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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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마주하고 보니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한참 책에 대한 열망이 들떠  있던 시절, 친구가 이 책을 선물해 달라고 해서 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선물해 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무조건 내가 읽은 책을 선물 해야 했으며, 읽지 않은 책은 읽고서라도 줬다. 선물할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중고책을 만들어 버리는 행위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에 저지른 만행이었다.) 조금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읽었었다. 그러나 조금 읽다가 집중이 안되어서 곱게 덮어서 선물을 했는데, 그 책을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나기 힘든게 읽다 만 책인데, 재발행으로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책을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예전에 이 책이 읽히지가 않았을까. 재미없는 책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덮어버렸을까 라고. 아마 그 때는 나와의 만남이 유쾌할 조건이 되지 못했나 보다. 문학에만 열과성의를 보였던 내가 이런 분위기의 책을 흡수할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제서야 이 책을 다시 만나게 된 인연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흥미가 없었던 책이 지금은 아주 유쾌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호어스트라는 남자가 있다. 그는 아주 게으르고 보통 사람이라면 발견하기 힘든 유쾌함과 엉뚱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일상을 지켜보면서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를 알아가면 갈수록 진솔한 유쾌함에 웃을음 터트릴 수 밖에 없었다. 타인의 삶을 엿본다는 것은 경직된 자세로 일관하기 일쑤다. 나 또한 호어스트라는 게으른 남자에 전혀 흥미가 없었으며, 그에게 열게 된 마음이라곤 침착한 상태로 그를 만나보자가 전부였다. 다른 사람이 신경을 쓰던 말던 자신의 일상과 흩어지려는 상념들을 엉그러 모은 이 책을 읽다보니 그의 내부로 들어가 비로소 본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호어스트 씨가 나에게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어 주었던 건 상식을 뛰어넘는 행동과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사건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모든 사건을 만들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대해 가는 호어스트 씨에게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꼭꼭 닫고 다니는 생각의 틀을 반쯤 흘리고 다니는 호어스트 씨. 자잘한 일상의 가벼움을 담고 있다가도 허를 찌르는 그의 유머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간과할 수 없는 웃음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그 웃음의 이면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봄직한 사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게으름에 몸부림 쳐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며, 자신의 상상속에서 주무르고 싶은 세상을 가꿔보지 않은 자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머리 속에서만 흩뿌려 버리는 생각들을 호어스트씨는 당당히 헤쳐 나가고 있었다.

 

  이 책은 5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야기 모음집으로써 간단한 규칙이 있는 정기 낭독 무대에서 공연된 작품이라고 한다. 이 글이 탄생된 배경만 살펴보더라도 결코 쉽게 씌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읽고, 웃음으로 넘겨 버리는 사이에도 저자는 그 속에 많은 것들을 갖추어 놓고 있었다. 남들이 비웃어 버리는 자신의 일상속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감추어 놓음으로써 그 너머를 보아주기 바랐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유머로만 점철되어 지는 호어스트 씨의 하루가 아닌 웃는 사이에도 나름대로의 호어스트 씨만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가 달아놓은 주석만 보더라도 이제껏 만나왔던 주석과는 다른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주석이라기 보다는 생각의 편린을 옮겨놓은 듯한 작은 세계. 그 세계로 말미암아 호어스트 씨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 모두가 금요일을 꿈꾸고 있지만, 언제나 금요일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호어스트 씨가 보여주고 있는 셈이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일상을 잘 견뎌내야만 금요일의 달콤함이 우리를 맞이하기에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방법 밖에 없다. 호어스트 씨처럼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는 일상이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일상을 대하다 보면 호어스트 씨보다 더 심한 실수투성이의 삶이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엉뚱하고 유쾌한 웃음 속에서 만난 호어스트 씨는 내게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만, 금요일을 꿈 꿀 수 있는 건 바로 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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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 도시 그리고 추억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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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아닌 안개에 덮여 있는 창 밖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마음까지 답답해 진다. 온 몸이 높은 습도에 눅눅해 지는 기분까지 들어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온다. 계절의 실감도 나지 않고, 날짜에 대한 감각도 무뎌져 무기력감만이 나를 휘감고 돈다. 이토록 낯선 날씨를 마주하고 있으니 몇몇 진부한 풍경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안개하면 런던이 떠오르듯이 비애하면 이제는 이스탄불이 떠오른다. 이런 날씨가 내가 사는 소도시에서는 낯설지만, 이스탄불이라면 도시의 폐허를 그대로 보여줄 것 같은 느낌. 이스탄불을 이렇게 기억해야 하는 것이 조금은 씁쓸하다.

