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았다..'검은 꽃'을 익은 적이 있기에 그 작가의 에세이집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한번 더 손길이 갔었다..그렇게 우연히 집어 든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절반은 다 읽어 버렸고 서점 직원의 눈치도 보이고 바닥에 앉아 책을 읽어서 엉덩이도 아프고 해서 나머지는 다음번에 읽기로 하고 서점을 나왔다..그러고는 2주 후에 다시 서점에 가서 '랄랄라 하우스'를 다 읽어 버렸다.. 그러나 공짜로 책을 읽었다는 만족감보다는 사서 볼걸 하는 아쉬움이 컸다..서점에서 읽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혼자서 낄낄 대기도 했고.. 이런 저런 문학에 대한 감수성과 다방면에 대해서 작가의 생각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검은 꽃'을 감명깊게 읽었기에 조금은 애착이 가는 작가였는데 그런 좋은 에세이집을 들춰 본다는게 그만 다 읽어버려서 조금은 안타깝다...(그래서 어떤 책 살까 고민하던 아는 동생에게 이 책을 추천해서 사게 했다...ㅋㅋ)여튼 그런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예전 같으면 이런 에세이집은 들춰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피천득님의 '인연'으로 그 편견이 깨져서 에세이집도 좋아하게 되었다..그러나 어떤 작가의 첫 판 부터 에세이집을 대하는 것보다 한권이라도 작품을 읽어본 후에 ... 거기다가 작가의 신상이나 개인적인 취향을 알고 읽으면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다..'랄랄라 하우스'에서도 그런 경향이 짙었지만 '검은 꽃' 하나만 읽고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다방면에 걸친 그의 이야기 보따리의 풀림이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해주었고 그의 관심거리가 나의 관심거리가 되어가기도 했다..그렇게 김영하 작가라는.. 또는 그가 내 뱉는 생각들에 묻어 가는 내 자신을 보면서 잠시 삶에 허덕이는... 그리고 무겁고 어려운 책들에서 잠시 쉬게 해주는 쉼터가 되어 주기도 했다...말 그대로 에세이는 살아가는 단면을 보여주며 우리의 이야기가 될수도 있고 가까워 질수도 있기 때문이다..그 녹아듬의 틈에서 잠시 숨도 돌리고 우리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삶임에도 딴 세상인냥 정신 팔리도록 읽고 있는 것이다...명랑해지고 싶을때.. 숨돌리고 여유를 느끼고 싶을때 랄랄라 하우스에 놀러 가기를 권한다...
'카프카의 프라하'란 책을 읽고 카프카의 작품이 무척 궁금했었다..의외로 전집이 10권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이 책을 골랐다.. 이 책을 먼저 고르게 된 경위는 아주 단순하다..겉표지의 카프카가 너무나 단정하고 20세기 초의 프라하에 정말 잘 어울리는.. 그래서 이 책을 갖게 되면 그런 프라하와 카프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반가움 때문이였다.. '카프카의 프라하'란 책에서 본 카프카 사진이였지만.. 카프카의 소설에 쌓여있는 카프카는 또 남달랐다..그래서 카프카의 3대 고독 중의 하나라 불리우는 '성成'을 읽게 되었다..요즘 책 사이즈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중간 크기의 노트만한 싸이즈의 책을 열었을땐 빽빽히 채워진 글들이 정갈할 정도였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열심히 읽었는데.. 카프카의 글은 그런 들뜬 나의 마음에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처음엔 흥미를 끌었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뿌연 안개에 쌓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화체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따옴표와 문단의 나뉨이 없이 빽빽히 섞여서 들어차 있는 글들은 그런 느낌을 더 강화시켜 주었다..열심히 집중해서 그의 글 속에서 빠져들어도 그의 안개 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우울함이 아닌 답답함이 서려 있었다...주인공 K의 성격도 그런 부추김을 한 셈이였는데 카프카의 이 글의 씌여진 시가와 들어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신경쇠악에 시달리며 쓴 소설 성...그래서 속시원한 뚜렷함이 아닌 모호한 답답함이 서려 있었다...