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이야기 2 - 변화의 힘 마시멜로 이야기 2
호아킴 데 포사다.엘렌 싱어 지음, 공경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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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 며칠 동안 퇴근하고 집에 가면 엉뚱한 짓으로 시간을 떼우는 나를 발견 할 수 있다. 집에 오자 마자 컴퓨터를 켜서 게임을 하고, 그 게임이 지겨우면 핸드폰 게임을 하고, 그러다 밥을 먹고 또 게임과 컴퓨터를 하다 잠이 든다. 늦은 시각에 잠이 드니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날 수도 없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이 답을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피하는 방법으로 평소에 하지 않는 것들에 관심 귀울이는 척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피하면서도 마음이 편했을까? 그 반대였다. 불편한 마음은 더 심했고, 시간이 지날 수록 두려움이 켜켜이 쌓여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란 바로 공부였다. 대학에 가겠노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큰소리 뻥뻥 쳐놓고 4월 중순을 향해 감에도 공부는 시작도 안하고 있었다. 이런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 보다는 도무지 마음을 잡지 못하는 내가 한심해 보인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자신이 답을 알고 있다고는 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생각을 해 봤자 뻔한 결론 밖에 나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였다. 그러나 나의 상태는 그것 보다 더 심각했다. 별거 있겠어 라고 집어 든 <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를 읽고 보니 나의 현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이러한 자계서들은 며칠 있다가 식상해 지기 마련이라고, 늘 똑같은 말만 읊어 댄다고 치부해 버리던 내가 이 책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나의 현실과 맞아 떨어졌다는 사실도 있지만, 무엇보다 근본은 내 마음 속의 오래된 병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목표 설정은 커녕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나. 그런 내 모습이 주인공 찰리의 모습보다 찰리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말들에서 드러났다. 늘 그렇듯 이런 책을 읽고 며칠이면 아무렇지 않게 평상시의 나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이 오기 전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을 새겨 보려 한다.

 

  마시멜로 첫 번째 이야기를 읽어 보진 않았지만, 두 번째 이야기는 전편의 내용이 없더라도 나를 가꿔가기엔 충분했다. 찰리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게 와 닿는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나의 마음 속에 파고드는 무언가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두려움을 깨트리라는 소리였다. 지금 나의 모습에서 안주 하지 말고 네가 하고자 했던 것들을 꺼내 보라는 속삭임이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까,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기 전에 왜 내가 이런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죽이고 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순간을 소비해 버리기 바쁜 내 자신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소비해 버리는 마시멜로는 달콤하지 않았다. 달콤하지도 않은 마시멜로를 나는 꿀꺽꿀꺽 삼키고만 있었던 것이다. 바로 채워지지 않는 내 마음의 공허 때문이었다. 그 공허는 내 인생을 보람차고 활기차게 살아 보자는 희망을 묵살해 버렸기 때문에 생긴 것이였다.  가끔 가다 그러한 희망이 내 비치더라도 인내하기 보다는 포기해 버리고 씁쓸한 마시멜로를 삼켜 버리고 말았다.

 

