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시 창비시선 213
고은 지음 / 창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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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국어를 한밤중에 애틋하게 사모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고은 시인은 말한다.

한밤중의 애틋함.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마음이다. 나 또한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을 사놓고 읽기 시작한게 꽤 오래전인데 나의 마음처럼 고은 시인의 시는 잘 읽혀지지도 와닿지도 않았다.

시인의 비평만이 나의 귓등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그러한 비평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동조하면서 몇달을 읽다만채 방치하였다. 그렇게 묻혀있는 시집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고 후딱 소설처럼 읽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시간만 흘려보냈다.

시집을 펼쳤다 덮었다를 수없이 반복하던 밤.

그날은 무척 피곤한 밤이였다.

쌓여있는 책들을 보며 한숨짓던 밤.

그리고 도저히 시를 품을 수 없는 밤이였다. 그걸 잘 앎에도 무작정 시집을 펴들었다.

책 갈피가 꽃혀있었지만 읽은 시들이 무색할 정도로 기억이 나지 않는 밤. 남은 시를 홀라당 마음에 풀어버린 날은 그렇게 대조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피곤함, 나른함, 초로함이 느껴지는 가운데 펼친 시들이 이렇게 읽혀질지 상상할 수 없었다. 시집을 덮고 나니 읽어 버린 시간이 무색하였지만 애틋하게 모국어를 사모하였다던 고은 시인의 밤은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고 있었다.

 

글이라는 것이 어느 누가 쉽게 쓰겠냐만은 시를 휙휙 읽을 때는 나의 얼굴이 뜨겁다. 음미하는 것이 아닌 읽기 위주였기에 그러하리라.

그 밤의 나는 고은님의 시를 얼굴이 뜨거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읽어 나갔다. 그러나 그 뜨거움에는 민망함이 그득한 것이 아니라 환희와 열정이 그득하였다.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 그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이 혼연일치되는 밤.

그렇게 그 밤은 내게 각별해져 가고 있었다.

 

1부 2부로 나뉘어져 있긴 하지만 2부는 '작은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독특한 시인 반면 1부는 시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순례시이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쓴 시이기에 낯섬이 대부분이였다.

나는 나라 밖을 나가본 적이 없다는 핑계가 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낯섬. 그렇게 겉돌던 시들이였는데 순례시들 가운데 고국을 기억하는 시들을 보며 또한 작은 노래라는 2부의 시들을 보며 나의 마음은 환히 열려 버렸다.

시인이 말하는 풍경이 펼쳐지고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간. 나의 마음은 시인의 시를 따라 이리저리 여행하고 있었다.

 

특히 많은 시들의 비슷한 분위기의 1부의 시보다 고은시인만의 독특함이 살아있는 2부의 시들의 매력은 신선했다.

하이쿠 같은 독특함이 느껴지는 고은표의 신선함이라고나 할까.

절제되고 짧지만 가슴이 저릿해지는 드러남이 느껴지는 시들이였다. 시대의 아픔부터 정체성이 발견까지 두루 퍼지는 주제는 내게 멀면서도 가깝게 느껴져 한참이나 내자리로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참으로 진귀한 밤이였다. 시가 내 안으로 들어온 밤.

시를 통해 나를 재발견 할 수 있었던 밤이였다.

꾸준함으로 읽히는 시가 아닌 폭풍처럼 휘몰아쳐 많은 것들을 쓸어가는 한편 많은 것들을 남겨 놓았지만 그 가운데 서 있는 나를 발견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시에 대한 견문과 지식이 짧아 그의 시를 무어라 말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밤은 분명 그의 시가 온전히 내게 들어왔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시의 절망이야말로 과거의 시와 미래의 시를 이어주는 시의 빛나는 축제를 진행시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통해 나의 절망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배운 것은 비단 시를 통해서만이 아닌 그를 온전히 느꼈기에 가능했던게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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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스토리 3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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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럽다.

운명을 바꾼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난해하며 쉽지 않을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3권을 읽으면서 단순히 비전으로의 여행과 운명의 탑을 향한 길이 녹록치 않을거라는 예상만 했을 뿐 이러한 혼란스러움은 짐작하지 못했다.

와타루는 '탄식의 늪'에서 아버지와 아버지 애인을 닮은 사람들을 보며 현세의 와타루와 똑같은 상황임을 알고 괴로워 한다.

환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슴아픈, 자신의 고통을 감출 수 없는 상황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복선에 불과했다.

내가 혼란스럽다고 말한 것은 와타루의 여행이 깊어질수록 짙어지기 때문이다.

