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훈 명작선을 사서 읽어 보았다.. 단박에 그의 문체에 매료가 되었다.. 그러나 6권인 명작선에서 4권 정도를 읽고 보니 나를 사로잡았던 문체에 조금씩 식상해 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명작선 중에서 '자전거 여행' 두권은 아직 읽지 않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김훈의 신작인 '개'가 나왔다.. 그러나 그의 문체에 머뭇거리고 있다가 사지 못하고 있었는데.. 무료포인트가 생긴데다가 이 책을 사면 적립금이 많아서 김훈의 신작이 그래도 궁금하여서 구입하였다...
그러나.. 나의 이런 머뭇거림과 포인트에 현혹되었던 모습이 부끄럽게 여겨졌다.. 김훈의 문체에 쉽게 빠졌고 쉽게 헤어 나왔고.. 그리고 그의 문체는 제자리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김훈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오만에서 온 거만함이였다...

처음 제목을 봤을때 '개,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 두개가 같은 의미인지 다른의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개'는 개인줄 알겠는데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 개의 입장인지 김훈의 입장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읽는 수 밖에는 없었는데 읽고 보니 그 거창한 부제가 가슴에 와 닿았다...

이 작품을 읽고 놀란 것은.. 내 자신이 개 '보리'가 된 듯한 느낌이였다.. 김훈은 이 작품에서 완벽한 '보리'가 되어 있었다..
소설에서의 인물은 실제로 그와 비슷한 사람의 경험을 듣거나 기록을 디지거나 아니면 체험을 해보든가.. 그런 바탕으로라야지(물론 상상력으로도 충분할 수 있겠지만..) 실감나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다... 그러나 김훈의 '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동물인데다가 경험담.. 체험이 불가능할뿐만이 아니라 개의 자료를 뒤져본다는건 일반적으로 빈약한데(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기록이 잘 되어 있을지 몰라도.. 기록이라고 보다는 설명과 관찰에서 나온 특성이라고 해야 할까?) 이 소설에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의심도 없이 정말 '개'를 표현하고 낭만적인 개한마리가 튀어 나와 소설을 쓰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들정도 였다..
그만큼 김훈의 '개'는 완벽했다..

개라 함은 사람으로 비유할때 그리 유쾌하고 좋은 비유는 하나도 없지만 개를 떠올렸을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징은 냄새를 잘 맡는다는 비유로 사람들에게 종종 쓰이는 개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개를 먼저 떠올렸을때 애완견 보다는 시골의 개를 많이 보고 자란터라 까맣고 축축한.. 그리고 예리한 개의 코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 이미지의 개를 김훈은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소설에서 냄새는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개 '보리'는 자신의 네 발로... 걸으며.. 뛰며... 모든것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냄새를 각인시켜 가고.. 그 발바닥의 디딤... 인간의 코로서는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온갖 것들을 맡으며 자신이 바라보는 인간의 세계와 나름대로의 삶을 구축해 나간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낭만적이다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주인공 보리는 온갖 냄새를 표현하고 있다.. 삶의 모든 것을 냄새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말이다..그 냄새를 통해 모든것을 알아가고 풀이해 가는 과정이 김훈 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 냄새로 삶을 풀어가고 자기 나름대로의 습득한 결과로 대응해 가는 모습은 너무도 당당하고 사실적이였다.
그런 보리의 무언가를 맡음의 삶은 인간세계 보다 더 끈끈하며..감동적이고 더 처절하며 소박하고 정이 많다..
보리는 눈으로 보는 것... 가슴으로 느끼는 모든 것을 냄새로 토해 내는데.. 그 토로는 단아하다...
고향의 향기.. 별,달,비,계절,바람.. 등 온갖 자연의 경이로움에서 비춰지는 냄새와 인간의 성격, 삶의 형태도 냄새로 파악이 되는데 어느 수필가에 못지 않는 삶의 또다른 접근 방법이다..
개의 그런 삶은 개를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이 아닌.. 어쩜 우리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 더 진솔하지 못한채 자신을 속이며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에 대한 비난인지도 모른다... 항상 개와 비유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며 그래도 나는 그런 짐승보다 낫다는 뻔뻔한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 자부심이 여기에선 무의미 했다..