  찰리가 다시 마시멜로의 법칙을 지켜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러한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나도 찰리처럼 무언가를 지켜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찰리가 마시멜로의 달콤함을 참아갈 때 쯤, 나의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찰리의 결말은 뻔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독자에게 던져지는 것은 무궁했다. 찰리가 숙지했던 것보다 자신에게 맞는 깨달음을 찾아 갈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자유스러웠고, 편하게 내 문제를 짚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찰리가 성공을 위한 과정을 그려 냈다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성공한 다음 다시 마시멜로의 인내를 참지 못하는 찰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 준것은 멘토 역활을 해 준 조언자 조나단, 제니퍼 그리고 자신의 문제를 깨닫게 해주었던 직장 상사의 가족이었다. 거기에 찰리의 행동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좋은 친구들이 있었기에 마시멜로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구나 자신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바꿔 간다고 다짐을 했을 때, 혼자서 해결해 보려는 마음을 먹고 쉽게 포기해 버렸던 자신을 만나 봤을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다면 이번에는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많기에 이번에는 우선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적으며 주변인들과 이야기 해 보고 싶다. 그리고 내 책상 앞에 그러한 다짐을 붙여 놓고 저 글을 썼을 때의 마음을 늘 상기시키며, 그 계획이 내 안에 들어왔을 때 진지한 계획을 세워 보려고 한다. 찰리처럼 5년 계획을 세워보겠다는 자신감은 없지만, 우선 내 자신과 대화를 해본다면 현재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깨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서다. 분명 지금 나의 마음은 이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난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난관에 부딪힐 때, 내가 꾸려놓은 미래의 모습을 기억해 보려고 한다. 쉽진 않겠지만 누군가에게 이 책을 읽어 보며 변화를 해보라는 충고보다 내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바꾸기 보다 내 자신을 먼저 바꾸는게 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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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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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성장소설에 푹 빠져 있는게 사실이다. 읽어도 읽어도 너무 재미나서 그 매력에 쉽게 빠져 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유독 국내 성장소설에는 인색한게 사실이다. 국내 성장소설은 아는 작품도 없었고, 있더라도 조금은 꺼려졌다. 왜 꺼려졌을까를 생각해 보니 국외 성장소설은 다른 문화권이라는 생소함에 호기심이 있었던 반면에 국내 성장소설은 왠지 나의 유년 시절이 그대로 드러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던 것 같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나의 유년 시절 보다 나와는 상관 없다고 생각해 버리는 국외 성장 소설이 그래서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얼토당토 않은 이유를 들어가며 그동안 국내 성장소설을 피해 왔지만(국내 문학도 그런 연유가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다.) 한참 성장소설에 푹 빠져 있어 무조건 읽어 댔기에 <완득이>를 보고 마음을 좀 더 편히 열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완득이를 읽고 나니 국외건 국내건 문화와 배경이 좀 다를 뿐이지, 청소년들의 마음은 비슷비슷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무언가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이 말이다.

 

