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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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내가 작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 있었다. <아내가 결혼했다>와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였다. 작년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슈가 된 책이라 국내소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해도 궁금한건 어쩔 수 없었다. 분명 이 두 권은 다른 색깔의 책임에도 작년에 발간되었고, 읽으려 찜한 책이라서 그런지 꼭 같이 묶어서 비교하게 된다. 그러나 읽어봐야지 했던 사이에 기대치가 너무 솟아 버린 것일까. 두 권을 연달아 읽었음에도 씁쓸함만이 내 안에 멤돈다. <아내가 결혼했다>보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좀 더 현실적이여서 인지 비교적 수월하게 읽었으나, 역시 뒷심은 약했다는 아쉬움이 든다. 31살의 싱글이라해도 나름대로 재기발랄하던 주인공 은수는 뒤로 갈수록 자신만의 색깔을 잃어 갔고 사랑 앞에선 진부해져 버렸다.

 

  은수는 분명 평범한 여인이다. 평범이라는 조건이 너무 광범위해 변화하는 은수의 상황들에 붙여도 되는지 망설여 지지만, 그녀는 평범하다고 말하고 싶다. 보통의 학력, 보통의 경력, 보통의 외모를 가진 31살의 싱글 여성. 어쩌면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런 은수의 일상을 들여다 보다 서서히 그녀의 내면으로 스며들어 가지만, 어느 순간 이질감을 느낀 채 떨어져 나와 버리는 나를 만나고 말았다. 그건 바로 진부함이었다. 그녀가 다니는 직장도, 그녀가 만나는 친구들도, 그녀의 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보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 안에는 늘 은수가 있었고 은수가 주인공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 나름대로의 삶의 흔적들이 퍼져 있는 외면을 보는 것은 그녀의 내면 보다 솔직한 때를 다 많이 만났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런 솔직함과 재기발랄(?)함을 잃어 버린 것은 사랑 앞에서였다. 사랑 앞에서 그녀가 더 빛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색깔을 잃어 버리고 우왕좌왕 하는 모습은 분명 내가 소설 초반에 알고 있던 은수와 달랐다.

 

  31살의 싱글녀를 보는 시선이 냉랭하더라도 나름대로 고뇌와 세상살이의 쓴맛을 안고 살아가는 은수가 낯설지만은 않아 그녀의 삶에 관심이 갔다. 그러나 그런 은수에게 다가온 사랑은 자꾸 그녀를 흐려 놓고 있었다.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지만 사랑을 하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왜 이해 못하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품는 생각인데. 그래서 은수도 사랑을 했다. 7살 어린 연하남의 순수한 마음을 받아 보기도 했고, 친구 녀석에게도 프로포즈를 받았으며 선도 보았다. 동시에 세 남자를 만나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에 꼭 맞는 사랑을 찾을 수가 없었따. 열정적이면 미래가 없고, 조건이 좋으면 마음이 가질 않았다.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흐지부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녀에게는 일이 끊이질 않았다. 부모님의 불화, 직장에서의 감봉. 어쩌다 태오(연하남)와 짧은 동거를 하다 헤어지고 친구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나하나 정리해가며 그나마 조건이 나은 선 본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지만 그 남자도 사라져 버리고 만다. 모든 것이 뒤엉켜서 우울함 속으로 치닫는 느낌이었다. 처음의 그녀, 나름 재기발랄했던 그녀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책을 읽고 나서 소설 속의 인물이라든가 그들의 대사가 느닷없이 떠올라 당황스러웠다. 짧은 시간 마주한 소설임에도 왜 내 곁에 계속 머무르는 것일까. 하지만 은수의 모습에 아쉼이 컸다. 그건 평범함을 내세웠던 그녀에게 어느 정도이 대리만족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했기에 실망을 해 버린 것은 아니였을까. 그녀를 늘 평범하다고 말하고 있었도 나와 비슷한 면이 많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가끔 그녀 생각들이 무시할 수 없어 깔깔 거리기도 하고 씁쓸해 했지만, 나의 삶도 그녀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에 그녀를 통해 적당한 타협선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의 전부가 되고 일부가 되는 사랑이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사랑이 자신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듯한 모습. 그것을 나는 피하고 싶었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나설 용기도, 좀 더 발전적인 일을 찾는 결단력이 없을지라도 도피하듯 결혼으로 인해 정착하려 했던 모습이 은수 답지 않았다. 은수다운 것이 어떤 것이기에 이런 결론은 안되는 거냐고 따질지는 몰라도 모든 것을 사랑에 치우쳐 버리는 책의 흐름은 초반의 색깔을 잃어 버린 것은 분명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국내소설이라 편안함을 기대 했었다. 분명 외국소설에서 마주하는 정서의 낯섬은 없어 공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편안함 그 이상을 기했는지,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굴곡이 아닌 평행선을 만들어 가는 그런 변화였다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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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읽은 책

