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화 속의 삶과 욕망 - 박희숙

 

2. 고흐를 만나다 -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3. 지하실의 검은 표범 - 아모스 오즈

 

 

 

 

- 저번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슬그머니 책들이 내게로 왔다.

그것도 다 선물 받은 책들이다..ㅋㅋ

내가 그림책을 좋아하니..

지인이 그림책 두권을 주었다.(내가 조른 것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고흐 책도 있어서 더 설렐 뿐이다.

 

아모스 오즈의 '지하실의 검은 표범'은 교회 동생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거다.

생일 선물 말하라고 하길래.. 그때 읽고 싶었던 아모스 오즈의 신간을 말했었는데... 이렇게 공짜로 받다니..ㅋㅋㅋ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 받으니 기분이 더 좋다.

 

아. 도대체 책은 언제 읽을 셈인지...ㅠㅠ

이젠 좀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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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의 애정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공연도 볼겸 지인도 만날 겸 나선 길이였는데, 이동 시간이 길어 힘들었던 기억만 난다. 일부러 책 읽기 수월한 기차를 택했는데, 올라가는 길에는 한 줄도 읽지 못하고 잠만 자버렸다. 내려 오는 길도 무척 피곤 했지만 잠으로 보내기는 싫어서 억지로 책을 꺼내 들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의 보상을 받으려 펼친 책이었는데, 피곤함도 잊은 채 단숨에 읽어 버렸다. 창 밖의 풍경은 하나도 보지 못했지만 기차의 이동과 함께 책이 흘러가는 기분. 그런 기분 가운데 내 마음은 잔잔해져 갔다.

 

  처음 책 제목과 겉표지를 봤을 때, 쿨한 로멘스 소설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다시 살펴 본 겉표지는 책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은 잔잔하면서도 틀에 박힌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겉표지는 그렇다치고, 책을 읽는내내 독특하다 느꼈던 것은, 주인공 마사히라에게 일어난 일들은 평범한 것이 아님에도 수평선을 그리듯 써 내려간 저자의 문체였다. 페이지는 중반을 넘어가고 결말을 향해 감에도 처음과 별다를 바 없는 상황 속에서 저자는 결코 흥분하지 않았다. 독자에게는 그런 부분에서 인내가 필요할지는 몰라도 저자가 뿜어내는 독특한 잔잔함에 끌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기에 나 또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의혹도, 툭 하고 던져 버리는 결말 앞에서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사히라에게 얽힌 궁금증을 해소 시켰따는 후련함보다, 수평선처럼 일정한 문체에서 빠져 나왔다는 후련함이 더 짙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서 다른 독자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는 나이지만, 이 책은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릴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너무 허망하다는 쪽과 나처럼 저자가 끌어내는 잔잔함에 어느 정도의 매력을 느꼈을 쪽으로 나뉠 거라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책의 스토리는 그럴 여지를 주기 충분했다 생각한다. 마사히라는 옛 애인 아키라의 전화를 빌미로 5년 전 자신을 떠났던 배경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간다. 그런 과정 속에서 너무나 쉽게 자신의 마음을 닫아 버렸던 자신을 돌아 보면서 소중한 것들을 잃어 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하자 아키라에게 마사히라와 헤어지길 요구했던 어머니, 그런 마사히라를 위해 기꺼이 떠났던 아키라, 자신에게 괜한 참견을 했다 생각했던 키즈 선생. 그 모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오로지 마사히라만 마음의 문을 닫은 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5년 전 아키라를 자신에게 떼어 놓게 했던 사람들을 원망해 보지만, 결국은 자신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키라를 향해 조금씩 용기를 낸다.

