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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만나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시, 문지혁 옮김, 노경실 글 / 가치창조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12월에 고흐전을 다녀 왔었다. 몇몇 전시회를 통해서 고흐 그림을 본 적은 있지만 고흐 그림에 대한 갈급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무척 기대하고 있던 전시회였다. 그의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림 앞에서 떨어질 줄 모르며 눈믈을 흘릴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을 안고 간 전시회였다. 그러나 왠걸. 내게 익숙한 그림들이라서 제목 맞추기 게임만 하고 있을 뿐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휙휙 지나치고 있었다. 실물의 감동은 잊은 채 '물감 정말 두텁다' 하고 스쳐지날 때 조차 내가 고대하던 전시회라는 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 다른 전시회들보다 더 짧은 시간을 관람하고 나서 기념품에 더 정신이 팔려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고흐의 그림을 보기는 본 것일까? 이제서야 어렴풋이 드는 생각은 실물도 중요하지만 마음 속에 담고 있는 기쁨이 더 중요한게 아닐까 하고 되뇌어 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고흐의 책들을 대하는 나의 반응은 냉담하다. <반 고흐, 내 영혼의 편지>를 읽고난 후에 고흐의 내면을 샅샅이 들여다 본 느낌이라 다른 책들은 울궈먹기 식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러면서도 고흐책을 모으는 모습은 아이러니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고흐를 어떻게 펼쳐 놓았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랬기에 이 책도 냉랭한 반응을 띄며 읽은 책 중의 하나다. 그리고 책을 다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고 판단해 버렸다. 고흐의 그림, 고흐의 편지, 저자의 시가 어우러져 있는 책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고 짜집기를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거기다 저자의 시는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인지 정서의 다름인지 나의 감흥을 이끌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은 내가 만들어 놓은 편견과 방어벽이 너무 높다는 것을 느끼고 책을 덮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도 느껴지는 씁쓸함과 찝찝한 아쉬움은 계속 남아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리뷰를 남기는 것도 부담감일 수 밖에 없었다. 강요적인 리뷰는 아니였으나 11년째 이어오는 습관이었으므로 이 책만 쏙 빼놓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은지는 한달이 넘어가고 있었고 책 내용은 희미해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책 리뷰를 써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책상머리 앞에 앉은 나는 난감해지고 있었다. 무엇으로 리뷰를 채울 것인가, 이렇게까지 리뷰를 써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에 이르기까지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편안하게 고흐 이야기를 꺼내보자 하고 전시회를 떠올렸던 것인데, 전시회 때 나의 마음을 떠올려보니 조금씩 <고흐를 만나다>의 의중을 이해해 가는 것 같았다. 내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보지 못했던 이면들이 그제서야 보이는 것 같았다.
분명 고흐의 그림을 실물로 보면서도 생각했던 감동이 일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익숙해 있었기에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던 것 같다. 언제든지 꺼내 보려 한다면 고흐를 만날 수 있다는 편안함. <고흐를 만나다>에서 짜집기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는데 내가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마음들을 한군데 모아 놓았다고 생각하니 그제서야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 책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고흐를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고흐의 작품과 고흐 삶에 대한 잔상들로 채워진 것인데, 나는 고흐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그랬으니 내가 만들어 놓은 고흐의 이미지가 드러날 리가 없었다.
온전히 이 책이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은 아니였지만, 뒤늦게나마 책의 의중을 눈치채며 보여지는 이면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을 한 개채로 보려 했으니 역효과가 날만 했다. 각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니 그제서야 하나의 조화로 보이는 현상.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험이기도 했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느껴지는 것이 판이하게 다라다는 것을 또 한번 실감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을 때 고흐와의 만남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고 지켜 볼 수 있는 고흐는 가까이에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