이 소설에서 나는 보리가 되어도 좋았다...
내 자신이 보리인냥.. 마치 인간의 세계.. 그리고 개들의 본성 속에서 냄새로써 모든걸 파악하고 살아온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내일 아침 일어나면 어젯밤 나는 한마리의 개가 되어 긴 여행을 한 것 같은 꿈을 꾸었노라고 토로한 것 같은 기분이다..(이걸 개꿈이라 할까?^^)
한마리의 개가 되어도 좋다.. 개가 되어야만이 개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개가 되어야지 만이 네 발바닥을 디디고 냄새를 맡음으로써 삶의 진가를 경험할 수 있다...
한마리의 철저한 개 '보리'가 되어 우리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전해주는 김훈에게 경이로우을 보낸다..
그야말로 진정한 개체안에서 그 개체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개체는 실로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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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1
조설근 외 지음, 안의운 외 옮김 / 청계(휴먼필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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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독자들도 어느 정도 번역의 질을 눈치챌 수 있는 것 같다.

굳이 머릿말에 번역의 노고를 말하지 않아도 또는 오역에 대한 발언이 없어도 독자는 이미 책을 읽으면서 온 감감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번역이라도 독자들이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번역자는 책과 독자간의 다리 역활을 제대로 못해준 셈이 되고 만다. 그것은 번역자들에겐 치욕이요 독자들에겐 원활한 소통이 되어 주지 못해 명작에 대한 옳지 않은 편견을 남겨주는 효과만 낳을 뿐이다.

나 또한 10대 때부터 느껴온 오역의 불쾌함, 번역의 난해함을 어느 정도 경험해 본 터라 이렇듯 장황하게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홍루몽은 번역에 대해서 거론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번역자의 노고가 느껴질 뿐만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번역자의 애정이 고스란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우선 고전이라는데서 오는 고리타분함이 없었고 거기다가 재미까지 더해주어 시간의 격차를 뛰어넘는 효과까지 안겨주고 있었다. 이러한 느낌을 갖는데에 번역의 도움이 왜 없었겠는가. 시간과 문화의 격차를 메꿔주는 훌륭한 번역이 있었기에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노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홍루몽의 처음 시작은 '여와보천'이라는 신화에서 출발하여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금릉의 가씨 집안으로 옮겨 가면서 흥미를 더해가는 이야기다.

이 가씨 집안의 스케일이 워낙 클 뿐더러 등장 인물도 많아 인물사전을 들춰가며 파악을 해야 하지만 주요 인물들을 따라 흐름만 놓치지 않으면 12권까지의 읽힘도 무난할 거라 생각한다. 등장인물이 많아도 새로운 인물이 나올때마다 설명과 암시가 이어지기 때문에 주석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고 무엇보다 한 집안의 흥망성쇠를 통해 그 안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 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가보옥만 보더라도 출생부터가 범상치 않다.

신화 속 옥구슬을 입에 물고 태어난 인물로써 아직 어린 나이여서 천방지축의 모습만 보여 주지만 그가 가지는 생각, 행동만으로 이야기의 양상이 달라지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가씨 집안의 인물들과 내력만으로도 실로 거대해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를 내가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가씨 집안을 통해서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음은 물론 인생의 유,무상함을 느낄 수 있기에 포괄적인 매력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등장 인물들의 세세함 속에서 작은 중국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계기는 예전에 읽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때문이였다.

분명 중국은 거대한 나라이긴 하지만 정작 중국에 대해서 자세히 모른채 멋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국견문록을 통해서 생동감 있는 중국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게 되었다. 그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홍루몽에서 드러나는 소소한 것들을 이질감으로 대했을 터인데 저런 것들이 바로 그 당시 그들의 문화며 기질이라고 생각하자 흥미롭게 지켜보게 되었다.

 

그러나 작은 중국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가씨 집안의 모습은 그 안에서의 갇힘은 아니였다.

보옥을 깨닫게 하고자 경환선녀를 통해 꿈 속에서 은우지정을 들려주지만 정작 보옥은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 커야 깨달음이 크다는 것이 아니라 삶의 희비는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옥은 아직 정체되어 있는 상태지만 이 깨달음을 느낄날이 분명 올 것이기에 보옥의 인생은 가씨 집안의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보옥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바로 가옥의 집안은 넓디넓은 세계가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고, 꿈속에서 본 태허환경을 노닐 수도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처럼 홍루몽 1권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가씨 집안의 운명과 주요 인물들의 인생 앞에서 단순한 소설적인 재미만을 느꼈던 것은 아니였다. 그 안에는 수 많은 가능성이 녹아 있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으며 시대의 동떨어짐을 떠나 내가 접목시킬 수 있는 깨달음도 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고전을 읽는 재미이며 책을 통한 즐거움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이러한 책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써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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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ce 선택이 기회다
왕창 지음, 김택규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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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돌아 보면서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내가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말이다.