 

  오르한 파묵이 2006년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가 되었지만, 그 전에 그의 작품을 만난 터라 상을 받은 작가라는 가산점을 부여하고 이 책을 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껏 소설만 만나 왔었는데 에세이를 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이 갔다. 그것도 자전에세이라니. 오르한 파묵의 개인적인 내면 세계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호기심이 일었다. 소설과 에세이에서 만난 작가는 분명 다르기에 소설 너머로 바라본 작가의 이면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옮길 수 없는 것들을 글로 전환해 주길 바라는 기대감. 내가 끄집어 올리지 못한 것들에 대한 드러냄. 그런 것을 바라며 대리만족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삶을 통해 내가 살아온 발자취를 되짚어 보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저자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에세이를 통해서 대리만족하고자 했던 나의 관심의 욕망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삶에서 경험하는 것들의-가장 깊은 희열조차-의미를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아는 것을 습관하 한다'라고. 그제서야 나의 욕망은 습관화로 이루어진 잔재물이며 당연하게 요구하게 되는 욕구충족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묘한 감정이 밀려왔지만, 저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후에 살 수 있는 두 번째 삶은,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책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용기를 얻고 책을 펼쳤다. 나의 두 번째 삶은 내 손에 붙들려진 <이스탄불>이라며 내 머릿속에 각인 시킨 후 오르한 파묵을 통해  깊은 희열을 느끼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의 부제목을 보면 <도시 그리고 추억>이라고 되어 있다. 처음엔 부제목을 그냥 지나쳐 버렸는데 책을 읽어 나갈 수록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의 추억이 진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가 성장하며 기억하는 이스탄불이 되기도 하고, 과거의 사람들이 지나쳐온 이스탄불이 되기도 했다. 삶에서 경험하는 것들의 의미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 아는 것을 습관화 한다고 했지만, 이스탄불은 사람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도시 그 자체를 통해서 많은 것을 드러내며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화려했던 오스만 제국의 잔재가 다듬어 지지 못하고 폐허로 변해버린 모습을 도시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방치되는 동안에도 여전히 꿈틀대며 삶을 꾸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이스탄불의 흔적을 좇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순환하지 않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것이 낡아, 날로 우울함을 더해가는 도시. 과거의 화려함은 빛이 바래 사그라든지 오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저자는 이스탄불에서 성장했고, 이스탄불의 내면과 외부를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이스탄불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을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라고 말이다. 자신의 성장과정부터 도시의 폐허까지 저자는 모든 것을 고백했다. 가정의 불화, 줄어드는 재산, 첫사랑, 첫경험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으며 이스탄불의 존재 과정을 자신의 성장과 함께 맞물리며 고백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냈듯이 이스탄불 역시 모든 것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이스탄불은 저자 뿐만이 아닌 독자에게도 절망을 안겨 주었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탄불에 잔존하는 감정은 비애였다.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옮긴이는 우리나라의 '한(恨)'의 정서와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한(恨)을 떠올리니 이스탄불이 안고 있는 분위기, 그 안에서 성장했던 저자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는 비애를 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만끽했다. 그것이 이스탄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원동력이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내가 성장한 동네를 그려낼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시골스러움을 숨기고 싶고, 빨리 성장해서 그 곳을 떠나고 싶었던 그런 동네를 과연 사랑할 수 있으며 저자처럼 그려낼 수 있을까. 대답은 오래지 않아 'NO' 라고 말한다. 복잡하고 불완전하고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이스탄불을 좋아한다던 저자와는 다른,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두메산골에서 자란 나이기에 동일선상에서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이유를 끌어다가 나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오르한 파묵) 알아가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여과지에 비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본 것에 대해, 저자의 내면을 통해 이스탄불을 바라본 것에 대해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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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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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면 으레 출판되는 책 가운데 하나는 여행에 관한 책이다. 휴가와 방학을 이용해서 좀 더 알차게 보내 싶은 사람들의 마음에 자극을 주는 셈이다. 타인의 여행을 통해 한번쯤 그런 여행을 꿈 꿔보는 것. 책이기에 가능하고, 여름이기에 가능한 상상이다. 그래서 책 제목에 '여행'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도 한번 더 떠들러 보고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인가 보다. 나 또한 생소한 작가를 마주하면서도 그와의 만남이 부담스럽지 않았던 것은 '여행'이라는 동경이 존재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마땅히 여행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그렇게 김연수라는 작가와의 첫 대면을 시작했다.
 

