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서태지와 아이들 3집에 수록된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생각이 난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했을 때 내용이 무척 궁금하면서도 선뜻 책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책이었다. 서태지가 부른 노래로 유추할 뿐, 그러부터 14년이 지난 현재 이제서야 나는 서태지가 불렀던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서태지가 부른 노래와 여기 저기서 주워 들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관한 정보로는 성이 차지 않았었는데, 이제서야 궁금증을 해소하게 되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버렸지만 나만의 <지킬박 사와 하이드>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록새록 솟아나고 있다.
 

   이 책의 소제목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기이한 사례' 라고 나와 있듯이 지킬 박사 중심으로 사건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킬 박사의 주변인들에 의해서 마치 보고서를 발표하듯 복잡한 형식으로 흘러간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궁금했던 것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신체와 외모가 변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이드의 잔인한 범죄를 통해 동일 인물의 소행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지킬 박사가 가면을 쓰고 하이드로 변신 한다고 알고 있었기에 저자가 어떻게 동일인물로 묘사해 갈지 궁금했다. 아무리 변신을 한다고 해도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외적인 면이든, 내적인 면이든 완전히 달랐기에 과연 같은 인물인가에 대한 의문은 끊이질 않았다. 그 가운데 지킬 박사의 절친한 친구인 래니언 박사가 지킬박사에 관해 의문을 풀어주지 않은 채 사망하고 만다. 래니언박사, 지킬 박사와 절친한 사이였던 어터슨 변호사는 그 모든 의문의 중심에 서서 사건을 풀어가고 있다. 하이드의 범죄, 래니언 박사의 죽음, 지킬박사의 두문불출. 더 이상 지켜볼수만 없었던 어터슨은 지킬 박사가 틀어박혀 있던 서재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지만 그곳에는 하이드의 시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사건에 이어 래니언 박사의 편지와 헨리 지킬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모든 사건의 정황을 알게 된다. 외부로 드러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행위들, 지킬 박사의 내면을 차지하고 있던 이중성이 모두 드러난다. 지킬 박사는 화학 실험을 통해 하이드로 변할 수 있는 약을 만들고 범죄를 저질렀다. 인간관계, 명예, 부 등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었던 그는 내면에 존재하는 악을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하이드라는 인물로 드러낸 것이다. 하드에서 다시 지킬 박사로 돌아온 그는 하이드가 저질러 놓은 악행을 고쳐 놓으려고도 했다. 그러면 그의 양심이 편해 질 수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드의 악행을 고친다고 하더라도 지킬 박사가 양심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독자는 책을 읽는 내내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동일인물로 봐야 하는지, 하이드를 지킬 박사에서 떨어져 나온 또 다른 개체로 봐야 하는지 헷갈릴 수 밖에 없다. 스스로 범죄를 행하며 쾌락을 느낀 최초의 사람이라고 고백했듯이 하이드를 완전히 부인할 수 없다. 내면에 존재하는 훌륭한 모습과 사악한 모습 중에서 사악한 자신과 결합해 가는 과정이 하이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온전히 다른 인물로도, 같은 인물로도 인정할 수 없는 애매모호함이 존재하는 가운데 어지러운 내면을 여행할 수 밖에 없다.

 

  내 스스로도 내면에 존재하는 이중적인 자아를 부정할 수 없기에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온전히 비판할 수가 없었다. 지킬 박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악한 모습을 애써 누르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그것을 과감히 꺼낸 것이 지킬 박사가 아니였을까. 그렇더라도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진 자아와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자아이다. 그 자아를 잘 조화 시켜 사악함이 나를 뚫고 나오려 해도 인간의 면모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 그런 노력이 있을 때 제 2의 하이드를 만드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시체도둑>과 <오랄라>라는 작품이 실려 있었다. <시체도둑>은 해부학 강사와 시체도둑의 사이에서 거래를 도와야 했던 젊은 의대생을 실재 사건과 연관해서 쓴 소설이다. 공포소설의 계절인 여름에 으스스하게 읽을 수 있었던 반면에 <오랄라>는 해설이 없이 읽기에는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모호함 속에 펼쳐지는 부상당한 군인의 고백은 정신적인 면과 흡혈귀로 몰락한 가문의 이야기라는 것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섬세하게 펼쳐지는 묘사가 어우러지는 <오랄라>는 전형적인 고딕소설 분위기였다. 요즘같은 장마로 인해 우중충한 날씨가 연일 계속 될 때 안개 자욱한 런던을 떠올리며 스티븐슨의 소설로 빠져보는 것도 여름을 이기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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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장외인간 - 이외수