 

 

 

1. 단 하루만 더 - 미치 앨봄 

2. 아더와 미니모이 1 - 뤽 베송

3. 고도를 기다리며 - 사뮈엘 베케트

4. 아더와 미니모이 2 - 뤽 베송

5. 빨간 자전거 - 크리스틴 슈나이더

6. 브레이브 스토리 3 - 미야베 미유키

7. 브레이브 스토리 4 - 미야베 미유키

8. 개를 위한 스테이크 - 에프라임 키숀

9. 악기로 본 삼국시대 음악 문화 - 한흥섭

10. 두고온 시 - 고은

11. 아버지와 아들 - 박목월,박동규

12. 행복한 식탁 - 세오 마이코

13. 새로운 인생 - 오르한 파묵

14. 이것이 인간인가 - 프리모 레비

15. 반 고흐 - 정문규

 

                                                 - 15권

 



2월에 읽은 책
 
 16. 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정승희

17. 여신이여, 가장 큰 소리로 웃어라 - 슈테파니 슈뢰더

18. 현명하게 세속적인 삶 - 복거일

19. 책만 보는 바보 - 안소영

20.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 박지원

21. 칙센트 미하이 몰입의 경영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22. 호미 - 박완서

23. 게르마니아 - 타키투스

24. 네 연애는 왜 그 모양이니? - 케빈 블레이어, 로리 고틀립

25. 모습찾기 - 마리네야 테르시

26. 두부 - 박완서

27. 로미오와 줄리엣 - 윌리엄 셰익스피어

28.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 이시다 이라

 

                                                       - 13권

 

3월에 읽은 책

 

 

 

29. 율리시스 무어 5 -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30. 고양이 철학자 요 미우 마 - 조안나 센즈마크

31. 르노와르 - 전규태

32. 인생의 베일 - 서모싯 몸

33.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34. 참말로 좋은 날 - 성석제

35. 별똥별 머신 - 하시모토 쓰무구

36. 꽃들에게 길을 묻다 - 김판용

37. 300 - 프랭크 밀러

38. 미스터 문라이트 - 이재익

39. 서른의 당신에게 - 강금실

40. 리셋 - 가타무라 가오루

41. 맥스와 커피 한 잔을 - 맥스 루케이도

42. 대화 - 박완서 외

43. 문학 속의 서울 - 김재관, 장두식

44. 슬픈 예감 - 요시모토 바나나

 

                                                    - 16권

 4월에 읽은 책

 

 

45. 초이스 선택이 기회다 - 왕창

46.  선비답게 산다는 것 - 안대회

47. 건축에게 시대를 묻다 - 민현식

48. 내 말에 상처 받았니? - 상생화용연구소

49. ~50. 한국 철학 스케치 1,2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51. 지식을 경영하는 전략적 책 읽기 - 스티브 레빈

52.~53. 해월 1,2 - 허수정

54.~55. 과부마을 이야기 1,2 - 제임스 캐넌

56. 다이앤 아버스 - 파트리샤 보스워스

57. 래리크랩의 파파기도 - 래리 크랩

58. 내 무덤위에서 춤을 추어라 - 에이단 체임버스

59. 체 게바라 시집 - 체 게바라

60. 아르헨티나 할머니 - 요시모토 바나나

61. 슬롯 - 신경진

62. 위대한 영성 - 앤드류 머레이

63. 홀로 앉아 금을 타고 - 이지양

64. 행복한 차세대 크리스천을 위한 7가지 습관 - 칼만 카플란, 매튜 슈워츠

 

