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가족
아모스 오즈 지음, 박미영 옮김 / 창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공부하러 간 독서실에 책을 들고 간 것 부터가 잘못이지만, 쉬는 시간에 짬짬히 읽고 싶었다. 잠깐 본다는 것이 그만 다 읽어 버리고 말았지만, 컴컴한 독서실에서 이 책을 읽고 나왔을 때는 동굴에서 나온 기분이었다. 실제로 책에서 동굴이 나오기도 했지만,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된 책을 고요한 장소에서 읽고 나니 책 속으로 빨려 들었다가 헤어 나온 기분이었다. 저자가 밑바탕을 그려준 세계에 나의 상상력을 덧대어 맘껏 뛰놀다온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라면 너무 뛰어 놀아 조금은 몸이 피곤한 기분까지 든다.

 

  가끔 소설을 왜 읽냐는 질문을 받는다. 당연히 재미 있어서라고 대답하지만, 좀 더 공감을 주기 위해서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예를 말해준다. 소설을 읽다보면 내 머리 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펼쳐진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 공간 안에 저자의 글을 바탕으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오로지 상상력으로 만들어가며, 그 세계는 저자가 그려내는 것과 다른 세계일지라도 내가 만든 독창적인 세계이므로 어느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재미라 할 수 있다. 책에 따라 화려하고 빽빽한 세계가 그려지기도 하고,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인 세계가 그려지기도 한다. 그 재미에 한번 빠지다 보면 소설을 읽는 묘미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이 책은 어둠이 주로 존재하는 세계였지만, 상상력을 맘껏 발휘하며 공간을 채워가는 재미에 푹 빠져 즐겁게 읽은 책에 속했다.

 

  머릿속에 한 마을을 그려 보길 바란다. 마을 주변에는 산과 숲, 바람과 구름 뿐이다. 근처에 다른 마을은 없고, 깊은 계곡에 자리한 마을에는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울 것 같은 분위기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동물들의 소리가 없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을 비롯해서, 작은 벌레가 나무를 갉아 먹는 소리조차 나지 않은 이상한 마을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동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소리를 내는지 눈으로 볼 수 없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이나 동네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조각으로 유추할 뿐이었다. 어른들에게 동물에 대한 이야기나, 왜 마을에서 동물들이 사라졌는지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모두들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곤 마을 근처의 숲으로 가지 말라고 했다. 밤의 귀신 네히가 숲을 지나 마을까지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밤이면 마을은 색깔을 잃어 갔다. 네히가 동물들을 잡아 갔다 생각한 어른들은 동물들이 사라진 날을 잊고 싶었고, 잊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은 숲으로 가서 동물들을 찾아 오고 싶었다. 어른들이 감추려 하면 할수록 아이들의 호기심은 팽배해 갈 수 밖에 없었다.

 

  마티와 마야는 숲의 궁금증을 품은 아이들이었다.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았기에 직접 숲으로 가서 어른들이 감추려 하는 것을 알려고 했다.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모두들 숲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이상하게 변해갔다. 같은 반 친구인 니미가 그랬고, 재봉사 솔리나의 남편 기놈이 그랬다. 숲을 다녀 온 후 이상한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았다기 보다는 사람들이 그들을 자동적으로 피했다. 마티와 마야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숲에 가기로 한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엎치락 뒤치락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모험을 강행한다. 숲은 어두웠다. 정적이 감돌았고, 빽빽히 들어찬 나무들이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숲은 아이들에게 태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숲을 헤메다 아이들은 정원을 발견한다. 그 정원에는 온갖 동물들이 있었고, 모두 순했다. 처음으로 동물을 보게 된 아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가 밤마다 어둠을 내리는 네히였고, 동물들이 이 곳에 모여 있는 이유와 자신이 숲에서 살게 된 이유를 아이들에게 털어 놓는다.

