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 스펜서 존슨
스펜서 존슨 지음, 안진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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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행복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이런 식상함을 불러 일으키는 '행복'이라는 제목은 다가가고 싶으면서도 선입견으로 인해 주춤 거리게 만드는건 사실이다.

내가 기대하지 않는 곳에서 혹은 아주 작은 일상에서 예기치 않게 다가올때 '행복하다'라고 외치지만 그런 생각이 얼마나 갈까...

그러고 어느 정도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깨어 있음과 마음의 열림이 없기에 읽으면서도 별 기대없이 변화 없이 읽었다.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 같았고 왠지 모를 거부감이 느껴져서 마음의 동요가 없었다.

내게 와닿지 않는 내용들.. 그리고 나와는 다르다는 생각에 늘 생각 되어지는 추상적인 면속에 가두고 있었다.

 

그렇게 내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책을 덮어 버릴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가지의 외침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고 있었다.

그 평범한 진리를 알고 있었음에도 늘 지나쳤던게 미안할 정도였다.

내 자신을 소중히 하기...

그리고 내가 먼저 행복해 지기...

이 책에서는 내가 먼저 행복해지고 나를 먼저 생각하는게 절대 이기적이다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내가 먼저 행복해 졌을때 다른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볼때 필히 내가 행복해져야 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파급효과가 컸다.

그러나 그렇게 내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소중히 하는 방법을 몰라서라도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에서는 하루에 1분만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라고 한다. 짧을 것 같은 1분..

의외로 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볼때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라는걸 느낄 수 있는데 왜 하루 24시간 1440분중에 1분을 내기가 힘든 것일까...

 

퇴근 시간을 떼우기 위해 흘려버리는 1분은 많아도 결코 내 자신을 위해 쏟는 1분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내 자신을 그 만큼 소중히 하지 않고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얼핏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할 것 같은데 가장 많이 생각하는건 알고 보니 내 자신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내 자신에 늘 관대해서 내 생각은 많이 하면서도 소중함은 별로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1분만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내 자신에 대해서.. 아무거라도..

그러나 막상 해보려고 하면 그게 정말 호락 호락 하지 않다는 걸 느낄 것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음에도 하루에 성경구절 한절 읽는게 왜 그리 힘이들고 핑계가 많은지..

책은 좋아하고 실컷 읽으면서 성경책은 늘 소홀하고 뒷전이다.

혹시 나는 실컷 좋아하는 책은 아니였을까..

그리고 늘 소홀히 하는 성격책은 아니였을까...

좋아하면서도 읽기 위주가 되고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소홀히 여기는 성경책 같은 나를 만들지는 않았는가..

뒤돌아 생각해보니 생각하고 말것도 없다.

지금껏 그래 왔고 앞으로도 별 변화가 없을 것 같다. 내 자신을 사랑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요즘에는 '행복해 집시다' 라고 말한다고 해서 행복이 와 닿는 시대도 아니고 관계성 전도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내 행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시대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들 이 왜 그렇게 행복하냐고 물을 것이고 그 관계성 전도를 통해 나의 행복이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 질수록 행복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므로 내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렇게 아무런 메세지도 내게 와 닿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행복..

평범한 진리속에 잔잔한 여운을 남겨주고 있었다.

쉽게 끓어 오르는 건 쉽게 식기 마련이다.

잔잔한 여운이 남겨져 있으니 이제 그걸 지켜가고 관리 하는게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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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중국견문록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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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동생이 2주 정도의 일정으로 중국을 다녀 온다고 했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괜히 해외라 하면 현장 독서가 떠오르기에 읽어 보지도 않았으면서 무작정 '중국견문록'이 생각나 주문을 해 버렸다. 내일 책을 줘야하는데 겨우 겨우 하루 전에 도착한 책을 보고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할일이 쌓여 있었고 컨디션도 좋지 않아 오늘 다 읽기는 무리라는 나름 대로의 결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머리에 중국 잘 다녀오라는 글을 쓰고 책을 덮어 버렸는데 안 읽은 책이라는 호기심이 꾸물 꾸물 올라와 책을 조금 훑어 본다는 것이 그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다.

그만큼 흡인력이 있었고 한비야의 이야기 속으로 자꾸 빠져 들었던 것이다. 중국견문록이라고 하기에 익히 들어온 바람의 딸등 많은 애칭을 가진 한비야이기에 중국 전역을 휩쓸고 다니며 쓴 책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그런 책이 아니기에 중국사람들의 그리고 중국의 소소한 면까지 들여다 볼 수 있어 더 아늑했다고 느꼈지만 워낙 땅떵어리가 큰 중국이기에 중국견문록에 커다란 스케일을 기대했던게 사실이였고 책속에서의 활동반경이 적어(말 그대로 활동반경으로만 봤을때..) 견문록이라는 제목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 했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에 토를 달지 않게 되었다. 스케일이나 활동 반경을 떠나 중국을 제대로 보고 왔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중국이라는 것과 한비야의 눈에 비치는 중국 그대로를 말이다.

