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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
김영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국내에서 열리고 있는 오르세전이 9월 2일 까지이다. 내가 좋아하는 고흐 그림도 몇 점 있고 내가 파리로 가지 않는 한, 볼 수 없는 그림들이 국내에 전시되고 있다 생각하니 며칠들어 연일 안절부절이다. 진즉부터 전시회의 일정을 알고 있었지만 다음 기회로 넘긴 것이였는데, 이 책을 읽고 그만 병이 나고 말았다. 내가 그림에 대해서 안다면 얼마나 알겠는가. 이건 다 저자 때문이다. 너무나 재미나게 친근하게 써내려간 글 때문에 그림이 보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다. 미술책을 읽다 킥킥 댄 것도 처음이고 그림에 얽힌 배경이 이렇게 재미나게 다가오다니, 저자가 사랑스러워서(?) 곤란할 지경이다. 그렇게 저자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어디선가 낯이 익은 듯한 분위기였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전시회를 보고 너무 맘에 들어서 샀던 책, '밀레와 바르비종파 화가들(공저)'에서 마주친 적이 있던 저자였다. 그나저나 9월 2일까지인 오르세 전을 어찌 갈 것인지 나의 관심은 오로지 그곳으로만 쏠리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오르세전이 열리고 있어서 잠시 루브르 박물관을 무시한 채 호들갑을 떨었지만 루브르 박물관의 그림들에 약간의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최근에 읽은 같은 출판사에서 발행된 '루브르 박물관'의 영향인 것 같다. 박물관을 중심으로 구성된 책이지만 절제된 설명과 작품 선정에 실망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책 속의 루브르는 전혀 색다르게 다가온다. 전에 읽었던 책들과 중복되는 그림도 있고, 얽힌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훨씬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저자의 글솜씨는 앞 부분에서 말했으니 각설하더라도 그런 차이를 보였던 것은 시각의 차이가 아니였나 싶다. '루브르 박물관'은 박물관 안에서의 시각으로 보았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산책하기 좋게 주변의 것들에서 부터 풀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의 것들 이라고 해서 중점을 벗어난 잡다한 것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기 쉽게 역사적 배경에서부터, 시대상을 비롯한 화가의 개인적인 얘기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 그림 속으로 초대를 하고 있느 느낌이였다. 거기다가 저자가 나름대로 구축한 동선을 따라가면, 미술관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으니 책의 제목 또한 명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책을 읽기 전 왜 루브르와 오르세 박물관의 산책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부끄럽게도 두 박물관이 상당히 가깝고,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데에서 오는 무지 였는데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는 저자를 따라가기만 하면 루브르에서 오르세까지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선택한 그림들과 저자의 풀어나가는 방식이 지극히 개인적이다 말할지 몰라도 저자 또한 누누히 강조 했듯이, 루브르와 오르세의 그림을 다 보기는 벅차다. 그러므로 이 책으로 인해 루브르와 오르세의 역사는 물론, 전시되어 있는 작품을 통해 미술계의 흐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건 확실하다. 또한 중구난방 식으로 내 안에 담겨있는 주워들은 지식들이 이제서야 자리를 잡은 것 같은 후련함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그림들이 많아서 그림에 끌려가는 들썩임이 아닌, 각 나라의 회화를 중심으로 인상주의 이후까지의 그림들을 순차적으로 이끌어 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회화의 특징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무궁무진한 흥미로운 것들이 나를 더욱 즐겁게 했다. 그 이야기에 끌려 중요한 그림들을 지나쳐 버리고 다시 돌아오는 일들도 빈번 했지만, 방대함으로 겉핥기 조차 두려워하고 있었던 루브르와 오르세를 이토록 즐겁게 만날 수 있는건 흔치 않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게 당연히 낫겠지만 지금껏 감상했던 짧은 소견을 밝히자면, 그림도 마찬가지로 얇게나마 사전지식이 있으면 더 재미나다. 그림이 너무 강렬해서 감상한 이후에 배경을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런 경우는 만나기 드물기에 사전지식을 갖춘 후에 보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이런 연유로 사전지식이 조금 갖춰졌다고 이 책을 들고 가서 직접 그림을 보고 싶어서 이렇게 안달이 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들고 오르세전을 본다고 해도 책에서 본 그림이 중복되는 경우는 희박하겠지만, 거대한 미술전에 주눅 들지 않고 친한척 할 수 있어서 저자에게 감사할 뿐이다.
문학을 통한 몰입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내가 왜 책을 읽는지 왜 내가 책을 좋아하는지를. 그러나 그런 몰입은 책을 통해 다양화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으로 인해 깨달아 가고 있었다. 지금껏 무지 속에서 헉헉대며 그림을 보아온 시간이 헛되지 않다. 마치 이런 책을 만나는 것을 예비하고 있었듯이 그런 시간들이 찰나의 과정으로 느껴지는게 오버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무겁지 않고 명쾌하게 나의 마음을 씻겨주는 '루브르와 오르세의 명화 산책'. 그야말로 한 번의 산책으로 구름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