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정신없이 읽었던 책이다. 책이 뿜어내는 흡인력은 고개조차 들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잠시 쉬고 싶어 책을 덮으려고 해도 나의 눈은 다음 이야기를 쫓고 있었다. 어떻게나 나를 정신없이 만드는지 비밀의 터널을 따라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구해줘>와 분위기는 비슷했지만 새로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어둠을 드러내는 책의 소재들은 거대한 도시의 뒷모습을 연상케 해서인지 온전한 희망만을 기대할 순 없었다.

 

  이 책의 무대도 뉴욕이다. 그리고 네명의 인물 위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복잡하면서도 그 끝을 보고 싶어 쉼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다. 딸을 잃고 노숙자가 된 마크, 문제만 몰고 다니는 억만장자 상속녀 앨리슨, 엄마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려 하는 에비, 과거의 상처와 잘못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커터. 이 넷의 이야기는 커너와 마크가 친구라는 것을 떠나면 앨리슨과 에비의 등장은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마크와 커너의 문제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이끌어 갈 수 있을 법한데 또 다른 둘의 등장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까. 궁금증을 가득 품고 실마리를 풀려고 하면 다른 인물의 이야기가 얽혀들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도무지 멈춰지지 않는 책의 진가를 드러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등장인물들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잠시 제쳐두더라도 넷의 공통점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고통에서, 상처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의사라는 직업을 팽개치고 잃어버린 딸의 존재를 알지 못해 노숙자가 된 마크는 미래의 행복을 전혀 내다 보지 못한다. 억만장자 상속녀인 앨리슨은 자신의 차에 치여 죽은 어린아이 때문에 방탕한 생활을 끊지 못하고 있고, 엄마의 죽음에 의사의 불의가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복수심에 불타는 15살 소녀 에비. 그나마 넷 중에서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가슴 속에는 자신을 화상 입힌 자들에게 복수했던 기억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커너. 이 넷의 등장은 어느 정도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자 다른 삶 속에서 전개될 뿐이었다. 그러나 커너에게 이 세사람이 한꺼번에 밀려오게 되면서 이야기의 양상은 확연하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크, 에비, 앨리슨 그리고 마크의 딸인 라일라는 한 비행기를 타게 됨으로써 자신들의 상처를 꺼내며 치유를 받게 된다. 마크는 5년전 잃어버린 라일라를 찾았다는 소식에 딸을 데려오는 길이였고, 에비는 엄마를 죽게 한 의사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비행기 안에는 세간의 주목을 받는 상속녀 앨리슨도 타고 있었다. 그 셋의 만남은 우연처럼 보였지만 커너에 의해서 예정된 만남이었으며 그 만남을 통해 자신들을 옥죄던 고통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친숙한 사람들에게 속시원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처음 만난 서로에게 털어 놓고 있었다. 에비는 마크에게 자신의 복수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고 그 의사와 스스로를 용서 하라는 마크의 말에 혼란을 겪게 된다. 그리고 앨리슨 또한 마크에게 차에 치여 죽은 아이를 자신의 아빠가 몰래 사막에 묻었다는 것과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마크는 라일라가 곁에 있어서 많은 안정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사라지고, 라일라는 이별을 고하고 ,그들 셋만 남게 되었을 때 모든 의문들이 풀어지면서 각자의 마음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라진 비행기와 사라진 라일라 그리고 그들 셋은 어떻게 된 것이었을까. 그들에겐 비행기를 탔던 시간들이 충격이었지만 그 사건을 이후로 커너를 포함한 넷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어둡고 상처 투성이로 얼룩졌던 분위기에서 희망이 깃든 모습으로 책은 마무리 된다. 상처가 깊숙히 자리 잡았던 그들의 삶의 이면에는 범죄, 마약, 빈곤 같은 피하고 싶은 소재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했던게 사실이다. 거기다 죄에 대한 댓가의 여부는 스르르 감춰진 채 끝나기 때문에 행복한 결말이여도 무언가가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와는 다르게 삶이 피해진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듯, 그들을 통해 본연의 삶을 헤쳐가는 모습을 지켜본 것 뿐이다. 그 헤침 속에는 사랑이라는 따뜻한 감정이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정확히 들여다 보는 것 또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다른 양상이므로 이 책을 통해 나를 정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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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사람들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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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은 내가 있어 존재하는 것 같기에 나를 중심으로 바라 보게 된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겠지만 내가 존재하지 않은 세상은 의미가 없다. 적어도 나에게서 만큼은. 말장난 같은 말들만 뱉어 내었지만 내가 속해있지 않던 세계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가 이 책을 통해 그 세계로부터 나를 더 낮춘 느낌이다. 지구 반대편 어디선가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 일들 가운데는 나의 자만을 깨뜨릴만한 것들도 있다는 것을 발견한 셈이였다. 그 발견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고 초라함 뒤에는 자연의 위대한 힘, 그리고 인간과의 조화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바다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 어둠에 빛나는 검은 물결의 유혹이 매혹적이어서 그 속으로 뛰어 들고 싶다는 충동을 눌러 봤을 뿐, 바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육지 사람이어서 그렇다는 심심한 핑계보다는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바다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기에 여행할때나 거쳐가는 경로 정도로 인식 될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은 소년시절 모비 딕을 읽고 포경선을 직접 타보는 경험을 했다. 문학을 읽고 비슷하게나마 경험으로 끌어 낸다는 것은 커가면 커갈수록 의미부여가 작아지더라도 독특한 기억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기억을 갖고 있던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의 조국 칠레를 떠나 독일에서 살고 있다. 그린피스에서 활동하는 그는 어느날 칠레에서 걸려 온 전화 한통으로 고국인 칠레로 향하게 된다. 남극의 바다에서 불법 고래잡이가 행해지고 있다는 신고였던 것이다. 그들은 다름아닌 그린피스와는 악연으로 남아있는 일본 포경선 니신마루 호였다. 분명 니신마루 호는 폐선 처리 된 배인데 어째서 남극에서 나타났단 말인가. 그 모든 의문을 안은 채 그는 칠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그를 맞아준 것은 그린피스로 전화했던 닐센이라는 선장이었다. 그리고 닐센 선장의 배 피니스테레 호를 타고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로 가기 위해 여러 곶과 항만을 지나는 여행을 해야 했다. 사건의 현장이란 니신마루 호가 많은 사상자를 내고 부서지고 불타버린 현장이었다. 불법 고래 포획이 벌어졌던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곳에 출현한 니신마루 호는 티모르 당국에 위장 폐선 증명서를 받고 유령선이 되어 고래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많은 사상자를 내고 좌초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닐센 선장은 그 사건의 현장에 있었기에 직접 그곳까지 그를 데려온 것이다. 사건의 현장에는 고래와 인간의 시신이 뒤섞여 새들의 먹이가 되어가고 있어 끔찍했지만, 닐센 선장이 들려 주는 그 날의 이야기는 더욱 더 놀라운 것이었다.