                                                             - 20권

 

 

5월에 읽은 책

 

 

65. 튤슈를 사랑한다는 것은 - 아지즈 네신

66. 홍루몽 1 - 조설근, 고악

67. 홍루몽 2 - 조설근, 고악

68. 모레 폭풍이 지날 때 - 캐런 헤스

69.~70. 비가 오지 않는 도시 1,2 - 티에닝

71. 홍루몽 3 - 조설근, 고악

72. 동물원에 가기 - 알랭 드 보통

73.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코끼리 모독 - 랠프 핼퍼

74. 가시도치의 회고록 - 알랭 마방쿠

75. 전쟁을 위한 기도 - 마크 트웨인

76. 반 고흐 미술관 - 파올라 라펠리

77. 돌과의 문답 - 이규보

 

                                                         - 12권

 

 

6월에 읽은 책

 

 

78. 불행한 재테크 행복한 가계부 - 제윤경

79. 세상을 바꾼 12권의 책 - 멜빈 브래그

80. 홍루몽 4- 조설근, 고악

81. 홍루몽 5 - 조설근, 고악

82.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 로커 - 이사카 코타로

83. 안녕, 캐러멜! - 곤살로 모우레

84.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 존 반빌

85. 붉은 죽음의 가면 - 애드거 앨런 포

86. 스파르타쿠스의 죽음 - 막스 갈로

87.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2 - 금난새

88. 사랑을 주세요 - 츠지 히토나리

89. 노란 코끼리 - 스에요시 아키코

90. 쿨 보이 - 사소 요코

 

                                                               - 13권

 

 

7월에 읽은 책

 

91. 부자 마인드 수업 - 월레스 와틀스

92. 네 멋대로 행복하라 - 박준

93. 렌트 - 이시다 이라

94. 세탁소 - 모리 준이치

95. 홍루몽 6 - 조설근, 고악

96. 잔소리 없는 날 - 안네마리 노르덴

97. 함메르페스트로 가는 길 - 마르야레나 렘브케

98. zoo - 오츠이치

99.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 기타무라 가오루

100. 율리시스 무어 6 - 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101. 루브르 박물관 - 알레산드라 프레골렌트

102. 홍루몽 7 - 조설근, 고악

103. 가면 - 카를 요한 발그렌

 

 

                                                       - 13권

 8월에 읽은 책

 

104. 플라이 인 더 시티 - 신윤동욱

105.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 설흔, 박현찬

106.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 오츠이치

107. 홍루몽 8 - 조설근, 고악

108. 자유와 인간적인 삶 - 김우창

109. 끌림 - 이병률

110.~111. 축소지향의 일본인 1,2 - 이어령

112.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 - 김영숙

113. 가만히 좋아하는 - 김사인

114. 센스영어 - 조영민

 

                                                - 11권

 

 

 

9월에 읽은 책

 

115.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 츠지 히토나리 

116. 아버지의 그림 편지 - 곤살레 모우레

117.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알려준 고양이 - 루이스 세뿔베다

118. 슬로 굿바이 - 이시다 이라

119~120. 바람의 화원 1,2 - 이정명

121. 행복한 가족의 100가지 비밀 - 데이비드 나이븐

122. 과학, 우주에 마법을 걸다 - 에르빈 라슬로

123. 랭보 1 - 클로드 장콜라

124. 논술, 사고 치다 - 공성수

125. 일요일의 마음 - 이남호

126. 에드워드 호퍼 - 롤프 귄터 레너

127. 성스러운 테러 - 테리 이글턴

 

                                               - 13권

 

10월에 읽은 책

 

