말이 귀를 멤돌았지만, 지금껏 책을 읽어온 습관 때문에 쉽게 바꿀 수 없었다. 꾸역꾸역(?) 책을 읽어 나갔는데, 100페이지가 가까워지자 지인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뒷 부분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과학에 문외한인 나는 종종 재미난 글을 만나기도 했지만 지루했다. 나의 관심사도 아니였고, 약간은 혹해서 읽게 된 책이였기에 졸린 눈으로 읽기만을 번복했다.

 

  책을 특성상 사색을 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쉽지 않았다. 나의 눈은 이미 다음 문장을 좇고 있었고, 머릿속에 멤도는 글자들은 저만치 앞에서 읽은 것들이었다. 일치되지 않는 이해와 읽기의 속도 때문에 잠시 멈칫거리다가 뒷 부분을 들춰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키는 대로 제목보다는 첫 문단의 끌림으로 단편들을 읽어 나갔다. 첫 문단이 끌리면 읽고, 끌리지 않으면 잠시 보류해 두는 식으로 읽어 나갔다. 그런데 왠걸, 그렇게 읽다보니 지인의 말대로 부담감도 덜어 졌고 훨씬 편안하게 읽혀졌다. 정말 재미난 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세 단락으로 구분되어 글이 묶여 있다. <과학 밖에서>,<과학의 변경 지대에서>,<과학 안에서> 이다. 얼핏 제목만 봐도 구미가 당기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순서대로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연수님의 글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서문을 경쾌하게 열어주었기에 나름 즐거웠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온 글들은 서서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제목부터 생소했고, 첫 문단의 유혹에는 성공했지만 나의 이해를 백퍼센트 이끌어 주지는 못했다. 흥미롭게 다가갔다가 고개를 갸웃 거리며 결말을 만나게 되는 반복이었다. '과학'이라는 학문에 바탕을 두고 일상생활과 삶, 배움등 연결을 지어 나갔지만, 그 이상을 이해하거나 흥미를 유발시키기에는 무리였다. 제목만 봤을 때는 <과학 밖에서>의 소제목을 달고 있는 글들이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의외의 재미는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두 번째 단락 또한 별 기대없이 지루한 시선으로 읽어 나갔다. 그러나 의외로 나의 관심을 끄는 글들이 많았고, '과학'과 연관되었다는 생각은 잊은 채 흥미롭게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부제목에서도 나와있듯이 <과학의 변경 지대에서>는 다양함을 맛볼 수 있었다. 첫 단락에서도 그런 다양함을 만날 수 있었지만 내게 생소했었다. 두 번째 단락에서는 '인문과 과학적인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글이라고 했는데, 그런 거창한 설명보다는 실제로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는 독서의 묘미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김연수님은 '소설을 쓰는 일이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일'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이 글을 잘 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두번 째 단락에서 그런 의견에 대해 수긍함과 동시에 의아함을 갖게 되었다. 어느 정도 문학과 인문학에 연관된 분들의 글이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인체 실험과 과학 영웅담의 결탁'에 대해 얘기한 정영목님의 글도 인상 깊었고, '과학적 추론 방법의 비밀'은 거기에 나온 책들을 찾아서 읽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한국 과학'의 개념에 대한 김태호 님의 글은 재미와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편안하고 재미있던 글을 꼽으라면 이정모님의 '과학 글쓰기'에 대한 글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과학과 연관짓기를 잠시 잊을 정도였다. 글의 마지막에 저자의 사진과 약력이 나와 있었는데, 글을 통해 저자를 상상하면서 읽다가 막상 저자의 얼굴과 약력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장난기 그득한 저자를 만날 줄 알았는데, 장길산(?) 같은 외모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런 에피소드 때문에 책을 읽고 난 후, 저자를 새롭게 만나는 계기를 만들어 가기도 했다.

 

  세번 째 단락은 <과학 안에서>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과학과 관련되어 있거나 파생되어 나온 분야에 몸담고 있는 저자들은(앞의 저자들도 대부분 그랬지만, 여기서는 범위가 좁아졌다.) 좀 더 생생한 현장의 에피소드와 자신의 생각들을 들려주었다. 역시나 어려운 글도 있었고, 재미난 글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조율은 앞에서 했던 것처럼 랜덤으로 읽었기에 좀 더 편안했다. 사인을 받았던 정재승님의 글도 좋았고,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나의 유년시절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다.

 

  이렇듯 처음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책이 의외로 흥미롭고 뿌듯하게 다가왔다. 내가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이지만, 이 책의 기획처럼 인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을 통해서 다양함을 맛보았다. 우선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만, 섭취할 수 있는 것들만을 끌어 모았지만 먼 훗날 과학과 좀 더 가까워진 후에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새로운 묘미를 맛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과학과 친해졌다고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내게 낯선 분야라고 해서 두려움을 갖고 어렵다고 단정 짓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었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어떤 길에서든 앞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발돋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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