 

미쓰루와는 다르게 잔정많고 정의를 좇는 와타루는 하이랜더로써 또한 키키마와 미나의 동료로써 비전에서 자신의 목적외에 이루고 있는게 더러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비전 세계의 역사, 여신님의 힘을 느끼며 비전에 젖어들게 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목적을 잠시 잊으며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던 와중 비전에서 한사람, 여행자에서 한사람씩 사람기둥을 세운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없애 달라고 여신님께 말할 결심을 하지만 여신님께 말할 수 있는 소원은 한가지라는 것을 깨닫는다.

비전을 구해도 자신은 변화된게 없고 현세의 운명을 바꾼다고 하여도 상처는 마음에 남아있으니 커다란 결실을 맺을 것 같지도 않고 와타루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 와중에 '목소리'는 여신을 없애고 비전도 현세도 모두 바꾸라는 유혹을 하지만 사카와의 장로와 바크상 박사는 운명의 탑으로 가는 도중에 자연히 말해야할 부탁이 생길테니 자신을 믿으며 마음을 편히 먹으라며 충고한다.

또한 처음 비전을 여행할때 미쓰루와 와타루의 길은 다르다고 했던 것을 보며 내 마음의 것들이 그대로 보여지기 때문에 길이 다르고 혼란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 말에 와타루는 충격을 받는다. 분명 와타루가 있는 곳은 비전이지만 현세에서의 와타루이기 때문에 불합리함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여행자의 마음을 반영하여 비전이 형태를 이루기 때문에 모든것이 와타루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행은 처음 내가 생각하였던 위험과 책임의 임무를 떠나 훨씬 복잡한 것이였다.

여신이 만든 세계 비전으로 여신이 초대하여 와타루가 왔으니 비전의 법을 어느 정도 수행해야할 터, 미쓰루는 점점 힘들어지지만 꾸꿋이 가보기로 한다.

포기한 여행자들이 살고 있던 델라 루베시의 안일함과 파괴를 본 후 와타루는 도망친 배신자를 쫓다 미쓰루를 만나지만 미쓰루다운 냉정함과 확실한 목적성에 크게 실망하고 만다.

보석을 찾기 위해 배산자가 현세에서 가져온 동력선의 도면을 걸고 북쪽 세계와 거래를 하려고 한다. 미쓰루는 그 거래로 통해 보석을 얻고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겠지만 비전은 더더욱 혼라스러워짐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러나 와타루는 그것을 두고 볼 수가 없다.

오히려 여행자로써의 냉철함을 지니고 있는 미쓰루가 옳은 모습일지도 모르는데 와타루는 비전의 세계의 호란도 현세의 자신의 상처도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답답해보이기도 하고 미쓰루의 말마따나 사람좋고 한가해보여 저래가지고 운명의 탑에 도착할 수 있으며 사람기둥이 되어 버리는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와타루를 지나칠 수 없는건 우리의 마음 또한 미쓰루보다 와타루를 조금 더 닮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잔정이고 정의로움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올바르게 가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와타루도 다른 길로 가면 편하겠지만 내 마음이 내켜하지 않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잠시 목적을 잃더라도 그렇게 차근 차근 올곧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그러한 혼란스러운 마음이 어떻게 정리가 될지 알수 없지만 그 과정만으로도 와타루는 자신의 운명과 맞섰고 자신에게 진실되어 있었다.

나 또한 혼란스러움이 그득하기에 4권에서의 결말이 무척 궁금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싸하게 아려오기도 한다.

아무래도 그건 세상 모든것을 구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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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자전거
크리스틴 슈나이더 지음, 에르베 삐넬 그림, 공입분 옮김 / 그린북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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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나빠서 빨간 안경을 쓰게 된 조조는 보기 싫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복도에 놓여 있는 세발 자전거였지요.

세발 자전거는 꼬맹이들만 타는 것이라고 조조는 생각했습니다.

조조는 두발로 된 멋진 자전거를 타는게 소원이였어요. 두발 자전거를 타고 숨이 턱까지 차도록 바퀴를 비비며 여러 곳을 여행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드넓은 들판을 원없이 달리고 어두운 터널을 만나더라도 하얀 빛이 들어올때까지 멋지게 달리는 꿈을 꾸고 있었지요. 그러나 늘 조조를 따라다니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조를 걱정하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였지요.

조조가 두발로 된 자전거로 신나게 다리는 상상을 하면 '위험해 조조'라며 외치는 엄마 아빠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조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 목소리가 달라졌어요.

조조에게 멋진 선물을 풀어 보라며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새 자전겨였어요.

그런데 좋아하던 조조의 얼굴이 어두워집니다. 바로 보조바퀴 때문이지요. 안그래도 두발 자전거가 타고 싶어 달뜬 조조는 보조바퀴가 귀찮아집니다. 엄마 아빠는 처음에 이렇게 타야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조조는 엄마 아빠의 충고를 듣지 않고 쌩쌩 달리다가 그만 넘어지고 맙니다. 엄마 아빠는 놀래서 달려오지만 조조는 자전거를 보며 기뻐합니다.

