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읽었던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을 기억합니다. 너무 방대하고 지겹고 재미 없어서 몸부림을 쳤던 작품이여서 다시는 도스또예프스끼를 읽지 않겠다고 다짐 했었습니다. 그런데 도스또예프스끼의 전집을 보는 순간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에 읽게 되었고, 그로 인해 러시아 문학에 풍덩 빠졌습니다. 18권의 전집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도스또예프스끼로 시작된 러시아 문학에 대한 사랑으로 읽게 된 책들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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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쉬낀
알렉산드르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3월
39,000원 → 35,1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50원(5% 적립)
2008년 04월 10일에 저장
절판
지금은 절판 되었지만(단행본으로 나와 있습니다.) 뿌쉬낀의 전집을 손에 쥐었을 때의 감흥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전집을 읽겠다는 욕심이 앞서서 펼친 책은 너무 두꺼웠지요.^^ 1793페이지나 되는 책이였기에 읽는대만 일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단행본으로 나와 있으니 뿌쉬낀의 소설과 운문소설을 읽어본 다음에 시를 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뿌쉬낀는 시로 유명하지만, 뿌쉬낀이 낯선 분들에게는 소설 접근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뿌쉬낀의 전집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다양한 장르에 능통했는지 알 수 있을테니까요...^^
분신, 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7,800원 → 7,020원(10%할인) / 마일리지 390원(5% 적립)
2008년 04월 10일에 저장
구판절판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첫번째 책입니다. <분신>,<가난한 사람들>이 실려 있습니다. 니꼴라이 고골의 <외투>와 <가난한 사람들>을 읽어 본다면 러시아 문학에 대한 거부감을 없앨 수 있을 뿐 아니라, 낯선 러시아에 대한 궁금증을 덜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러시아 문학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백야 외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항재.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7,800원 → 7,020원(10%할인) / 마일리지 390원(5% 적립)
2008년 04월 10일에 저장
구판절판
도스또예프스끼의 전집 두번째 책입니다. 도스또예프스끼 전집 중 가장 처음 읽은 책이 이 책입니다. 이 책은 단편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끼의 작품은 <죄와 벌>,<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이 유명하기에 단편집은 낯설다 생각하고 읽어봤습니다. 이 책을 읽고 도스또예프스끼를 재조명 할 수 있었고, 그로인해 전집을 다 읽겠다는 야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장편이 겁이난다, 중편도 읽기 부담 스럽다 하시는 분들은 이 책으로 도스또예프스끼와의 만남을 갖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백년보다 긴 하루
칭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7,800원 → 7,020원(10%할인) / 마일리지 390원(5% 적립)
2008년 04월 10일에 저장
구판절판
러시아 문학에 한창 빠져 있을 때, 러시아 문학이라고 분류된 책들은 무조건 샀었습니다. 그 때 이 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대요, 이렇게 보석 같은 책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에만 익숙해져 있던 제게 묘사의 아름다움, 간접경험의 진한 경험을 안겨준 책입니다. 사막과 우주의 이야기가 같이 맞물려 가는 이야기지만, 사막의 이야기가 더 비중이 큽니다. 전형적인 러시아의 이야기라고 볼 수 없지만 제게는 정말 보석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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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한 연구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지음, 전기순 옮김 / 풀빛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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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에 관한 첫인상도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닫게 된다. 처음 이 책을 마주했을 때, 사랑에 대한 진부한 개념을 늘어 놓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의 첫인상을 보며  나름대로의 생각을 구축해 나갔던 것이지만, 이 책 또한 나의  첫 인상에서 많이 비껴 갔던게 사실이다. 민감한 문제를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씌여진 책도 아니였고, 현 시류에 맞춰서 씌여진 책도 아니라는 것을 서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사랑은 과연 저자의 논리에 얼마나 포함 되었을까, 그 생각을 헤어려 보기도 전에  철학적으로 풀어내는 사랑의 정념 속에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사랑에 본질에 관하여> 라는 제목으로 사랑의 이론에 관한 고찰을 할 수 있게끔 도와 주었다. 그나마 1부가 가장 내게 와 닿았던 것은 사랑에 대한 감정만을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이론에 대해 철학적으로 파고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랑의 감정이라함은 지금껏 많은 매체를 통해 수없이 접해왔지만, 정작 그 깊이에 대해 가늠해 보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려운 내용을 감안하고서라도 사랑이 위대하다는 것, 고귀하다는 것, 또한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 스탕달의 연애론이라든가 샤토브리앙, 플라톤의 사랑의 정의를 다른 각도로 풀면서 자기의 생각을 버무려 주었던 부분에서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 해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이론이 내게 얼마나 와 닿는가는 잠시 제쳐 두고서라도.

