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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지 않는 도시 1
티에닝 지음, 김태성.이선영 옮김 / 실천문학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들어 소설을 읽는 재미라함은 배경지식을 알아가며 읽는 재미라 말하고 싶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을 이해하고 역사의 흐름을 알아가는 것 뿐만이 아닌 문학적인 이해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게 최근들어 그런 대상이 되어 주는 것은 중국문학이다.
장편소설 '홍루몽'을 읽고 있던 중 만난 티에닝의 소설은 시대의 격차는 다를지라도 중국인들의 기질을 어느정도 반영하고 있었다. 홍루몽은 고전으로써 현재와 많은 차이를 두고 있다면 티에닝의 소설은 현대의 중국을 엿볼 수 있는 문학작품이였다.
소설속의 모든 것을 중국의 현재 모습이다라고 치부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를 시켜주기에 적합하다는 얘기다.
처음 작가의 말을 읽고 흔히 보아온 불륜소설을 좀 더 다르게 써내려 간 건가?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읽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보니 작가의 구성과 무게감에 단순히 불륜소설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책의 흐름은 남,녀 주인공들과 그의 주변 인물 위주로 흘러가지만 그들의 감정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과거를 통해 중국의 역사와 개인간의 의식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 세계는 평범하면서도 함축적이였고 또한 모든 것이 열려 있었기에 많은 독자들을 흡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가 오픈되어 있는 것 뿐만이 아니라 책 자체가 오픈되어 있어 다양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그러한 매력에 빠져서 이 소설을 좋아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창예 시' 시장 푸윈저의 불륜이 아니라 그의 부인 거페이윈의 묘사에 관심이 갔다고 했다. 푸윈저가 바람을 피우며 이혼을 요구할 때 거페이윈의 입장과 위치는 난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어떻게 행동하며 그녀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는 두 갈래의 길이면서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녀가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자신의 집에서 행해진 현장을 사진으로 남긴 후 불안과 조급함이 밀려 왔을 뿐.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나의 심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절대 순식간에 상황을 던져 주거나 예상한대로 이끌어 가지 않는다. 또한 인물 누구 하나에 치중하거나 편을 드는 것도 아니며 번역가도 말했듯이 그들의 풍경만 보여주고 있을 뿐이였다.
그랬기에 내가 더 당황스러워서 자꾸만 책을 덮고 궁금해하며 거페이윈이 숨긴 푸윈저와 타오요우자의 모습이 담긴 필름으로 인해 사건은 복잡해져 가고 필름의 발견이 독특했던 것처럼 필름의 이동 또한 끝까지 묘하게 흘러간다.
마치 푸윈저와 타오요우자의 사랑을 비웃고 거페이윈에게는 모든것이 녹록치 않음을 그리고 필름을 쥐게 된 바이이허에게는 그 필름이 결코 행운이 아니라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느낌이였다.
그 필름이 발견되고 거페이윈이 협박을 받게 될 때 수 많은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필름의 행방과 그에 관한 에피소드는 차분하면서도 때론 잔인하게 유유히 흐른다.
필름의 수명에 위험이 다가왔다고 느낄 때 쯤 푸윈저와 타오요우자 그리고 거페이윈의 신변은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 간다.
그들의 모습을 필름이 대신해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필름의 마지막처럼 그들에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푸윈저의 불륜도 거페이윈의 필름사건도 타오요우자의 꿈같던 사랑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필름은그렇게 사그라들어 간다.
그 사그라듬을 보면서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룰 옹호할 수 없었던 것은 흐름 때문이였다.
그들의 삶에 녹아있는 고통과 시대의 배어있음은 녹록치 않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뚫고 나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였다.
치우예와 타오요우자의 자유분방하고 문란한 사고는 시대의 영향의 탓도 있었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갈 뿐, 그 판단도 독자 각자의 몫일 뿐이였다.
그랬기에 이 소설은 건조하지도 습하지도 않았으며 삭막하지도 않았다.
가볍게 읽고 지나치기엔 인물들 하나하나에서 발견하는 중국의 모습이 유쾌할 수만은 없었고 그렇다고 우울하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였지만 그 안을 여행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풍경 속의 모습은 무궁무진 하기에 그 풍경을 구경하는 구경꾼이 될지 풍경의 한 부분이 될지는 감상하고 경험하며 만들어 가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