귀찮아하던 보조 바퀴가 부러졌으니까요.

조조는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고 천천히 페달을 밟아봅니다. 앞으로 나아고 있습니다. 꿈에서처럼 조조는 자신만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걱정하고 있던 엄마 아빠도 목소리가 달라졌어요.

잘하고 있다고 응원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조조는 이제 자신감을 얻었을꺼예요. 꿈속에서 달리었던 들판과 터널을 달리더라도 문제 없을 겁니다.

두발자전거를 타는게 소원이였지만 보조바퀴를 통해 바로 껑충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 하나의 단계를 거쳐서 두발자전거를 탔으니 느끼는 바가 있을 겁니다.

내 마음대로 하다가 다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을때 가능성은 조조에게 더 많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조는 당당히 두발 자전거를 탔고 그 자전거를 타면서 조조가 꿈꾸고 상상하였던 세계를 만나고 있었으니까요.

 

처음 내가 자전거를 탈 적이 생각이 납니다.

중심 잡기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해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고 넘어질때는 너무 아파 울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탔을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 였답니다.

지나가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한지 그때 처음 알았거든요.

조조도 분명 자전거를 통한 새로움을 맛보고 싶었을 겁니다.

더이상 자신은 꼬맹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고 세상 끝까지 달리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이제 조조는 자전거를 타며 세상 구석 구석을 돌아다닐 꺼예요.

세상은 넓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어떠한 일이든 마찬가지예요.

우선은 부딪혀보며 느껴보아야 해요.

그래야 지나가는 바람이 시원한줄도 알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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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와 미니모이 1 - 미니모이 세계를 찾아서
뤽 베송 지음, 이희정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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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니모이들을 생각하면 괜히 나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무심코 한 행동이 미니모이들에게 커다란 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mm밖에 안되는 미니모이들을 내가 볼 수 없기에 이러한 말들이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아더에게는 다르다. 직접 미니모이들의 세계를 다녀왔었고 미니모이들처럼 몸집이 작아져 굉장한 모험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정원에 살고 있을 미니모이들의 세계를 잘 지켜줄 터이고 미니모이들과 자신의 집의 문제까지 다 해결했으니 당분간은 안심하며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더는 사랑에 빠져있다. 미니모이인 셀레니아 공주를 그리워하는 날들은 괴롭고 힘들겠지만 또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셀레니아를 얻었으니 값진 기다림이 될 것이다.  

  아더 못지 않게 미니모이 세계의 짜릿함을 맛본 나도 다음권의 책을 기다리는 시간이 값진 기다림이 될 것 같다. 너무나 유명한 감독 뤽 베송은 이번에도 역시 이름값을 하였고 책을 읽고 난 후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라는 간절함까지 생겨났다.책속에서 내가 느꼈던 재미와 상상이 어떻게 펼쳐질지 무척 궁금하기 때문이다. 책의 중간 중간 애니메이션이 실려 있었지만 애니메이션 또한 독특했기에 책과 비교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뤽 베송 감독의 상상력 또한 뛰어나지만 줄거리 또한 탄탄하여 읽는내내 재미와 감탄에 빠져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애니메이션과 책의 연령층 구분이 많이 없어졌다지만 어린이 위주라서 완성도나 구성에 조금은 얕보았던게 사실이였다. 그러나 생각외로 재미있게 읽었고 미니모이들의 세계에 푹 빠져 나의 상상력은 한없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4년전 할아버지가 실종되고 홀로 남겨진 할머니와 어린 아더가 과연 빛 독촉을 해결할 수 있을지 할아버지가 남긴 비밀을 풀 수 있을지 의심했었다. 아더는 이제 막 10살이 되었고 미니모이들의 존재를 알았다고 해도 48시간이라는 시간 안에 마타살라이 전사들이 할아버지에게 준 루비를 찾아야 하고 다비도가 아더의 집을 차지하게 되면 미니모이들에게도 위기가 닥치기에 이 모든 것을 아더가 해결해야 한다.

  우연히 할아버지의 비밀을 풀고난 후 마타사라이 전사들의 도움으로 미니모이들처럼 몸집이 작아진 아더의 모험은 시작된다. 미니모이 왕국은 지상위의 위험도 알지 못한채 저주 받은 M 말타자르의 공격에 위협 당하고 있었다. 마법의 검을 뽑은자만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 셀레니아 공주는 마법의 검을 뽑지 못하고 지상에서 내려온 아더가 검을 뽑게 된다.