  김연수라는 작가에 대해 소문만 들어 왔기에 이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내게 만감이 교차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첫 작품으로 고른 것이 산문집이고, 어쩌면 김연수라는 작가에 대해 알아 간다는 느낌보다 여행 이야기를 괜찮은 소문이 퍼지고 있는 작가가 썼다는데에 의의를 두고 마주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저자가 여행한 곳에 온 신경이 맞춰졌다. 내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라는 것을 알기에 어떠한 배경으로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그곳의 풍경은 어떤지 보다는, 저자가 머문곳이 어디인지 밖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여행이라고 하면 누구나 가보고 싶은 으리으리한 곳(그곳이 어디일까.)을 꿈꾸기 마련이기에 첫 여행지로 러시아가 소개되었기에 갸우뚱 했던 것이 사실이다. 거기다 여행을 목적으로 뒀다기 보다는 이런이런 연유로 머무르게 된 계기를 소개하고 있어 내 안에 실망감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책 제목이 <여행할 권리> 에다 산문집 임에도 나는 오로지 여행만을 바라보고 싶었다. 저자의 시시콜콜한 내면의 소리들이 한 낮의 매미떼의 울음소리처럼 왱왱댈 뿐이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이런게 아니라구요 소리를 치면서도 저자의 뒤를 좇는 나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책의 첫장을 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겨우 이것 뿐이가"라고 질문하고 새로은 세계를 찾아 여행할 권리. 내가 저자의 뒤를 좇는 이유는 어쩜 이런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할 권리라는 거창한 제목을 걸어놓고 겨우 이것 뿐인가, 라고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적으로 내 욕심만을 부린 채 이 책을 보아왔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욕심을 버리고 이 책을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행>이라는 단어를 잠시 밀쳐두는 것이었다. 여행을 밀쳐두고 ~할 권리에 중점을 둔 채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여행을 빼니 여행 대신 들어갈 단어는 무궁무진 했다. 나는 저자의 세계를 알아야 할 권리에 마음을 더 쏟기로 하고 책을 읽어 나갔다. 그랬더니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꿈꾸었던, 두려워 마지 않았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이라는 드러나는 행위로 내면의 세계를 탐하는 시간, 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저자가 주로 여행한 곳은 관광지와는 상관이 없이 필요에 의해서 스스로 개척한 공간이 대부분이었다. 어학연수를 위해서, 다큐멘터리 찍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좋아하는 저자의 흔적을 찾아서, 혹은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서 떠난 길이였기에 관광지와는 무관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고리를 통해 문학과의 연결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학의 연결 고리를 좇다 보면 민족이 보였고, 민족을 생각하다 보면 그 안에 내포된 한 인간상이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어울려 살려고 애쓰는 수 많은 사람들이 많아 당혹스러 웠다. 섞이려고 하지만 섞이지 못할 때의 고통, 외면 받아온 세월, 오해로 얼룩진 상처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현재 있는 위치가 헷갈렸다. 버클리 캠퍼스와 UC빌리지를 오가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다 온갖 인종을 만나다 보면 안드로메다 성운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저자의 느낌처럼 낯선 세계에 둥둥 떠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학으로 연결되고 같은 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낯선 세계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이 낯설 듯, 공통점은 찾지 못한 채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있었다.