  국내 성장 소설을 읽으면 나의 모습이 드러날 것 같아 불안 했다는 고백을 했었다. 그러나 완득이를 읽고 보니, 역시 소설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을 소설로 보지 못하고 내가 찜찜했던 부분이 드러날까 노심초사 했던 모습이 조금은 부끄러웠다. 그만큼 나의 성장 과정에서도 많은 혼란과 고민들이 있었다는 뜻이겠지만, 그 혼란과 고민이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 각자가 다르듯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들도 각자 다르 다는 것. 하지만 그 마음의 혼란을 공감할 수 있도록 끄집어 내어 보는 것. 그것이 성장소설이 말하는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완득이도 그런면에서 뒤쳐지지 않는다. 담임 선생님을 죽도록 미워하고, 난쟁이인 아버지를 놀리면 주먹을 휘둘러 대며, 친구 없이 늘 혼자인 완득이는 집과 학교를 오가며 삶의 빛깔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였다. 고등학교 1학년이면 진로문제, 이성문제 등으로 한참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을 나이지만, 완득이에겐 그 모든 것이 부질 없었다. 남들과 다른 성장 과정이 있었다는 열등감이 어느 정도 내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완득이는 엄마가 없다. 가족이라곤 한달에 두어번 보게 되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삼촌이 전부다. 아버지는 카바레에서 춤을 추는 사람이였고 그런 아버지에게 춤을 배워 춤 상대를 해주는 사람이 민구 삼촌이였다. 난쟁이와 말더듬이라는 타이틀로 카바레를 전전했지만, 늘 시원찮은 벌이였고 무대에서도 물러나기 일쑤였다. 그런 완득이가 어렸을 때 부터 무엇을 보고 자랐을 지는 훤하다. 카바레에서 조폭들과 단정치 못한 누나들만 보아왔으니 제대로 된 마음이 박혀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늘 가난했고 혼자였다. 그런 속도 모르고 아버지는 자신처럼 살지 말라고만 하니 늘 트러블이 있기 마련이였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라도 늘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아니였기에 완득이는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마련해 준 새로운 거처로 이사를 왔는데, 하필이면 담임 선생님의 앞집이다. 담탱이 똥주는 늘 재수없게 완득이를 못 살게 군다. 욕설은 기본이고,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지 말라는 둥, 이상한 체벌을 내리고, 완득이를 기초 수급 대상자로 지정해 놓고 완득이에게 나오는 밥을 뺏아먹기 일쑤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완득이는 담탱이의 주변을 벗어날 수 없었고 왠지 자신이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밥을 뺏아 먹는 담탱이, 담탱이를 없애 달라고 찾아간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 거기다 반에서 1등인 윤하까지 죄다 자신에게 들러 붙어 무언가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러던 중 우연히 킥복싱 체육관에 다니게 되고, 지금껏 킥복싱처럼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나본 적이 없다며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된다. 자신에게 붙어 다녀던 가난, 장애인 아버지, 엄마의 빈자리, 주먹을 휘둘려서 감추려고 했던 열등감. 이런 것들을 많이 털어 내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마음의 중심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러던 어느날 완득이네 통신원이 되어 버린 담탱이는 엄마의 소식을 물어다 준다. 엄마는 베트남 사람인데 자신을 낳고 떠났다고 한다. 결국 완득이는 엄마와 만나게 되지만 서먹할 뿐이였다. 그러면서 엄마와 만나게 해준 담탱이의 모습에서 조금씩 다른 면을 발견해 가기도 한다. 늘 말은 거칠게 하고 못살게 굴지만 완득이를 신경 써주는 모습에 미운 정이 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완득이의 마음은 늘 편할 날이 없었다. 불쑥 이성으로 다가온 정윤하, 자신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킥복싱, 늘 빈 자리라 생각했던 어머니의 존재, 그리고 완득이 주변을 떠나지 않는 담탱이까지 혼란 속에서도 인간과 얽혀가는 정을 느껴가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완득이가 펼쳐놓은 세계에 결말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킥복싱은 어떻게 될 것이며, 정윤하와의 관계, 어머니와의 사이도 궁금했다. 그러나 완득이의 성장을 그리고 있듯이 이 책은 계속 성장 중이다. 그랬기에 결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과 과정이 중요한 책이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울고 웃을 수 있는 공감이 서려 있었다. 그러한 이야기 속에는 욕설이 난무하고 거친 면들이 눈살을 찌뿌리게 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을 싹 무시할 수는 없었을 거라는 마음으로 이해하려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아니겠는가. 완득이의 모습이 현재의 청소년들 모습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성장했던 시절과 비교해 보니 여전히 그 공통점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ㄷ. 관심. 아이들이 관심에 대해서 귀찮아 할 수도 있지만, 늘 관심 속에서 자라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득이도 주변의 관심이 있었기에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 간게 아니였겠는가. 완득이의 그러한 과정을 보면서 씁쓸함 보다 유쾌한 희망이 더 돋보여서 마음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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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용재 오닐의 공감
리처드 용재 오닐 지음, 조정현 엮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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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물에 대한 책은 조심스러워 진다. 읽기도 조심스럽고, 그 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진다. 소설이나 실용서라면 거리낌 없이 책 내용이나 저자에 대해서 논하겠지만,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인물에 대한 책은 조심스러워 지는게 사실이다. 이러한 책은 주관적인 시각이 주류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는 책에서 풍겨지는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더라도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인물 소설에도 그 인물에 대해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생각에는 주관적인 시각 때문이기 마련인데, 자신이 쓴 자신의 이야기는 그런 느낌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편견을 두고 읽었는지는 몰라도 실제로 읽어 본 에세이들은 중심이 느껴지지 않은 책들이 많았다. 개인적인 것들을 쏟아 내려다 보니 그랬겠거니 이해하더라도 무언가가 늘 아쉬워서 인물에 대한 책은 그다지 즐겨 보지 않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을 마주했을 때도 그러한 편견들이 쏟아져 나와 책장을 여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껏 내가 가지고있던 편견이 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으로 새롭게 다가온 책이 되어 갔다.

