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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가족
아모스 오즈 지음, 박미영 옮김 / 창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공부하러 간 독서실에 책을 들고 간 것 부터가 잘못이지만, 쉬는 시간에 짬짬히 읽고 싶었다. 잠깐 본다는 것이 그만 다 읽어 버리고 말았지만, 컴컴한 독서실에서 이 책을 읽고 나왔을 때는 동굴에서 나온 기분이었다. 실제로 책에서 동굴이 나오기도 했지만,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된 책을 고요한 장소에서 읽고 나니 책 속으로 빨려 들었다가 헤어 나온 기분이었다. 저자가 밑바탕을 그려준 세계에 나의 상상력을 덧대어 맘껏 뛰놀다온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라면 너무 뛰어 놀아 조금은 몸이 피곤한 기분까지 든다.
가끔 소설을 왜 읽냐는 질문을 받는다. 당연히 재미 있어서라고 대답하지만, 좀 더 공감을 주기 위해서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예를 말해준다. 소설을 읽다보면 내 머리 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펼쳐진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 공간 안에 저자의 글을 바탕으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 오로지 상상력으로 만들어가며, 그 세계는 저자가 그려내는 것과 다른 세계일지라도 내가 만든 독창적인 세계이므로 어느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재미라 할 수 있다. 책에 따라 화려하고 빽빽한 세계가 그려지기도 하고,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인 세계가 그려지기도 한다. 그 재미에 한번 빠지다 보면 소설을 읽는 묘미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이 책은 어둠이 주로 존재하는 세계였지만, 상상력을 맘껏 발휘하며 공간을 채워가는 재미에 푹 빠져 즐겁게 읽은 책에 속했다.
머릿속에 한 마을을 그려 보길 바란다. 마을 주변에는 산과 숲, 바람과 구름 뿐이다. 근처에 다른 마을은 없고, 깊은 계곡에 자리한 마을에는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울 것 같은 분위기지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동물들의 소리가 없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을 비롯해서, 작은 벌레가 나무를 갉아 먹는 소리조차 나지 않은 이상한 마을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동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소리를 내는지 눈으로 볼 수 없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이나 동네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조각으로 유추할 뿐이었다. 어른들에게 동물에 대한 이야기나, 왜 마을에서 동물들이 사라졌는지에 대해 얘기를 꺼내면 모두들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곤 마을 근처의 숲으로 가지 말라고 했다. 밤의 귀신 네히가 숲을 지나 마을까지 내려오기 때문이라고 했다. 밤이면 마을은 색깔을 잃어 갔다. 네히가 동물들을 잡아 갔다 생각한 어른들은 동물들이 사라진 날을 잊고 싶었고, 잊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은 숲으로 가서 동물들을 찾아 오고 싶었다. 어른들이 감추려 하면 할수록 아이들의 호기심은 팽배해 갈 수 밖에 없었다.
마티와 마야는 숲의 궁금증을 품은 아이들이었다.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았기에 직접 숲으로 가서 어른들이 감추려 하는 것을 알려고 했다. 숲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모두들 숲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이상하게 변해갔다. 같은 반 친구인 니미가 그랬고, 재봉사 솔리나의 남편 기놈이 그랬다. 숲을 다녀 온 후 이상한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았다기 보다는 사람들이 그들을 자동적으로 피했다. 마티와 마야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숲에 가기로 한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엎치락 뒤치락 하는 상황에서 그들은 모험을 강행한다. 숲은 어두웠다. 정적이 감돌았고, 빽빽히 들어찬 나무들이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은 숲은 아이들에게 태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숲을 헤메다 아이들은 정원을 발견한다. 그 정원에는 온갖 동물들이 있었고, 모두 순했다. 처음으로 동물을 보게 된 아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 남자가 밤마다 어둠을 내리는 네히였고, 동물들이 이 곳에 모여 있는 이유와 자신이 숲에서 살게 된 이유를 아이들에게 털어 놓는다.
네히는 보통 사람하고 다르다고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해 동물들의 언어를 배웠다고 했다. 숲으로 들어올 때 동물들을 억지로 데려온 것이 아니라 동물들이 따라온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받은 학대만큼 동물들이 인간들에게 받은 학대에 대해서도 불신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겐 네히와 비슷한 사람이 니미였다. 니미는 숲을 다녀온 후에 소리지르는 병에 걸려 사람들이 모두 피했다. 마티와 마야는 그런 니미를 숲의 동굴에서 만났고, 일부러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니미는 숲보다 자신을 미워하는 아이들 속에 있을 때, 어른들이 손가락질 할때가 더 무섭다고 했다. 네히가 숲으로 들어간 근본적인 이유도 사람들 틈 속에서 살아갈 수 없었기에 동물들과 숲으로 가버린 것이다. 어른들은 그런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아이들에게 숨기려고 했고, 무엇이 잘못 됐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옮긴이도 말했지만, 이 책에서 독자에게 던져주는 메세지가 많다. 니미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신과 다르다고 외면해 버린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고 있었다. 네히 또한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이 있으면 괴롭히지 말라고, 그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싫다고 계속해서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하라고 말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서로간의 막힘 때문에 네히와 마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정을 마티와 마야가 알았기에 막혀있던 세계의 소통의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암시를 하며 책은 끝을 맺는다.
아모스 오즈의 책을 몇 권 접해 본 사람이라면, <숲의 가족>이 조금 낯설 수도 있겠다.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써내려간 기존의 소설들과는 달리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된 우화이기 때문이다. 묘사가 뛰어난 문장들도 색달랐다. 머리속에 상상의 나래를 충분히 펼칠 수 있었던 잔잔한 문체는 아름다웠다. 책을 읽으면서도 몇 번이나 겉표지를 살피며 '아모스 오즈 책 맞나'를 연발 할 만큼 색다른 책이었다. 나름대로 구축해 놓은 아모스 오즈의 작품 스타일을 깨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이 짧은 우화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메세지를 찾아 나서길 바란다. 매개자를 통해서라도 막혀 있던 곳에서 빠져나와 어울릴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