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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의 죽음 ㅣ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1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세계사라면 절레절레 고개를 먼저 흔들지만, 스파르타쿠스라는 이름은 들어봄직하다.
역사에 획을 그은 로마시대에 그야 말로 획은 그은 인물이니 그럴 수 밖에.
그렇다고해서 스파르타쿠스에 대해 빠삭하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스파르타쿠스에 여전히 관심이 없었지만 스파르타쿠스와 만난 기억을 되살려 주는 이야기를 만났기에 장광설이 길어졌다.
책 제목에서 떡하니 스파르타쿠스를 강조해 놓았지만, 내가 스파르타쿠스를 기억하게 된건 6000개의 십자가가 나오는 부분에서였다.
책의 첫머리는 가장 중요할 것 같은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을 묘사해 놓고 있었다.
묘사라고 해도 영웅적인 죽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책의 시작을 알리는 부분이기에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읽어보게 만드는 조금은 귀찮은 구성이였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을 말할때 6000개의 십자가에서 생소한 인물이 아닌 어느 책에선가 만난적이 있는 스파르타쿠스를 떠올렸으니 아이러니한 구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내가 스파르타쿠스의 이야기를 듣게 된 책은 '철학 콘서트'에서 였다.
10인의 사상가를 실어놓은 책안에 예수가 지게된 십자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저자는 크라수스가 세운 6000개의 십자가의 잔혹함을 말하고 있었다.
그 십자가의 형틀을 따르자면 예수는 시대의 반항자라는 것인데 각설하고, 그 6000개의 십자가가 만들어지도록 이끈 스파르타쿠스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간단하게나마 스파르타쿠스를 만난 경험도 있겠다, 이탈리아 반도를 광기로 휩쓴 봉기군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읽을 수 있겠구나 하며 물만난 고기처럼 약간은 주책을 떨며 즐거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스쳐가는 인연이였으면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알려주는 시초에 불과했다.
예전에도 '칼의 노래'를 쓰면서 인물 소설의 난점을 얘기한 적이 있다.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는 것이 어떠한 시각에서 그 인물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확연하게 달라진 다는 것을 경험한 터였다.
그런 기억이 있었지만 인물소설이라고 하기에 가볍게 읽을 심산이였는데, 초반부터 저자의 문체에 길을 잃고 말았다.
우선 책을 이어나가는 관찰자의 시점이 혼동스러웠다.
스파르타쿠스도 아니였고, 제 3의 인물도 아니였고, 담담히 써내려간 시각을 의도했다 치더라도 수시로 바뀌는 느낌이 들어 안정감을 갖지 못했다.
거기다 인물의 특징과 사건의 드러남이 명확한 것이 아니라 모호하게 그려져 있어 안그래도 어려운 이탈리아의 이름들과 뒤섞여서 혼란을 야기하고 있었다.
또한 노예 반란의 지도자가 스파르타쿠스라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이 책을 대했다고 하지만, 노예 반란의 근원이 되는 것들이 상세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이 인간을 짐승보다 미개하게 취급하는 묘사는 쉴새없이 나오지만 노예들의 생활에 깊이 파고들어 동감을 유발시키지 못한것이 아쉬웠다.
이런 상황이였으니 스파르타쿠스라고 인물묘사가 뛰어났을 리는 없다.
또한 늘 스파르타쿠스 곁에 머무르는 부인인 아폴로니아는 디오니소스 신을 모신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욕정을 주체못하는 인물로 그려졌다는 인상만 남겼을 뿐이였다.
스파르타쿠스를 제대로 부각시켰다면 분명 그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명확성도 있었을 터인데 모든것이 뒤죽박죽인 느낌이였다.
처음부터 이러한 분위기다라고 고정틀을 만들어 놓고 모든것을 가시돋힌 눈으로 바라본 나의 시각이 문제일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사건이 되었던 봉기에서도 여전히 무관심한 구경꾼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책을 읽긴 읽었지만 스파르타쿠스에 대한 남음이 별로 없다.
노예 반란이라는 제대로 된 배경도, 스파르타쿠스가 어떤 인물인지도, 그가 어떠한 일을 이끌어 내고 죽음을 맞이했는지도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없고 온통 모호함 뿐이다.
거기다 문체는 갈수록 장황함을 더해 그 사이에서 모든것이 제멋대로 날뛰는 느낌이였다.
오히려 타 책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설명된 짧막한 소개가 더 그럴듯 하게 다가왔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듯 책의 푸념만 내뱉고 있는것은 책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못함을 심히 아쉬워 하는 것이리라. 그 주체가 내가 되었든, 저자가 되었든 간에.
결국, 또 한번 인물 소설에 대한 약점을 만나버리고 만 것인가.
스파르타쿠스여, 심히 애통해 할 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