 

  니신마루 호의 등장으로 불안해 있던 닐센 선장은 피니스테레 호의 선원 페트로 치코의 놀라운 고백을 듣게 된다. 범고래가 숨어 있는 곳을 알고 있다는 페트로 치코의 말을 통해 그곳으로 니신마루 호가 향할 것을 확신하고 니신마루 호를 주시하며 뒤쫓지만, 악천후로 배를 놓쳐 많은 고래들이 죽음에 이르러 끌어 올려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을 보다 못한 닐센이 니신마루 호를 향해 돌진 하려하자 페트로 치코가 만류하며 작은 보트를 띄워 니신마루 호로 향한다.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페트로 치코가 타고 있는 보트로 온갖 오물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니신마루 호에서 야유를 보내며 쏟아 부은 것들인데 물세례까지 받아 보트가 가라 앉기 직전, 거대한 고래의 등에 의해 보트는 안전한 곳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수 백마리의 고래들이 니신마루 호로 돌진하고 있었다. 고래들은 니신마루 호에 부딪혀 죽어가면서도 그 배가 해안에 닿았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건의 현장에 그를 데려온 닐센 선장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 주며 이 이야기를 쓰는 건 그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뒷면에는 '진주 조개와도 같은 책...... 귀에 대면 영원히 생생한 바다 소리가 들려 온다'라는 추천사가 들어 있다. 추천사는 늘 과장 되기 마련 이라는 생각이 짙은데 이 글귀는 잘 드러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 소설이기도 하고 전설이 뒤섞인 바다 이야기 이기도 한 이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어린 시절을 좇아, 고래를 좇아 고국을 간 주인공은 닐센 선장이 들려 주는 놀라운 이야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들도 처음에 쏟아냈던 어지러운 나의 말들처럼 많은 것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처음엔 주인공을 좇아 칠레까지 가면서 니신마루 호의 불법 행위가 만천하에 알려져 망신을 톡톡히 받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이 주는 처벌보다 자연이 주는 벌을 받은 모습을 보니 꼭 알려져야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겠지만 환경소설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인간과의 조화를 깨트리는 행위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줄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지금처럼 인간이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고 교만하게 나간다면 되돌아 오는 만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경고는 긴 시간을 주지 않는다. 방심하는 사이 재앙으로 치닫기 전에 깨달음과 행동을 동시에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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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북 다이제스트에서 보내준 책입니다.