나 또한 내 삶을 돌아보면서 내게 오기 힘들었던 좋은 기회를 떠올려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곤 한다. 그것은 선택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기도 하면서 현재 나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도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택이 기회다'라는 말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선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이다.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늘 최선의 판단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선택이 100% 만족할 수 없을 때도 있기에 조금이라도 선택에 있어 실수를 줄여주기 위해 저자는 이러한 책을 쓴 것이라 생각한다.

그랬기에 소설처럼 구성된 이야기와 그 해석에서 나를 대입시켜서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세일즈맨 들이다.

저자 또한 세일즈 세계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세일즈에 대한 생각을 바꾸라고 말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세일즈하면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일 것이다.

그 외에도 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적에 억눌려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 또한 세일즈에 대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과연 저자의 생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가져다 줄 것인지 궁금증을 가져 보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세일즈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세일즈는 얼마든지 전문적일 수가 있으며 그 세일즈를 사랑할 때 성공으로 통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길이 평탄대로는 아닐지라도 분명 지름길이라고 자신의 일에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시켜 홍쥔이라는 인물 중심으로 선택과 판단, 해석을 통해서 최선의 길로 안내하고 있다.

그 길이 누구에게나 최선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정체해 있는 모습보다 판단의 혼란 속에서 진지하게 나의 진로를 고민해 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12가지의 선택과 그에 부여하는 설명과 분석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홍쥔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상황은 재미 있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몇번쯤은 내가 현재 겪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장 정답을 바라고 저자의 분석을 보게 되지만 명쾌한 답은 없다.

때로는 진부하기도 하고 여러 가능성을 놓고 다양한 길을 알려 주기에 혼란스러울 때도 많았다. 질문에 대한, 주인공의 상황에 대한 속시원한 답을 바라며 읽었는데 정작 그 답을 찾고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은 나여야 한다는 사실이 맥이 빠지기도 했다.

그 답을 속시원히 알려주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고 말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쩔 수 없지만 12가지의 상황과 분석은 안내자의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세일즈든 우리의 인생이든 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분명 저자도 세일즈의 세계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평탄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평탄하지 않은 길 가운데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것. 그 길의 갈림길에서 조금이라도 더 생각을 하게 하고 이런 저런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최선의 길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고 싶은게 아닌가 싶다.

특히 이 책에서는 세일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세일즈맨들을 중심으로 엮어내는 이야기가 나와는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에서나 사람과 마주하며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 없고 어느 누구나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어하는 심리는 똑같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들과 잘 매치를 시켜서 나의 상황에 대치를 시킨다면 분명 조금은 숨이 틔일지 모르겠다. 한 순간의 흥분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뒤집으려는 충동보다는 은근하게 자신을 점검해보며 차근차근 준비해 보는 것.

그러할 때 기회가 올 것이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의 선택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줄 거라는 생각은 버리자.

그건 위험한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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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영성
앤드류 머레이 지음, 정혜숙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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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성경도 잘 안 읽고 기도도 열심히 하지 않아서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좀 가깝게 다가가보고자 하고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종교서적이다.

조금은 얄팍한 심리가 있었지만 책을 읽다가 제대로 찔림을 받아 본것도 오랜만이면서도 충격이여서 멍해질 정도이다.

바로 나의 얇팍한 이런 심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런 문구를 던져 주셨던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생한 교제를 기도나 성경 공부로 대치하려고 하고 있다.(p24)'

 

처음 이 책을 읽으려고 하는 의도가 성경을 잘 안 읽고 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읽게 되었다고 했는데 나의 이런 마음을 제대로 꿰뚫고 있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성경공부와 기도로 대치하려 했던 나의 의도에서 가장 큰 실수를 한 것은 역시나 나의 전부를 알고 계신 하나님 앞에 가식적으로 맞서려 했던 것이다.

형식적인 기도, 형식적인 교회 다니기가 얼마나 우리의 영을 갉아먹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였다.

 

그러면서 이 책은 형식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께 모든걸 내어 놓으라고 말하고 있다.

나의 전부를 알고 계시는 주님께 모든 걸 내어 놓을 때 진정한 교제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특히 하나님과 나의 교제 중에서 가장 친밀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도를 하면서도 내가 편할 대로 기도를 할 때가 참 많았던 것 같다.