 

  2부에서는 <남자의 심리와 본능>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남자의 입장에서 씌여졌기에 여자인 내가 읽기에 수긍하는 부분, 수긍하지 못한 부분이 어느 정도 내제하고 있었지만, 과연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런 면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사랑을 경험해 보았다고 해서 사랑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며 돈 후안 같은 섣부른 사랑을 했는지에 대한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감정 위주로 상대방의 면모를 확립시켜 갔지만, 영혼을 울리는 감정과 심리, 본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사랑에 관해서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드물었다. 사랑에 앎이란 끝이 없고, 그 내면을 확실히 안다고 해서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감정 또한 조절해 갈 수 있는게 아니라는 기존의 앎을 더 짙게 수긍하는 것 뿐이였다.

 

  3부는 가장 난해했던 부분이었다. <무엇이 남자의 사랑을 완성 시키는가?>라는 제목으로 펼쳐진 사랑은 저자가 예를 들었던 것에 배경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더 어려웠다. 2부에 이어 3부 또한 사랑이 문화와 역사 속에 어떻게 포함되어 있는지에 중점을 두었기에 문화와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는 더 헤멜 수 밖에 없었다. 돈키호테에 나오는 마르셀라의 항변을 통해 여자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라는 부분은 재미나게 읽고 어느 정도의 수긍을 했지만, 크리올의 서문, 프란체스카가 베아트리체에게 보내는 서문에 관해서는 저자의 세계에 전혀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해 불능 투성이었고, 무엇에 중점을 두었는지 알 수 없었기에 헤메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과연 책의 내용을 이해했는가 자문해보게 된다. 이해의 부분에 대해서는 책을 읽는 과정 속에 이미 답이 들어 있음을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저자의 생각 속으로 다가가고  싶었지만, 나의 한계가 느껴졌기에 아쉬웠던 책이 아니였나 싶다. 이 책이 철학적이다라고 말했듯이 저자의 의도를 한곳으로 모으지 못하고 흐트러진 상태에서 읽기를 끝냈지만 읽기가 녹록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상태다 보니 옮긴이의 설명을 통해 겨우 책의 흐름을 읽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랑의 본질을 떠나 내가 저자의 생각속에 파묻혀 그의 세계를 누비지 못한 것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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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에 최고의 축복 3장16절
맥스 루케이도 지음 / 두란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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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성경 일독을 못했다. 그로인한 부끄러움을 떨쳐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정말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성경을 조금씩 읽어 나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내 안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 은혜로운 시간을 갖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나 아직도 꾸준하게 성경을 읽지 못하다 보니 성경 말씀을 외우지 못하는 것은 물론 어디에서 어떤 말씀이 나왔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인 요한복음 <3:16>의 말씀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이 말씀 하나로 책 한권을 쓰셨다. 그러나  그분만큼 은혜로운 시간을 갖었는가 의문을 갖기 이전에 <3:16> 말씀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쩔쩔매고 있는 나를 발견할 뿐이였다.

 

  요한복음 <3:16>은 어떤 말씀일까 궁금한 마음에 책장을 열었다. 그러나 막상 <3:16> 말씀을 마주하고 보니 당황스러웠다. 많이 들었던 말씀이였고 귀에 익은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눈으로 이 말씀을 좇을 때는 이 안에 얼마나 깊은 뜻이 들어있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유독 눈길이 가는 구절이 있다면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 부분일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하나뿐인 아들이였고, 또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메달리셨으니 독생자 예수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3:16>의 말씀 한구절 한구절을 음미해가며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깊은 뜻을 찾아 가고 있었다.

