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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끌레마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지인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진정한 이야기 꾼은 누구인가에 대해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화두는 공부를 해서 글을 쓰는 작가와 허구를 사실로 만들어 버리는 작가였다. 몇몇 작가를 언급하면서 그래도 허구를 진짜인 것 처럼 만들어 버리는 작가야 말로 탁월한 이야기 꾼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렸다. 모든 작가의 성향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취향이 다르기에 공감하는 이야기를 편하게 나눈 것이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최근에 내가 읽은 그런 소설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머스크>가 떠올랐다. 탁월한 이야기 꾼을 가리기에 앞서, 허구를 사실인냥 독자를 끌어당기는 마력을 뿜어냈다는데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 책에 빠져서 소설을 읽어가던 시절, 나를 혼란스럽게 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온라인에서 같은 책을 읽은 독자들과 소통하는 일도 거의 없었고, 온라인 서점에서 서평을 보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폈다가 접었다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는데, 도무지 이게 사실인지 허구인지 구분이 안가는 작품들이 많았다. 책을 읽고 나서도 계속해서 책 내용을 떠올리며,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헤메곤 했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사실인 것도 있지만 소설적인 요소가 가미되고 대부분은 허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무척 허무해 했다. 약간 바보스럽긴 했지만, 그때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는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요즘도 종종 책을 읽고 나면 시도때도 없이 책의 일부분이 떠오르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수없이 쏟아지는 책들 속에서 며칠 동안의 기억이 사로잡고 있는 책은 내게 색다를 수 밖에 없다.
<머스크>가 그랬다. 그 책 내용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에는 의문이 더 많았다. 과연 향수로 인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인간의 광기와 집착은 어느 정도일까를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향수하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가 떠오르지만, 그 책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광기를 담고 있다고나 할까. 일흔을 앞둔 아르망 엠므의 행동을 인정할 수 없으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품는 나를 보게 된다. 분명 내가 이 책의 줄거리를 풀어내면 단박에 '허구잖아'를 외치겠지만, 퍼시 캉프가 풀어낸 내용은 진실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69세의 아르망은 프랑스 정보부에서 스파이로 활동했다. 자신의 직업 때문인지 그는 매사에 꼼꼼했고, 특히나 자기 관리 능력이 뛰어났다. 그의 나이만 보면 할아버지로 분류하며 별관심을 두지 않겠지만, 유부녀와 밀회를 즐기며, 외출하기 전에 꼼꼼하게 옷을 입는 것을 즐겨하는 노신사였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없었고,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걸리적 거릴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애인이 던진 한마디에 그의 인생은 뒤죽박죽이 된다. 그가 옷을 꼼꼼하게 입고 난 후에 하는 마무리 작업은 향수를 뿌리는 일이다. 그는 늘 써왔던 향수 '머스크'가 새로운 용기容器에 담겨있는 것을 발랐다. 그러나 그의 애인은 평소와는 다른 냄새가 난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에게 머스크는 다른 향기를 내어도 될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40년간 머스크를 써왔고, 머스크가 자신의 삶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상상을 초월했다. 여인들과 관계를 맺을때도, 여자를 유혹할때도 머스크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체취와 비슷하면서도 야릇한 머스크를 오랜 세월 동안 이용해 온 이유였다. 그런데 머스크가 리뉴얼 되면서 무언가가 바뀐 것이다. 그는 그런 변화를 원치 않았다. 꼭 이전에 썼던 것과 같은 머스크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는 행동파였다. 바로 향이 바뀐 이유가 무엇인지, 제조회사에 문의 편지를 띄운다. 사연인즉 지금껏 머스크를 생산해왔던 회사가 다른 곳으로 인수되면서, 더이상 천연 머스크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머스크의 원료는 사향노루 분비물이었는데, 새로운 회사의 이미지와 맞지 않아 인공 첨가물을 써서 기존의 향수와 완벽하게 일치하니 걱정을 붙들어 매라는 것이다. 하지만 애인이 느낄 정도로 냄새가 다른 향수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머스크는 단순한 향수가 아닌, 지금껏 살아온 아르망 엠므 그 자체였기에 어떻해서든지 기존의 향수를 구해야만 했다.
그가 향수를 구하는 방법은 철저했다. 신문광고는 물론이며, 공동품점을 찾고, 제조회사를 찾아가 또 다른 물류망을 탐색해서 머스크를 구했다. 하지만 그가 필요로 하는 양은 앞으로 그가 살 날에 비례 할만한 양이여야 했다. 그는 희망 연령을 82세로 잡고, 13년 동안 쓸 양을 필요로 했다. 한 달에 125밀리리터짜리 한 병을 소비하므로, 156병이 필요했다. 그는 종조부의 말년을 떠 올리고 희망 연령에 8년을 더해 90세로 다시 잡고, 어림짐작 260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많은 양의 향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그가 애쓴 방법으로는 3년치도 안되는 양을 모았을 뿐인데. 직접 향수제조를 해보려고도 했지만, 그마저도 어려움이 많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방법은 단 하나, 향수를 아껴쓰되 그가 보유한 양 만큼만 생을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그가 정해진 양의 머스크를 쓰지 못한 것은 치욕이었다. 그동안 머스크에게 애착을 갖을 수 없었던 이유를 원료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에게 남겨진 양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머스크 없이 생을 이어가느니, 재고가 바닥이 날 때쯤 여유있는 죽음을 선택하기로 했다. 자살. 그에게는 그 방법 밖에 없었다. 자신이 예측한 82세까지 살더라도 머스크가 없다면, 그것은 죽음보다 못한 삶이었다. 그는 철저히 죽음을 준비한다. 집을 팔고, 유서를 작성하고, 관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시체를 처리해줄 장의사도 구했다. 잠시 자신이 꾸민 일에 대한 회의가 들긴 했지만, 그는 결단력 있는 사람이므로 자살을 선택한다. 깨끗한 죽음을 원했던 그는(겉모습이든, 자신의 삶에서든) 장의사가 자신을 처리하기 편하게 최선을 다해 죽는다. 이제 그의 마지막을 장식해 줄 것은 장의사에게 특별히 남겨 놓았던 머스크일 것이다.
그의 죽음은 머스크가 쓸 수 없는 노인네의 결말이었다. 그것은 허영과 기만이었지만,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그에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죽음을 택했지만, 인간의 집착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무모하고 허무한 것인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이야기였다. 한 순간에 자신을 무너뜨릴 수 있으며, 정체성을 잃어 버리고 향수에 집착하는 엠므씨야 말로 현대인의 나약함을 비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불가능해 보이는 소재를 가능해 보이도록 착각하게 만드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치밀한 그물에 그대로 걸려든 느낌이다. 작가가 독자에게 던져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엠므씨의 행보와 선택에 웃을을 던질 수는 없었다. 좀 더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추스려주기를 현대인들에게 고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