3. 최초의 인간 - 알베르 카퀴

4. 삿뽀로 여인숙 - 하성란

5. 종소리 - 신경숙

6. 중국 견문록 - 한비야

 

 

며칠 전 출근하는 길에 보니 집 앞의 책방이 폐업처리를 한다는 광고가 보였습니다. 책과 비디오 dvd를 싸게 판다구요.

오오... 그런데 출근하고 보니 어여 책방에 가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점심먹고 살짝 빠져 나와서 책방엘 갔습니다. 제가 간 날이 첫날이라 다행히 모든게 그대로 있더라구요.

제일 먼저 책을 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책이 없더라구요.

그래도 꾸역 꾸역 뒤져서 이 책들을 찾아 냈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책이 있어서 놀랐어요..^^

책은 권당 2000원에 구입했답니다.

 



7. 하늘에 있는 나의 집 - 맥스 루케이도

8. 지킬 박사와 하이드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이벤트 책 두권이 도착했습니다.

종교서적과 정말 읽어 보고 싶었던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받았어요.

오오.. 너무 좋아요..^^



9. 우울한 얼굴의 아이 - 오에 겐자부로

10. 책이여, 안녕 - 오에 겐자부로

 

- 오에 겐자부로 책 신간이 나왔길래 사고 싶어했는데....

지인이 책을 사준다고 해서 이 책을 사달라고 했죠. <책이여, 안녕>을.

그런데 한 권 더 사주겠다고 더 고르라고 해서 검색을 하다 보니깐 <우울한 얼굴의 아이>의 연작이더라구요.

<체인지 링>까지 3부작이라고...

<체인지 링>은 읽었기에 3부작을 섭렵하고 싶은 마음에 오에 겐자부로 책으로 다 골랐습니다.

좀 난해하긴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책들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3부작을 손에 쥐게 되어서 너무 좋아요.^^

책이 좀 두툼하긴 하지만요..^^


그러나 이 책들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책방에서 쓰던 책장을 무료로 그냥 준다는 것이였어요. 오오.

제 방에 딱 책장 한군데 들어올 공간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 책장도 얻어 왔답니다. 혼자서는 못 들고 오겠길래 퇴근 하는 형부한테 부탁해서 들고 왔지요.

근데 책장이 너무 커서 엘리베이터에 안 들어가서 계단으로 6층까지 가져왔습니다.

깨끗이 닦고 정리했더니 나름 좋아요.^^ 책장은 통일성이 없지만...

이젠 한쪽 벽이 다 책입니다.^^ 그리고 책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해서 그게 제일 좋아요.

이젠 책만 부지런히 읽으면 될 것 같다는..^^



책방에서 쓰던 책장중에서 cctv 작동중이라는 스티커가 붙은 책장이 제게 오게 됐습니다.ㅋㅋ

떼려고 했는데



이젠 디카에 다 잡히지도 않네요..^^

완전 자투리로 된 책장들이지만 한쪽 벽이 책으로 꽉 차서 좋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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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06-2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희집책들은 저렇게 한줄로 조로록 꼽히는 호강을 못누리죠. 두줄 세줄에 위에 남는공간도 빽빽히 낑겨져 있어요 -_-;; 저는 언제나 저러 깔끔한 책장을 가져볼까요..

순오기 2008-06-22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횡재하셨네요.^^
님의 서재에서 책장 위에 또 올려 놓은 것을 보고, 저도 칼라박스를 옆으로 눕혀 올렸어요.^^ 책을 저렇게 놓고 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지요~~ㅎㅎ 멋져요, 책장도 님도...
거실을 기역자로 꽉 채우고 화장실 앞쪽 벽에도 책장을 하나 세웠어요.