 

  그런 마사히라를 지켜 보면서 내 마음도 복잡해져 갔다. 좀 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 과거의 행동은 차치하더라도 키즈 선생을 통해 마음의 병페가 벗겨지는 부분에서 찔림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사랑을 믿지 못하고, 나의 것을 지킬 줄 모르며, 나를 다스리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비단 마사히라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든, 나에 대한 애정이든 그 가치를 따질 수 없기에 좀 더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 안에 가둬놓은 것들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 갇힘 속에서 얼마나 괴로워 하고 있었던가. 마사히라에게 아키라와 헤어진 이후의 5년이 그랬다. 아키라의 배신에 허덕였던 것보다 자신 안에 갇혀 있음을 괴로워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마사히라를 보면서 자신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한발짝 떨어져 나와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것은 없는가, 똑바로 가고 있는가를 정검해 봐야 할 것이다. 나에게 종교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그 안에서 내가 범하는 오류도 무척 많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도 무언가를 깨달았다면 그때는 더 이상 지체하면 안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면서 5년의 세월을 번민으로 보낸다는 것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사히라는 5년의 세월이 힘들었지만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한 마음을 알았기에 지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가는 마사히라. 그런 깨어남이 비단 마사히라 뿐만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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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생 텍쥐페리 지음, 최복현 옮김 / 이른아침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였다. 작년에<생텍쥐페리의 전설적인 사랑>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생텍쥐페리의 사랑에 실망한 나머지, 다른 작품에 대한 관심을 거둬 버렸다. 우연히 집어든 이사카 코타로의 <사막>이 아니였다면 그의 작품을 영영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인간의 대지>에 대해 논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사막>의 주인공처럼 나도 한번 읽어볼까? 라는 식의 어정쩡한 관심 뿐이었다. 그 잠깐이 차지했던 위력에 흥미를 느꼈지만,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 발행된 <인간의 대지>를 발견하고 놀라고 말았다. 읽어야 한다는 숙명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작가로써의 그를 순수하게 만나기가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기적처럼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 생텍쥐페리를 다시 만난 느낌이 든다. 그의 사적인 모습들은 지운 채, 오로지 그의 일과 그의 내면만을 바라보는 가운데 생겨난 믿음일지도 모른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건 그의 일이었지만, 일 가운데 드러나는 내면의 고독은 그 일로 하여금 비워지기도 하고 채워지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일이<어린 왕자>의 모티브가 되었듯이, 이 책에도 비행기를(우편기,정찰기를 포함해서) 조종하면서 생긴 경험들로 가득하다. 그가 처녀 비행을 하던 일, 사막에서의 불시착, 조종사로써의 고뇌 등 단순한 경험의 나열이 아니라 그의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글 속에서 작가적인 면모가 드러나고, 단순한 에피소드도 그가 풀어내면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고독으로 변하고 있었으니 그의 전부라고 말할 수 밖에.

 