 

  이 말씀 중에 특히나 저자가 강조해던 부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였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창조하셨지만 아쉬울 것이 없는 분이셨다.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뿐인 독생자를 죄악으로 뒤덮인 인간들을 위해서 보낼 수 있겠는가. 부활을 떠나 인간들을 대신해 죽어야만 한다면 보낼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이셨기에 , 이 세상을 사랑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존재 하신다고 하셨다. <산들이 나타나기도 전에, 주께서 산과 땅과 세상을 만드시기도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시 90:2).> 이 말씀만 보더라도 하나님은 영원히 존재하실 분이셨고, 나로 인해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고통을 당하셔야 할 분이 아니였다.

 

  어쩌면 이 말씀은 기독교인들에게 와 닿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아무런 감동 없이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했다. 세상 속에는 수 많은 사랑이 있지만 하나님을 닮은 사랑일 뿐 하나님의 복제품의 사랑은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무슨 뜻일까.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존재하기 이전 부터 존재했었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든지 간에 "너는 그래도 여전히 내 계획의 한 부분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영원한 사랑을 주신다는 말씀이셨다. 그 사랑을 거부하지 말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우리의 눈이 어두워서 거부하고 있을 뿐이니 제발 그 사랑을 거부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아 간다면 하나님 앞에 나의 존재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늘 하찮다 느껴졌던 내가 이런 계획안에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요한복음 <3:16>말씀이 눈으로만 좇는 말씀이 아니라 내 평생의 말씀으로 삼고 나아가야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지 가르쳐 주시고 싶어 하신다. 그 사실이 궁금하다면 예수님을 당신의 북극성으로 판단 기준으로 삼으라고 말씀 하신다. 내 자신은 나를 구할 수 없고, 타인 또한 나를 구할 수 없으니 오로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이유, 나를 사랑하시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3:16>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그 동안 만나왔던 신앙서적들처럼 무조건 적인 은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것 부터, 하나님의 사랑이 늘 내 곁에 머문다는 것, 또한 지옥과 천국에 대한 이야기도 피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이미 성경에 나와 있기에 옮긴 것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어떠한 말씀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안에 풀어 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왕이면 하나님께서 예비 하신 천국을 소망하며 이 세상을 살아 가고 싶다. 천국에 잔치상에 이름표가 있다면 분명 내 이름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잔치상의 명단에 사랑하는 사람을 넣고 싶지 아니한가. 또한 이 감격스런 하나님의 사랑을 나 혼자만 받아야 겠는가. 요한복음 <3:16>의 말씀에는 이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다. 그 말씀 가운데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한번쯤 들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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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준 선물 마음이 자라는 나무 5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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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길에 보니 화사하게 피었던 벚꽃이 어젯밤 비에 우수수 떨어져 내린 것을 보았다. 떨어진 꽃잎을 보고 있자니 이제 완연한 봄이 오나보다 하며 마음이 새초롬 해졌다. 떨어진 꽃잎은 아쉽지만 푸른 잎이 돋아나는 벚나무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듯 했다. 여름을 향해 한발짝 더 내딛는 힘찬 발걸음 속에 더 푸르른 잎을 만들어 내고 열매를 맺겠다는 의지가 암묵적으로 느껴지는 광경이였다. 그렇기에 꽃잎이 떨어 졌다고 해서 서운해 하는 마음은 접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여름을 좋아하진 않지만 여름을 향해 가는 푸르른 나무들을 보며 한가지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벚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다가올 여름을 유추해 보았지만, <여름이 준 선물> 이라는 책 얘기를 꺼내기 전에 여름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어서 다소 장황하게 얘기를 꺼내봤다. 내 마음 속에 퍼지는 감동과 따뜻함은 계절에 상관이 없이 간직되겠지만, 뜨거운 열기와 끈적함이 배어나는 여름을 상상하지 않고는 옅어져 버릴 것 같아 조바심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강렬한 태양 만큼이나 내 마음 속에 기습적으로 들어와버린 세 아이와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여름이 배경이 되었을 때 더 깊이 각인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류, 모리는 같은 반 친구인 하라의 할머니의 장례식을 계기로 죽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과 두려움에 하나의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다니는 학원 근처의 혼자 사는 할아버지를 감시하는 일이었다. 삶에 의욕이라곤 전혀 없이 죽음만을 기다리는 할아버지를 감시하며 죽는 모습을 지켜 보자는 황당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는 삶에 의욕이 없긴 하지만 돌아가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할아버지의 일과를 지켜보다 보니 할아버지가 걱정이 돼 음식을 갔다 놓기도 하고, 마당에 쌓인 엄청난 쓰레기들을 줍다가 할아버지에게 쫓겨 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일을 계기로 할아버지는 조금씩 집안을 정리해 가기 시작한다. 오히려 아이들이 매일매일 감시하다 보니 할아버지가 그들의 존재를 알아채고 주객이 전도되어 할아버지의 집을 서슴없이 드나들며 자질구레한 집안 일을 돕게 된다. 생기라곤 하나도 없었던 그 집에 세아이들의 북적거림이 활기를 더 해주고 있었다.

