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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바다 바다 ㅣ 올 에이지 클래식
샤론 크리치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상처를 숨기고 싶어, 거짓말을 했던 적을 떠올려 본다. 처음엔 가슴이 두근거리고 상대방이 눈치 채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섰지만, 차츰 익숙해 지다 보니 거짓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왜 나를 감추려 거짓말을 했을까. 다른 사람에게 밑보이기 싫어서, 동정의 대상이 되기 싫어서 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내가 약해 보이지 않으려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정 사실에 과장을 보태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발설을 하며, 상대방은 싸그리 무시해 버리기 일쑤였고, 내 마음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 앞에 약해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이미 약해진 나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약함을 진정으로 위로해 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소피도 그런 아이였다. 자신의 과거를 숨기기 위해 자신의 상처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스스로에게 마법을 건다. 나는 현재의 가족 안에서 무척 행복하며, 가족들이 내가 없이 살 수 없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체면을 건 만큼 다른 가족들도 그렇게 생각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소피는 외삼촌과 사촌들의 여행에 기꺼이 동행했다. 동행이라기 보다는 졸라서 하게 된 여행이지만, 소피에게는 이 여행이 무척 중요했다. 여름 방학을 맞아서 큰 외삼촌의 배를 타고 아일랜드에 있는 봄피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여정이였기 때문이다. 외삼촌 세명과 남자 사촌 두명 사이에 소피가 동행하려 하니, 소피의 부모님도, 삼촌과 사촌들도 모두 반대했다. 그러나 소피는 강력하게 자신의 의지를 굳혔고, 항해에 필요한 기초 지식들을 습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방랑자 호를 타고 녹록치 않은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삼촌의 배는 호화롭거나 편리하지 않았다. 출발 전에 많은 수리가 필요했고, 배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치가 않았다.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돛을 달고 가는 배라서 항해 기술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였다. 그렇지만 소피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방랑자 호에 올랐고, 틈틈히 일지를 쓰기 시작한다. 내가 읽게 된 이야기는 대부분 소피의 일지였고, 소피를 통해서 여행 과정은 물론 소피의 내면에 대해서도 알게 될거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이런 안심을 뒤로 한채 소피의 일지에 이어 사촌 코디의 일지가 등장한다. 사촌 코디의 일지는 소피의 일지를 통한 익숙함에서 분위기의 쇄신을 유도했으며 소피의 일지와 일치하지 않음에 의아함을 갖게 되었다. 엎치락 뒤치락 등장하는 소피와 코디의 일지를 통해 누구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도 항해는 계속 되었고, 순탄함과 순찬치 않는 여정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배를 타고 아일랜드로 가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간의 트러블이 있든 불만이 있든 방랑자 호에서 모두 생활을 해야 했다. 싫든 좋든 자기가 맡은 일을 해야 했고, 정해 놓은 규칙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도 항해에 필요한 조건이였다. 그런 식으로 움직이다 보니 처음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각자의 습관대로 생활해 갔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게 익숙해 졌고 항해를 하게 되면서 여러가지의 에피소드를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소피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들이 만나러 가는 봄피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 소피는 가족들에게 외면과 동정을 동시에 받고 있었으니, 항해하는 가운데 소피가 깨트려야 할 것은 삼촌과 사촌들간의 벽이 아니라 자신 안에 세워진 벽이였다. 소피의 이야기를 통해서 혼란스러운 마음를 코디가 비교적 객관적으로 말해줌으로써 소피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고, 나름의 판단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피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들은 자신의 추억과 두려움, 그리고 사실이 덧대어져 마구 얽혀 있기에 그 안에서의 혼란스러움은 잠잠해 지지 않았다.
항해를 마칠 때쯤, 소피는 처음 방랑자 호를 탔을 때의 소피가 아니였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가족들에게 위로를 받았고 스스로도 깨달음을 더해 갔다. 그리고 기정 사실과 자신이 건 체면 상태를 구분해 낼 줄 알게 되었다. 그러한 여정이 없었다면 소피는 자신의 과거와 상처의 아픔을 덜어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또한 처음엔 자신에게 껄끄럽게 대했던 삼촌과 사촌들과 봄피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소피의 모습은 달라지지 못했을 것이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파도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소피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자신을 져 버릴 수가 없었다. 늘 혼자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소피의 곁에는 새로운 가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족들도 소피를 새로운 구성원으로 맞이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는 여행이 있었다. 여행을 통해 부딪히고, 위로하고, 보듬어 주는 사이 소피의 마음이 그리고 가족들의 마음이 열린 것이다. 비단 그 여행은 소피에게만 도움이 된 것이 아니라 모든 가족들에게도 자신을 새로이 바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바다 바다 바다. 바다가 굽이치고 넘실대며 소피를 불렀듯이 그 바다를 두려워 하지 않는 소피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