128. 살았더라면 - 티에리 코엔

129.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 - 박지환

130. 대유괴 - 덴도 신

131. 늑대의 눈 - 다니엘 페나크

132. 낙천주의자 캉디드 - 볼테르

133.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사강

134. 아내가 결혼했다 - 박현욱

135. 달콤한 나의 도시 - 정이현

136. 스승의 옥편 - 정민

137.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 고골

 

 

                                           - 10권

 

 

* 아직 리뷰 쓰지 않은 책 - 달콤한 나의 도시, 스승의 옥편,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이 책은 두번째 읽는 건데 또 써야겠지?^^)

 

 

 

 

- 10월에는 정말 탱탱 놀면서 독서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리뷰가 세편이나 밀려있고...

권수는 작아도 만족스러운 것은 제가 읽고 싶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겁니다..^^

아핫.. 정말 뿌듯하네요.. 목록은 다양함 보다는 읽고 싶은 책에 치우쳐서 좀 그렇긴 해도..

간만에 뿌듯한 독서를 해 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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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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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이 책이 세계 문학상을 받으면서 세간의 이목을 많이 받았었다. 괜히 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면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터라 궁금해 하면서도 멈칫 거렸던게 사실이다. 거기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똑같은 책을 읽는다고 하면 왠지 그 책을 피하고 싶어 읽기를 미루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인을 꼬득여 선물로 받아내긴 했지만 이제서야 이 책을 논하려고 하니 뒷북 치는 느낌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시류에 휩쓸리기 싫었노라는 핑계를 댈지언정 지금이라도 읽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책 제목을 보고 단순히 아내가 결혼을 했다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당연히 자신의 아내에 과거형이 붙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예측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아내는 자신에게 현재형이었으며 아내의 결혼도 현재형이였다. 이런 사실에 얼떨떨 했으면서도 책을 읽어가면 갈수록 깊은 몰입을 당해 버리고 말았다. 아내 인아의 태도와 달변에 짜증이 났고, 그런 인아를 떠나지 못하는 남편 덕훈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쩔 땐 책을 잠시 덮고 숨을 내쉬며 '이건 소설이라고, 열 내지 말자' 라며 스스로를 다독일 정도였다.

 

  분명 인아는 중혼을 했다. 법적으로는 덕훈과 엄연한 부부이지만 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내가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무어라 비난할 수 없는 것은 인아는 덕훈에게 이 모든 사실을 알렸고, 덕훈에게 결정권을 줬으며, 덕훈 스스로가 선택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인아의 설득이 있었다고 해도 덕훈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인아의 입장보다 덕훈의 입장에서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덕훈은 인아와 헤어지기 싫었고, 인아도 덕훈과 헤어지기 싫어 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결혼 하기를 원했다. 덕훈이 물러서면 되는 일이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인아는 덕훈을 회유하기 시작 했고 인아를 놓치기 싫은 덕훈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덜컥 아내의 결혼을 허락해 버렸다. 결국 덕훈은 인아와 함께 부부라는 이름 외에 새로운 형태의 가족의 길에 동참하는 참여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전개는 축구 이야기와 함께 이루어 졌다. 분명 덕훈이나, 책을 읽는 나나 인아의 입장에서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자연스럽고도 교묘하게 축구를 빌어 중혼을 설명하고 납득을 시키고 있었다. 그 주역에는 덕훈과 인아가 좋아하는(인아의 새로운 남편까지도) 축구가 있으니 그 오묘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처음에 덕훈은 축구로 인해 인아와 만나게 된 계기를 기뻐하며 열심히 축구를 찬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아와 덕훈의 관계 변화에 따라 자신의 처지를 절박하게 알리다 결국은 스스로를 설득 시키는 결론으로 끌어가고 있었다. 그런 덕훈의 변화와 함께 얽혀가는 축구가 있었으니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에서 나 또한 서서히 중화되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수한 가능성들을 뒤로한 채 넷이서(그들의 딸 지원을 포함해서) 뉴질랜드로 떠나려는 마무리로 책은 끝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주제의 제시도 명확하고, 축구와의 비교도 독특했으며, 중혼이라는 색다른 소재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결말을 향해가면 갈수록 꾸물꾸물 올라오는 아쉬움은 피할 길이 없었다. 저자도 민감한 문제인만큼 최선책을 찾아 동분서주 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던게 최선책이라 할 수 없었던 것 처럼, 그들의 떠남도 최선책이라 보기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최소화 했으면서도 아이가 태어나자 앞으로의 상황을 문제 삼아 떠나려 하는 모습은 도망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중혼이 허영될 수 없는 현실의 벽을 아이의 탄생으로 인해 급하게 실감하는 티가 역력하게 나타 났다. 아이가 없었을 때는 인아가 중간에서 워낙 잘해서인지 두 집안 사이에서의 문제점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인아는 덕훈과 또 다른 남편의 사이만 완화 된다면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아이가 없더라도 온전한 가정의 형태로 보기 힘들지만, 나의 가치관으로는 그들의 모습을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르고 있었다.

