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외면일기 - 미셜 투르니에
 
 
 
- 얼마전에 선물 받은 문화상품권으로 이 책을 샀다.
문화상품권을 보는 순간 부터 이 책이 떠올라서...
가끔 구경가던 서점에서 바로 찾아서 샀다.
으흐흐......
원하던 책을 갖게 되었으니 이제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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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 다음날....

집에 와보니 내 책상에 편지 한통이 놓여있었다.

은경님한테 온 편지다...

반가운 마음에 편지를 열어보니...

문화상품권이 나온다.

거기다 네잎 크로버 코팅 한 것 까지 나온다.

헉....

생일 선물이라고 한다.

책 한권 사보라고....

 

올해는 주변 분들 생일을 많이 챙겨주지 못해서...

조용히 지나간 생일이었는데....

이렇게 뜻하지 않는 편지와 선물을 받게 되니...

기쁨보다는 감사가 넘친다...

늘 부족한데.. 잊지 않고 챙겨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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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부르그 이야기>

니꼴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조주관 옮김, 8000원

1판 1쇄: 2002년 9월 15일

 

 

* 왜 하필 19세기 러시아 문학일까?

 

  누가 뭐래도 19세기는 러시아 문학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00년대 초 유럽에 불어닥친 감상주의를 까람진이 도입하면서 고전주의 문학을 청산하고 낭만주의 문학이 등장했습니다. 황제와 그 주변인물의 묘사에 머물렀던 고전주의적 러시아문단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면서 러시아 문학은 그야 말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게 됩니다. 이름만 들어도 너무나 유명학 작가들이 19세기에 엄청나게 두각을 나타냅니다. 시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뿌쉬낀, 고골, 벨린스키, 투르게네프, 도스또예프스끼, 톨스토이, 체호프 등등 이 모든 작가들이 19세기 러시아가 배출해낸 작가들 입니다. 이들만 보더라도 문학의 장르에 왜 <19세기 문학>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는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822556

 

 

 

* 러시아 문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버려!!

 

  고등학교 때 문학을 읽겠다고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 두 권을 겨울 방학 내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낑낑대며 읽긴 읽었지만 내용은 생각나지 않고, 너무 어려워 문학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몇년 전, 우연히 열린책들에서 발행된 도스또예프스끼 전집을 한 권 사서 읽고, 러시아 문학에 홀딱 반하고 말았습니다. 번역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열정이 그대로 느껴졌고, 저자가 그려내는 러시아인의 특유의 기질에 매료 당했던 거지요. 러시아인의 기질만 파악하더라도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도스또예프스끼를 통해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골고루 섭렵하고 보니, 러시아 문학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들도 충분히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를 고르게 된 이유...

 

  19세기의 러시아 문학들은 실로 엄청납니다. 대문호 뿌쉬낀만 하더라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던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고, 도스또프스끼의 전집이 18권으로 나와 있을 정도로 무척 많습니다. 그 가운데 <이것이 러시아 문학이다> 라고 한 작품을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전집 중 첫번째 책 <분신, 가난한 사람들>을 소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도스또예프스끼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작가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이 말때문에 고골의 작품을 고르게 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도스또예프스끼 작품을 읽고, 뿌쉬낀을 읽고, 고골을 읽고, 체호프를 읽으면서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접하게 되었지만, 도스또예프스끼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고 고골의 <외투>를 읽었더니 비로소 도스또예프스끼가 한 말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책을 통해 소중한 연관관계를 만났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속으로

 

  이 책에는 총 다섯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고골이 관리가 되기 위해 러시아의 수도 뻬쩨르부르그에 상경하면서 느낀 도시의 모습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문학이 처음이라면, 고골의 작품들이 조금은 생경하게 다가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작가들이 그려냈던 낭만주의, 사실주의의 작품들도 실려 있지만 고골만의 환상적이고, 풍자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작품이 더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문학의 낭만적이고 사실적인 작품들을 충분히 대했다면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고골의 작품을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전경험이 없더라고 고골의 작품은 19세기 러시아를 알기에 충분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환상소설의 대표격인 <코>를 비롯해서, 도스또예프스끼가 극찬했던 <외투>, 자신의 운명을 예언한듯한 <광인일기>, 그로테스크한 <자화상>, 비교적 서정적인 <네프스끼 거리>. 이 다섯편의 단편 속에서 러시아를 느낌은 물론이고, 고골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로 충분히 젖어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이 책들도 같이 읽어 보세요~~



