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이레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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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책도 마음에 들지 않고, 마음도 심란한 터라 책장 정리를 했다. 우선 안 읽은 책과 읽은 책들을 보기 쉽게 구분하고, 장르별로 나눴다. 책을 읽을때마다 장르별로 정리 해서인지 읽은 책이 꽂힌 책장은 정리할게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안 읽은 책이 꽂힌 책장은 어수선해서 정리가 필요했다. 책장을 정리하다 보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이 보였다. 겸사겸사 시작한 책장 정리였는데, 책들을 빨리 읽고 다른 이에게 나줘 주고 싶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꺼내든 책은 <질문상자> 였다. 제목부터 독특했지만, 마치 일본의 하이쿠를 보는 것처럼 간단하면서도 재치 있어 보여 가장 먼저 선택하게 되었다.

 

  우연히 웹상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하다 책으로도 내게 되었다는 저자는 시인이었다. 질문의 다양함 때문에 재미있었지만, 힘들기도 했다는 저자는 이 책이 자신만의 책은 아니라고 했다. 질문의 내용이나 다양한 연령층을 보면 수긍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과, 재치를 요하는 질문들이 많았기에 저자의 역량을 높이 살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던진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질문을 받고 지혜로 답을 해주는 모습 때문이었다. 가령 눈물을 글썽거리며 "왜 사람은 죽어? 난 죽기 싫거든."이라고 질문하는 6살의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했을 것이다. 아이 대신 질문했던 엄마에게 저자는 자신이라면 아이를 꼭 껴안고 울겠다며, 마음과 몸을 사용하여 대답하라고 말했다. 거기다 즐겁게 대화하는 법,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 흔들리는 마음을 조절 하는 법등 좀 더 현실적인 질문의 답도 성의껏 해주고 있었다.

 

  엉뚱한 질문들도 많았다. 바구니에서 비죽 나온 것이 바게트라면 폼이 나는데, 대파는 폼이 안난다는 질문에 대파를 멋지게 들 수 있는 건설적인 방법을 생각해 보라고 권하는 저자. 우주인이 있을까란 질문에 당신도 그 중 한명이라고 대답하고, 그물 속에 들어오는 벌레들의 생각을 묻는 질문에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독려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질문과 저자의 대답을 보고 있노라면 만감이 교차했다. 쓰잘데기 없고, 허무맹랑 하고, 웃기고 재치있다는 생각 등 그들의 상황을 구경하는 입장에서 갖게되는 것들이었다. 가끔은 내가 가진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대답을 기대한 것이 아니므로 그 자체만으로도 독특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시의 주제로 담을 수 있는 시인이기에 그러한 대답이 가능했던 것이 아니였을까.

 

  책을 쭉쭉 읽어 나가다 보면 가끔 나를 멈칫 하게 하는 대답들이 들려오는 것들도 있었다. 보통의 언어와 시의 언어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시의 언어 주체인 시인은 진위에 대한 책임은 없고 말의 기교에 대한 책임이 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런 시각을 가졌기에, 이 책에서도 시인으로서의 기교를 부릴 수 있는게 아니였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감이 없다는 질문에는 '자신감이란 스스로 가질 수 있는게 아니라, 남이 가져다 주는 것이다' 라는 대답에서는 멍해져 버렸다. 자신감이 충만해야 할 현재의 내게 너무나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결과물을 내놓고 나와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해야 했던 지난 날들이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짧은 질문과 역시나 짧은 대답 속에서 성찰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시간이 참으로 귀중하게 다가왔다.

 

  어찌보면 이 책 속의 질문은 꼭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유일무이한 삶에서 남겨지는 잔상들을 꺼낸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끔은 일상의 흐름을 멈춘 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더듬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이쿠를 읽는 다는 느낌을 가져도 되고, 일본 사람들의 상상력을 들춰본다는 느낌으로 편안하게 보면 좋을 것 같다. 모르지 않는가. 그 안에서 기대 하지 않던 대답을 발견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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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수업 - 이별이 가르쳐주는 삶의 의미
폴라 다시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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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음이 울적했다. 계기만 주어 진다면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로 마음이 착찹했다. 그런 기분을 어쩌지 못해 누웠는데, 책상 위에 놓인 책이 눈에 띄었다. 며칠 전 지인이 선물해준 <이별 수업>이었다. 읽을 책이 산더미라 언제 읽게 될지 몰라 방치했는데, 울적한 마음 때문인지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눈물 때문에 읽기를 자주 멈춰야 했다. 책을 펼치고 한 순간도 손에서 놓지 않았지만, 흐릿해지는 글자 사이를 헤메기만 했다. 저릿해지는 마음까지 보태져 읽기를 자꾸 방해받고 말았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해 봤다면, 그제서야 타인의 죽음이 보이는 법이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쳐 버렸던 타인의 고통이라면, 이제는 조금씩 타인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더라도 음주운전자로 인해 남편과 사랑하는 딸을 잃은 저자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지금껏 독단적인 위로를 받았던 책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서로간의 위로가 가능했다. 자기치유적인 성격을 무시할 수 없는 저자의 고백은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의 마음이 열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당신은 아프니 무조건 나의 위로만 받으라는 세뇌가 아닌, 저자와 독자가 무언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주고 있었다. 도피적인 고백, 피상적인 고백으로 이루어 졌다면 금새 식상해졌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지지부진하게 늘어놓는 것도 아니였고, 타인의 고통이 작다고 무시하는 마음 또한 없었다. 단지 자신이 경험한 것,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것들을 담담하게 써내려 갔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슬픔들이 나를 더 아프게 찔러대는 것 같았다.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 위로가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전달 되고 있었다.

