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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 라울 따뷔랭
장 자끄 상뻬 지음, 최영선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자전거를 배울 때가 생각난다. 동네에 자전거를 가진 오빠들이 둘 뿐이여서 힘들게 배웠었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자전거를 배우기도 하고, 동네에서도 배우기도 했는데 내가 왜 배워야 하는지 이유를 모를 정도로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가르치는 사람도, 가르쳐 주는 사람도 무언의 짜증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자전거 타는 법을 연습했으면 좋았으련만. 나에겐 자전거가 없어 남의 자전거를 얻어 타며 동냥 배움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라도 배워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로변에서 자전거를 탈 정도의 실력은 아니지만, 한적한 시골길을 혼자서 달릴 수는 있다. 힘들었지만 초등학교때 배우지 못했다면 지금도 자전거를 보며 피해버리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생각하니 잠시 아찔해 진다.
하지만 나보다 더 힘들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라울 따뷔랭이었다. 넘어지고 깨지고 온갖 고생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전거 타는 법을 습득하지 못했다. 그는 생 새롱의 자전거 포 주인이었다. 그가 자전거를 수리하는 실력은 흠 잡을 데 없어 사람들이 자전거를 <따뷔랭>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자전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니. 자신이 가진 명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저자의 말이 딱 드러맞는 상황이었다. 그가 자전거를 못탄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그럴 수만 있다면 따뷔랭 자신도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전거 위에서 중심이 잡혀지지 않았다. 자전거에 대해서 좀 더 알면 문제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연구하다 보니 자전거에 대해 빠삭하게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빼면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자전거를 잘 고쳤으며 사랑스러운 아내와 아이들도 얻었다.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아니 라울이 사진사 피구뉴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피구뉴는 최근에 광장 시장 아케이드 아래 사진관을 연 사람이었다. 자전거가 고장 나서 따뷔랭의 가게에 오면서 둘은 친구가 되었다. 마을에서 사진을 잘 찍는 사진사로 알려지면서 사람들도 더이상 사진이라 하지 않고 <피구뉴>라고 했다. 따뷔랭과 피구뉴의 우정은 날로 돈독해져 갔다. 어느날 피구뉴는 따뷔랭에게 자전거 타는 모습을 찍자는 제의를 해왔다. 따뷔랭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거절을 한다는 것은 자신이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고백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일요일 아침, 피구뉴가 도시락을 싸들고 따뷔랭에게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다자고짜 찾아왔다. 빠져나올 구실을 대지 못한 따뷔랭은 어쩔 수 없이 피구뉴를 따라 나섰고, 경사가 험하고 골짜기가 있는 언덕에서 자전거를 탔다. 사진사는 그런 따뷔랭의 모습을 완벽하게 찍었고, 그 일로 인해 따뷔랭은 석달 동안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다. 따뷔랭의 사진은 해외에서도 대서특빌 될 정도로 무모하지만 잘 찍힌 사진이었다. 피구뉴는 따뷔랭의 사진을 포함해서 사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따뷔랭은 자신의 사진을 보며 피구뉴에게 '일종의 사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피구뉴의 놀라운 고백이 시작된다.
피구뉴의 직업은 사진사지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 못하는 사진사였다. 중요한 행사나 에피소드를 만들어낼 만한 사진들도 그가 찍으면 평범한 사진이 되었다. 그런 사실을 고백하면서, 따뷔랭이 묘기를 부리던 사진을 찍었던 것은 불행히도 우연이라고 말했다. 사진기를 떨어뜨린 순간 따뷔랭의 사진이 찍혔고 자신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 사실을 털어놓은 피구뉴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며 다음 날 여행을 떠났다. 피구뉴의 고백을 듣고 난 따뷔랭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녀석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 했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의 기분은 날이 갈수록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자신이 자전거를 탈 수 없다는 사실도 어떤 식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러부터 두달이 흐른 후, 피구뉴가 돌아왔다. 둘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 따뷔랭이 먼저 말을 건넸다. 비밀이 하나 있다고, 자신이 할 줄 모르는게 하나 있다고 외쳤다. 그리고 별안간 웃는 따뷔랭을 따라 피구뉴도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둘은 알아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못했던 따뷔랭과 피구뉴. 그 둘이 만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내면에 자리잡고 있었던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드러나게 되었다. 처음엔 약점을 드러낸다는 것이 서툴러 온전한 마음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과정이 치유의 시간이 되어 회복하는 결과까지도 낳을 수 있게 되었다. 상뻬의 작품은 글도 글이지만, 글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있어서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른 사람의 작품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상뻬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품이 더 좋다. 글과 그림이 일치가 된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뻬의 사랑스럽고 사실적인 그림과,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들, 그리고 내면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두 사람이 있었기에 분위기에 폭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상뻬의 글과 그림이 좋아 어쩔 줄을 모르며 공간이동을 해 프랑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온 기분까지 들었다.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상뻬의 작품.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과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하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