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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 마음을 읽는 괴물, 헤라클레스 바르푸스의 복수극
카를 요한 발그렌 지음, 강주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을 감추느라 혼이 났다. 짐짓 책에 집중하는 척 했지만 책과 상관없이 삐져 나오는 생각들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의 흘러나옴으로 인해 헤라클레스에게 내 마음의 구석진 곳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였다. 이런 나 였다 해도 헤라클레스는 내 마음을 진즉 읽었겠지만 그래도 감추고만 싶었다. 내게서 일어나는 생각들이 전부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런 생각들은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이고 삐뚫어진 생각들이 더 많아서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헤라클레스를 통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을 끄집어 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헤라클레스가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 온 마음을 들켜버린 상대방은 자신이 덮어 두었던 베일에서 벗어나기 일쑤였다. 그런 변화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쁜 영향을 미칠 때도 있었지만 헤라클레스 앞에서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느낌은 그다지 나쁠 것 같지는 않다. 헤라클레스가 내게 나쁜 의도를 품지 않는다면, 나 또한 헤라클레스에게 적대감을 품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렸을 때 한번쯤은 초능력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그 능력 가운데 상대방의 마음을 알면 좋겠다는 갈망도 품어 봤을 것이다. 내가 그런 생각이 간절했을 때는 아마도 짝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알고 싶어 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싶어 애간장이 타들어 갈때 말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특별함인지 정의를 내릴 수가 없었다. 엄마의 생명을 빼앗으며 매음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의 외모는 도저히 인간이라고 생각될 수 없었다. 비슷한 시간에 바로 옆방에서 태어난 헨리에테와 비교했을 때는 더더욱 그의 운명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상상조차 하기 싫은(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그의 외모속에 남다른 능력이 감추어져 있었으니 그의 존재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들리지도 않고 말을 할 수도 없는 그는 사람의 마음을 읽으며, 사람의 마음 속으로 말을 걸 수 있고, 그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능력은 오로지 헨리에테만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너무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있고 헨리에테 또한 헤라클레스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라나는 곳은 매음굴이었고, 그들의 미래가 불안정한 가운데 헤라클레스의 고충은 이미 정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기이한 외모에다 그런 능력을 갖추었으니, 헤라클레스에게 적대감을 품기란 너무나 쉬웠다. 그의 능력을 조금만 오해해도 사탄으로 불리울 수 있는 시대였고 그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많았다. 그가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만 해도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당황스러워(내면의 변화를 통한 외부의 드러남으로)했으니 헤라클레스가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란 힘들었다. 더욱이 그의 능력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인다는 것은 더 어려웠다. 특히나 그의 능력을 판사와 성직자들이 가만두지 않고 목숨을 위협했으니 헤라클레스는 위험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 종교를 내세워 헤라클레스를 처형하지 못해 안달이 난 그들 때문에 결국 헨리에테를 잃고, 그는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에서 완전히 돌변한다. 오로지 헨리에테를 만나기 위해 삶을 연명했고, 그녀와 함께하기 위해 하루하루 고난을 이겨낸 그에게 그녀의 죽음은 지금껏 참아왔던 분노를 폭발시키기 충분했다. 그래서 헨리에테를 죽인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고, 소중했던 사람들을 빼앗아 간 사람들까지 모조리 죽인다. 처절한 복수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 복수의 중심에 헤라클레스가 직접 나서지 않는다. 자시의 능력을 발휘해서 타살을 유도하거나 자살에 이르게 할 뿐. 그의 능력이 가장 악하게 드러나는 순간들이었다.
그런 반전과 복수를 지켜 보면서 통쾌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이에는 이, 권선징악 등 여러가지 이념이 떠오르겠지만 그런 헤라클레스를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도무지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그의 외모와 남다른 능력은 기이하달 수 밖에 없지만, 현 세계에서 철저히 거부 당하는 헤라클레스보다 그들에게 복수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헤라클레스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면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신들의 분노와 잘못된 욕망을 헤라클레스의 오류로 돌리며 그를 없애려 하는 부조리에 씁쓸해지고 말았다.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걸 걸었던 그에게 세상이 던져주는 댓가는 참혹했다. 그 댓가를 결국 그들이 받았지만 헤라클레스의 내면에는 그들과 같은 모순이 존재하지 않았다. 헤라클레스가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면서도 사랑하기를 원했던 헨리에테를 빼앗아 갔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세상은 그에게 단 한가지의 희망도 품을 수 없게 만드는 악랄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런 헤라클레스를 살린 것은 헨리에테였다. 마음속에 퍼지는 헨리에테의 부탁에 그는 모든것을 등지고 그녀와 살기를 갈망했던 땅, 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헤라클레스의 후손이 헨리에테와 헤라클레스 사이에 태어난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오로지 기이함으로만 채워졌고 우울함이 나를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첫 이미지와는 달리, 흡인력 있고 헤라클레스에게만 집중되지 않는 다양한 시각으로 비춰져서 독특했다.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처럼 시대를 잊게 하는 감각 또한 뛰어났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같은 존재를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은 여전히 남아 있어 쓰디 쓴 회의감을 남겨주고 있었다. 이 쓴맛을 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 대한 적대감을 나와 같은 존재에게 표출해서 이러한 씁쓸함을 더 키우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헤라클레스의 삶으로 인해 증오와 중용을 충분히 보아왔기에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