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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미술관 ㅣ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
파올라 라펠리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4월
평점 :
내가 좋아하는 고흐임에도, 책을 보는 순간 무척 설레였음에도, 읽기에 앞서 두려움이 생겼다. 왠만한 고흐 책은 대부분 가지고 있는데 최근에 본 고흐에 관한 책이 무척 실망스러워서 이 책은 어떠한 형태일지 궁금하면서도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흐의 인생을 알고 그의 그림을 보면서도 늘 그에게 갈급하기에 진정한 고흐를 보기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내가 아는 고흐가 왜곡되게 나올까봐 전전긍긍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생각들 가운데서 이 책을 마주하였으니 걱정이 앞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심스레 첫 장을 열고 고흐의 그림을 대면하고 나니 무언가가 스르르 녹아버린 느낌이였다. 책에 대한 근심이 다 사라지고 나의 숨은 멈춰지고 그렇게 고흐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잠시 나의 편견속에 가두었던 것은 고흐가 너무 유명하다 보니 고흐라고 명시 되어 있는 책만 보면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것이였다.
책의 자질을 의심하고 얼마나 울궈 먹으려고 저러는 건지 거만한 자만심에 빠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흔히 보아온 고흐를 다루고 있지만 고흐 박물관 중심으로 고흐 얘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둬야 한다.
그렇기에 고흐와 테오의 편지, 그의 작품이 중점일 수 밖에 없는 고흐의 이야기는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비춰지고 있었다. 고흐의 박물관이 세워진 이야기며 맨 뒷장의 박물관 정보를 보고 있자니 고흐의 박물관에서 어슬렁 거리며 오디오 가이드 안내를 받으며 그림을 감상하는 기분이였다.
고흐 박물관에 관한 책이니 고흐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그림들을 다루고 있었고 '그림 속으로'라는 포인트를 주어 익숙한 고흐 그림도 상세하게 감상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또한 고흐가 거쳐온 도시의 명확한 이름이라든가(예를 들자면 앤트워프로 알고 있던 곳이 안트웨르펜으로 표기 되어 있었다.) 고흐가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이름이 최대한 원어로 표시되어 있어서 훨씬 더 신뢰가 가고 부드러운 느낌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이 책에 실려있는 고흐 그림의 질감이였다.
우리가 고흐 그림은 많이 알고 있지만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그림의 질감은 늘 놓치기 쉬웠다. 그러한 어려움을 이 책에서는 조금은 해소시켜 주고 있어서 고흐가 막 그려 놓은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였다.
고흐의 수채화도 있고 드로잉도 많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들은 파리, 아를, 오베르 시절에 그린 것들이 대부분이여서 어느정도 고흐 그림의 특징을 알 것이다.
그 중에서도 물감을 무척 두텁게 칠한 그림이 많은데 그 질감이 생생하게 살아나서 그림을 보다 뒤쫓아가면 고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자기가 마음에 드는 모티브를 발견하면 어떠한 두려움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고흐를 따라서 작열하는 태양, 비 바람이 몰아치는 바닷가를 거니는 느낌이였다.
그랬기에 그런 그림을 보고, 고흐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병 때문에 괴로워 했고 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으며 그런 무엇보다 고흐는 외로웠다. 그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그림 뿐이였고 그런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 녹록치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 외에는 언쟁과 광기와 고독만이 그를 감싸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뻔한 일화가 늘 고흐와 테오와의 편지 중심으로 고흐를 이해해야 하는 나 같은 독자들은 고흐라는 세계에서 빠져나와 좀 더 객관적으로 고흐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고흐를 관찰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 그런 고흐를 바라 보기가 용이했다.
잘 알고 있는 고갱과의 다툼, 밀레를 사랑하는 마음, 테오와의 소중한 관계가 진부하게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자세하게 친근감있게 다가왔다.
고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림 중심으로 설명과 에피소드가 이어지기에 너무 유명한 그림을 만날 수 없다고 푸념할 수도 있겠지만 고흐의 작품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고흐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은 흔한 경험이 아니다.
그 내면으로 가는 길은 여러갈래가 있고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고흐와 직접 맞닥뜨려서 혼란을 겪는 것보다는 고흐를 먼저 관찰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고흐에 대해서 들은 것은 많고 그의 작품도 여러 점 알고 있지만 그를 직접 느껴본 적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론 고흐 박물관 책자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고흐 박물관을 중점으로 다룬 이 책에서는 고흐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라고 과감히 말하고 싶다.
고흐를 바라볼 때, 그의 인생과 그의 그림에만 중점을 둔다면 고흐가 그림을 그리던 순간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붓 터치로 그를 느끼는 것과 그의 일화로 그림을 이해하는 것이 무리일지는 몰라도 하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듯 그 비어있는 캔버스 위에 고흐를 고루고루 그려 가기를 바란다. 그 고흐는 어느 누가 말했던, 누군가가 알고 있던 고흐가 아니라 나와 고흐와의 단 둘만의 추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타발견
p. 60 왼성된 -> 완성된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