책이 1월 4일쯤에 온 것 같은데..

이제서야 올립니다.

다른 분들하고 다 다른 책을 보내주신 것 같아요.. 오오...^^


지인에게 선물 받은 책들입니다.

또 책이 쌓일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읽고 홀딱 반해 버린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을 두권 더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를 읽고 역시 반해버린 존 반빌의 책이 나왔길래 구입했습니다.

존 반빌의 책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무 반갑습니다.

이 책들 역시 제가 산게 아니라 적립금으로 산거라지요..^^

 

올해도 역시 저는 공짜로 책을 얻고 있습니다..^^

 

 

 

1. 꾸르제뜨 이야기 - 질 파리

2. 서진규의 희망 - 서진규

3. 착한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 박경철

4. 설타누나, 나의 멘토가 되어줘! - 설보연

5. 악인 - 요시다 슈이치

6. 지구 끝의 사람들 - 루이스 세풀베다

7. 감상적 킬러의 고백 - 루이스 세풀베다

8. 닥터 코페르니쿠스 - 존 반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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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꽃
김춘수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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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온라인 서점에서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4개의 출판사의 책을 2만원이상 주문하면 미니북세트를 준다는 것이었다. 읽을 책이 넘쳐나고 있음에도 미니북세트에 홀려 책을 주문하고 말았다. 4개의 출판사 가운데 현대문학의 책이 마음에 들어 고르고 있었는데 김춘수의 시집이 눈에 들어왔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주문했던 이유는 시집을 좋아한다는 사실 이전에 김춘수의 시집이 한권도 없음이 부끄러웠다. 내로라하는 시인들의 시를 읽어야 시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낯선 시인들의 시집이 책장을 채워가는 것에 제동을 걸 필요성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시인이든 낯익은 시인이든 개의치 않고 시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당대의 시인들을 알지 못하고 그 시대의 슬픔을 모른다는 것이 조금씩 마음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시인들이 수두룩하겠지만 이벤트에 현혹되어 그제서야 시를 읽겠다고 나서는 내가 한심해 보이는 건 왜일까.
 

  나는 시를 음미하며 천천히 읽는 것보다 쭉쭉 읽는 편이다. 한 음절, 한 귀절 정성들여 썼을 시인들의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천천히 읽는 것은 더 많은 공백을 두는 것 같아 빨리 읽는 편이다. 그러다 걸리는 글귀가 있으면 그제서야 속도를 늦춰 음미해보기 시작한다. 시는 여전히 나에게 만만한 장르가 아니기에 한 두편만 그런 시를 만나고 책을 덮더라도 뿌듯한 마음이 그득이다. 그런면에서 김춘수의 '달개비 꽃'은 제동이 많이 걸리지 않은 시집이다. 나의 공감을 끌어 내기 힘든 어려움이 내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세계로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고 그 안에서의 모험은 난해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 또한 오랜 시간 내면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들을 끄집어 내었을 때 그 주변을 겉돌아야 했던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 시집은 시인의 마지막 시집이다. 그 이전에 쓴 시도 있긴 하지만 삶의 끝을 향해 가면서 썼을 시인을 생각하면 이런 느낌들은 사라지고 그저 마음이 먹먹해질 뿐이다.

 

