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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평점 :
많은 교수들은 퇴임할 때 <마지막 강의>를 한다고 한다. 랜디 포시는 퇴임이 아닌 삶과의 이별을 하기 위해서 40대 후반의 나이에 <마지막 강의>를 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가 있었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즐겁게 살고 있었다. 어떠한 순간에도 즐거움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그는 강의에 임하면서도 농담을 쉴새없이 던질 정도로, 자신의 아픈 몸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건강하다면서 팔굽혀 펴기를 하며 좌중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췌장암에 걸린 것,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스스럼 없이 말하면서도 오늘 강의의 중점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당신의 어릴적 꿈을 진짜로 이루기>. 그는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부인의 마지막 생일 날, 강의를 위해 피츠버그로 날아갔다. 어느 누구도 랜디를 막을 수 없었다. 부인 재이의 만류에도 이 강의는 아이들에게 남기는 강의라고 하자 허락했으니, 그에게도 삶의 마무리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책을 읽어 나가면 나갈수록, 도대체 <마지막 강의>에 대한 내용은 언제 나오는 걸까 하고 답답해 했다. 그러나 강의 내용을 이미 읽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강의에서는 없었던 내용들이 책에서 채워져 있었으므로, 그 사실을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동영상 CD를 보고 책을 읽었더라면 그 부분이 이해가 갔을지 몰라도, 책을 읽고 동영상 CD를 보았기에 만들어진 결과였다. 그래서 책과 동영상을 같이 얽혀서 이야기 하려 한다. 책만 읽었거나, 동영상만 보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딱딱한 문체와 강의 내용임을 인식하지 못한데서 오는 무지함으로 감동을 받지 못했다. 그가 <마지막 강의>를 준비하는 모습, 마지막 강의 내용에 살을 덧붙이는 모습을 보고 평범한 한 남자의 일생을 보는 거라 생각했다. 삶의 끝자락에서 혼신을 다해 타인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려 하는 그의 모습을 알아채지 못한 채 말이다. 거기다 그가 다른 사람의 꿈이 어떻게 이뤄 갔는지 예를 들어 주는 부분에서는 질투를 하고 말았다. 직업이 교수이다 보니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사례가 많이 나왔는데, 자신이 속한 대학, 학생들을 너무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너무 젠체하는게 아니냐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부끄러워 졌다. 이미 고인이 된 그에게, 이 책이 어떠한 의미로 남겨짐을 알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미안해졌다. 자신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의 발자취를 드러냈던 것이고, 자신이 지켜본 학생들의 변화를 지켜봤기에 사례로 드러냈을 뿐이었다. 요점이 무엇인지 못하고 다른 사람 눈에 들어간 티끌만 찾고 있었으니 제대로 감동을 받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후, 동영상을 보지 않으면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노트북을 열어 그의 강의를 들었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영상으로 흐러나오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책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그의 유머와 열정적인 눈빛, 아픈 사람 같지 않은 기쁨이 가득한 표정만으로도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강의는 무척 빠르게 흘러갔다. 그가 보여줄 것은 제한된 시간안에 한정되 있었으므로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 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한 행동은 울음보다 웃음이었다. 책을 읽었기에 그가 하는 농담을 수긍할 수 있었고, 천부적으로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의 강의를 듣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다. 강의를 마친 후 아내와 포옹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만.
그렇다면 책과 동영상에서 그가 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신의 어릴적 꿈을 진짜로 이루기 라는 건 알지만,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했는지,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는 몽땅 빼 먹고 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어릴적 꿈을 나열해서 보여주었다. 그가 나열한 6가지의 꿈이 무슨 말인지 피부에 와닿지 않았을 뿐더러, 실현 가능성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가 그 꿈을 모두 이뤄가는 모습을 보고(두 가지는 책이 씌여진 이후에 이루었다고 한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중력상태에서 있어 보기, 디즈니의 이매지니어 되기, [세계백과사전]에 내가 쓴 항목 기재하기가 가능해 보이는가? 그는 자신이 교수가 되었기 때문에 쉽게 이룰 수 있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교수가 되라고 했지만 모두 알 것이다. 그 자신도 '장벽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는지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음을. 기회가 왔을 때 잡아 챘음을 말이다.
그 다음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자신이 부모님과 지인들에게 받았던 도움을 떠올리며, 그런 도움이 널리 퍼지길 원했다. 컴퓨터공학 교수로써의 도움을 주기 위해 유용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며,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소망이었다. 그의 노력으로 정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은 삶을 내려놓게 되었으니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를 한 뒤, 랜디 포시는 질문한다. "당신의 헤드 페이크는 찾았습니까" 라고. 헤드 페이크란, 배우는 사람이 다른 흥미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놓고 실제로는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이 강의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헤드 페이크를 찾았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것이다. 랜디 포시는 <마지막 강의>를 마치면서 오늘의 강의는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는 것에 관해서였다고 말했다.
"이 강의는 어떻게 당신의 꿈을 달성하느냐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 강의는 어떻게 당신의 인생을 이끌어갈 것이냐에 관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인생을 올바른 방식으로 이끌어간다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운명이 해결해줄 것이고 꿈이 당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교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삶'에 관해서만 이야기 했다. 너무나 유쾌하게, 즐겁게 강의를 하는 저 사람은 생명이 꺼져가면서도 꿈을 이뤄보라고 용기를 주고 있었다. 2008년 7월 25일,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강의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만 남겨진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젠 나의 헤드 페이크를 찾을 차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