 

  네히는 보통 사람하고 다르다고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해 동물들의 언어를 배웠다고 했다. 숲으로 들어올 때 동물들을 억지로 데려온 것이 아니라 동물들이 따라온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받은 학대만큼 동물들이 인간들에게 받은 학대에 대해서도 불신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겐 네히와 비슷한 사람이 니미였다. 니미는 숲을 다녀온 후에 소리지르는 병에 걸려 사람들이 모두 피했다. 마티와 마야는 그런 니미를 숲의 동굴에서 만났고, 일부러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니미는 숲보다 자신을 미워하는 아이들 속에 있을 때, 어른들이 손가락질 할때가 더 무섭다고 했다. 네히가 숲으로 들어간 근본적인 이유도 사람들 틈 속에서 살아갈 수 없었기에 동물들과 숲으로 가버린 것이다. 어른들은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아이들에게 숨기려고 했고, 무엇이 잘못 됐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옮긴이도 말했지만, 이 책에서 독자에게 던져주는 메세지가 많다. 니미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신과 다르다고 외면해 버린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고 있었다. 네히 또한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이 있으면 괴롭히지 말라고, 그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싫다고 계속해서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하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서로간의 막힘 때문에 네히와 마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정을 마티와 마야가 알았기에 막혀있던 세계의 소통의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암시를 하며 책은 끝을 맺는다. 

 

  아모스 오즈의 책을 몇 권 접해 본 사람이라면, <숲의 가족>이 조금 낯설 수도 있겠다.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써내려간 기존의 소설들과는 달리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된 우화이기 때문이다. 묘사가 뛰어난 문장들도 색달랐다. 머리속에 상상의 나래를 충분히 펼칠 수 있었던 잔잔한 문체는 아름다웠다. 책을 읽으면서도 몇 번이나 겉표지를 살피며 '아모스 오즈 책 맞나'를 연발 할 만큼 색다른 책이었다. 나름대로 구축해 놓은 아모스 오즈의 작품 스타일을 깨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이 짧은 우화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메세지를 찾아 나서길 바란다. 매개자를 통해서라도 막혀 있던 곳에서 빠져나와 어울릴 수 있도록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슴 뛰는 삶 - 간절히 원하는 그 모습으로 살아라
강헌구 지음 / 쌤앤파커스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는 꿈을 찾아 도전하라는, 혹은 일상의 변화를 꿈꿔 보라는 자계서는 식상하다. 몇 권만 읽어봐도 비슷비슷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 사실을 알아 챌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실천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계서가 식상한 이유가 많을 것이다. 읽기만 하고, 몇 번의 찔림을 받고, 조금 더 정성이 들어가면 책장에 밑줄을 그어 보기도 하지만 다시 덮어 버리기 일쑤다. 지금껏 그렇게 반복해 왔기에 자계서를 손에 쥐고 있어도 설레지 않았다. 이 책도 그랬다. 비전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을 콩당 거리며 저자는 말하고 있었지만, 나에겐 타인의 외침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푸념을 하면서도 책 구절에 열심히 포스트 잇을 붙였다. 메모도 남기고, 생각도 하며 저자가 목이 터져라 외치는 비전이 과연 나에게도 존재하는가 따져보았다. 나와는 멀리 떨어진 비현실의 세계에서 나의 잠재력을 끌어 오는 행위가 아니라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을 발견하고 싶었다. 나의 사정은 알지 못한채 나와 동떨어진 세계를 꿈꾸라는 말들은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개개인에게 충고해 줄 수 없는 어려움이 있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쥐고 싶은 욕망.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쉽게 얻으려는 얇팍함에서 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들에 휩싸여 포스트 잇을 붙이면서 과연 이 문구들을 다시 들춰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통찰, 작심, 돌파, 질주 4장으로 나뉘어 있는 책을 읽으면서도 전체적인 맥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달콤한 문구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저자가 바라는 건 이런게 아닐텐데, 왜 나는 글귀에만 집착했던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도 내용과 나를 접목 시키지 않고 외따로이 관찰만 했다. 그렇다보니 나를 자극하는 글귀는 많아도 나를 움직이는 글귀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비슷비슷한 강도의 글귀에 익숙해져 있는 터라 왠만한 자극적인 글귀로 나를 사로잡기 힘들다는 어리석은 자만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자만을 할때 하더라도 저자가 한 권의 책 속에 명시해 놓은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자신과 100퍼센트 혼연일치 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어떠한 단계를 거쳐 실행할 수 있을지 최소한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해야 했다. 1장 통찰에서는 나의 꿈, 비전, 목표를 확실히 정하고 하나의 주제를 끌어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주제가 어떠하든 지금부터 나의 비전이 되고 꿈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한 가지의 목표를 끌어 내면 절반 정도는 성공한 거라고 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찾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는 나 같은 독자도 많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끌어낸 목표에 대해 <작심>할 수 있는 용기를 부어 주었다. 작은 가능성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예 가운데 하나가 <사명선언문 작성하기>였다. '쓰는 것 자체가 생각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며 하고 싶은 일을 매일매일 적어 보는 것이었다. 사명선언문을 작성한다고 무슨 효과가 나타날까 생각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읽은 책의 흔적을 남기는 나로써는 쓰기의 힘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가장 큰 유혹을 받았던 부분도 사명선언문 작성하기였다. 쓰다 보면 목표가 설정되고, 현실화 되며, 더 커져갈거라는 가능성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그런식으로 집중해 나가다 보면 한가지의 목표가 뚜렷이 설정된다고 했다. 그건 바로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꿈'이었다. 그런 꿈을 발견했다면, 이제 <돌파>해야 한다. 꿈을 발견하고 시작은 했지만, 어느 정도의 한계에 이르면  포기해 버리고, 다시 현실에 안주해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도약하라고 했다. 시간이 걸리고, 도전 방법을 바꾸더라도 목표를 잃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곧, 내가 너무나 즐거워 하는 일이 될 것이기에.