안녕반짝 2008-06-23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들을 일자로 세우니 어찌나 좋던지.. 책들도 숨을 쉬는 것 같아요..^^
 

 

1. 이스탄불 - 오르한 파묵

 

2. 19세 - 이순원

 

3.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 하다 - 오영욱

 

4. 소녀, 소년을 만나다 - 알리 스미스

 

 

 

- 지난 금요일 네권의 책이 내 품에 안겼다.

이벤트로 신청한 <이스탄불>. 오르한 파묵의 책을 몇 권 읽어왔기에 그의 신간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19>세는 리브로 이달의 리뷰가 되어서 적립금으로 샀다. 서점에서 우연히 본 책인데, 요즘 성장소설과 국내 작가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에 충족하는 책인 것 같아 구입했다.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 하다>,<소녀, 소년을 만나다>는 지인이 읽고 보내준 책이다.

늘 책을 읽고 괜찮은 책은 내게 보내주니 신세만 지고 있는 지인이다.^^

책 욕심이 많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책은 쌓여 가는데 이젠 책을 읽어야 겠다는 조바심도 들지 않는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 읽는 방법>을 읽고 있는데 슬로리딩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권수에 치중하는, 내일을 위한 독서는 잠시 보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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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코페르니쿠스 - 뿔 모던클래식 6
존 반빌 지음, 조성숙 옮김 / 뿔(웅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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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해질 무렵 바다에 나갔다. 만조의 바다는 파도에 부딪히는 물결과는 또 다른 장관을 그려 내고 있었다. 바다를 찾았을 때 나는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나름대로 고정시켜 놓았던 내 마음이 무너져 버렸기에, 그 마음을 들쳐낼 수 없었기에 절망을 안고 바다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바다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닥터 코페르니쿠스를 떠올렸다. 최근에 읽은 책의 주인공이기도 했지만, 세상을 향한 절망감과 불신은 어느 정도였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쌩뚱맞게 바다에 나가 왜 코페르니쿠스를 떠올렸냐고 물을 수 있지만, 내 안의 절망감으로 인해 코페르니쿠스의 고독을 이해 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허구로 채워졌다 해도 저자가 만들어 내는 주인공의 내면으로 온전히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 자신이 닥터 코페르니쿠스가 되어 세상을 바라볼 것이고, 닥터 코페르니쿠스가 살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안 살아갈거라 생각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 속으로의 공간이동에는 성공 했지만, 코페르니쿠스의 내면 속으로 온전히 들어갔다고는 생각되어 지지 않았다. 소설이기에 주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비춰줄 거라는 나의 생각은 철저히 외면 당했다. 저자 스스로가 이 글의 성격상 코페르니쿠스의 온전한 전기로 보는 것은 전혀 맞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존 반빌이 그려내는 코페르니쿠스는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을 인물임에는 틀림 없었다. 

 

  이 책은 코페르니쿠스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그의 삶이 차근차근 전개 되는 과정에서 그가 지동설을 주창하게 되는 시기로 들어가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고 역동적일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일대기 에서는 그를 특별하게 만들지도 않았고 위대한 인물이라는 느낌도 받을 수 없었다. 그가 청년 시절을 보냈던 로마와 피렌체의 음울함은 그의 인생 전반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예감할 수 있었다. 평생을 가톨릭 수사라는 직분을 감당하면서 천문학자, 의사이기도 했던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생각이 이 세상에서 관철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지동설을 주창함으로 인해 외부의 핍박이 도드라지게 나타날거라 예상했지만(외부의 핍박이 없을 수는 없다), 이 책은 코페르니쿠스의 고독을 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피폐한 내면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독자가 그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실패작 이라 여겼던 그의 방어 때문이었다.

 

  그의 평생의 결과물인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를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유일한 제자 레티쿠스 때문이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고 있었던 때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뒤집기에는 그도 두려웠을 것이다. 레티쿠스의 설득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동설을 온 세상에 알리기에는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가 숨을 거두던 날, 출간된 책을 보면서 파기를 요구했던 것 처럼 그는 평생을 지독한 고독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의 주창을 가설이라고 얕보던 사람들과 세상과 맞서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괴로움이 책의 출간을 미뤘는지도 모른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한발짝 떨어져서 자신을 들여다 볼 수 냉철함이 부족 하듯이 세상이 자신의 주창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바꿔갈지 그도 알 수 없었기에 내면의 혼란은 당연했다.