  생텍쥐페리가 작가로써 차지하는 위치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왕자>는 아직까지도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 한권의 책으로 우뚝 서 있는 그의 존재는 진부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글만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경험으로 글을 쓰긴 했지만, 비행기를 조종하는 일을 놓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가 만들어낸 산물들을 보고 있자면 존경의 눈으로 봐지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확연히 다른 글쓰기와 비행기 조종의 일을 병행한다는 건 쉽지 않기에 그의 열정을 높이 살 수 밖에 없다. 그의 열정이 그를 더 깊은 고독속으로 몰고 갔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흔적을 남겨주는 삶을 살다갔다. 그의 고독과 경험을 지켜보면서 나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 잠시 돌아 보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고독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야간 비행을 하는 비행기 속에서, 황량한 사막의 열기 가운데서, 혹은 차갑게 식어가는 사막의 밤하늘에서 나온게 아닐까 추측을 해 보았다. <인간의 대지>에는 사막의 이야기가 그득했고, 하늘과 땅 위의 바람 이야기 또한 넘쳐났기 때문이다. 내가 그였다면, 세상의 복잡함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순간 기뻐했을 지라도 혼자만의 고독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의 곁에는 동료들과 사막에서 만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자신이였다. 그랬기에 끊임없이 모험을 갈망하며, 돌아오기 위한 떠남이 아닌, 떠나기 위한 돌아옴을 강행 했는지도 모른다. 비행기라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의 탐험이기에 더욱 더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대지>를 읽다보면 사막의 신기루 속에 갇힌 느낌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그와 함께 구름 속을 비행하기도 하고, 사막의 한가운데에 있어보기도 했지만, 나 또한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처럼, 신기루를 좇아 영원히 방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좇는 신기루가 사라지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그를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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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내 자신에게 약속한 것은, 편견으로 장르를 나누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늘 다양한 독서를 하려고 애쓰지만 문학에 치중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문학을 주로 좋아한다면 국내 문학의 비중도 당연히 높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주로 국외 문학을 읽을 뿐, 국내 문학은 언제부터인가 등한시 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선정적인 책들만 골라서 읽었던 나의 잘못도 있었지만, 현실의 도피로 독서를 하는 나의 성향에 현재의 국내 문학은 맞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시대라는 공감에서 비져나오는 우울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비현실감이었다. 일본문학에 많은 국내 독자들이 관심을 쏟는 것은 현실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소설이라는 장르라도 이왕이면 현실감있게 그려내는 일본문학에 더 끌리는 거라고 말이다. 굳이 국내 문학과 일본 문학을 비교하련느 것도 아니고, 비교하더라도 일부분의 것을 가지고 비교할 것이기에 그럴만한 계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강의 책을 읽으면서 밀려오는 비현실 속의 우울함이 나를 더욱더 깊은 어둠의 심연으로 데려가는 느낌이라 이렇게 장광설을 뱉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몇년 째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꼬박꼬박 보고 있다. 그렇기에 작년 수상작인 한강의 <몽고반점>을 기억한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에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몽고반점>보다 같이 실린 <아기부처>의 문체가 더 좋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늘 스쳐버리던 이상문학상의 수상자들 중에서 한강이라는 작가를 염두해 두고 있던 터라, 신간이 나왔다기에 반가운 마음에 그녀의 책을 구입했다. 사고보니 <채식주의자>는 신작이 아니라 <몽고반점>과 비슷한 시기에 쓴 연작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엔 <몽고반점>이 실려 있어서(나에게 작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집이 있었기에)실망을 했다. 이미 읽은 작품이 또 실려 있다고 생각하니 지면의 일부분을 도둑맞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나 연작소설이라는 말에 나의 호기심은 일렁거렸다. 세 편의 단편이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말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나에게 <몽고반점>은 현실의 이야기였기에 <채식주의자>는 몽고반점의 과거가 되고, <나무 불꽃>은 몽고반점의 미래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의 이야기 같은 세편의 단편을 읽을 생각에 내 마음은 설레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를 폈을 때, 거부할 수 없는 흡인력에 끌려갈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앉은 자리에서 <채식주의자>를 한 번의 쉼없이 읽어 버렸다. 그러나 책의 맛은 씁쓸하고 비현실적이였으며 우울해서 얼른 덮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했다. 그러나 끝맛을 느끼기 전까지 덮을 수 없었다. 쉬었다 읽는다면 책에서 느껴졌던 맛이 끈덕지게 들러 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몽고반점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는 그렇게 나를 옭아메고 놓아주지 않았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에 등장하는 인물은 같다. 그러나 누구의 관점에서 보았느냐에 따라서 같은 이야기는 달라지고 시간의 흐름 속에 교묘히 연결되고 있었다. <채식주의자>는 <몽고반점>에서 비디오 아티스트였던 남자의 처제, 영혜의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었다. 꿈 때문에 육식을 먹지 못하는 영혜에게 사람들은 채식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가족들의 억지 희극 속에서 자살을 기도하고, 병원에서 토플리스(젖가슴을 드러낸 옷차림) 차림을 보임으로써 그녀는 단순히 고기를 거부하려 했던 것이 아니였음이 드러난다.

 

