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독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코끼리
랠프 헬퍼 지음, 김석희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지금껏 가장 사랑했던 동물은 초등학교 때 키운 누렁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와 집이 워낙 멀어서 새벽밥 먹고 학교까지 걸어간 기억이 있는데 누렁이는 학교근처까지 늘 나를 따라왔다.
아무리 쫓아도 쫓아도 돌아가지 않고 내가 학교에 도착하면 그제서야 내게 걱정을 잔뜩 시키며 사라졌다가, 하교길 집근처에서 어김없이 다시 나타났다. 그렇게 친했던 누렁이와의 추억은 너무 많은데 ,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누렁이는 팔려가 버렸고 누렁이를 잊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 그때부터 동물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또한 누렁이가 팔렸다고 했을 때 누렁이를 찾으러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였다.
하염없이 울고만 있을 뿐 잊어버리자고 다짐을 하는일이 내게는 최선이였다.
그러나 여기엔 좀 더 특별한 소년이 있다. 사랑하는 코끼리에게 모든 것을 걸고 팔려가는 코끼리를 따라 사랑하는 소녀도 두고 태평양을 건너려 했다.
나와 누렁이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특별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코끼리 모독과 브람은 같은 날 태어났다.
서커스단의 코끼리 조련사였던 브람의 아버지는 그 둘의 탄생을 보고 특별함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건 그들의 미래를 말해주기도 했고 험란한 길을 예비했던 것이기도 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코끼리 조련사인 브람의 아버지가 모독과 브람을 평생 고향집에 둘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 첫번째로 서커스단은 미국 사람에게 팔리고, 브람의 아버지는 죽고, 브람과 모독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헤어짐은 너무 빨리 왔다. 그러나 시련은 이제 시작일 뿐 평생동안 모독과 브람의 시련은 끊이질 않는다.
그 힘겨움이 나를 지치게 하기도 했다. 모독과 브람의 죽음이 크게 좌우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둘의 평생의 과정을 기록한 것이기에 고통과 슬픔은 너무나 질기고 모질었다.
그래서 순식간에 책을 읽어버릴 수가 없었다. 불행은 끊임없이 들이닥쳤고 그런 고난이 익숙했음에도 끝까지 안정된 모습없이 고통을 겪어야 했기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건 모독과 브람의 이야기였고 분명 가슴아픈 사실이였다.
그러면서 내가 마주하기 싫었던 것은 어쩌면 그들의 고난이 동물과 인간이기에 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을거란 생각을 하자 씁쓸해졌다.
분명 인간과 동물은 같은 중점에서 볼 수 없었고 그런 천편인륜적인 생각이 모독과 브람을 힘겹게 했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모독과 브람이 바다에 빠져 죽음을 맞이하려 했을 때 구조의 손길이 왔던 순간과, 그들이 오랜시간 헤어진 후 다시 만나던 순간에서는 펑펑 울어 버렸다.
인간과 인간에게서도 보기 힘든 사랑과 의리는 그 둘을 더욱 더 단단하게 해주었지만 그들이 겪어야 했던 가슴앓이는 너무나 컸기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울 정도였다.
서로의 향기를 알며, 모독의 배에서 우렁거리는 소리와 브람의 눈빛만으로도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렸고, 그렇게 사랑을 채웠갔다.
때로는 브람이 사람이였기에, 모독이 코끼리였기에 더 많은 아픔과 기다림이 존재했겠지만 그들은 평생을 서로의 갈급함을 이기지 못했기에 모든 것을 서로에게 쏟아부었다.
독일에서 머나먼 미국까지 모독을 따라간 브람과, 브람의 존재만으로도 살아가는 힘을 얻는 모독은 서로에게 감춰진 잠재력을 일깨워주며 그렇게 살아갔다.
그랬기에 그들이 생일을 같이 지내고 비슷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은 당연했고 그들의 죽음이 무조건 슬픈 것은 아니였다.
이미 그들은 나의 마음속에 생생히 각인 되었기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모독과 브람의 삶을 담담히, 그리고 자신의 존재는 드러내지 않으며 철저히 모독과 브람을 중심으로 써 내려간 저자의 노력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중간중간 차라리 삭제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잔인한 그들의 고통이 느껴져 힘겹고 우울했지만 모독과 브람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 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기에 그 둘이 견뎌 내는 것을 보고 숙연해 지기도 했다.
그 둘을 보고 있자면 내 표정은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면서도 미소가 지어지는 모습이였다.
슬프지만 기쁘고, 마음이 아프지만 아름다운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내 마음밭에 감동의 씨앗으로 심어졌다.
동물을 동물이 아닌 나의 벗으로 느끼는 마음, 그 마음이 있을 때 교감은 이루어지며 동물과 인간이라는 피상적인 운명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그것은 모독과 브람이 내게 남겨준 추억이였고 사랑이였다.
그런 모독과 브람을 생각하면 나는 무척 행복하다.
그러므로 이순간 만큼은 나는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다.
부디 평안하길...
p. 336 에서 갑자기 353 페이지가 나타난다.
그러다가 368페이지에서 337페이지가 나타난다.
책을 엮다가 실수를 한 것 같다.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아예 없는게 아니라 뒤에라도 책이 끊기지 않고 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