 

  저자는 속시원한 결말 대신 오픈 된 결말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져 주며 마무리를 해 버렸다. 늘 그렇듯 그 화두를 붙잡고 나름대로 나만의 결론을 상상하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저자의 결말에서 생각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중혼이라는 개념을 차치하더라도 그런 형태의 사랑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확률이 낮다 하더라도 한 사람만 사랑하며 살고 싶은 소망을 져 버리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단지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보았을 뿐이다. 나의 사랑은 내 몫이므로 나의 의지대로 만들어 가면 된다 생각할 뿐, 더 이상 그들의 사랑에 토를 다는 것은 무의미 하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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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범우문고 62
F.사강 지음 / 범우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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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끔씩 책 제목으로 예상하는 책 내용이 판이하게 빗나가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책 제목으로 책의 내용을 간과한다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예상했던 장르나마 무참히 빗나가는 책들. 그 책들을 볼때마다 역시 책은 읽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여서 궁금증은 풀었기에 조금은 후련하지만, 사전 지식 없이 제목만 들었던 책이라 어떤 내용일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책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왠지 철학이나 산문일거라는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순전히 브람스라는 이름 때문이었는데, 아직도 내게는 브람스 같은 음악가를 논하는 클래식에 역간의 허영이 남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람스를 좋아한다고 묻는 것도 아니고 강요도 아닌 애매한 제목 앞에 무언가의 무게감이 전해져 올거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이건 연애소설이다. 그 사실이 처음엔 약간의 허무함(?)으로 다가왔지만 읽고나서 뻔한 스토리의 쓴맛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뻔한 스토리를 어느 정도 예상 했기에 쓴맛이 묻어 나지 않는 모순일 수도 있겠지만 한번쯤은 여주인공 폴르의 내면에 들어갈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폴르는 연인 로제가 곁에 있어도 늘 고독한 여인이다. 만족스러운 자신의 일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매일매일 만나지만 그녀의 내면의 공허는 쉬이 채워지지 않는다. 연인이 있어도 기다림으로 주말을 혼자 보내야 하는 것처럼 그녀의 마음엔 무엇이 그토록 채워지지 않는 것일까. 그런 그녀의 앞에 시몽이 나타난다. 자신보다 14살이나 어린 그 청년은 그녀에게 불꽃같은 마음을 던지고 그녀는 시몽에게 집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몽의 사랑 앞에 그녀 전부를 던지는 것도 아니고 로제의 외도로 인해 시몽이 집착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그녀는 두 남자 모두에게서 끌어 넘치는 열정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것은 그녀 내면의 비어있음 일지도 모르고 연륜에서 나오는 익숙함일지도 모른다. 시몽의 곁에 있어도 로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고 로제의 곁에 있어도 그녀가 느끼는 고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폴르 자신이 채워야 하는 내면의 행복이지 사랑하는 사람이 온전히 행복의 주역이 되는 것이 아닌 인간 본연의 고독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차분하다. 시몽과 로제 사이에서의 혼란을 느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누구 곁에 있건 두 사람을 공유하고 있다. 그 공유는 두 사람을 다 놓칠 수 없다는 욕심이 아니라, 오히려 두 사람 다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고무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남자 사이에서 그녀는 계속 방황할 수 만은 없었다. 마치 세상을 달관한듯한 그녀의 정신세계는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었지만 커다란 변화를 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두 사람과의 이별을 모두 겪은 후 결국 로제의 곁에 더 시들어 버린 상태로 돌아가게 되지만, 그것을 돌아감이라고 해야 할지 머무름이라 해야 할지 판단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진부함이다. 오히려 시몽의 곁에서라도 삶의 희열을 느꼈다면 시몽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몽과의 극복될 수 없는 한계(나이 차이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터울의 공백이 더 컸을 것이다.)를 깨닫고 익숙함 밖에 느낄 수 없는 로제 곁에 머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녀를 바꾸는 것은 다른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의 고독과 외로움은 어떤 식으로든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 소설은 절대 격정적인 내용이 아니다. 불꽃 같은 태워짐도 마음에 드리워지는 상처도 그리 깊지 않다. 회한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생명력만 존재할 뿐이다. 그 가운데 폴르에게 찾아드는 로제와 시몽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폴르의 삶에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 그것들만 확인하게 되는 셈이다. 폴르의 삶에 사랑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온전히 사랑에 목메이지도 못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느낌이다. 우리가 올인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랑도 어쩌면 폴르의 내면에 비춰지는 것들을 감추고 있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사랑으로 인해 내 삶에 빛이 비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폴르의 내면이 우리와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 그 사실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또 다른 나를 꺼내서 덧입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다 폴르처럼 외롭기에. 그리고 고독하기에.

