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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 벼랑 끝에서 산 소망을 찾은 산소망선교회 이야기
김재홍 지음 / 두란노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집에 도착 하면 컴퓨터를 켜자마자 블로그를 살펴 본 후, 30분 정도 블럭 맞추기 게임을 한다. 그러곤 스탠드 불빛 아래서 책을 읽는데, 책을 읽고 나면 눈이 무척 아프다. '눈에 무리를 주는 일들만 했구나' 라며 눈 맛사지를 위해 눈을 감으면 앞이 깜깜하다. 그럴 때면 김재홍 목사님 생각이 난다. 눈 맛사지를 위해 잠시 어둠 속에 갇힐 때면, 이 어둠이 걷히지 않았을 목사님은 어떠했을까 하는 울컥함과 두려움이 몰려온다. 황급히 눈을 뜨고 내 눈이 멀지 않을 거라는 확신 속에서, 김재홍 목사님의 일은 나와는 먼 얘기라고 순간 안심하고 만다.
누구나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나의 눈이 멀게 된다면, 나의 몸이 불구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 잠깐의 상상뿐이었지만, 그런 나와 맞설 자신이 없어 황급히 떨쳐 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내가 갖었던 잠깐의 상상이 현실이 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서른 살의 나이에, 그것도 결혼한지 6개월 만에 베체트 병에 걸렸고,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한국은행에 다닐만큰 재원이었던 김재홍 목사님은 결국 시력을 잃는다. 시력만 아니었다면 앞길이 창창한 그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는 슬픔은 뒤로 하더라도,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김재홍 목사님은 좌절한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그때 불현듯 "자살 하면 지옥 간다" 라는 말이 생생히 떠올랐다고 한다. 자살을 하는 대신 지옥이 정말 있는지 확인하려는 생각으로 목숨을 지켰다고 했다. 그러나 목숨은 지켰지만, 산 목숨이 아니었고, 모든 것은 절망스러웠다.
김재홍 목사님은 결혼 전, 자기 딸을 데려가려면 교회를 다녀야 한다는 장모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를 다녔다고 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은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당장 몸이 아프고, 영이 흐트러지니 오로지 하나님께만 매달렸다. 성경 말씀 중 욥기가 위로가 될꺼라고 해서 말씀 테이프를 사다가 들었다. 김재홍 목사님보다 더 한 시련을 당한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이다 -욥기 1:21' 라고 고백했다. 목사님은 그런 욥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께만 위로를 받았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강원도 오지에서 생활을 할 때도, 눈이 멀어 버린 후에 하나님의 뜻을 받기 위해 기도할 때도 오로지 하나님께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그리고 사람이 깜깜한 일을 만나면 네 가지 단계를 거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심과 부정, 분노, 수용, 재활. 목사님에게는 재활의 단계가 필요했다. 그리고 신학대학을 다니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하고, 3년간의 피눈물 나는 학교 생활을 무사히 마치게 된다.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목사님의 시선에서만 씌여진 것이 아니라 사모님의 시선으로 씌여진 글을 발견할 수 있다. 목사님의 글 바로 뒤에 나오기 때문에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며, 이겨 나갔는지를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보다 사모님의 글을 통해서 김재홍 목사님이나 가족의 고충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두 분다 실로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써 내려 간 글에서 고통을 읽을 수 있었지만, 목사님은 홀로 싸워야 했고, 사모님은 그 모든 것을 아울러야 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아이를 돌봐야 했고, 목사님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도와줘야 했다. 다니 던 학교를 그만 둘 수 없어, 야간반으로 옮기고 나머지 시간에는 목사님이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하고, 글을 읽을 수 없는 목사님을 위해 대신 레포트를 써야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도무지 해나갈 수 없는 일을 사모님은 해나갔고, 목사님 또한 그런 사모님의 배려 속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다. 그 가운데서 도움을 받은 분들이 많았다. 작은 것에서 부터 큰 일까지 하나님이 그 가정을 돌보고 계신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보살핌이 계속 되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무사히 마친 목사님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눈이 보이지 않은 목사님을 받아줄 만한 곳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신기할 정도의 또 다른 현실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처럼 눈이 먼 사람들을 위해 목회를 해보는 것이 어떠겠냐는 하나님의 뜻이 들려왔다. 일년에 4 천명의 사람들이 사고로, 병으로 시력을 잃어 버린다고 했다. 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서너 명에서 기도 모임을 갖고, 작은 출발을 시작했다. 많은 시련들이 있었다. 중도 실명자와 시각 장애인이 집안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그들을 데려오는 일, 그들을 먹이는 일, 봉사자를 찾는 일, 예배를 드리는 일부터 모든 것이 시련의 고비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곳곳에 도움의 손길을 심어 놓으셨고, 지금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11대의 봉고차가 움직일 만큼 성장한 교회가 되었다.
나에게 오는 책들은 대부분 사무실로 도착 하기 때문에, 제일 먼저 책을 펼쳐보는 곳도 사무실이다. 표지도 산뜻하고, 책도 가벼워 보여 잠깐 읽어볼까 하고 펼친 것이 퇴근을 하기 전에 다 읽어 버렸다. 그러나 사무실이여서 눈물을 참았지, 집에서 읽었더라면 왈칵 눈물을 쏟아낼 만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두 분의 글은 담담했고 그 세월을 이겨낸 분들 같지 않았다. 내가 가질 수 없는 평안함이 있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아왔기에 현재의 그 분들의 모습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통해서도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고, 삶의 고통이 이렇게 치열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는데 실재로 그 삶을 살아오신 분들은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했을 때의 그 막막함처럼, 글 밖에 감추어진 이면의 삶의 고통은 훨씬 컸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고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힘들고, 삶을 포기해 버리라는 뜻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라면 절대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난관. 그 난관 속에서 늘 우리를 지켜보는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 사실을 잊고 있으면 산소망선교회의 존재의 기쁨을 잊게 된다.
가끔 믿지 않는 자들이 그런 말을 한다. 하나님은 왜 꼭 사람들이 불행해져야 나타나냐고. 왜 사랑한다면서 사람들을 불행에 빠트리냐고. 그런 이들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리시며 더 가슴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져버리는 질문이다.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지만, 인간의 불행과 행복을 일부러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시다. 우리가 어떠한 고통에 빠져 있을 때라도 먼저 다가와 주셔서 보듬어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바로 그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