 

  <돌파>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이제 남은건 <질주>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최고의 정점에 이르는 시기. 목표를 돌파하고 질주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경지의 순간이다. 충분히 인간이 오를 수 있는 경지이고, 즐길 수 있는 과정이다. 그때가 되면 즐기는 자가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있다고 했다. 문득, 떠오르는 목표를 하나 설정하고 그런 과정까지 상상을 해보니 즐거워졌다. 그런 목표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기는 했지만, 저자가 권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나는 어느 과정에 속해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나의 생각을 드러내는 이런 글쓰기를 할때에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쓰는 것으로 나의 꿈을 실현시키는 것. 어쩌면 나에게 하나의 목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으로, 나의 비전이 짙어지기를 갈망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 제10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 수상작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5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현실을 잊고 싶을 때 하는 독서가 있다. 도피성 독서다. 나의 머리속은 어지러우니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재미나고 유쾌한 책을 찾아서 읽는 것. 그것이 내가 자주 행하는 도피성 독서다. 이번에 선택된 책은 일본소설이었다. 가독성이 높고 가볍게 읽을 수 있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수 많은 책들 중에서 지인의 추천을 받아 읽게 된 책이다. 말은 현실 도피를 위해 읽게 된 책이라고 했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나름 일본 현대소설을 많이 접했기에 어느 정도의 분위기는 간파하고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이런 책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나의 예상을 여지없이 깨주는 책. 깊은 밤 혼자서 미친 사람처럼 키득거려도 마냥 즐거운 책.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었다.

 