 

  저자는 이 소설은 24살 때 썼다고 한다. 현재의 나보다 3살 어린 나이에 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조금은 징그럽게 느껴진다. 소설속의 폴르의 내면을 자유자재로 끌어내는 그녀의 나이가 걸려서겠지만 놀라움도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성숙하다 못해 완숙미가 느껴지는 심리묘사는 저자의 내면과 직결된다는 생각에까지 미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가 그려내는 폴르의 내면 앞에서 우리는 당당해질 수 없을 것이다. 더더군다나 그녀의 나이를 걸고 넘어질 수도 없다. 폴르는 나와는 분명 다르지만 비슷함을 안고 있기에 폴르의 내면을 무시할 수가 없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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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주의자 캉디드
볼테르 지음, 최복현 옮김 / 아테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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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담 보바리'를 읽지 않았다면 캉디드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스쳐가는 수 많은 책들 중에서 나와 인연이 닿지 않으면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는 책들 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담 보바리'의 해설에서 캉디드가 나온다. 주인공 보바리 부인이 연애소설을 읽지 않고 한번이라도 캉디드를 읽었더라면 그렇게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았을 거라는 견해가 들어가 있다. 도대체 볼테르의 책이 어쨌기에 이 정도란 말인가. 당장 구입해서 읽어 봤지만 '철학소설'이라는 장르와 흡인력 없이 다가오는 책의 첫 부분을 읽다 팽개쳐 버렸다. 그게 작년의 일이었다.

 