 

  리처드 용재 오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인간극장을 통해 나왔다고 하지만, 티비에서도 보지 못했기에 그의 연주를 들어보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것은 뉴스에서 그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다는 소식이었는데, 그제서야 용재 오닐이 누구일까? 라는 호기심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 한컷의 뉴스로 그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이야기는 내가 지금껏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털어 버리기에 충분했고, 오히려 내가 용재 오닐 앞에서 숙연해 지는 기분이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나는 그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여전히 알지 못했지만, 겸손한 자세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추천한 영화감독 박찬욱은 자기를 과시 하지 않는 글은 처음 읽어 본다고 했다. 단순히 용재 오닐을 추겨 세워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박찬욱 감독의 말을 백번 공감하게 되었다. 온통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음악얘기 뿐인 그의 글은 고백의 글이 아니라 내면을 표현할 줄 아는, 자기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형상화 할 줄 아는 글이였다. 음악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 이러한 글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명랑하게, 솔직하게 표현해 냈다. 그의 묘사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의 글 속에서 풍경을 그려낼 수 있었고, 그가 느꼈을 감정이 그대로 배어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가족의 끈끈함 속에서 자라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어린시절은 결코 불우해 보이지 않았고, 마음이 저릿 하면서도 기쁨이 묻어 났다. 그에겐 음악만큼이나 가족이 소중한 존재였다.

 

   그의 글은 자신은 낮추고 음악, 작곡가, 악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 놓으면서 독자들이 자기가 가진 세계를 구석구석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자신의 고독을 숨기지 않았고, 자신의 성장과정,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어느 정도 위치에 선 자신에 대한 겸손을 잃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가 진솔하게 다가왔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단순히 악보를 보며 악기를 긁어대는 것이 아닌 진정 음악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잃지 않은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담이 되기에 충분했다.

 

  외롭고 넉넉하지 못한 어린 시절에 그에게 음악이 있었기에 지금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음악이 없었다면 보통 사람의 삶을 살았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음악을 할 뿐이지 대단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를 비롯해서 가족들의 사랑과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랬기에 그에게 연주는 언제나 도전이 되는 일이고,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기에 연습에 연습을 더할 뿐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서서도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그를 보며 음악에 대한 생각을 다시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그의 아름다운 글 앞에서 그가 느꼈던 많은 것들을 공감할 수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 그의 그러한 배려 덕분에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용재 오닐을 알아간 것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방대함과 아름다움을 알아갔다. 그것이 용재 오닐이 말하고자 했던 음악, 자신이 사랑했던 음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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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열심히 읽어대는 장르가 성장소설이다.

왜 이렇게 성장소설에 빠져 있을까 생각해 보니

성장소설을 통해서 나의 유년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성장소설들에 비춰지는 마음속의 고민들, 그 고민들을 통하여서 과거의 나를 되짚어 볼 수도 있고,

그때는 이랬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후회를 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우선은 무척 즐겁다. 재미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유년시절을 추억하고 싶다면 이 책들과 함께 하길...

울고 웃고, 마음 아프고, 슬프고, 저릿하고 그 감정들이 다 몰려 올 것이다.

 


1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모래 폭풍이 지날 때
캐런 헤스 지음, 부희령 옮김 / 생각과느낌 / 2005년 9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2008년 04월 14일에 저장
품절
산문으로 된 책이지만 읽는 내내 너무 너무 마음이 아팠다. 배경은 공황에 빠진 미국이였고 모레가 온 집안과 세상을 덮어 버리는 곳이였다. 거기서 어린 소녀는 힘겹게 세상을 향해 발을 뻗고 있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울어 버린 책이였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곤살로 모우레 지음, 김정하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5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08년 04월 18일에 저장
절판

곤살레 모우레의 색다른 책이다. 자연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여름을 담고 있으며 자연과 함께 동화되는 이야기는 유년 시절로 빠지기에 충분했다.
여름이 준 선물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5년 5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08년 04월 18일에 저장

죽음이 궁금해서 곧 죽게 될 할아버지를 찾아 세 아이들은 매일 감시를 한다. 결국은 그 할아버지와 친해져셔 이런 저런 추억을 쌓게 되는 에피소드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훌쩍 자라버린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다.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8년 04월 18일에 저장
품절

