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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마을 이야기 1
제임스 캐넌 지음, 이경아 옮김 / 뿔(웅진)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환상이든 늪이든 깊숙한 곳에서 쑤욱 빠져나온 느낌이다. 그 헤어나옴은 순간적으로 이루여졌다.
과부들만이 살고 있는 마리키타 마을이 나의 또 다른 거쳐라도 되는 듯한 익숙함으로 몸부림 치고 있을 때 갑작스런 이탈은 그렇게 찾아왔다.
마리키타 마을에 미국인 기자 고든이 찾아 오면서부터 나의 시각은 마리키타 마을 안에서가 아니라 고든의 시각으로 그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껏 이런 시선이 아니였는데 왜 갑가지 마리키타의 과부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까. 마치 시각효과를 즐기다 빠져나온 후의 멍함.
마리키타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남자들이 사라진 마을. 분명 이런 화제는 약간의 환상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남자들이 사라졌다고 해도 그걸 온전히 받아 들이지 않는 의심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러나 게릴라들이 의해서 남자들이 다 끌려간 후에도 마리키타 마을에서 그녀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갈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고립되어 버릴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남자들이 사라진 후 그녀들의 힘으로 살아가려다 더욱 더 궁핍함에 몰린 후 치안판사 로살로를 중심으로 그녀들만의 시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 시간에 따라 그들은 과거로 내려간다.
그 과거는 전쟁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게릴라들에게 시달리는 것도 아니고 굶주림도 신식문명의 발전도 없는 그녀들만의 독자적인 낙원으로 변해간다.
그런 터전을 만들어 가기까지는 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었고 마을의 이야기도 있었으며 시간은 서서히 그들에게서 멀어져 간다. 그러는 동안에도 마을에는 남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마을의 유일한 남자 라파엘 신부(남자로 보기 힘든 훌리아와 산티아고는 빼고)가 대를 잇기 위해 명분까지 버리며 마을의 과부들과 동침을 했지만 신부의 욕정만 채웠을 뿐 아기는 태어나지 않는다.
결국 마을의 유일한 남자인 소년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라파엘 신부가 떠남으로써 완벅한 여자들만 존재하는 마을이 된다.
그녀들은 이제 남자들을 포기하고 위기를 발판으로 공동체 생활을 해간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들은 감동을 자아내는 것도 아니고 동떨어진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적나라하고 거침이 없다.
저자가 신문기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듯이 콜롬비아의 내전은 그녀들을 거칠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얼핏 마리키타 마을을 보면 내전으로 얼룩진 상처들로 인해 삶이 문란하고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욕정에 찬 여자들은 가난으로 안해 앙칼져가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그녀들에게서 무엇을 바랄 수 있을 것인가. 더더군다나 마을 밖에서 그 어떠한 지원을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더이상 이럴 수는 없겠다 싶어 공동체 생활을 꾸려 가면서 그녀들은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풍요로움과 안정을 되찾는다. 그렇게 남자들이 사라지고 16년의 세월이 지난 후 네명의 남자가 마리키타에 돌아온다. 그들은 변해버린 마을 여자들에 놀라지만 한 명을 제외한 세명의 남자들은 마을 근처에 가정을 꾸리며 살게 된다. 그리고 그녀들이 그렇게 갈망한 대를 이을 아이가 태어나며 책은 끝을 맺는다.
독특한 경험이였다. 과부마을이라는 것에 혹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몇년을 더 산 느낌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전쟁이 주는 아픔이다. 책의 단락이 끝날때마다 게릴라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그들의 증언은 끔찍하지만 거짓이 아니다.
그들의 증언 속의 사람들은 마리키타 마을을 떠난 남자들이기도 했고 그들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과부마을이 품고 있었던 것은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였다.
남자들이 떠난 마을이라는 자극적인 묘사가 남긴 이면에는 여자들의 고통이 있었다.
자연스레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진지하면서도 기특해 보였지만 그녀들의 상처는 그녀들이 함께 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남자들을 수용하는 모습에서 보았듯이 그들은 어느 것에 구속되지도 귀결 되지도 않는다. 그녀들만의 낙원 마리키타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문명 스스로가 들어오기를 거부했듯이 그녀들은 과거로 내려가면서도 전혀 불행하지 않다.
그녀들의 머뭄은 고립이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간다.
그녀들은 자유를 향해 내려가고 있을 뿐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