  1년이 지난 후에 이 책을 꺼내든 것은 그 사이에도 다른 곳에서 볼테르의 책에 대한 언급이 많아 궁금증만 는 이유도 있었다. 거기다 읽다만 책의 목록에 올라와 있는 '낙천주의자 캉드디'가 몹시 눈에 거슬렸다. 저걸 빨리 읽어야 할텐데 하다가 늘 망설임만 커가고 있었다. 큰맘을 먹고 다시 꺼내들고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그러나 왠걸. 책을 들자마자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분명 작년에는 흡인력 없다고 팽개쳐 두었던 책이였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역시 책도 읽는 때가 있는 것일까. 이런 내막이 있었기에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무엇 보다도 1년 넘도록 질질 끌었던 책을 읽어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 후련했다. 그러나 책 속의 캉디드를 생각하고 있노라면 이런 후련함이 오래 가지 않는다. 낙천주의자 캉디드라고 해야 할지 불행한 캉디드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캉디드는 툰더 텐 드롱크 성에서 남작의 딸 퀴네공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쫓겨난다. 지상의 낙원이라 여겼던 그 성에 아름다운 퀴네공드와 철학자 팡글로스 선생님을 두고 온다는 사실이 캉디드는 내키지 않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캉디드는 수 많은 불행을 겪고 놀라운 만남을 갖게 된다. 끔찍한 전쟁, 죽음, 사기등 그 안에 내제된 삶의 철학을 겪으며, 유럽과 아메리카가 대부분이었지만 여러 대륙을 여행하게 된다. 자신의 운명에 드리워진 삶을 피하다 보니 그렇게 여러 곳을 여행한 결과도 있었지만, 캉디드는 스승 팡글로스의 진리를 확인하고 싶었다. '모든 것은 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스승의 말을 무작정 좇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읊어대는 이 구절 때문에 캉디드의 곁에는 크고 작은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캉디드가 팡글로스의 말을 이해하고 실천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그 갈급함 때문에 그가 여행을 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살인과 배신을 일삼는 캉디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 하다.

 

  퀴네공드를 구하려고 그 모든 것을 감행할 때도 많았지만 그녀는 캉디드의 환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때가 더 많았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틈타 계획없이 동선을 끌어가는 모습은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난해하게 만들었다. 그가 소중해 마지 않는 사람들이 죽었다 살아나고 꿈의 땅에 도착하기도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찾고자 하는 것을 알아가기엔 세상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팡글로스와 캉디드는 '모든 것을 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를 믿으며 낙천적인 사고를 갖으려 하지만 그들의 상황은 그런 낙천주의를 민망하게 만드는 것들 뿐이었다.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물질을 뺏앗거나 얻으려고 달려드는 이들에 지나지 않았으며, 도처에 그들을 위협하는 것들이 널리고 널려 있었다.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고 심오함을 품고 이상향을 좇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시골에서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는 친구들과 농사를 짓고 살아야 할 운명에 처하고 만다.

 

  거기다 캉디드가 엘도라도를 버리면서까지 찾아 나섰던 사랑하는 퀴네공드는 생명럭을 잃어 버린 여인으로 전락하고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따라 그녀와의 결혼을 감행한다. 결국 캉디드에게 남은건 작은 땅과 오두막, 변해버린 여인, 그리고 독특한 친구들 뿐이다. 그들이 그 공동체를 이끌어 가지 않는다면 당장에 먹고 마실 것이 사라져 버리기에, 철학에 대해 진리에 대해 운운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시골의 오두막은 그들의 처음 열의를 모두 다 빼앗아 버린 종착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퀴네공드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적이 있다. 한때는 철학을 운운하고 남작의 딸로써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던 그녀였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위치와 그녀에게 닥친 불행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가고 말았다. 비단 불행이 그녀에게 닥친 것만은 아니지만 자신이 가진 것조차 잃어 버릴 정도의 열정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퀴네공드가 성에서 호위호식하며 살고 캉디드만이 온 세상을 떠돌았다면 과연 그녀 나름대로의 철학을 지킬 수 있었을까. 혹은 캉디드는 아름다운 성에서 그녀만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생각했을까. 그 안에서는 낙천적인 사고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캉디드가 여행하면서 겪게 되는 대부분의 불행이 낙천주의를 비판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옹호한 것도 아닌, 세상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물론 소설적인 요소의 드러남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캉디드와 그의 주변 사람들이 시골 농가에서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끝으로 맺어지는 책이 의미를 간과하기란 쉽지 않다. 희망적인 요소를 조금은 남겨 두었다 하더라도, 캉디드가 겪은 것들에 비하자면 무엇을 버리고 건져야 하는지 헷갈릴 뿐이다. 그런 여지의 채움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나 역시 그들만의 독특한 공동체와 의식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들이 결코 조화를 이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작은 세계를 매일매일 마주쳐야 하는 그들에게서 더 이상의 불행은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한가닥의 긍정적인 사고라도 붙들기를 바라는 마음은 절대 그들을 동정하고 있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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