<분신, 가난한 사람들>

도스또예프스끼 저, 석영중 옮김

 

 

 

 

- 이 책을 읽고 <외투>를 읽어서인지 공감이 많이 갔고, 러시아인들의 자잘한 모습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어요

 

도스또예프스끼의 전집



 

 

 

 

 

 

 

 

 

 

뿌쉬낀의 작품들

 
       
<잠 안오는 밤에 쓴 시> <벨낀 이야기>   <청동 기마상>     <보리스 고두노프>


 <대위의 딸>





 

 

 

<부록>-  러시아 이름은 너무 어려워요!!

 

  도스또예프스끼 책을 읽으면서 길들었던 습관은 책 앞장에 나와있는 등장인물란에 손가락을 끼우고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등장인물 소개가 없을때는 메모를 해보기도 했지만, 익숙해 지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러시아 이름은 우리나라의 이름처럼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러시아인의 정식 이름은 '이름 부칭 성'으로 구분되어 집니다. 거기다 애칭도 많기 때문에 한 인물을 부르는 이름은 순식간에 서너개가 되기 일쑤 입니다. 부칭은 아버지의 이름에 'ovich(evich)'나 'ovna(evna)'를 붙여 누구의 아들과 딸임을 나타냅니다. 고골의 예를 들어 보자면 <니꼴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이 공식석상의 호칭입니다. 즉, 니꼴라이(이름) 바실리예비치(부칭. 아버지의 이름이 바실리예비치임을 뜻한다) 고골(성)순입니다. 고골(제삼자를 칭할 때를 빼고)이라고 부르는 것도 실례고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니꼴라이라고는 부리지는 않습니다. 친한 사이일때 꼴랴라는 애칭은 가능하지만요. 니꼴라이 고골이라고 부르는게 일반적 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작가의 예도 들어 볼까요?

우리가 뿌쉬낀, 도스또예프스끼로 알고 있는 작가들의 원래 이름도 상당히 깁니다.

 

뿌쉬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뿌쉬낀

도스또예프스끼: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무척 길지요? 이제 러시아 이름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풀렸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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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대한 작곡가의 생애와 예술 - 웬디 톰슨
 
2. 오르세 미술관 - 시모나 바르탈레나
 
3. 서정과 현실 하반기
 
4.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 - 기획의회엮음
 
5.~6. 열하광인 상, 하 - 김탁환
 
7. 매혹 - 존&스테이시 엘드리지
 
8~10.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 1,2,3 - 사토 다카코


- 요즘엔 이벤트 응모도 안하고 있어서...
책도 안 들어 온다고 좋아하면서도 섭섭해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정리를 안했더니...
책들이 쌓여 있다.
디카가 어디로 사라지는 바람에...
그동안 못 올린 것도 있었는데.. 결국, 디카는 발견되지 않아 핸드폰으로나마 조잡하게 정리해본다.
 
아.... 정리를 안한 사이에 열권이나 쌓여 버렸다.
헐... 머가 이리 많단 말인가.....
'위대한 작곡가의 생애' 이 책은 이벤트로 응모한 것 같은데...
<오르세 미술관>과 <서정과 현실>은 책을 보내주시는 분이 같이 보내주셨다. 황토라는 잡지와 조그마한 액자 꽂이도 보내주셨다.
정말 나는 맨날 받기만 하는구나..ㅠㅠ
 
나머지 책들은 지인이 보내준 책이다.
생일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나에게 괜찮을 것 같다고 선별해서 보내주었는데 무려 7권...
헐.. 정말 좋구랴..ㅋㅋㅋ
 
리뷰의 압박은 없으니 천천히 읽어보련다.
겨우 줄여 놓았던 읽어야 할 책 목록에서 10권이 확 늘어나는 순간이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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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옥편 - 한문학자의 옛글 읽기, 세상 읽기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이벤트 책들에 치여서 정작 내 책들을 읽지 못하는 답답한 독서의 연속이었다. 내가 좋아서 신청한 책임에도 기간 내에 읽고 리뷰를 써야 한다는 압박감은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독서의 의미조차 잃어가는 상황이기에 이벤트를 줄이고 그 동안 묵혔던 책들을 조금씩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미미했지만 많은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보다 마음이 훨씬 편했다. 비로소 내가 제대로 책을 읽는 것 같았고, 많은 이들에게 선물 받은 책들을 꺼내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 책도 선물 받은 책들 중 하나였다. 온라인으로 인연을 맺게 된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책임에도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책의 진가는 더 발휘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중한 사람이 준 책이였고 평안한 상태였으니 책의 내용이 내게 쏙쏙 들어올 수 밖에.

