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쿼시 - 그림자 소년, 소녀를 만나다
팀 보울러 지음, 유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가면서 나에게 닥칠 아픔을 예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면 나로 인해 상처받고 있는 타인의 고통을 알아챌 수 있다면 말이다. 내 곁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떠한 사람인지 한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한 남자의 독선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가정을 얘기하고 싶어 미래의 한 부분을 알고 싶다고 떼를 써본다.
제이미는 스쿼시를 좋아하는 16세 소년이다. 스쿼시 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스쿼시를 좋아하게 되었고 어느 정도 소질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제이미는 스쿼시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경기 성적도 부진했고, 무엇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숨 막혔다. 스쿼시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갔다. 아버지는 승부만을 강요했고, 제이미를 무조건 몰아 붙였다. 힘든 훈련과 경기를 마치고 와도 독선적인 아버지와 늘 불안한 어머니가 있는 집이 제이미는 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 있고 싶을 때 찾아가는 창고가 제이미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그 날도 제이미는 아버지의 오해로 꾸중을 듣고 창고로 향했다. 그러나 자신만의 공간이라 생각했던 창고에 다른 존재가 있었다.
제이미 또래의 소녀가 있었다. 한눈에 봐도 불룩한 배가 불편해 보였고, 힘겨워 보였다. 제이미의 심정도 여의치 않았지만, 그 소녀에게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소녀는 제이미의 도움을 철저히 거부했고 방어만 하고 있었다. 그런 소녀에게 제이미는 자꾸만 마음이 씌였다. 도움을 주고 싶었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 소녀를 보고 있자니 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 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소녀는 생각보다 위험에 처해 있었고, 제이미의 상황도 점점 나빠져 가고 있었다.
무엇이 제이미를 궁지로 몰고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의 승부욕은 도를 지나쳤고, 스쿼시에 흥미를 잃어가는 자신을 드러낼 수 없어 답답했다. 거기다 자신의 창고에 몰래 기거 하고 있는 소녀의 일까지 신경 써야 했으니 제이미는 온 세상의 짐을 떠 맡은 듯 하다. 어디로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고, 현재의 자신을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찼다. 어느 것 하나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소녀와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재 처해진 상황을 해결방법이라기 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스스로 그림자라고 자처한 소녀는 세상으로 나가기를 권유하지만 제이미에게 그럴 용기가 없었다. 자꾸만 조급해 지는 마음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제이미는 결국 집을 나가기로 결심 한다. 소녀가 아기를 출산하기 위해 머무를 곳까지만 따라가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소녀를 쫓는 사람들에게 맞기도 하고, 친구에게 큰 돈을 빌리기도 하고, 스쿼시를 하지 않겠다고 아버지에게 대들기까지 했다. 앞으로 자신에게 펼쳐질 미래가 어떤지 알지 못하지만 제이미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보기로 한다. 처음으로 제이미는 숨막히는 자신의 생활에서 빠져나와 소녀와의 동행을 감행한다.
제이미가 결정한 행위의 이면을 제이미 자신이 볼 수 없는게 당연하다. 학교에서, 집에서, 주변에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전혀 알 수 없기에 현재의 자신을 밀고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알아 가는 것, 자신 곁에 있는 소녀를 도와주는 것이 제이미에게 처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제이미가 다시 돌아왔을 때 감당해야 할 상처는 더욱 더 커져 버렸다. 독자도 제이미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반전이었기에 마음이 저릿저릿 아파왔다. 꼭 이렇게까지 아프고 힘든 상처를 들쑤셔야 했을까 하고 작가를 원망해 보기도 했다. 소녀가 제이미에게 풀어놓은 사실들도 충격이었지만, 제이미가 감당해야 할 마음의 상처가 두려웠다. 도피성 가출을 했지만 제이미가 얻은 것보다 잃어 버린 것이 더 커보였다. 그 일로 인해 아버지는 달라졌다. 제이미도 치열한 성장통의 과정을 거쳐면서 달라졌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팀 보울러의 책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었다. 그러나 저자가 펼쳐놓은 세계는 치열했다. 십대들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깊이 파고든 이번 작품에서는 피하고 싶었던 주제들을 많이 만났다. 부모의 욕심, 임신, 돈,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십대의 심리를 그대로 드러냈기에 우울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동안 십대들의 문제를 알면서도 그들을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피해버리고 색안경을 끼고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면을 정면으로 파고든 저자의 역량에 힘을 더해주면서도 극단적인 방법 밖에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안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현재의 나를 피할 수는 없더라도 다가올 미래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픈 마음. 제이미의 아버지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렸다고 했지만, 그것은 치뤄야 할 댓가였다. 각자에게 문제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문제를 인정하고 헤쳐 나갈 때에 진정한 가족이 될 거라 생각한다. 제이미의 아버지는 새로운 가족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줄 것이고, 제이미도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최소한 가식적인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다. 치열한 십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현재의 고통 속에서 자신이 중점이지만 곁에는 더 소중한 사람들이 있노라고. 그리고 그 고통을 충분히 보듬어 줄 사람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