자기의 뜻대로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마을에서 엿새를 보내는 K...그런 주변 돌기의 새로운 양상이 보일때쯤 이 소설은 미완성으로 끝난다.. 미완성의 소설이 그러하듯.. 작가가 결론짓지 못한 소설속의 주인공과 배경들은 독자들에게도 그대로 남아있다..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모호하게 끝낸 결론보다도 더 말이다..그래서 K는 여전히 주변 돌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그러나 답답하게...이런 느낌이 들게하는 데는 카프카의 문체도 한 몫을 한 것 같다..소설속에 깃들어 있는 사상의 난해함이 아닌.. 분명 집중을 해서 읽고 있는데도 콤마와 마침표이 규칙없고 혼란스러운 표기때문에 읽다가 스스로 난해함에 빠져 버렸다.... 연속으로 터지는 콤마.. 그 끊김을 연결해야 하고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마침표에 문장을 정리해야만 했다..우리와 확연히 다른 문화, 정서도 한몫을 했다...(예를 들면 바르나바스 집안의 불행... 시원스레 밀고 나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K의 사례들...)그런 모호함과 답답함 속에서도 연결의 고리를 놓지 않고 그 세계에 또 다른 내가 되어 읽었지만 K의 사건 돌리기는 계속됐다..굳이 옮긴이의 말이 아니더라도.. 소설의 첫부분을 상기시키지 못하더라고... 안개와 어둠의 느낌은 읽으면서도 스스로 느낄 것이다...그러나 그런 부분에 대해서 짜증과 지루함이 깃드는 것이 아니라..밝은 곳이 나오기를 갈망하며 더듬 더듬 내딛는 걸음처럼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며 전진해가는 읽힘이였다...K를 그냥 이해해 버렸고.. 그에 행로에 기대를 걸지 않았다...점점 궁색해져 가고 잃는 것이 없었음에도 자꾸 잃어가는 K가 불행하다고.. 답답하다고.. 막연한 결론도 내려지지 않았다.. 다만 초라한 건축물의 성은 그 존재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그 성의 광범위함이 성의 역할을 속시원히 말해주지 않을 정도였다... 시대의 모호성.. 존재의 모호성.. 목적의 모호성에 시달리는 것들 투성이였다...카프카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무작정 신빙성에 둘러 쌓고 있는..그렇게 내 스스로가 만들어 가고 있는 양상과 다르지 않았다..그래서 나는 아직도 카프카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요요마의 탱고 음반을 가지고 있다...피아졸라가 작곡한 곡을 요요마가 연주한 것인데 의외로 너무 좋아서 그 음반을 오랫동안 들었다..탱고라는 춤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음악에는 관심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었다.. 순전히 이 책을 고르게 된건 요요마의 음악 때문이였다..어던 내용일지 상상은 되지 않았지만 탱고라는 무한함에 대한 막연함을 걷힐 요량으로 이 책을 읽었다..분명 탱고에 관한 이야기다.. 탱고가 주류였고 그 열정에 취해있음이 분명해서 말이다.. 술렁 술렁 넘어가는 페이지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다...탱고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탱고에 대한 사연이라고 말해야 할 듯 하다.. 존재할 것 같지 안은 산 속의 거처.. 두형제의 비극적 이야기.. 그리고 탱고.. 스캔들.. 그리고 탱고로 인해서 그 사연을 듣게 된 경위.. 그리고 어느새 그 사연의 중심에 서게 된 주인공...우울하고 비현실 적인 내용에 어느덧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띄엄 띄엄 읽었다면 그런 느낌이 덜했을지 모르나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읽어 버리고 나니 그런 느낌이 강했을지 모른다...그러나 내가 생각한 탱고에 대한 열정.. 오로지 그 열정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열정보다는 사연이 주를 이루어 흘러가는 내용이 우울했다..그 이야기를 이끄는 사내는 탱고에 자신을 던지고 있었지만 탱고는 그렇게 우울함이 깃든 춤이 아니라고 본다.. 탱고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어쩌면 탱고의 옛 본질이 그런 우울함을 떨쳐 버리고 위해서 였는지도 모른다는 막연함이 들지만 탱고에 대한 사연은 우울했다..그리고 요요마의 음악이 사색이 깃든 음악이 아니라 우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조화일까...탱고가 화려함만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던 경험일까...
