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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에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 이라는 책을 읽었다. 고딕소설 총체라는 시리즈로 나온 책이였는데 나에겐 낯선 장르여서 애를 먹은 기억이 난다. 독서를 즐긴 후 편독을 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장르를 구분짓지 않는 편인데 고딕,호러,추리는 나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호기심이 일어 접근을 해도 결국은 책에 뒤집히는 나를 보며서 드는 안타까움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 책에 실린 10편의 단편을 보면서 그런 과정을 고스란히 거쳐 왔다고 생각되어 진다. 첫부분의 단편들을 대하며 낯설긴 해도 괜찮다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도저히 동화될 수 없는 이질감이 나를 지배했다. 나의 위치가 관찰자의 입장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수긍도 할 수 없기에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붉은 죽음의 가면'이 고전적인 호러라면 'ZOO'는 현대판 호러였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는 세계였다. 세상에는 분명 기이한 일이 많다. 믿지 않으면 안되는 일과 믿겨지지 않는 일들이 넘쳐나는 세계에 살면서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한 것 같다.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여 쉬쉬하는 이야기가 많겠지만 그 어두운 면을 이 책을 통해서 경험해 버린 느낌이다. 허구라는 사실을 떠나 어둡고 우울함이 내게 몽땅 전이된 느낌, 이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분명, 이 책 속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부정도 자신 없지만 비현실 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소설이 풍기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알 수 없는 곳에 끌려와서 토막 살인을 당하고, 자신이 말하는 대로 타인을 불행에 빠트리며, 자신이 살해한 사람들로 집을 짓는 책 속의 인물들을 가깝게 대할 수는 없다. 아무리 비현실적인 소설속의 이야기지만 이런식의 전개는 나에게 색다른 감흥을 준 것이 아니라 인상을 찡그리게 했다. 소설이다라는 설정을 벗어난 과민반응 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겐 작품의 완성도를 논할 여력도 낯선 장르를 즐길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목적이 분명한 것도, 불분명 한 것도 있었지만 그것을 헤아리기 전에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것 같다. 보여지는 것들에 현혹되어 낯을 찡그려 버렸으니 그 이면의 것들을 보지 못함은 당연하리라.
그러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분위기가 아니였다는 점이다. 번역자도 말했듯이 이 책의 분위기를 퓨어(감동과 눈물을 자아내는)계열과 다크(으스스하고 오싹한 느낌을 주는)계열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지금껏 말했던 것은 다크한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것들이였다. 으스스하고 오싹하다는 느낌보다는 인간의 본성중 악랄함을 긁어내는 분위기에 너무 치중해 버렸지만 너무나 섬세한 상상을 하게 한 작가의 문체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다크한 느낌 속에서 허우적 거릴 때 어느정도 분위기를 중립시켜 주는 퓨어적인 느낌의 단편들이 있었기에 무사히(?)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비슷한 문체로 상반되는 분위기를 나타낼 수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의 작품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양지의 시>라는 단편은 돋보였던 작품이였다. 서정적인 문체와 반전을 가미한 전형적인 퓨어 분위기가 물씬 풍겨 높이 평가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렇게 하나하나를 따져 보자면 비슷한 분위기의 단편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극적인 묘사와 그들의 의도를 하나의 소설로 간과하고 넘어 가기에 꺼림직해서 불만을 토로한 것이지 각자 나름 대로의 특징을 지닌 작품들이였다. 관찰이 뛰어나거나, 추리력이 뛰어났고, 인간무상을 보여 주기도 했고, 자아 혼란을 빚어 내는 등 각자의 매력은 충분 했다고 본다. 단지, 내가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과 감흥을 이끌어 낼 수 없다는게 안타까울 분,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할 정도로 상반된 느낌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각자 다른 분위기의 단편을 대하다보니 이런 느낌이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마음에 온전히 내키지 않는 실망감. 이 모든 것이 나의 머릿속을 온통 헤집은 느낌이다. 그 과정 속에는 책에 몰두하다 보니 책 속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 와 현실과 나는 동떨어지게 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마치 비현실적인 영화를 보고 나오니 밖은 너무나 환해 우울함이 깃든 투동이 오는 듯한 느낌처럼.
더위를 쫓기 위해,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한 책으로 읽을 수는 있겠지만 너무 어두운 마음이 들때는 피했으면 좋겠다. 책 속으로 말려 갈지도 모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