 

41살의 나이에 중국어가 배우고 싶어서 떠났다는 한비야.......

한국어까지 4개국어를 하고 있음에도 그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배우겠다는 열정과 집념앞에 나는 초반부터 기가 팍 꺽이고 있었다.

제 2외국어를 못한다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 나는 머리가 굳어 버렸어'라며 스스로 진단한 후 시도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비야의 외국어 노하우를 조금 참고 하기는 했지만 과연 내가 언제 시작할 수 있을까란 막연함에 자신감은 점점 더 사그라 들었다.

그러한 그녀의 삶 자체는 열정으로 넘쳐났고, 언어를 배우든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뼛속의 기운을 다 써버릴 정도로 욕심도 많고, 삶을 제대로 살 줄아는 면모까지 나는 그런 그녀를 만날수록 점점 더 작아지면서도 그런 그녀가 그냥 그렇게 되었다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수없이 드는 포기 해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억눌러서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노력하고 있을때 난 늘 포기만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움츠리고만 있나 보다.

 

그런 열정을 품고 1년 여정으로 중국에 온 그녀의 생활은 내가 순식간에 읽어 버릴 정도로 재미 있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읽는 거라 그녀의 고충도 재미나게 읽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생생한 경험담은 진짜 중국을 보는 것 같았다. 중국이 서서히 기대주로 떠오르기 시작한반면 거품도 많아서 늘상 그렇듯 중국을 견제 하면서도 무시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한비야의 책을 보면 사사로운 감정 같은건 담겨 있지 않았다. 많은 곳을 여행하고 경함한 바탕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그런 시각은 진짜 중국을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중국 친구들 그리고 그녀가 살고 있는 주변만 살펴보고 친해져도 중국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들뜨거나 젠체가 아닌 있는 그대로를 들려주고 있었다.

그런 한비야를 보면서 나는 일상에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는지 잠시 되돌아 보니 늘 일상에 만족하지 못했던 내가 보였다. 이런 일상을 즐겁게 보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삶을 꿈꾸고 다른 곳에서의 만족을 바랬던 걸까...

늘 순간 순간을 소중히 하고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는 한비야......

그러면서도 화끈한 성격과 시원 시원한 면모까지 갖춘 그녀는 같은 여자가 봐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중국 얘기만 펼쳐질 것 같았던 나의 짐작과는 달리 분명 중국의 일화가 많이 실려 있음에도 나는 중국에서의 한비야가 더 돋보였다. 그 넓고 넓은 중국에서 한비야는 너무 평범했지만 사람 한비야는 내 눈에 우뚝 솟은 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열정이 너무 넘쳐 늘 활력이 있는 그녀를 보고만 있어도 나도 힘이 솟는다. 그녀처럼 나도 세계를 누빌 것 같은 막연한 동경까지 생기면서 또렷한 여운을 남겨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에서 나는 또다른 도전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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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
해리 폴 외 지음, 이경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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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다.

나의 아침은 건들기만 하면 잡아 먹을 정도로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부터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까지 아침은 늘 그렇게 짜증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아침을 바꾸고 싶었다.

상쾌하고 웃음이 절로 나는 그런 뿌듯함이 밀려 오는 아침을 갖고 싶었다.  제목만으로도 괜히 그런 변화를 맞이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을 갖었다. 나의 짜증스러운 아침을 날려 버릴 수 있다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변화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 말이다.

 

책은 의외로 재미 있었다. 순식간에 읽어 버렸고 그런 와중에도 3단계 프로젝트는 잘 새겨 두었다. 정말 단순한 방법임에도 나는 그 방법들을 늘 멀리 하고 있었다.

첫 단계 지지자 만들기는 꼭 나의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당연히 주변 사람들에게 약간의 연기를 동원해서라도 해야 할 것임에도 나는 늘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갔다. 인사도 잘 하지 않고 나를 욕하든 말든 주는 대로 나도 돌려 주겠다는 심보였다. 주인공 케이티도 약간의 연기를 동원해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감사를 표현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것이 자신의 진심이였다는 걸 아게 된 것이다.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처음이 어렵다.

그러면 그 다음은 조금씩 수월해 지는 것이다. 그런 단계를 보완시켜 주고 진실로 다가가게 해주는 것이 감동시키기였다.