인터넷에서 너무나 많은 광고를 하길래 호기심 반.. 읽게다는 의욕반으로 책방에서 빌려왔다..'뇌'나 '다빈치 코드' 같은 장르라는 직감이 들어 큰 기대나 궁금증 보다는 네가 무슨 내용인지 읽어 버리고 말겠다는 정복력이 더 강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느슨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너무나 느슨한 경계였는지 첫장에서 페이지가 그리 많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는데 반납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다시 책을 펴들었다.. 조금씩 스토리가 전개되어 가고 있었지만 더디게. 그리고 섬세하게 진행되어 가고 나눠지고 있는 두 이야기가 다음에 분명 상관이 있어지고 만나리라는 막연함만 들뿐 1권이 다 지나도록 어떻게 진행되어 갈지 대충의 짐작도 잡히지 않았다..작가는 안정적인 틀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었고 등장 인물들을 보여 주긴 했지만 다 드러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이용할 뿐이였다.. 그래서 복선을 예상할수도 전개를 예상할 수도 없었다..보통 이런류의 작품들은 순식간에 궁금증을 유발시키며 흥분과 함께 다음 내용을 탐독해가는 속도를 내주며 2권을 펼치는 손이 덜덜 떨리다 그 흥분이 가라앉으며 허무를 느끼기도 하는 편이다..그런데 '늑대의 제국'은 오히려 더 차분하게 해주며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사건의 전말과 전개방향이 어떨지 생각하게 만들었다..그래서인지 무수한 반전과 등장인물의 중요도가 떨어졌을 때도 허무함을 느끼기 보다는 넓은 틀속에서 무한함을 제공해 주기 시작했다..무한한 가능성과 단계 단계 올라가는 피라미드의 과정이 거침없었고 다른 세계와 사건의 넘나듬이 자유스러웠다...그 거침없는 사건의 넘다듬이 처음에 불거졌던 큰 사건들의 다음 단계의 일부분임을 알았을때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안나의 기억상실.. 터키타운의 연쇄 살인 사건.. 은밀히 진행되는 뇌에 대한 실험.. 기억을 찾아가면서 드러나는 과거.. 그리고 세마.. 세마가 몸을 담고 있던 회색늑대 집단.. 그 속의 마피아...차곡 차곡 쌓아가다 드러나는 피라미드의 결과가 드러났을때..이런 비슷한 류의 책들처럼 쉽게 끓어올라 쉽게 사그라드는게 아니라 섬세하게..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스토리가 인상적이였다..내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넘나듬이 자유스러워서 등장인물들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기술 등 다양함을 보여주어서 작가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되었으리라 생각한다..탄탄한 구도와 안정적인 틀속에서 전개되는 방식이 결코 가볍지 않았고 그래서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였다..진실을 향해가는 주인공.. 그리고 진실을 바로 잡는 한인간...쉽게 끌어오르는 흥분은 없어도 쉽게 사그라드는 허무도 없는 책이였다... 이런 비슷한 류의 책에서 단일화 되는 모습이 아닌 장.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예전에 'TV, 책을 말하다' 에서 이 책의 소개와 미즈타니 선생님의 인터뷰를 본적이 있다.. 보통 한두권정도 소개하는 코너인데 그날은 책만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식구들은 드라마를 보겠다고 난리였는데 내가 우겨서 겨우 이 프로그램을 틀었는데 어느 순간 식구들도 군말없이 다큐형식으로 진행되는 그 프로에 넑을 빼앗기고 있었다..딱보면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상이다.. 인자한 것 같으면서도 날카로운 눈매와 고독이 느껴지는 표정과 버버리 코트.. 도무지 그 험한 일본의 밤거리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선생님이라는 이미지와 맞지 않았다..그러나 아이들을 항상 배려하고 항상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 같이 걸으며 대화하며 도움을 청하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미즈타니 선생님은 정말 밤황하는 아이들과 고통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을 늘 걱정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직접 인터뷰하고 밤거리에서의 미주타니 선생님을 촬영한 모습을 보아서 이 책을 읽었을때 더 가까이.. 생생하게 다가왔다...정말 미즈타니 선생님은 마음하나만으로 험한 밤거리의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밤거리는 지키는 이유로... 조직폭력배에게 항상 노출되어 있어서 경찰들까지도 그의 행동을 비웃고.. 그의 목숨을 한낱 파리목숨처럼 비유했다..어떤 아이를 돕다가 그 댓가로 조직폭력배에게 새끼 손가락 하나를 잘렸는데 크게 연연해하지 않았다..손가락 하나를 줌으로써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다면 그까짓 것 쯤이야 하는 태도였다...만약 나라면.. 내가 손가락이 잘렸다면 어땠을까...손가락이 하나 없다는 굴욕과 창피스러움을 안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사고도 아닌 약속을 지키고 그 아이를 돕기 위해서?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없어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다.무덤덤해 보이고 차가워 보이고.. 아이들에게 친근한 외모와 복장이 아님에도 미즈타니 선생님은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걱정하고 계셨다.. 책을 읽어보면 그런 부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그런 모습에서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는 자학이 앞서기 전에 할말을 잃어 버렸다..결코 형식적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알기에..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도 마음에 동요가 일지 않는 딱딱한 심장을 지녔기에..미즈타니 선생님 앞에서 나는 할말이 없었다..그런 그를 보며 우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보며 사랑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편견과 색안경 속에 아이들을 가둬 버리는지 모르겠다... 하루에 마주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모습인지 천천히 생각하게 된다..미즈타니 선생님처럼 먼저 다가가고 도와주려는 자세보다는 귀찮아하고 편견속에 가둬 버리기 쉽상이다..그리고 '괜찮다'라는 말보다 윽박지르고 화내고 무시하는 말이 먼저 나오는게 사실이다..흔히 우리가 판단하는 나쁜길로 들어서지 않는 아이들에게 이러는 실정인데 방황하는 아이들에게의 우리의 태도는 어떨까..'괜찮아;라는 말로 한발 한벌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을 지니고 아이들을 대했으면 한다..미즈타니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도움은 못 주어도 우선은 성경구절처럼 나에게 다가 오는 아이들을 막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