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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더라면
티에리 코엔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한 청년이 자살을 하려고 한다.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꽃다운 20살의 청춘을 마감하려 한다.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신을 원망하며, 그의 존재를 부정하며 지금의 절망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것도 그의 생일 날 약, 위스키, 마리화나에 생의 마지막을 걸려고 한다. 사랑하는 그녀가 눈에 아른거리고 부모님이 눈에 밟혀 잠시 망설여지지만 그는 약과 위스키를 삼킨다. 그렇게 지고지순한 사랑에 상처를 받은 채 삶을 포기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의 자살은 일러도 너무 이르다. 사랑의 아픔을 이겨보지 못하고 자살을 한다는 것이 이르다는 것이 아니라, 책의 첫장을 열자마자 그의 절망이 드러나며 자살하려 한다는 것이 이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약을 삼키고 위스키를 마셔 버림으로써 잠시 다음 이야기의 전개에 의문을 갖게 한다. 그가 죽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만 짐작할 수 있을 뿐, 어떠한 모양으로 그려질지 의아하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결국 그는 다시 깨어난다.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던지간에 상황을 파악해 보려 하지만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자신이 그렇게 원했던 빅토리아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빅토리아는 제레미에게 나긋나긋하다. 현실이 아닌 꿈 같은 상황에서 정신을 차려보려 하지만 자신이 자실을 하려했던 순간만 기억날 뿐, 빅토리아가가 왜 자신곁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제레미가 자살했던 날로부터 꼭 1년이 지난 자신의 생일이라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1년의 시간, 그 공백기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제레미가 기억하려고 애써도 자살 후의 일들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빅토리아의 말을 들어 봐도 자신이 정말 그랬는지 확신없는 상태에서 솔직하게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빅토리아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지금의 행복을 만끽하려 하지만 무언가가 석연찮다. 기억상실증이라고 하기엔 1년의 일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의아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마치 다른사람이 자신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듯, 하고 있는 일도 친한친구도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기로 하고 입원을 한 제레미는 잠이 들기 전, 이상한 기도 소리를 들으며 알 수 없는 노인의 형태를 본 후 정신을 잃고 만다. 그러나 그가 깨어났을 때는 병원에 입원했던 어제가 아니라 2년의 세월이 흐른 자신의 생일날이었다. 자기 곁엔 빅토리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있었고 한 가정의 단란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상했다. 2년의 시간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2년의 흔적을 좇고 자신의 위치를 찾아 보려 하지만 공중에 붕 뜬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병원에서와 똑같이 갑작스러운 기도 소리와 노인의 출연으로 잠에 빠져들고 그는 계속해서 시간을 건너 뛰며 자신의 생일날 깨어난다.
그는 깨어 날때마다 자신의 위치와 가족들의 상황을 파악해야 했고 언제 잠이 들어 깨어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빅토리아와 두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또 다른 제레미는 가족과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 악랄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의 절정에서 진짜 제레미로 돌아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지만, 가짜 제레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준 상처를 캐내 가면서 잃어버린 삶 보다는 그들의 행복을 찾아주려 애쓴다. 그것은 가짜 제레미가 가족들에게 접근을 못하게 하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조취를 취해보긴 하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자신은 불행에 불행을 거듭하여 빅토리아와 두 아들, 자신의 부모님의 삶도 망쳐 버리고 깊은 상처와 회한과 운명에 관한 단념으로 늙어 갈 뿐이었다.
자신에게 삶이 얼마 남지 않았았을 때, 한 랍비와 만나게 된다. 그 랍비는 자신이 감옥에 있을 때 자신의 상황을 모두 고백하고 도움을 청했던 랍비였다. 그때 랍비는 자신의 말을 다 들은 후 짐작을 하면서도 결국 답을 주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낄 때, 그 랍비는 자신이 왜 그런 상황에 놓여 있는지 말해준다. 제레미는 자살을 한 날 실제로 죽은 것이다. 가짜 제레미가 뜯어 버렸던 시편을 중심으로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 보니, 그의 자살은 신에 대한 도전이었고 신은 그에 대한 응징을 했으며 결국은 용서를 해주신다는 의미였다. 제레미는 자신의 그런 상황에서 용서를 빌어 본 적이 없다. 랍비의 이야기를 들은 후 자신이 충실히 살아갈 수 있었던 소중한 삶, 가족의 소중함,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잘못을 깨달으며 용서를 빈다. 그리고 그는 목구멍으로 튀어 나오는 알약을 뱉기 위해 빅토리아의 이름을 부른다.
이 기이한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뜨거움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제레미처럼 신에 대한 기만이라기 보다, 나의 삶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대충 살아 버리는 교만 때문이었다. 제레미의 자살 이후로 펼쳐지는 그의 삶은 가슴이 저릿저릿 거릴 정도로 불행하고 상처 투성이인 삶이었다. 제레미 자신에게만 그 상처가 닿았다면 견딜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은 제레미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이 누굴까, 왜 저러는 것일까 제레미 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수 많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제레미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져 버렸다. 선한 모습이 드러 나는게 자신의 모습이라면 그 반대의 요소가 짙게 나와 버렸던게 가짜 제레미였던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고 거부할 수 없는 제레미의 독특한 삶을 보면서 많이 우울했었다. 너무나 어두웠고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모든것을 제레미는 되돌려 보려 했지만 가끔씩 깨어나는 자신의 생일 날 하루로는 부족 했었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는지 뼈저리게 느낀 셈이니 그 과정은 가혹했으나 다행일지도 모른다. 반전이 있었기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제레미가 되기 전에 내 삶 뿐만이 아닌, 타인의 삶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 관계 속에서 때로는 실수도 하고 상처도 주지만, 그런 소중한 사람들로 인해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인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했기에 신의 개입을 나타냈을지는 모르나, 용서를 빌면 된다 생각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나타내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니였을까. 모든것을 쉽게 생각하지 말지어다. 그 댓가는 가혹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