  <몽고반점>은 분명 단편으로 읽었지만 <채식주의자> 때문에 새롭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좀더 꿰어 맞춰진 느낌 때문인지 읽었을 당시에 둥둥 떠다니던 비현실감은 좀 더 아래로 내려온 느낌이었다. 영혜는 형부와의 비디오 작업을 하면서 <채식주의자>의 영혜보다 말이 많아졌다고 느꼈을 뿐, <몽고반점>은 형부가 중심이 되어 펼쳐지고 있었다. 작년에 몽고반점을 읽으면서 영혜와 형부는 어떻게 될까 생각하고 싶지 않으면서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채식주의자>보다, 좀 더 새롭게 느껴지는 <몽고반점>보다, <나무 불꽃>이 가장 궁금했었다. 어찌 되었든 <몽고반점>의 미래의 이야기가 펼쳐질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무 불꽃>은 늘 묻히고 말았던, 그리고 영혜의 존재로 자신의 인생의 뒤엉켜 버렸던 영헤의 언니 인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인혜의 남편은 영혜와의 그런 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 버렸고, 영혜는 정신병원에 수감 되어 있다. 그런 영혜와 인혜는 친가에서도 버림 받고 인혜는 영혜를 돌본다. 그러나 그건 돌봄은 그녀에게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의미한 것 처럼, 의미가 부여된 것은 아니다. 생명을 버릴 수 없어서(그러면서도 자신의 아이는 쉽게 버릴 뻔 했다) 동생이라는 이유로 돌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영혜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고, 음식을 거부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려 한다. 자신이 나무라 착각을 하고 죽으면 안될 이유가 없다는 말들로 자신만의 자유를 표현한다. 되려 인혜가 세상에 얽매어 있는 느낌이고 자신을 드러내 본 적이 없다는 갑갑함으로 진부하게 이야기는 흘러간다. 결국 영혜가 추구하려 했던 것, 인혜가 막으려고 했던 것의 경계가 풀림으로써 비로소 그녀들은 자유스러워 보이는 듯하다.

 

  이렇게 우울함이 짙은, 현실이라고 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왜 놓지 못했을까. 또 다시 국내 문학을 읽을 자신감이 스르륵 사라지고 마는 마음과 싸우면서도 그녀의 이야기를 놓지 못했던 것은 무엇일까. 연작 소설임에도 이제서야 한 권으로 정리하며 매듭을 짓는 기분이라던 저자처럼 나도 <몽고반점>의 매듭을 지으려고 했던 것일까? 의식의 전체에 희망의 빛을 놔버린 나는 영혜보다 자유스럽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내부에는 어움이 지배적이었다. 어둠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니 이젠 빛을 봐야 할텐데 영혜처럼 물구나를 서고 싶은 건 무엇일까. 나무가 반듯이 서 있는게 아니라 팔을 아래로 지탱하며 거꾸로 서 있다던 영혜의 심정이 되는 건 무엇일까. 어둠의 심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이라고 해도 희망의 빛이 깃들지 않는 건 영혜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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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운형 평전 - 이기형

 

2. 프란츠 파농 - 알리스 셰르키

 

3. 바드샤 칸 - 에크나스 에아스와란

 

4. 안녕, 후두둑 씨 - 이용한

 

5. 엔젤 - 이시다 이라

 

6. 전장의 걸즈라이프 - 요시카와 도리코

 

7. 핸드폰 - 류전윈

 

8. 고양 하늘 아래 노란꽃 - 류전윈

 

9. 여자 경제 독립 선언서 - 수지 오먼

 

10. 채식주의자 - 한강

 

 

-12월이 시작된지 4일이 지났다.

그런데 3일동안 책이 엄청 많이 생겼다.

 

린킨파크 공연을 보러 갔다가 온라인으로 알게 된 실천문학사에 근무했던 분을 만났다. 그 분이 퇴사하면서 읽고 싶은 책 몇권을 말하라고 했는데 당연 실천문학사 하면 평전이 생각나서 평전을 말했더니, 평전 세권과 시집 한권을 더 주셨다.

 

월요일, 출근해보니 책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무언가 하고 봤더니 황매에서 다섯권이나 보내주었다.

그동안 책이 안와서 모니터요원에서 제외됐나 보다 했는데 그동안에 출간 되었던 책들을 한꺼번에 보내주었다.

황매에서 받은 책을 쌓아놓고 보니 완전 부자가 된 기분이다.

 

작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은 한강의 <몽고반점> 이었다. 몽고반점 보다 같이 수록된 작품이 더 좋아서 한강의 문체를 기억하고 있다. 그런 작가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신간이 나왔다.

신문에서 조경란의 <혀>와 함께 실린 책이기도 해서 무척 읽고 싶었는데, 집에 읽을 책이 많으니 당연히 살수가 없었다.

그런데 알라딘에 쌓인 적립금이 책을 한권 살 수 있는 정도가 아닌가. 그래서 채식주의자를 구입했다. 어제 밤에 주문했는데 바로 날아오는 이 스피드.... 덕분에 3일동안 책이 엄청 쌓였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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