 

  저자처럼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어의 통함으로 인한 어느 정도의 소통이 아닌 내 앞에 펼쳐진 것들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육안을 닮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그것은 낯선 장소에 서 있는 두려움이 아니라 어느 곳을 가든지 만나게 되는 지울 수 없는 공허였다. 우리에게 잊혀진 지성인, 유용할 때만 불러들이는 한국 태생의 외국 작가, 타국에서 숨을 거둔 문학인 들을 만날 때면 동조할 수 없는 씁쓸함이 밀려오곤 했다. 한국을 벗어나면 스스로에게 드리워진 짐은 더 무거워지며 다시는 국내로 발길을 돌릴 수 없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런 느낌이 가장 강하게 뿜어내고,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상에 관한 글이었다. 이상 전집 세 권을 달랑 들고 이상의 뒤를 좇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도쿄행 비행기를 탔던 저자. 그가 알고자 했던 것, 그가 궁금했던 것, 그리고 이상의 내면으로 들어가 이상이 찾고자 했던 것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었던 것이 인상 깊었다. 더불어 안타까움과 정체모를 우울함이 나를 움켜쥐기도 했지만.

 

  이 책의 여행을 무어라 정의하긴 힘들다. 단순히 여행을 갈망하던 내가 이 책의 여행을 마쳤을 땐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과 공허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세계의 여러곳을 누빈 것은 사실이나 그 어느 곳에서도 나를 올려놓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을 찾지 못해서였을까? 나란 존재에 대한 미미함을 타인의 삶을 통해 보아버린 까닭일까?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나의 감정의 잔재물은 이 책이 어떠한 책이냐는 설명을 할 수 없는 것과 동일했다. 차라리 단순한 여행을 꿈꾸게 해주었던 책이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최소한 아무 생각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거대함을 만난 느낌. 그 세계를 깊이 들어갔다온 느낌. 그러나 가벼운 여행을 마치고 나온 허무감은 없었다. 또한 한 작가와의 만남이 아주 훌륭했다는 만족감까지 얻었으니 색다른 ~할 권리를 얻은 것만은 확실하다. "겨우 이것 뿐인가" 라고 당당히 외치며 낯선 세계에 온 몸과 마음을 던지고 왔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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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7 1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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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블로거 문학 대상] 문학에 관한 10문 10답 트랙백 이벤트

10문 10답!
1. 당신은 어떤 종류의 책을 가장 좋아하세요?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 러시아 문학이라면 무조건 구입해서 읽습니다. 더군다나 19세기 러시아 문학이라면 더더욱 더!!

2. 올여름 피서지에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 피서지가 어디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바다라면 존 반빌의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를 읽고 싶네요.

3.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혹은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좋아하는 작가가 너무 많지만 한명만 꼽으라면 도스또예프스끼를 꼽겠습니다. 그의 장황함,수다스러움,러시아적 기질이 녹아있는 문학작품에 홀딱 반하지 않을 수 없었거든요.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김연수 입니다. 국외문학만 읽다가 국내 문학도 읽어야지 하고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의 문체가 맘에 들어요.^^

4.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마의 산의 카스트로프. 그의 이해하지 못할 사상을 떠나서라도 요양을 하러 갔다가 젊음을 다 바친 그 열정이 마음에 들어서...

5.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인물 /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이상형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었다면 적어주세요.
- 태백산맥의 서민영. 올곧음과 박학다식함이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6.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피천득의 <인연> 이 책을 정말 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 많이 했어요.

7. 특정 유명인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책을 읽히고 싶은가요?
- 김장훈씨에게 <타샤 튜더의 정원>. 왠지 김장훈님과 타샤 할머니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

8. 작품성과 무관하게 재미면에서 만점을 주고 싶었던 책은?
- 가네시로 가즈키의 3종 세트! <플라이 대디 플라이>,<레볼루션 no.3>,<speed> 더 좀비스의 활약상을 기대하시라!