딸과 엄마와의 이야기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렇게 지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소함과 정이 묻어나는 소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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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답을 알고 있다 - 물이 전하는 신비한 메시지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더난출판사) 1
에모토 마사루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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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형부가 이 책을 읽으신 걸 기억한다. 그래서 제목은 익숙한 책이였는데 늘 다른 책들에 쫓겨 읽어 볼 틈은 없었다.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왔다기에 읽게 되었는데, 손에 쥐자 마자 무언가에 빠진 듯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물의 신비에, 또한 저자가 찍은 물의 결정체의 사진에 시선을 뺏겨 버린 것이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지금도 놀라울 뿐만 아니라 물 안에 들어있는 신비함에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이한 힘에 끌어 당겨지는 기분이다. 내 몸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절대 떨어져 살 수 없는 물을 그 동안에 하나의 물질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하나의 생명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저자는 오랫동안 물을 연구하던 중, 물의 사진을 찍어 보자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엔 단순하게 물의 결정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러다 사진을 찍던 연구원이 "물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결정 사진을 찍어보자"라는 의견을 내어서 새로운 사진을 찍게 되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음악을 들려준 후 사진을 찍어보니 결정이 달라져 있었다. 아름다운 음악은 아름다운 결정이 맺혀 있었고, 락이나 헤비메틀 같은 시끄러운 음악은 결정이 흐리멍텅한 상태로 무언가가 불안해 보였다. 저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물병에 글씨를 쓴 후 사진을 찍어 보았다고 한다. 고맙습니다, 사랑, 감사라는 말을 붙여놓은 물은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의 물처럼 결정 또한 아름다웠다. 그러나 멍청해, 짜증나라는 격한 감정의 말들을 붙여 놓은 물은 결정을 만들지 못하고 기이한 형태만 보여주었다.

 

  이러한 사진들을 직접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물에 생명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음악과 말에 반응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거기다 똑같은 말을 여러 나라의 언어로 써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으니, 어원이 달라도 감정에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사실을 믿어야 하는지 끊임없는 의혹이 들었다. 그러나 저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러한 결정들이 나오는 것에 수긍이 갔다. 단순히 물을 하나의 물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본다는 의식 전환 하에 물을 다른 개념으로 본 것이다.

 

   만물이 진동한다는 사실을 것은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을 역으로 생각해 본다면 만물이 소리를 내고 있다라고 했다. 그 소리는 우리가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물질로 치부해 버렸을 것이다. <반야심경>의 색즉시공공즉시색의 말에 빗대어 보더라도 물질은 눈에 보이고 진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그 반대라고 했으니 그 말이 물의 결정 사진 앞에 여실히 드러나며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은 진동함으로써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 진동은 어느 곳에서나 연결 되어 있기에 세계의 언어 앞에서 결정이 비슷해 지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유의 언어의 주파수와 글씨 앞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대로 전사한다는 저자의 말이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그래서 단순한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움직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저자가 한 실험중에서 나쁜 말을 써 놓은 물, 좋은 말을 써 놓은 물, 그리고 관심을 갖지 않는 물에 대한 결과가 무척 흥미로웠다. 나쁜 말을 써 놓은 물보다 관심을 갖지 않는 물이 결정을 만들지 못하고 먼저 썩어 버리는 것을 보며 생명에게 관심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물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면, 물의 반응을 쉽게 간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물의 신비에 빠져 있다보면 무언가 내 안에 와닿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인간에게 대하는 법일 것이다. 물의 진동으로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데, 하물며 인간이 인간에게 대하는 감정에는 얼마나 많은 반응이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껏 나는 감사하는 마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보다, 못된 말, 나쁜 말을 더 많이 썼기에 상대방이 받았을 상처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름다운 결정을 만들 수 있었을 내면의 세계에 나로 인해 결정을 맺히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물의 결정을 보며 더 많은 사람들이 상처 받지 않도록, 흐리멍텅한 결정을 맺지 않도록 생명에 대해 소중하게 해야 겠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진동으로 인한 물의 반응은 상당히 놀라웠다. 나 또한 물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물 뿐만이 아닌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에게 말을 걸어 볼 용기가 생겨났다. 저자의 사진은 단순한 연구 결과만이 아닌, 우리의 내면을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그의 글은 일관성있게 매끄럽게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충분히 전달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자체는 물이다. 물의 표정으로 진동의 반응을 보았다면, 이제 우리의 내면 안의 표정을 볼 때다. 그 표정이 부디 아름답게 맺혀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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