 

  정민님과의 만남은 이번이 두번째다. <책 읽는 소리>를 통해 옛 선인들의 모습에 많은 감동을 느꼈었다. 그래서 저자의 신간이 나왔다고 하기에 지인에게 말해서 받은 책임에도 이제서야 꺼내 보는 나의 손길이 부끄러워 진다. 비단 이제서야 꺼내는 마음만 부끄러우랴. 책을 읽고보니 현재의 내 삶에만 치우쳐 마음속에 허영만 채웠던 시간들까지 부끄러운 것들 투성이었다. 이 책에는 <책 읽는 소리>보다 좀 더 다양한 저자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옛글을 읽다 읽지 못할 풍경을 실은 글, 논설적인 성격의 글, 생활 속의 단상, 선인들의 독서와 단상에 대한 글들을 담고 있었다. 10년동안 쓴 글을 모았다고 해서인지 창작의 흔적보다는 편안함이 지배적이었다. 너무 빨리 읽혀 멈춤을 의도해야 할 정도였고, 멈춤 속에서는 놓쳐 버리고 싶지 않는 것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지금은 그다지 생각 나는게 많지 않다. 소소한 에피소드만이 기억날 뿐이다. 책을 읽었음에도 어찌 기억나는게 없을까 한탄을 해보지만, 오래지 않아 결과보단 과정의 책이었기에 이런 느낌이 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 읽는 소리>처럼 과정이 더 벅찬 책이었다. 많은 공감을 끌어 내지 못했더라도 한 두 가지의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박혀있는 느낌. 그 느낌들이 이 책의 전부다라고 말하지 못해도 내게는 책의 전부를 기억하는 것보다 소중하다는 기분이 든다.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옛글의 행간>과 <책 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글이었다. 그 중에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스승의 가르침을 소중하게 만들었던 글이 생각 난다. 한문학자인 저자가 석사논문을 권필의 한시로 준비할 때, 시를 번역해서 스승께 보인 일이 있었다. '텅 빈 산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라는 부분을 스승이 말이 많다며 '빈 산 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로 줄이게 하는 장면에서 나는 심히 부끄러워져 버렸다. 평상시에 불 필요한 말은 얼마나 많이 했으며, 책의 느낌을 남기는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잡설로 채우고 있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지금도 얼굴이 화끈 거린다. 또한 차근차근 짚어 주며 가르침을 주었던 저런 스승이 분명 하나쯤은 있었을 터인데, 무조건 밀쳐내 버렸던 내가 안타깝기도 했다. 그런 안타까움과 후회로 책을 읽어 나가고 있었는데 <책 읽기와 글쓰기> 부분에서 또 한번 무너지고 말았다. 지식인들의 언어 꼬기의 실상을 보면서였다. 그런 글을 만나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그들의 글을 찬사하기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글의 횡포를 눈치 채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이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거기다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한 때 이순신의 연인이었던 여진의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을 다섯장을 썼다가 '내다 버려라'로 일축 했다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저자의 글에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그득했다. 그랬기에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는 저자도 스승의 옥편을 다리미로 다리며 조심조심 보는 이유가 이러한 부끄러움이 내제 되어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스승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노력으로 채워갔던 스승의 마음을 잃지 않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몇몇 이야기를 통해 스며드는 저자의 아릿한 마음들이 내게도 번져와 잠시 스산해지는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마음들이 정처없이 떠돌아 다시 내 곁으로 오지 못한다고 해도 저자가 느꼈던 아릿함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그리고 앞으로의 내 삶 속에도. 너저분한 잡설로 채워 나가는 나의 글이지만, 그 느낌들을 잊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너그러이 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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