  책의 배경이 되는 곳은 일본의 깡촌 중의 깡촌, 우시아나 마을이었다. 일본 사람들도 잘 모르는 강촌마을에서 '마을 맹글기'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도쿄에서 대학을 나온 마을 최고의 앨리트 청년회장 신이치가 뱉은 한마디 때문이었다. 인구가 300명 밖에 안되는 도시에서, 그것도 젊은 사람들은 야구팀도 안되는 인원으로 어떻게 '마을 맹글기'를 감행 한다는 것일까. 신이치는 마을 청년들에게 도쿄에서 광고대리점을 하는 대학친구에게 일을 부탁해 보기로 한다. 그렇게 그들은 도쿄로 향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으니 바로 언어였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나를 웃겼던 것도 그들의 사투리였다. 지역상으로 구분해서인지 이 책에는 충청도 사투리가 실려 있었다. 충청도에 살지는 않지만 억양과 말투가 익숙하기에 나도 모르게 그런 뉘양스로 책 속의 사투리를 읽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의 개성이 톡톡 살아나며, 마치 내가 그 말투를 쓰고 있는 것 같아 책 속 배경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오지 마을 중에서도 오지 마을이라 통역이 없으면 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나마 도쿄에서 학교를 나온 신이치가 있었기에 '마을 맹글기' 프로젝트가 나왔던 것이고, 도쿄 말을 엇비슷하게 할 수 있었기에 도쿄로 일을 의뢰하러 간 것이다. 신이치가 없다면 같이 간 사토루나 우시아나 마을의 말은 외국말이 되어 버릴 정도로 독창적인(?) 사투리였다. 다행히 신이치 덕에 대학친구의 회사로 찾아가지만, 그들의 행색과 취지를 들어본 친구는 무시할 뿐이었다. 그대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 다른 회사를 찾던 중 도산 위기 직전의 '유니버설 광고사'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대망의 '마을 맹글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책 읽기에 즐거움을 더해 주었던 것은 광고캠페인 제작 경로 순으로 스토리가 전개 된다는 점이었다. 간략한 설명이 곁들어진 소제목은 이야기의 흐름에 재미를 더해 주었고, 정말 그들이 하는 일이 제대로 된 광고캠페인을 벌이는 것 같은 착각까지 하도록 만들었다. 도산 위기의 '유니버설 광고사' 사람들이 우시아나 마을을 방문하고, 말도 안되는 기획안을 내놓는 과정도 제작 순서대로 소제목을 달아놓으니 제법 그럴듯 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읽는 재미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법. 도대체 우시아나 마을을 무엇을 통해 알릴 것인가. 아무리 이리 뒤지고 저리 뒤져도 광고로 앞세울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급기야 마을에서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마을 호수에 공룡을 띄우기로 한다. 조잡하게 만든 공룡 속에 광고사 사장이 들어가고, 그 모습을 멀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호수 근처에 살고 있는 자칭 아마추어 사진작가 사토루가 우연히 발견한 척 꾸며서 언론에 흘렸다. 우시아나사우루스의 출현이었다. 그런데 그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그 후로 우시아나 마을은 전국에서 온 취재진도 모자라 해외에서 온 취재진까지 북새통을 이룬다. 그리고 취재를 나왔던 일본 최고의 미인 아나운서가 사토루에게 시집을 오는 일까지 생긴다.

 

  하지만 가짜 공룡 사건은 오래가지 못했다. 공룡사건의 거짓을 추궁하기도 전에 아나운서와 사토루의 결혼이 이슈가 되어서 어영부영 넘어가 버린다. 유명 아나운서의 농촌 다이어리가 도시 여성들에게 붐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우시아나 마을은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시아나 마을이 그렇게 묻혀 버리면 재미 없다는 듯이 오래전에 멸종된 도도새를 우시아나 마을에서 발견한다는 복선을 깔아놓은 채, 책은 그렇게 끝이 난다. 깡촌의 사투리와 어처구니 없는 공룡사건을 통해서 낄낄 거렸지만, 그렇게라도 도시 사람들에게 우시아나 마을을 알리고 싶었던 사람들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측은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시아나 마을 같은 곳은 이제는 너무 흔하다. 순박함으로는 마을을 지켜갈 수가 없고, 생계의 위협까지 받는다. 그래서인지 공룡을 출현 시키자는 생각은 황당하면서도 치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는 친근한 곳으로 변해 버린 우시아나 마을.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면서, 내 생활에서의 이슈거리는 없는지 돌아보며 하루를 맞이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도 빛깔있는책들 - 즐거운 생활 67
이기윤 지음 / 대원사 / 198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헌책방을 갔다. 새로 옮긴 헌책방을 구경 갔다가 괜찮은 책들을 구입한 경험이 있어서 살만한 책들이 있을까 하고 겸사겸사 옮긴 발걸음이었다. 책을 보는 안목이 없기도 하고, 새책만 좋아하는 나라서 헌책방 나들이가 서점을 들어가는 것만큼 설레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말 예기치 못한 책들을 만났을 때 헌책방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 책들이 많지 않지만 그런 기대감 때문인지 그날은 책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빈 손으로 털레털레 걸어 나오는데 입구의 구석 책장이 눈에 띄었다. 내가 아직 훑어보지 않은 책장이라 쪼그리고 앉아서 책을 보다보니 대원사 시리즈 책이 보였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이 눈에 들어와 바로 집어 들었다. 단돈 2000원에 데려온 <다도>. 같이 간 친구는 다도에 대한 정말 기본적인 것만 알려줄 뿐이라고 타박했지만, 나는 그런 기본이 없으니 괜찮다며 값을 치르고 헌책방을 나섰다.