얼마나 가식적으로 느껴졌을지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 진다. 이런 나를 아시면서도 늘 사랑해주시고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이 온전히 느껴져 오로지 감사할 뿐이다.

 

또한 내가 하고자 했던 성경공부는 무엇을 위한 것이였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단순히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그 막연함 속에는 성경공부 따로, 나 따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살아 있으되 자신으로부터 결코 분리 될 수 없는 가운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약속을 믿으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책을 읽는내내 내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참 많았다.

기억하고 싶은 문구에다가 메모지를 붙이다보니 책에 메모지가 덕지 덕지 붙어서 지저분해져 버렸지만 그 말씀들만 훑어 보더라도 책의 중점들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을 읽은 시간대가 잠들기 전 깊은 밤이였지만 그 시간들이 얼마나 귀중하고 깨달음의 시간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 말씀 전부가 다 내 마음에, 내 영 가운데 들어왔다고 말할 수 없지만 한꺼번에 이 많은 것들을 취할 수 없듯이 차근차근 알아가려고 한다. 처음에는 말씀이 참으로 좋아 금방금방 읽어 버릴 거라고 생각 했지만 비교적 짧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음에도 뒤로 갈수록 내 안에 흡수가 잘 안되었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이 살아있게 온전히 하나가 되어라고 했는데 어느새 나는 그 일치함을 잊어 버리고 금새 나와 말씀을 분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습에서 나의 간사함을 보았을 뿐 아니라 마음이 아닌 머리로 읽으려 했기에 역효과가 나는 것을 바로 깨달아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한 단락단락을 큐티하듯이 반복해서 읽는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종교서적을 많이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내면으로 깊이 들어 갈수록 영적 교류는 높아지고 그 뜻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였다.

그랬기에 읽기 위주가 아닌 나와 하나님이 하나가 되어 교류를 나눌 때 진정한 말씀의 힘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부터가 고전이지만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의 글들 또한 고전에 속하는 편이라 내면의 완벽한 일치를 끌어내지 못한 시간이 많았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던 것 또한 사실이였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데서 오는 경건함,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다는데서 오는 편안함은 나를 시간시간 되돌아 보게 만들어 주었다.

늘 그렇지만 이러한 깨달음과 느낌들을 오래오래 간직해야 할 것이다.

순간의 감동과 깨달음으로 끝나 버리면 그건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마음을 온전히 지켜가고 키워나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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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민음사 세계시인선 47
조지 고든 바이런 지음, 황동규 옮김 / 민음사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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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휴가를 가서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다가 시집이 보이길래 바이런의 시집을 사왔다.. 책을 읽다 언급되는 바이런을 많이 들어 보았고 그래서 궁금했고 우리나라의 시도 그리 많이 안다고 할 수 없지만 외국의 명시에 특히 약했기 때문에 경험을 늘리고자 하던 차에 잘 마련한 시집이였다..
외국시는 번역되는 과정에서(우리나라의 시나 문학이 버역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겠지만..) 우리의 정서에 맞게 번역하기가 힘들어서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뿐만이 아니라 문학이나 다른 장르도 그렇겠지만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고 절제되어 있는 시가 가장 힘이들지 않을까 라는 생가깅 든다.. 그런 생각을 어느 정도 품고 바리런의 시를 접했는데.. 의외로 잘 읽혀졌고 현재 일겅도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가 바이런의 시 대부분이 압축되어지지 않는 시가 많은 까닭이라 한다.. 그래서 나같은 문외한에게도 나름대로 잘 읽혔던 것 같다.. 몇몇의 시는 현재의 시점에서도 손색이 없는 시가 있어는데 그런 시를 읽을때는 더 가까이 와닿는 느낌이였다..
시에 대해서.. 아니 시에 대한 위대함을 파악할 수 없기에 바리런에게 쏟아지는 찬사에 동조할순 없어도 그의 배경을 알고 읽게 된 시를 희미하게나마 공감하여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때론 아름다웠고.. 위대한 찬사가 쏟아졌다가도 불투명한 내면의 과정을 쏟아낸 시적 감흥을 느끼기도 했다..
시라함은 연령,성별,공간,장소,마음상태에 따라 각자 느끼는 것이 달라 그게 매력이라 했다..
그래서 자주 꺼내서 보려 한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읽히는 대로.. 그리고 지금 끄적여 놓은 이 글과 비교하며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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