  달개비 꽃을 읽다 보면 백지가 한장 나온다. 그리고 백지의 끝에는 알라메르가 말했던 백지의 공포가 아니라 저자가 느끼는 것은 언어로부터의 해방, 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해방이 즐겁지 않은 것 같다. 백지가 주는 것은 불안이라고 했으니 시를 쓰지 않은 것이 불안할 정도로 저자에게 시는 특별하리라. 그런 특별함이 왜 내게는 온전히 전해오지 않았던 걸까. 내가 혹여 놓쳐 버린 것은 없는지 그의 시집을 다시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 느꼈던 감정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무언가가 안정된 느낌. 시가 시작되고 끝나는 부분에서 마주치던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의식하면서 읽으니 교묘히 연결되는 것 같은 기분. 그의 시를 다시 읽었을 때 조끔씩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시인의 시에 온전함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그의 궤도를 맞춰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 속에서 그의 시를 읽고 났을 때는 그가 세상에 없다는 것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시와 시 사이에 시인과 독자만이 존재할 뿐, 그 공백은 서로가 채워가면 되었다. 시는 그대로이니 거기에 나를 맞추면 되었다. 그럴때에 시인과 다른 의도로 통함을 느꼈더라고 시의 진가를 하나하나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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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만나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시, 문지혁 옮김, 노경실 글 / 가치창조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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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에 고흐전을 다녀 왔었다. 몇몇 전시회를 통해서 고흐 그림을 본 적은 있지만 고흐 그림에 대한 갈급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무척 기대하고 있던 전시회였다. 그의 그림을 보게 된다면 그림 앞에서 떨어질 줄 모르며 눈믈을 흘릴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을 안고 간 전시회였다. 그러나 왠걸. 내게 익숙한 그림들이라서 제목 맞추기 게임만 하고 있을 뿐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휙휙 지나치고 있었다. 실물의 감동은 잊은 채 '물감 정말 두텁다' 하고 스쳐지날 때 조차 내가 고대하던 전시회라는 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 다른 전시회들보다 더 짧은 시간을 관람하고 나서 기념품에 더 정신이 팔려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고흐의 그림을 보기는 본 것일까? 이제서야 어렴풋이 드는 생각은 실물도 중요하지만 마음 속에 담고 있는 기쁨이 더 중요한게 아닐까 하고 되뇌어 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고흐의 책들을 대하는 나의 반응은 냉담하다. <반 고흐, 내 영혼의 편지>를 읽고난 후에 고흐의 내면을 샅샅이 들여다 본 느낌이라 다른 책들은 울궈먹기 식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러면서도 고흐책을 모으는 모습은 아이러니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고흐를 어떻게 펼쳐 놓았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랬기에 이 책도 냉랭한 반응을 띄며 읽은 책 중의 하나다. 그리고 책을 다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고 판단해 버렸다. 고흐의 그림, 고흐의 편지, 저자의 시가 어우러져 있는 책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고 짜집기를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거기다 저자의 시는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것인지 정서의 다름인지 나의 감흥을 이끌어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은 내가 만들어 놓은 편견과 방어벽이 너무 높다는 것을 느끼고 책을 덮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도 느껴지는 씁쓸함과 찝찝한 아쉬움은 계속 남아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리뷰를 남기는 것도 부담감일 수 밖에 없었다. 강요적인 리뷰는 아니였으나 11년째 이어오는 습관이었으므로 이 책만 쏙 빼놓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은지는 한달이 넘어가고 있었고 책 내용은 희미해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책 리뷰를 써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책상머리 앞에 앉은 나는 난감해지고 있었다. 무엇으로 리뷰를 채울 것인가, 이렇게까지 리뷰를 써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에 이르기까지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우선은 편안하게 고흐 이야기를 꺼내보자 하고 전시회를 떠올렸던 것인데, 전시회 때 나의 마음을 떠올려보니 조금씩 <고흐를 만나다>의 의중을 이해해 가는 것 같았다. 내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보지 못했던 이면들이 그제서야 보이는 것 같았다.

 

  분명 고흐의 그림을 실물로 보면서도 생각했던 감동이 일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익숙해 있었기에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던 것 같다. 언제든지 꺼내 보려 한다면 고흐를 만날 수 있다는 편안함. <고흐를 만나다>에서 짜집기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는데 내가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느꼈던 마음들을 한군데 모아 놓았다고 생각하니 그제서야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 책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고흐를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고흐의 작품과 고흐 삶에 대한 잔상들로 채워진 것인데, 나는 고흐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그랬으니 내가 만들어 놓은 고흐의 이미지가 드러날 리가 없었다.

 

  온전히 이 책이 내 마음에 들어온 것은 아니였지만, 뒤늦게나마 책의 의중을 눈치채며 보여지는 이면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에 대한 각자의 생각들을 한 개채로 보려 했으니 역효과가 날만 했다. 각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니 그제서야 하나의 조화로 보이는 현상.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경험이기도 했고 마음의 상태에 따라 느껴지는 것이 판이하게 다라다는 것을 또 한번 실감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온전히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을 때 고흐와의 만남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고 지켜 볼 수 있는 고흐는 가까이에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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