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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도 우리나라 출판계에 불어 오는 일본문학의 열풍은 식지 않는 것 같다. 그 열풍에 휩쓸리지 않겠노라 다짐 했는데, 재작년부터 읽어제낀 일본문학은 국내 문학의 양보다 더 많았다. 그래서 국내문학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하지만 일본문학이 주는 매력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내 눈에 띄는 작가는 드물었다. 분명 그들이 써내는 글은 다른데 일본문학이라는 틀 속에서는 비슷비슷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작가가 쓴 것이라면 무조건 읽고 싶은 책들이 있다. 그 드문 작가들 틈에는 이사카 코타로도 포함된다. 그가 내 안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어느 정도의 믿음이 가는 터라 그의 작품을 손에 쥐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분명 이사카 코타로의 글에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솔직함도 어느 정도 내제되어 있지만 그가 만들어 내는 인물들에게서는 늘 정의가 살아 숨쉬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뿌듯한 기분이 든다. 나른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활작 폈을 때의 만족감. 그런 만족감이 그의 글 속에는 존재한다. 그의 작품을 서너편 정도 읽고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것이 섣부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막을 읽고 보니 나름대로의 확신이 선다. 약간 다른 스타일의 책들도 만났었지만 자신의 맡은 본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이 이사카 코타로 스타일이라고 각인되고 있었다. 또한 특별한 것도 소소한 일상으로 만들며 호들갑 떨지 않는 차분함. 그런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사막>에서는 평범한 대학생들이 등장한다. 분명 독특하게 보자면 볼 수 있는 그들인데 어느 정도의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하나의 개체로 봐지지가 않았다. 5명의 그들은 둘 이상이 되었을 때 비로소 존재 하는 것 같았고, 전부가 모였을 때는 대책 없으면서도 편안하고 든든했다.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진 당당한 이시지마를 비롯해 도리이, 도도, 미나미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기타무라. 대학교 생활을 막 시작한 이들은 신입생 환영회 때 만나 대학 4년의 시간을 동고동락 한다. 이 책의 구성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시기로 나뉘어져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라든가 여러가지 주변 일들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책이 끝날때 쯤, 일년이 아니라 4년의 시간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고 조금은 서운(?) 했지만, 그들이 함께 한 시간들을 돌아보면 4년의 세월이라고 해도 충분할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서로의 독특함과 평범함을 고루고루 나눠가져 결국은 평평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그들에게 일어난 일들은 대학생활만을 상상하며 입학한 그들에게 결코 가볍지 않는 것이었다. 이사카 코타로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범죄자 소탕은 물론이고, 그 사건으로 인해 도리이에게 닥친 위기, 엉뚱한 볼링게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마작 등 캠퍼스 안에서보다 그 밖에서 마주치는 사회는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사막을 사회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메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 실현되길 바랬다. 사막에 눈이 내리게 한다는 것이 그들이 뒤집으려고 했던 것의 예시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도리이가 팔을 잃고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이시지마가 보여줬던 행동으로 인해 다시 도리이가 생기를 되찾았 듯, 사막에 눈이 내리게 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시지마만의 독특함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사막처럼 황량한 사회에 밑진다는 생각으로 그들이 첫걸음을 내딛는 건 원치 않는다. 그들이 지나왔던 4년의 대학생활은 순탄치 않았더라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연약하게 보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시련과 기쁨이 있었기에 사회를 향한 예행연습 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렇게 또 한편의 이사카 코타로 작품을 만났다. 그 만남의 과정은 힘겨울 때도 있었지만, 처음에 말했던 뿌듯함, 정의감이 느껴지는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 거창하게 정의감까지 끄집어 내서 이 책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정의감은 좀 다르다. 정의감이라기 보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나 할까. 아직은 때 묻지 않은 그들을 지켜 보며 대리만족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부디 좌절하지 말지어다. 그리고 사회라는 사막에서도 오아시스를 발견 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