 

  상담 치유사였던 저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자신에게 닥친 고통을 감당해야 할 때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사고 당시 뱃속에 있었던 딸을 양육하고, 재혼에 실패한 그녀에게 당면한 고통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와의 소원한 관계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고, 삶을 비판하려 들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팍팍한 인생이었다.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고 일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서로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갔다. 그런 일련의 기록들과 자신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서 나온 책이 <이별 수업>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로 익숙한 모리 교수와의 만남도 특별하지만, 타인의 고통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벅찬 감동이 밀려오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내가 눈물을 흘리게 된 이유는 더 큰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로부터 오는 위로, 현재의 위치를 떠나 인간대 인간으로 고통을 나누었던 모습에서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재소자들과 나눴던 고통과 우정, 모리 교수의 변화를 지켜본 감회, 자신이 치유했던 소년과의 재회가 남달랐다. 저자가 남편과 아이를 잃고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자신이 치유했던 소년이 청년이 되어 찾아온 일이 있었다. 청년은 저자의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서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곁에 있어 주었으니, 이제는 자신이 곁에 있어 주겠노라고 했다. 어떻게 그런 인연을 만들 수 있었을까. 마음과 마음을 나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때문에 이 책을 찾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감동적으로 읽은 터라 모리 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모리 교수는 좀 달랐다. 우리가 몰랐던 모리 교수의 진솔한 부분부터 변화해 가는 모습까지 담담하고 소박하게 씌여 있었다. 자신이 앓게 된 병으로 인해 인생의 참 맛을 알아가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삶의 끝을 향해 가는 병자가 아닌, 끝까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며 변화하려 애썼던 교수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졌다. 자신이 죽게 되면 사람들에게 알려 달라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던 모리 교수와, 저자가 만난 모리 교수의 색깔이 다를 것임을 알기에 그런 부탁을 했는지도 모른다. 첫 만남부터 삐딱했던 모리 교수와,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아가던 저자가 서서히 융화가 되어 가는 모습은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어쩌면 용기를 얻으라는 메세지를 거꾸로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경험들을 통해 스스로가 상처와 고통들을 치유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자신이 품고 있는 상처와 아픔은 이미 치유의 과정을 밟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별 수업>이 아닌, <희망 수업>이라고 수정하고 싶을 정도로 인생에서 맛보게 되는 온갖 감정들이 이 책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내 입에 맞는 맛을 골라가며 삶을 살순 없지만, 자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온전히 전달 되길 바랄 뿐이다. 타인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그 삶 속에서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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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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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 남겨준 여운을 어쩌지 못할 때는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게 된다. 책 내용을 더듬어 보기도 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상상해보기도 하면서 현실 세계의 나와 책 속의 나를 하나로 만들어 보려 애쓴다. 책을 통해 받은 감정들 하나하나가 내 몸안에 박혀, 책을 덮고 난 후에도 내 안을 떠도는 느낌. 오랜만에 신작을 발표한 가네시로 가즈키의 책을 읽을 때가 그랬다. 책을 읽고 나니 새벽 3시였지만, 피곤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로지 이 책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차고 뿌듯해 나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와 마주앉아 "왜 가네시로 가즈키 책은 나오지 않는 걸까"라고 푸념할 정도로 그의 책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막상 그의 작품이 나왔을 때는 아껴 읽고 싶어 구입을 늦췄지만,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을 골라 그의 책을 읽었다. 매일 가즈키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며 오도방정을 떨면서 꼭꼭 씹어 읽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을 읽어 봤다면  이야기와 이야기가 이어지는 연결성을 매력을 알 것이다. <영화처럼>에서도 그런 연결이 약방에 감초 역할을 하듯 맛깔나게 버무려져 있었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연결의 끈을 놓고 있지 않다가 마지막 단편으로 인해 하나로 완성되어지는 묘미란. 이야기의 색깔은 제각각 달랐지만, 하나의 이야기에서 파생되어 나온 느낌은 그의 글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 