 

  헌책방을 서성이다 지친 다리를 쉬어 주기 위해 친구와 함께 찻집을 갔다. 시원한 레몬에이드를 시켜놓고 구입한 책을 꺼냈다. 빈 손으로 나올 뻔 했던 내 손길을 무안하게 하지 않았던 책이였기에 조금은 뿌듯했다. 평상시에 다기에 차를 우려 마시는 걸 참 좋아했는데, 내게 부족한 상식을 보완시켜 보자 하는 마음에서 읽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첫장을 열자마자 나의 몰상식이 바로 드러났다. 잎차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우리나라 토종 차나무에 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씨앗으로만 번식한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당연히 차나무라면 씨앗으로 번식을 하겠지 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막상 토종 차나무가 그런다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책의 초반은 이처럼 차나무 사진도 보여주는 <사진으로 보는 다도>였다. 내가 먹어왔던 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재배되는지에 대해 가볍게 알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다 차를 마실 때 쓰는 도구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또 놀라고 말았다. 몇년 전에 나름 비싼 다기를 구입했는데, 유독 용도를 모르는 다구가 있었다. 이리 저리 돌려보아도 무엇에 쓰는지 몰라 그냥 다기를 꺼낼 때마다 방치해 두고 말았는데, 그게 다기의 두껑 받침대였다니. 그 다구의 용도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했다면 쉽게 알아봤을 텐데, 게으름이 부른 방관이었다.

 

  사진으로 본 다도를 보고 나면 본격적인 다도에 관해 나온다. 현대 생활에 어우러지는 차의 이야기와, 차를 우리는 방법, 차의 효능 등을 알려준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커다란 앎을 기대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차 생활을 즐기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에 조금 더 보태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서 주워 들은 지식들을 정리해주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다도에 대해서 이렇게 책을 엮을 만큼 많은 정보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 찰나, 차의 역사에 대해서 나왔다. 차가 어떻게 고대부터 사람들의 생활 속에 파고 들어 문화를 만들어 갔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옛 선인들이 남긴 글만 보더라도 차에 대한 격찬은 넘쳐나고, 생활 속에 퍼져있는 차의 향유를 만끽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현대의 차 문화는 본질을 잃어버린지 오래고, 서양의 차 문화를 닮아가고 있을 뿐이다. 잎차를 우려 마시는 것도 우리의 문화라고 말할 수 없지만, 선인들로부터 내려온 문화이니 만큼 외국의 차문화보다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문화가 사그러져 가는게 안타까웠다. 차의 향긋함과 단아함을 시로 읊었던 선인들의 소박함이 지금도 묻어나는데 지금은 차의 향취를 맡기도 힘드니 말이다.

 

  차 문화의 사그라듬을 온전히 현대의 무관심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차 문화가 보편화 되지 못한 시대는 조선 시대 부터였다. 불교가 쇠퇴의 길을 걸으면서 차 문화도 서서히 종적을 감춘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여러 자료를 통해서 차 문화가 온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차는 대부분 남방 지역에서 많이 자랐지만,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가 요구한 세폐에 감당하기 힘든 차의 양이 포함되어 차가 일상의 문화로 자리매김 할 수 없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기에 청나라에 받쳐야 할 차나무를 재배해야 했던 농민들의 분노가 차밭을 불질러 버리는 사태까지 일어났으니 차가 서민들의 생활에 정착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차를 마시는 법 부터, 차의 역사를 알고 나니 차에 대한 애착이 좀 더 느껴졌다. 이 책의 마무리도 차를 알았으면 작은 공간이라도 다실을 꾸며보라고 했다. 비싸게 주고 샀다는 이유 만으로 옷장 깊숙이 다기를 숨겨놓았는데, 귀때그릇과 잔 하나만 꺼내놓더라도 차를 가까이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실을 꾸밀 여력이 되지 않으니 책상 앞에 찻잔과 귀때그릇을 놓고 차를 자주 우려 마시며 차를 가까이 하는 생활을 해야 겠다. 여기 저기서 얻은 차도 많고, 구입한 차도 있으니 가을 바람이 심심치 않게 불어대는 요즘에 차의 향에 취해 보려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시장미 2008-09-10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리뷰네요. ^^ 저도 갑자기 차 한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드는걸요 ㅋㅋ
사실 친구들이나 손님이 오지 않는 한 차를 마셔야 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하는데..차에 얽힌 문화나 역사를 알게되면 혼자 있을 때도 한잔씩 즐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해요.