  셀레니아, 아더 그리고 셀레니아의 동생 베타메슈는 말타자르의 계획을 무마시키기 위해 아무도 돌아온 적이 없는 네크로폴리스로 떠나게 된다. 온갖 위험과 아슬 아슬함을 거쳐 세명의 아이들은 임무를 수행하고 실종되었던 할아버지까지 찾게 된다. 그 도중에 셀레니아와 아더는 얼떨결에 결혼을 하고 그렇게 그들의 운명은 시간에 맡겨진다.

  가까스로 지상에 올라와 원래 모습이 되는 아더는 마타살라이 전사들이 할아버지에게 준 루비를 찾게 되고 위기를 벗어난 후 그렇게 2권은 끝이 난다. 3권에서는 어떻게 셀레니아와 아더가 만나게 될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귀환으로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말타자르가 죽지 않았을 뿐더러 셀레니아와 아더의 문제도 쉽게 생각할 수 없기에 다음의 이야기도 기대가 되고 무척 흥미진진할 것 같다.

  2mm의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미니모이 세계를 재미나게 그려주었고 신비함으로 가득찬 우리에게 가깝지만 먼 곳 미니모이 왕국의 등장도 독특했다. 그러므로 인간세계와 미니모이 왕국의 조화를 어떻게 이어갈지 기대해보며 그들의 변화에 동조하려 한다. 어여 3권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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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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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보는 미치 앨봄의 신간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따뜻해지는건 전작에서 보여 주었던 삶과 죽음을 통해 많은 메세지를 던져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억지로 묻어 나오는 감정이 아닌 내 안에서 스르르 던져지는 자연스런 감정의 이입은 그래서 더 소중했다.

저자의 문체는 조금은 어두우면서도 아픈 마음을 자극 시키는 강렬함을 가지고 있다. 그 감정은 내가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며 살아 있으므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한 요소였다. 언젠간 나도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러한 느낌보다 무상함을 논하며 평안을 더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살아있기에 죽음에 대한 준비보단 후회를 줄이기 위해 충실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찰리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만나고 나서 자신의 삶을 돌아 볼때 후회와 부끄러움이 드는 일이 더 많았다.

어린시절부터 상처를 안고 자란 그는 자신의 삶을 흥청 망청 써버린다. 자신을 걱정해주고 사랑해주었던 사람들의 마음도 모두 망각한채 말이다. '우행시'에서 블루 노트를 보는 듯한 어머니와의 추억과 자신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가슴 아프고 우울함이 그득한 것들 뿐이다. 영화 '환생'에서 처럼 간절히 그리워 했기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들처럼 찰리에게 어머니 또한 그런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녀가 그리워 했기에 찰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만날을 수도 있으나 찰리에게 어머니의 등장은 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며 후회와 번민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때는 촉망받던 야구선수이기도 했던 그가 자살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였을까.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었기에 자신의 소중함과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던 사람들을 잊어버린 탓이였다. 내 자신에게 부끄러운 것도 모자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러한 대접을 받는 다는건 삶을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늘 자신을 사랑해주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도 알지 못했던 찰리는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죽으려 했으나 살아 있다는 느낌 때문에 다시 한번 시작해 보려고 했던 찰리.

그러나 어머니와의 시간은 끝나가고 자신의 생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그렇게 그리워하며 마음 한구석에 자신도 모를 정도의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어머니를 만났으니 그것 만으로도 만족했다. 그 시간을 통해 찰리는 지금껏 느꼈던 외로움, 괴로움, 상실감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에게 그러한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또한 그 사람과의 하루가 나의 삶을 보상받을 수 있을 정도의 가치를 담고 있을만한가.

나는 잘 모르겠다. 찰리처럼 망가지지 않으려 아등바등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하루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후회를 적게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일까. 나의 생활에서 활기와 생기를 잃어버린지 오래고 버티기로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 또한 나의 소중함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모두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최소한 주변 사람들을 마음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찰리와 찰리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 상황이였는데 사소함으로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우리의 과거 모습이 이런 아픔으로만 기억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기쁨과 따뜻함이 더 많아야 할 것이고 어머니와의 하루가 가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듯 나의 하루, 나의 하루 속에 속해 있는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럴때에 인생의 끄트막에서 회한의 눈물을 덜 흘리리라.

 

매일 매일 그러한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는 우리 일지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그러한 사람과 보내고 있다 생각하며 살아보자.

누구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닌 나 자신에게 우선 솔직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가지 말라고 하는데 자꾸 어긋난 쪽으로 가고 있다면 그건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한 모순의 바탕은 후회와 번민이 종착역일 수 밖에 없다.

지금껏 그래왔다면 이제는 따뜻한 하루 하루를 맞이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려 놓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과의 하루를 가져보는 것도 한 방법일테다.

어떠한 하루든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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