 

  첫 단편 <태양은 가득히>를 읽었을 때 조금은 우울했다. 결코 밝지 않은 작가의 경험이 묻어나는 재일 일본인으로써 학창시절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민족학교를 같이 다니던 용일이라는 친구와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자꾸만 엇갈리는 그들의 운명이 부정적으로 끝날까봐 조마조마했다. 도피처의 일환으로 액션영화를 즐겨보고, 느낌을 나누며 존재하지 않던 시나리오를 만들어 갔던 그들. 암울했던 현실만큼이나 어두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들은 방황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기다려온 것은 아니라며 씁쓸함을 떨칠 수 없었던 찰나, 그 둘을 이어 주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니 바로 영화였다. 순식간에 우울함에서 감동의 물결에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저자는 이틀 동안 용일이의 이야기를 써내려 갔다고 고백했다. 책이 주는 여운으로 인해 어쩔 줄 몰라 깊은 밤에 생각에 빠졌던 나처럼 말이다.

 

  두번 째 단편 <정무문>도 밝지 않았다. 남편의 자살로 인해 고모토는 여러 달 동안 집안에서 지낸다. 그러다 비디오 대여점으로부터 남편이 자살하던 날 빌려간 테입을 반납해 달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그로 인해 나루미라는 청년과 만나게 되고, 고모토는 그를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나루미로 인해 수 많은 영화를 접하게 되고, <태양은 가득히>에서 용일이가 삶의 전환을 갖기 전에 본 <로마의 휴일>을 두 사람도 보게 된다. 그러다 남편의 죽음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우연히 나루미가 가져오게 된다. 반전을 예감하듯, 다음 단편에서의 연결을 기대 시키듯, <정무문>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는다.

 

  세번 째, 네번 째 단편은 앞의 이야기와 분위기가 조금은 달랐다. 사랑과 복수가 뒤얽힌 내용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비슷할지 몰라도, 아버지의 차와 돈을 훔친 <프랭키와 자니>는 소재가 조금은 자극적이지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하지 못한 돈, 아버지의 부정을 지켜봐 왔더라도 고등학생인 그들에게 긍정적인 시선을 던질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십대의 감성과 고민을 잘 엮어 내었고, 영화를 소재로 풀어냈음은 물론 <정무문>과의 연결도 잊지 않았다. 그들 역시 <로마의 휴일>을 보게 되고, <페일 라이더> 주인공들도 예외가 아니였다. 조직폭력배의 살해 현장을 우연히 보게 된 평범한 한 가족은 해를 입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남편과 아이를 잃은 여인은 복수를 하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고, 우연히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혼란을 맞이하게 된 소년과 만난다. 가족을 잃은 슬픔, 복수, 부모의 이혼이 뿜어내는 여운은 고통이었다. 끝까지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프랭키와 자니>처럼 무시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극적인 소재라 하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상처를 맛봐야 했던 아픔 같은 것이었다.

 