9. 최근 읽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여행할 권리/ 김연수> p.201 혹시 한국에서 자꾸만 문학이 죽었다고 말하는 까닭은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10. 당신에게 '인생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 고2때 이 책을 읽고 깊은 밤에 아주 엉엉 운 기억이 납니다. 아무래도 열정을 따라 인생을 다시 거꾸로 살아가려고 했던 찰스 스트릭랜드 때문이 아니였나 싶어요. 그 깊은 밤 엉엉 운 이후로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음 속에 열정을 심을 수 있었기에 이 책이 저의 인생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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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 테오에세이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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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같아선 내 생활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대도시처럼 사람이 바글거리고 차가 뒤엉켜 숨쉬기 힘든 동네도 아니건만 조용한 곳에 머무르고 싶은 욕망이 들끓는다.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죄다 소음이고, 내 눈에 밟히는 것들은 모두 장애물이다. 이런 상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잠시만이라도 고요한 내 자신을 만나고 싶은 소망. 그것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걸까? 아니면 방법을 몰라서일까. 자신에게 솔직해 지지 않을 때 불신이 만들어 지는 법. 불신이 나를 향해 비죽 올라올 때 이 책을 만났다. 투명하기만 한 소금사막에서 과연 나의 얼굴을 비춰 볼 수 있을까?
 

  테오의 전작이 좋아 이 책을 그냥 스쳐버릴 수가 없었다. 낯선 땅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케이프 타운을 다룬 전작은 여행지에서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가 볼리비아로 갔다고 하니 잠시 어지러웠다. 아프리카에서 남미로 갑자기 이동을 해야 한다는 건, 책 속에서만 이루어지는게 아니라 나의 상상력의 세계를 뒤집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도 그랬지만 볼리비아라고 낯설지 않았던 건 아니다. 볼리비아라하면 체 게바라가 숨을 거뒀던 곳 정도밖에 떠올리지 못하기에 약간의 경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곳을 테오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달려갔고 부딪혔다.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을 테오는 자연스럽게 마주한 것이다. 낯선 곳에 가기, 부딪히기, 수 많은 난관을 두려워 하지 않기. 그 모든 걱정 때문에 여행을 하지 못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테오는 한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낯선 세계를 다녀왔다.

 

  테오가 알려 줄 낯선 세계에 나는 너무 겁을 먹어 버린 것일까. 볼리비아를 여행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책을 꺼낸 탓인지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얼어 있었다. 저자가 펼쳐주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지 못하고 계속해서 겁많은 탐험자처럼 경계하며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건 마치 가로로 묶인 책의 익숙하지 않은 형태에서 이 책이 어느만큼 달려 가고 있는지, 언제 끝날지를 가늠할 수 없어 겁을 먹고 있는 것과 같았다. 내가 마음을 놓으려 하면 다른 파트로 넘어가 버리고, 여행을 해보려 하면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어 내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나의 이런 마음을 모른 채 테오는 자신의 많은 것을 쏟아내고 있었다. 여행 에세이긴 하지만 여행지에 목적을 두는 것보다 여행지의 모습을 그려내되, 항상 자신의 일상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생각할 틈을 남겨둔다. 우리의 일상이 잘 있는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가끔은 급작스럽게 저자는 독자에게 묻곤 한다. 어쩜 그런 방식 때문에 내 마음을 온전히 놓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여행을 통해 나의 일상을 통째로 버려둔 채 다른 세상을 만끽하려 했던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을 잊으면 다른 세상도 잘 들어올 줄 알았다. 그러나 저자가 여행한 장소나,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나의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현실에 충실해야 하지, 도피란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몇몇 듣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곳에 현혹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현실에 충실한 모습이였기에 도피를 목적으로 한 나는 어느 곳에도 내 마음 한 켠을 내려놓지 못했다.

 

  저자는 현실을 포기하는 것은 여행자가 아니라고 했다. 여행자는 인생을 이해하고 자아를 사랑하는 사람, 여행을 통해 일상을 정돈하고 여행에서 돌아와 더 나은 일상을 조성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여행을 하지 않음에도 현실을 포기하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소금사막에 비춰질 나의 모습이 두려워 뒤돌아 볼 수 밖에 없었다. 상대의 눈에 나의 모습은 분명 이상하게 보일 것이기에 움츠려 들고 두려운 나를 감출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에서 보여준 다른 세상을 속속들이 여행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 자신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두려움을 깨치려고 했던 순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고요한 곳으로 떠나더라도 내 자신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어떠한 것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솔직해 져야 한다. 그래야 낯선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더라도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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