 

  전기소설로 이 책의 장르를 나누기 전에 코페르니쿠스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의 본질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한다. 존 반빌의 섬세하게 펼쳐지는 언어의 유희를 따라가기에는 녹록치 않기에 흐름을 읽기 보다는 순간순간을 저자가 그려내는 고독에 맡겨버리는 것이 더 편하다. 그의 글을 다 읽고 났을 때 비로소 한 인간을 그려내는 방법이 독창적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만들어 내는 혼란의 늪 속에서 이끌림을 받다 보면 그가 만들어내는 세계가 추악하지만 아름다웠다는 사실 또한 알 수 있다. 

 

내가 만조의 바다에서 코페르니쿠스를 떠올렸던 것은 절망 그 자체를 보듬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코페르니쿠스의 고독을 알아 갔다는 사실이 내 안의 절망을 누른 것은 아니였을까. 그가 낱낱이 드러낸 절망과 두려움에서 용기를 얻었기에 바다는 내게 가만히 귀 기울이라고 말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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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끽연자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8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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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의 이력을 보면 무척 독특하다. 숫자로 사람의 면모를 판단할 수 없겠지만, 월등히 높은 아이큐와 영재교육을 받으며 자란 저자를 보는 나의 첫 인상은 별 감흥이 없었다. 천재작가라는 수식어부터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으로 책을 펼쳐 들게 되었는데, 그의 작품을 마주하고 나니 천재작가라는 수식어보다 독특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라는 말에 점수를 더 주고 싶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그야말로 독특한 상상력과 sf적인 요소가 짙은 풍자는 70~80년대에 씌여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일본의 역사극에 익살을 더한 단편들은 백퍼센트 공감할 수 없었다고 해도, 의식 저편에나 존재할 것 같은 소재들을 끄집어 내는 저자의 생각들은 기발했다. 시간이 가속도로 흘러가며, 담배를 피우는 인간을 처벌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마지막이 되고, 평행으로 되어버린 세계에 수없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과연 그의 글을 단순한 즐거움으로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일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독자 각자가 갖는 생각들에 일반화된 시각 자체가 무리이기 때문에 무엇에 초점을 맞춰 나의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저자가 뿜어내는 상상력에는 재미와 흥미로움이 있었지만, 그에 반한 독설과 야유를 고운 시선으로만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재미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저자의 뜻을 간파하며 읽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책이 바로 <최후의 끽연자>이다. 재미로만 읽기에는 어딘가 익숙한 모습들이 보이며,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에는 그의 익살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의 상상력 앞에서는 모든 것이 허물어져 버린다. 어떠한 의도로 글을 썼냐를 생각하기 이전에 그가 설정해 놓은 상황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가령 <노경의 타잔>에서는 더이상 영웅이 아닌 사악하게 변해버린 타잔을 그려냈던 모습에서는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소설이지만 태연하게 악을 행하는 타잔을 보고 있자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마음 깊이 숨기고 싶은 통쾌함이 있었다. 늘 영웅으로 그려지고 해피엔딩으로 기억되는 타잔의 모습을 뒤집어 보는 것. 그 모습이 유쾌하지 못하더라도 독특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그렇게 우리가 끄집어 내고 싶지 않은 부분, 현실이 된다면 거부할 것 같은 모습들을 드러내며 독자 스스로 긁을 수 없는 가려운 부분을 글을 통해 해소시켜 주고 있었다.

 

옮긴이도 말했지만 저자가 사회 비판을 목적으로 썼다기 보다는 글쓰기를 즐기며 썼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글을 읽다가 '아, 이 부분은 날카롭군.' 하며 읽기만 해도 충분하다. 시대를 넘어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그의 글에는 책이라는 매개물로 인한 독자와의 소통에 중점을 더 두고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글을 통해 저자의 상상력 너머를 여행해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저자와 독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만남과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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