 

  세 아이는 처음에 세웠던 계획은 잊은 채 자신들의 아지트인냥 할아버지 집에서 거의 매일매일 살았다. 처음엔 할아버지가 주는 간식을 먹으며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어 주었지만, 그곳에서 공부도 하며 집안을 가꾸어 가기도 한다. 삭막했던 할아버지 집은 그들의 손길로 깔끔해져 갔고, 널찍한 마당에 코스모스 씨까지 뿌려 놓아 화사함까지 기대하게 되었다. 그들이 매일 할아버지 집에 드나드는 것을 또래의 친구들이 보고 놀리기도 하고 비야냥 거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것이 사명인냥 열심을 다해 할아버지 집을 드나들며 돕기를 서슴치 않았다. 아이들이 이런저런 일을 시켜도 큰 불평 없이 하는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 또한 마음을 열어 그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기도 하고 소중한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 가기도 한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강변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꽃놀이를 펼쳐준다. 저물어 가는 여름의 끝 자락에 세 아이들과 할아버지에겐 마음 속에 아롯이 새겨질 새로운 추억거리가 만들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축구부 합숙훈련을 떠난다. 합숙 훈련을 마치고 할아버지 댁으로 달려 간 그들은 숨을 거둔 할아버지를 보게 된다. 자신들이 보고 싶었던 죽음과 죽은 사람의 모습도 보았지만 더 소중한 것을 잃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한 층 더 성숙 된 자신들을 만나게 되는 큰 경험을 한 셈이였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저 세상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죽음의 세계를 편안하게 받아 들이게 된다. 오히려 할아버지를 통해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내게 닥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에 떨기 보다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세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민을 가고 중학교에 가게 되면서 흩어져 버리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평생토록 간직 될 것이라는 생각에 영원한 헤어짐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삶과 죽음 앞에 처음부터 초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나와 다른 남과의 만남이 깊이 각인 될 수 있다는 것은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주기도 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읽어 버린 이 이야기는 하룻밤의 꿈 같았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내가 책을 읽은 것인지, 꿈을 꾼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 속에 따뜻함과 감동으로 남아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후텁지근하고 더운 날씨에 짜증만 나던 여름이 이런 연유로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단지 그들의 이야기가 여름이 배경이 되었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뜨거웠던 여름이 가을을 맞이 하게 되면서 선선함을 전해 주듯이 내 마음 속에도 그러한 강렬함과 잔잔함이 공존했기 때문이리라. 세아이들과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인해 내가 힘겨워하는 여름을 잘 견딜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겨났다. 바로 여름이 내게도 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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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시커 1 - 별을 쫓는 아이
팀 보울러 지음, 김은경 옮김 / 놀(다산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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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 흠뻑 빠진다는 것은 저자가 풀어내는 감정의 기복에 휘둘리는게 아닌가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자가 슬픔을 만들어 내면 슬프고, 기쁨을 만들어 내면 기뻐하는 것처럼 독자의 위치에서 구경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감정의 바다 속에 빠지는 것. 그것은 책과 내가 하나가 되는 몰입을 만났을 때 이루어지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런 몰입이 기꺼이 즐거운 것은 과정의 힘겨움이 있더라도 감동을 만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의 어두웠던 분위기 때문에 과정은 조금 힘이 들었지만 감동을 만났기에 오롯이 마음 속에 새겨졌던 스타시커. 루크가 보았던 별은 어떠한 것일까 궁금증을 안은 채 나 또한 주인공을 따라 그 별을 쫓고 있었다.