태아에게 좋은 차도 많이 있을텐데..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집에서 팩하나 넣고 보리차 끊이지 말고 이것 저것 섞어서 맛나게 차를 끊여놓고 물대신 먹어도 좋겠죠? 이히 경동시장에 들려서 재료좀 사눠야 겠네요.
 
설탕사원이 회사를 녹인다 북핀업 3
다키타 유키코 지음, 정선우 옮김 / 경영정신(작가정신)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은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어찌나 눈치가 보였는지 모른다. 모든것이 평상시와 다를바 없었는데, 누군가 나를 고깝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 신경이 씌였다. 순식간에 읽어 버린 책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설탕사원이라는 개념도 생소했지만, 설마 저 사원이 나겠어 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어가다 발등이 찍혀 버렸다. 처음엔 설탕사원과 나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신세대 사원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오래전부터 다니고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나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자만심 안에는 이미 설탕사원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 사실을 나만 몰랐을 뿐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약 5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신입사원 교육비용은 일인당 1억원이 넘고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기간도 매우 길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대기업은 약 2년정도가 걸린다고. 그러나 이 책의 추천사 첫머리에는 국내 중소기업 신입사원 가운데 30퍼센트가 1년이 되지 않아 이직을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었다. 꿋꿋하게 일하는 사원들도 많겠지만,  힘들게 교육을 시켜놓았더니 이직을 해버린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기업이든 취업자든 간에 인력에 쏟는 비용, 시간, 노력이 아까웠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기업과 사원간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설탕사원들을 기업의 입장에서만 보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원들만 보더라도 기업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깔려 있다는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

 

  저자는 설탕사원이란 '호경기를 향유한 부모','내신 중심의 학교교육','IT기술의 발전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부족','능력주의에 따른 이직 지망'이 어우러져 생겨난 괴상한 존재라고 했다.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러한 점들이 어우러지다 보니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와 능력만을 생각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 회사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사라져 버렸다. 이 책들에 나온 설탕사원들의 모습은 비슷비슷했다. 기본적인 면들이 결여되었기에 괴상한 존재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설마 이 정도까지 일줄은 몰랐다며 놀랠 틈도 없이 그들은 우후죽순 격으로 솟아나고 있었다.

 

  저자가 크게 나눠놓은 설탕사원은 다섯분류다. 그들의 존재여부에 대해 대충은 감이 잡힐지도 모르지만, 세세하게 그 사원들을 만나보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의존형과 자기존중형 설탕사원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남다른 시선을 보내지 않고 모른체 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리즌 브레이크형, 원룸 캐퍼시티형, 사생활 연장형 설탕사원들을 만나다 보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철이 없다는 선을 넘어서 이런 사원들이 진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원들 모습에서 나의 존재를 엿볼 수 있었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설탕사원의 유형이었다. 신입사원들에 중점이 맞춰 졌기에 나는 포함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차라리 신입사원들은 철딱서니가 없어서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의 사회물이 들은 나 같은 사람에게도 포함되는 부분이 많았다. 메뉴얼에 없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하는 프리즌 브레이크형, 일보다 사생활이 더 중했던 사생활 연장형은 나에게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저자는 사회보험 노무사, 사원교육등을 담당하고 있는 위치에서 이 책을 썼다. 여러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쓴 일화들이 대부분이지만 기업의 입장이 더 짙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원들이 늘어간다면 고용주의 입장에서도 곤역스러울 것이다. 그러한 문제점을 조금이나마 해결해 보자는 뜻으로 이 책을 썼지만, 사원들의 변화만을 꿰하기 보다는 기업과의 상호작용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기업이고, 건강한 인력을 제공하는 것이 사원의 몫이다. 천방지축 설탕사원이 날뛰고, 예전의 방법을 고수하는 기업이 건재한다면 앞으로의 문제점은 더 늘어날 것이다. 개개인의 성향과 기업이 추구하는 목적이 잘 어우러 질 때, 설탕사원이 줄어들고 기업의 발전을 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쯤은 나는 설탕사원이 아닌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이왕 내가 하는 일을 즐겁게, 재미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설탕사원이 되어서 회사를 녹여먹는 사원이 아닌, 회사에 녹아드는 사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