나의 지지자들 혹은 내게 고마움을 선사해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감사가 나와 상대방만이 아는 감사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그의 공로를 알릴 수 있는 감사여야 한다는데 포인트가 있다. 그 부분에서 나는 너무나 무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늘 내게 잘해 주시고 도움을 주시는 회사 사람이 있는데 나는 너무도 무심했고 표현도 서툴렀다. 지금이라도 감사를 표현해야 겠다라는 다짐이 들면서도 지금껏 왜 이리 무심했었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짓누른다.

 

여튼 그런 감사를 거쳤다면 어느 정도 지지자와 또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했던 사람들에게 애프터 서비스가 필요한 법이다.

그들에게 그런 표현을 멈춰 버린다면 그들을 이용했다라는 생각이 들어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3단계 활력 유지하기는 내 자신 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중요한 모습이다.

나도 그런 적이 참 많았다.

정말 내게 도움을 준 분들에게 그 순간 감사하고 표현하다가 잊어 버리고 연락도 잘 안한 기억이 너무 많다. 늘 나의 핸드폰이 조용하다고 투덜대는 이유가 이런 연유는 아니였을까?

 

읽고 보니 정말 나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1단계 지지자 만들기를 실행했던 주인공들은 그 효과가 무척 빠르다고 했다. 감동 시키기 단계는 정말 진실로 사람을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활력을 계속 유지시킨다면 회사 생활이 정말 신나고 뿌듯할 것 같았다. 늘 짜증나고 무성실한 회사가 아닌 애정이 가고 활기가 넘치는 그런 회사..

정말 상상만 해도 너무다 뿌듯해진다.

언제 어디서든 그런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과연 두려울게 무엇이겠는가..

해답은 늘 가까이 그리고 어려운게 아니였는데 나는 늘 멀리에서 막연히 기다렸던 것 같다. 확실한 절충안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활력있는 3단계 프로젝트를 잘 이행한다면 나는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삶 그 자체가 즐거울 것 같다.

 

그래 나도 변해 보는 거야...

무엇이 두려운가....

당장 지지자 만들기.. 아니 주위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 보자..

좋은 아침!!!!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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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무어 1 - 시간의 문 율리시스 무어 1
율리시스 무어.피에르도메니코 바칼라리오 지음, 이현경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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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다양한 연령층이 읽을 수 있다고 하기에 약간은 '대충 읽어도 되겠다'라는 마음을 갖고 읽기 시작했는데 삽화와 양장본인 겉모습만 봐도 꼼꼼하게 신경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 먹었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책 속으로 빠져 들었는데 1권의 내용은 정말 시작에 불과했다.

내년까지 시리즈가 나온다고 하니 그 내용이 얼마나 방대하고 진귀하게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2권이 읽고 싶어 근질 거렸지만 분명 1권과 2권은 분위기가 다를 것이기에 1권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읽으려고 아껴 두었다. 1권의 리뷰는 2권을 읽기에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2권의로의 유혹은 그만큼 강했다.

 

빌라 아르고에 이사온 11살의 쌍둥이 제이슨과 줄리아 그리고 그들의 친구 릭과 함께 율리시스 무어, 그리고 그가 살던 집인 빌라 아르고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가기 시작한다. 율리시스 무어라는 괴상하고 비밀에 휩싸인 집주인은 그 아이들을 통해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하도록 유도해 나간다. 사람들은 율리시스 무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아이들이 비밀을 풀어주기 전에는 절대 죽을 수 없는 인물처럼 등장한다. 그 아이들은 어느정도 짐작은 하지만 서로 다독여 가며 그럭 저럭 잘 헤쳐 나간다. 집 밑으로 통하는 동굴을 따라 내려 가는 과정까지가 1권의 내용이다.

분명 시간적인 면에서는 짧은 시간이고 공간면에서도 그리 방대한 공간이 아님에도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리속에 펼쳐지는 상상속의 시간과 공간은 무한했다.

그런 상상속의 미흡한 것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게 삽화들이였고 여러 연령층이 읽기에 문제 없다는 데도 인정하게 되었다.

얼핏 아이들을 위한 삽화 같았지만 어른인 내게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판타지적인 요소 때문에 중간 중간 연결되는 부분이 조금은 억츠스러운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는 순간 만큼은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은 충분했다. 더불어 내가 유년시절로 돌아간다면 좀 더 솔직하게 삶을 살았을 거라는 아쉬움도 제이슨, 줄리아, 릭을 통해 잠시 과거의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분명 자유분방 했음에도 무언가 억압되어 있었던 나의 유년시절, 좀 더 넓은 세계를 감지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며 환상적인 면만이 아닌 현실에서의 큰 세계를 느껴갈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 또한 개인적으로 바라는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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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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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에 관심을 갖게 된건 오래전 부터였다.

