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홍루몽 4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평점 :
조금씩 대관원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처음에 거대하게 느껴졌던 가씨 집안의 구조와 사람들이 조금씩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것은 책의 분위기에 적응을 해가는 모습이라 생각한다. 책 속으로 스며들어 갈 때 비로소 생경했던 모습들과 풍경이 낯설지 않게 다가올 것이고 끈끈함으로 맺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책 속의 인물들과 친해지는 방법인 것 같다.
인물사전에 명시된 그들의 운명이나 특징들을 접했다 하더라도 앞으로 수 많은 만남이 이루어질 터인데 그들과 친해지지 못했다면 책과 나, 인물들과는 동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4권째 그들과 동고동락하다 보니 서서히 그들 각자의 특징이 표면에 떠오른다.
가옥과 대옥의 감정대립의 진부함에 별 흥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집안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생활은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처음엔 집안에서 행해지는 사치와 형식적인 면들이 바깥 생활과는 너무 다르다는 느낌을 받고 나서 그들의 내부에 깊숙히 들어가지 못했던게 사실이였다.
그러나 집안에서 대부분 생활해야 하는 그들의 고충이 조금씩 느껴져서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워 지기도 했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가씨 집안의 내부와 생활을 보고 입이 떡 벌어지겠지만 그들은 바깥이 동경의 대상이 될 법도 한대 잘 버텨주고 있는 것 같다. 운명으로 받아들여 버리는 것인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최고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은 넓을지라도 그들의 누릴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그 한정된 가운데 살다 보니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낼 수 밖에 없는데 지루하지 않게 즐겁게 보내는 법을 어느정도 아는 것 같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시사회를 만든 것이다.
보옥과 가옥은 물론이고 보채,석춘,상운,이환,영춘을 중심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갖기로 하고 처음으로 치뤄진 시사회는 인상 깊었다.
떠오르는 주제를 놓고 형식에 맞춰가며 시를 짓고 발표하고 시상까지 하는 모습은 어떻게 하면 시가 저렇게 익숙해질 수 있을까란 감탄을 터트리게 되었다.
중국의 시이고 시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보니 그들이 지은 시에 완벽한 수긍은 못하더라도 그러한 행위가 대단해 보였던 것은 사실이였다.
어렸을 때 부터 귀한 집안의 자제들로 자라나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고 부유층의 사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모습이 있었기에 문학적인 요소가 깃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터였다.
가씨 집안의 일상을 다루되 시대상이 묻어 있지 않거나 늘 반복되는 삶의 파편들만을 늘어 놓았다면 쉽게 지루함을 느꼈을 것이다.
삶의 질은 다를지 모르더라도 삶을 살아가는 모양은 비슷하기에 진솔하게 펼쳐지는 가씨 집안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문화가 다르고 인식의 차이가 나기에 그들의 전부를 이해하지 못할때도 많지만 세월의 흐름을 따라 뒤쫓아 가는 나의 모습이 뿌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1/3 읽었지만 그들과 동고동락하는 것이 즐겁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소소한 일상을 다룬 소설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거창함 보다는 이렇게 소소함에서 퍼져 나가는 삶의 향기가 더 진귀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