  네 편의 이야기속 인물들은 동일한 장소에서 상영하는 <로마의 휴일>을 보게 된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각자의 색깔을 내뿜으며 연결의 고리를 끊지 않던 이야기의 종착역은 마지막 단편 <사랑의 샘>이었다. 모든 단편에 나오는 <로마의 휴일>이 어떻게 해서 상영이 되었는가에 대한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었다. 앞의 단편들을 아우르고 있었기에 궁금증 해소와 함께 최고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었다. 우정, 사랑, 복수 등 인생의 여러가지 맛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면, <사랑의 샘>에서는 가족간의 정이 끈끈히 배어나는 분위기라고 말하고 싶다. 할머니의 건강 악화로 인해 네명의 손주들이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일들을 찾으며 드러나는 에피소드는 웃음과 사랑, 정이 있었다. 새벽까지 읽어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게 한 작품이기도 했고, 영화로 인해 맺어진 사연들 중에서 가장 따뜻한 사연이었다. 혼자서 킥킥 대기도 했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으며, 뿌듯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로마의 휴일>이 상영되던 날, 앞서 만난 단편의 주인공들이 하나하나 등장할 때의 만족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영화처럼>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모두 영화같은 내용이었다. 영화를 소재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충족되어 기다린 보람을 느꼈다.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삶의 애환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어 더 끈끈함을 느꼈다. 그 감정을 주제하지 못해 책을 읽자마자 <로마의 휴일> DVD를 주문했고, 도착한지 한참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 영화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시작된 나의 이야기가 <로마의 휴일>을 보고 나면 끝나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랄까.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로마의 휴일>을 필두로 한 수 많은 영화가 떠다니는데, 그 영화를 접하고 나면 이 이야기가 잊혀져 버릴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느꼈던 이 벅찬 감정들이 희미해 질 때쯤 DVD를 꺼내 보려고 한다. 그때쯤이면 새벽녁의 주체할 수 없었던 기분도, 책 속의 사연들도 또렷하게 되살아 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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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진화론 2 - 대변혁의 시대, 새로운 삶의 방식이 태어난다
우메다 모치오 지음, 이우광 옮김 / 재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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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한 몸이 두 삶을 사는 것과 같고, 한 사람에게 두 개의 육신이 있는 것과 같다." 19세기의 계몽사상가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론의 계락>에서 바쿠후 말기에서 메이지시대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의 말은 웹 진화에 따른 또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현대에도 딱 드러맞는 표현이다. 웹이 나의 삶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점으로부터 웹 진화론을 과소평가하고 앞쪽 생에 집착할 경우, 나머지 반생에서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건전한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며 저자는 웹의 또 다른 세계의 포문을 열었다.
 

  인터넷이 많은 역효과를 낳고 있지만, 편리하다는 사실 또한 누구나 느끼는 바다. 그러나 편리함을 넘어서 인터넷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생각해보면 한번쯤은 색다른 경험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웹의 진화를 통해 불특정 다수와 교류를 나눈 경험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기록해왔던 독후감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면서 수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온라인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이 많다. 저자는 인터넷이 없었다면 표현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무수한 사람들의 지혜가 집적되어 나타난 현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내 독후감의 드러냄이 지혜라고 까진 생각하지 않지만, 표현할 기회를 가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다.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십여년 동안 기록해 왔던 개인 독서록을 인터넷이 아니였다면 어디에다 표현했을까. 아마도 나의 책장에 차곡차곡 먼지와 함께 쌓여갔을 것이다.

 

  저자는 1장에서 구글의 사상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웹의 세계를 표현했다. 세계의 모든 정보를 정리 정돈하겠다는 비전을 품은 구글은 '또 하나의 지구'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웹 진화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비전을 품은 구글의 진보가 식을줄 모르고 내달리는 것을 보면 웹의 시대, 웹의 진화를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과 정보의 게임에서 발빠르게 행동한 것이 구글이고 정보 유통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추구하려는 뜻이 통한 사실만 보더라도 구글의 성장을 무시할 수 없다. 오픈소스를 통해 구글 못지 않게 성장하고 있는 '위키피디아(Wikipedia)'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상에서 누구라도 자유롭게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백과사전'이라는 명목하에 거대한 가능성을 창조해 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소개하긴 했지만, 책 속의 수많은 사례들이나 우리 주변의 경험들을 비추어 보더라도 웹의 진화에 따른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웹이 어떠한 세상인지, 그 안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과 흐름을 간파했다면 저자는 그 안에서 어떻게 자신을 가꾸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웹에 대한 설명들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책을 읽어나가면 나갈수록 자기계발을 유도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웹을 통해서 자신에게 감춰졌던 능력을 발휘하고 표현할 수 없지만, 웹을 통한 경험적 가치와 정보의 창출,이용이 증가할 것이므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 열성적으로 해나간다면 웹을 통해서 얼마든지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더불어 그런 일을 통해서 어떻게 끼니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드러내기에 개인 창출을 꿈꾸고 있다면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을 점검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웹의 세상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능력에 따라 뻗어 나갈 수 있기 때문에(저자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으로 비유했다.)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것 부터 고속도로 끝의 정체현상을 만날 때까지(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프로로 진입하는 과정을 정체현상이라고 했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완성된 인간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어쩌면 현실 세계보다 더 팍팍할 수도 있지만, 풍부한 가능성을 담고 있기에 저자는 웹에서의 희망을 긍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이 책에서의 주류는 웹에 관한 것이지만, 주목해야 할 대상은 개인이다. 기존의 많은 사람들이 구조에 적응을 했다면, 개인의 창의력을 발휘해서 더 큰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웹이다. 저자는 개인에게 자조 정신만 있다면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과 그 방향에 대해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끝을 맺고 있다. 웹의 진화를 살펴보고 느끼며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웹을 통해 추구해 보는 것. 그것이 저자가 많은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세대에 웹의 진화는 불가피 하므로 저자가 서문에서 말했던 '건전한 위기감을 갖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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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크리스마스 - 세상에서 가장 기쁜 날
해리 데이비스 지음, 타샤 튜더 그림, 제이 폴 사진,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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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샤 할머니의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벌써부터 걱정 되는 것이 있다. 타샤 할머니에 관한 읽을 거리가 줄어드는 것.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 언제든지 만나면 되지만, 새로운 책을 만날 때마다 갖게 되는 설레임이 끊긴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서운함이 든다. 네 번째로 만나는 <타샤의 크리스마스>를 마주하고 나니 드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타샤 할머니는 이런 쓰잘떼기 없는 걱정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내가 이런 걱정에 빠져 있을 즈음 타샤할머니는 늘 분주하게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계셨겠구나 생각하니 순식간에 즐거워졌다.