여러 곳에서 마담 보바리의 얘기를 접했고 이 책을 읽어야 겠다라고 확고한 생각이 든 계기는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에서 였다. 저자의 말에서 마담 보바리의 독서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궁금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담 보바리가 한번만이라도 연애소설을 벗어나 캉디드를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탄식을 한다. 도대체 마담 보바리가 어떤 책들을 읽었기에 이토록 한탄을 하는 걸까 라는 의문과 함께 먼저 구입한 책이 캉디드였다. 그 책을 읽고 마담 보바리를 읽으려 했는데 캉디드는 아직도 읽지 못한채 마담 보바리를 먼저 읽게 되었다. 책을 읽고 보니 굳이 캉디드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독서에 대해 안타까움과 환멸이 느껴졌다. 성장과정에서의 무기력하게 읽어댄 연애소설에서 조금만 벗어 났거나 뛰어 넘었다면 그런 타락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후일 '보바리즘' 즉,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기능>이라고 불리우는 환상을 자아내는 병으로까지 추대된다.

그도그럴 것이 그녀의 일상은 무기력하고 변덕스러우며 만족이 없었다. 그런 취향을 갖고 있음에도 상상속에서 튀어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몰취미한 샤를르와 결혼을 했으니 그녀의 환멸은 더더욱 심해지고 환상은 짙어져 갔다.

그러나 남편 샤를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며 엠마를 애지 중지 사랑할 뿐이다. 따분한 남편 그리고 권태로운 시골 생활에서 그녀는 다른 남자의 정부가 되고 가산까지 탕진한 후 결국 음독자살을 하고 만다. 남겨진 샤를르는 딸 베르트와 함께 살아보려고 애쓰지만 결국 파산하고 남들의 따가운 이목과 아내의 외도를 안 후 아내의 곁으로 가버린다. 이처럼 스토리는 책의 분량에 비해 무척 간략하다. 그리고 비극적이다.

이런 비극의 중심에는 엠마가 있지만 저자 플로베르는 <엠마 보바리는 바로 나 자신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권태와 무절제 그리고 외도에 대해 경멸의 시선을 던졌던 건 사실이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나로써는 샤를르 같은 남편을 만나지 않기 바라기에 전전긍긍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나와 도무지 맞지 않는 남편... 그리고 그런 그를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나도 마담 보바리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러나 저자는 마담 보바리를 통해 19세기 초의 낭만주의와 내부에 감추어진 낭만주의적 기질을 유감없이 해부 함은 물론이고 저자 자신이 낭만적 상상력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보바리즘>이라는 새로의 이념의 탄생과 낭만주의를 해부하는 '마담 보바리'라는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소설속의 임무에 충실하듯 엠마는 두 남자의 정부가 되었음에도 그리고 죽음을 택하면서도 크게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후회와 넋두리는 할지언정.

 

그녀의 자살의 궁긍적인 이유는 외도의 실패보다 그리고 마음의 상실보다 금전적인 면때문이였다. 무절제한 씀씀이로 가산을 탕진하고 자신을 옥죄어 오자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목숨이 남아 있는 한 엉망이 되어 버린 현실 속에 남겨지는건 엠마에게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그녀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에겐 최선의 방법이였고 엠마다운 결정이였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베트르보다 남겨진 샤를르가 너무나 갸여웠기 때문이다. 분명 따분하고 눈치없는 남편이였지만 엠마를 깊이 사랑했고 자신만의 세계속에 자신이, 그리고 엠마만의 세계속에 엠마가 사는 공통된 틀은 없었지만 엠마의 죽음과 그녀의 행위를 감당하기엔 그도 적잖은 충격이였을 것이다.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나지만 이 소설이 출간될 당시 플로베르와 출판인은 공중도덕 및 종교적 미풍 양속을 해쳤다는 이유로 피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변호사 세나르에 의해 법정은 '단호히 비난 받아야 하지만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는 점을 인정하여' 무죄 선고를 내린다. 그리하여 책의 초반에 세나르에게 바치는 헌사가 먼저 나오는데 과연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도덕적 교훈을 새기게 될지 궁금해 진다. 너무나 무절제한 세상속에서 당연히 그래도 되는 듯 착각과 혼란에 빠지면 어떻게 될지 노파심이 드는건 왜일까...

나 역시 마담 보바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작품속에 녹아 있는 수많은 가능성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답지만 몽상적이고 권태로운 마담 보바리의 저 눈빛에 전염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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