 

  14살 루크는 위기에 빠져 있었다. 동네의 불량한 친구들에게 리틀 부인의 물건을 훔쳐 오라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보복이 두려워 거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앎에도 발을 빼지 못하던 루크는 엄마와 주변 친구들에게 신뢰를 잃어가고 세상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2년 전, 사랑하는 아빠를 잃은 후로 루크에게는 모든 것에 흥미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기대고 싶었지만 엄마가 만난 조각가 로저씨를 인정하기 싫어 루크의 마음은 더 비틀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빠가 돌아가시 전에는 루크에게는 피아노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잇었다. 피아니스트였던 아빠처럼 피아노에 대한 남다른 감각이 있어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피아노를 잘 쳤었다. 그러나 아빠가 돌아가신 후 피아노에 대한 흥미를 잃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스킨 패거들의 요구는 동네에서 가장 독특한 리틀부인의 집에 들어가서 부인이 소중해하는 상자를 들고 오라는 것이였다. 어쩔 수 없이 리틀부인의 집에 들어간 루크는 소녀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그 소녀의 울음소리는 시도 때도 없이 루크에게만 들렸고, 그 소리 뿐만이 아닌 남들이 듣지 못하는 태고의 움직임이 루크에게 들린다. 하지만 소녀가 누구인지, 스킨 패거들의 요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리틀부인의 부탁까지 들은 상황에서 루크는 최대의 혼란을 맞이하고 있었다. 거기다 피아노를 가르쳐 주는 하딩 선생님의 연주회 독주까지 맡았고 엄마의 연애까지 신경쓰였으므로 루크에게는 세상의 짐이 온통 자기에게 쏠려진 기분이다.

 

  그러던 중 리틀 부인의 부탁으로 울음소리의 주인공인 나탈리에게 피아노를 쳐주면서 나탈리와 리틀부인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피해왔던 스킨패거들에게 보복을 당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로저씨의 도움을 받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그제서야 마음을 열어가는 루크는 서서히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다. 아빠의 빈자리를 인정하는 것, 자신의 운명인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 엄마와의 화해, 리틀 부인의 마음을 열어 주는 것까지 조금씩 성장해 가는 루크 자신과의 부딪힘을 이겨내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루크의 마음 속을 어지럽게 떠다니다 보니 소설의 끝 부분에서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한동한 멍했었다. 책에서 나왔던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루크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 했지만 먹먹함만 밀려 올 뿐이었다. 음악과 영혼이 어우러지는 감동의 도가니 속에서 나의 마음을 잠시 놓아 버렸기 때문이리라. 루크는 자신이 들었던 모든 소리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아빠가 물려준 음악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라는 것을 알아갔다. 그리고 그 음악을 통해서 아빠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아빠가 들려 주었던 음악을 통해 수 많은 영혼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었다. 또한 음악을 통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자신 뿐만 아니라 자기 세계에 갇혀 있던 리틀 부인의 마음을 연 일을 통해 루크는 음악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사랑의 힘에 대해서도 큰 경험을 한 셈이다.

 

  자신의 마음을 늘 비껴가려 했던 루크. 자신의 귀에 들리는 소리 뿐만 아니라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지 않았기에 또한 소중한 사람들의 사람이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을 알아가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제는 루크가 보았던 별을 쫓기만 하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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