 

  몇년 전부터 크리마스를 늘 교회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크리스마스는 분주하고 준비할 것이 많은 날들로 기억되고 말았다. 정작 크리스마스의 의미도 모른채 흘러가는 날들을 보고 있으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특히나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를 지켜보니 내가 크리마스를 맞이하는 태도부터가 빈약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타샤의 크리스마스>는 타샤 할머니가 크리마스를 어떻게 준비하며,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 나와 있다. 타샤 할머니가 지은 <베키의 크리스마스>, <인형들의 크리스마스>의 내용과 삽화들이 함께 어우러진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환상 그 자체였다. 책 속의 크리스마스니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동화 속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를 그대로 살려낸 것이었다. 동화속의 내용과 현실이 하나가 되는 시간. 타샤 할머니이기에 가능한 세계였다.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준비는 유별나다. 보통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준비는 오래 전부터 시작된다. 크리스마스를 오래 전부터 준비할게 뭐가 있겠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타샤의 크리스마스는 전설적인 축하 의식이다. 타샤 할머니는 크리스마스 자체에만 의의를 두지 않는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동시에 가족들과 친지 지인들, 심지어 집안의 동물들까지 즐거워하는 날이 크리스마스라고 생각 하기 때문이다. 타샤 할머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선물 주는 것을 좋아하고, 직접 만드는 것을 당연시 한다(어렸을 적 부모님에게 직접 만든 선물을 받은 영향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동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과 파티를 열어주기 위해서 타샤 할머니가 오래전부터 준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에는 특별한 행사가 있다. 예수님이 탄생한 기쁨을 인위적으로 느끼지 않고 직접 느낄 수 있는 '구유 속의 아기 예수' 행사다. 비스크 도자기 인형으로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를 표현하고 직접 깍아 만든 온갖 동물들과 함께 예수님의 탄생을 재현한다. 자녀들이 연출할 수 있도록 계속 되어온 행사가 이제는 손녀, 손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 행사는 대충 이뤄지지 않는다. 타샤의 숲에서 경건하면서도 소박하게 진행된다. 크리스마스를 즐거운 파티의 날로 인식되어 지지 않게 행해지는 의식이다. 그 행사가 끝나면 크리스마스 만찬과 트리 공개가 이어진다. 타샤의 크리스마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양철 구이통에 하루 종일 칠면조를 굽고, 트리 장식을 하고, 만찬 준비를 하는 타샤 할머니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만 그 모든 일을 솜씨 좋게 처리하는 것 또한 타샤 할머니의 능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감탄할만한 크리스마스 만찬을 준비하는 손길이야 말로 타샤 할머니의 진정한 마법이지만.

 

  코기 코티지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곳이 타샤의 집이라고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타샤의 크리스마스를 체험하기 전에는 공감할 수 없었지만, 일상에서도 예술 감각을 발휘하는 타샤 할머니와 꿈과 현실을 맛깔나게 버무려주는 솜씨를 구경하고 나면 지은이의 말을 인정하게 된다. 지금껏 구경한 크리스마스 중에 최고의 크리스마스라고 아낌없이 칭찬할 수 밖에 없는 타샤의 크리스마스. 늘 닥쳐야 준비하고, 물질로 모든 것을 떼우려고 했던 진부한 크리스마스가 아닌 의미도 잃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보낼 수 있는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새롭게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기회에 나만의 크리스마스를 미리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재주를 빌어 직접 선물을 만들어 지인에게 선물해 보라는 것이 아니다. 고마운 분들을 생각하며 미리 선물을 준비하는 기쁨, 직접 줄 때 느끼는 즐거움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타샤 할머니의 크리스마스는 흉내낼 엄두도 못내니 기쁨이 가득한 마음이라도 닮아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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