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좋은 10가지 이유 꼬마 그림책방 29
최재숙 지음, 문구선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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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설유치원에 다니는 첫째는 재량휴일로 오늘 유치원에 가지 않았다. 둘째는 어린이집에 등원을 해서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둘이서 무엇을 하며 놀까 하다 도서관에 가서 그림책 보고 돈가스를 먹고 오자고 했다. 아침에 둘째를 등원시키고 바로 도서관에 가서 큰 아이 도서대출증을 만들었다. 미성년자라서 만드는 방법이 좀 복잡했는데, 집에서 미리 가입을 하고 아이디를 만들어서 사진만 찍고 바로 카드를 발급받았다. 내 도서대출증이 10년도 넘은 거라 새로 발급하라 권유하기에 나도 다시 만들었다. 똑같은 카드를 만든 뒤 책도 보고, 돈가스를 먹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오늘 해본 게 다 처음이라는 첫째는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둘째는 말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 얼마 전에 알려준 “엄마, 사랑해”를 잠들기 전에, 잠에서 깨자마자 해준다. 아직 표현 방법이 다양하지 않은 둘째에 비해 첫째는 기분과 상황에 따라 “엄마, 사랑해.” “엄마, 미워.” “엄마, 나 속상해.” 등 다양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늘 부족한 엄마에게 사랑 표현을 더 많이 하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더 잘해주고 싶은데 나도 엄마가 처음이니 실수하면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첫째에게도 내가 좋은 이유가 10가지 이상 될까, 싶었다. 주인공은 매일매일 뽀뽀해 주고, 맛있는 밥을 해주고, 형이 뺏어간 장난감도 도로 빼앗아주고, 예쁘다는 다양한 이유로 엄마를 좋아한다. 반면 친구 앞에서도 뽀뽀하고, 아줌마들이랑 웃을 때는 정말 시끄럽다며 엄마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엄마가 그림책을 읽어주며 잠 재워줄 때도 좋다고 했다. 엄마가 읽어주는 <아기돼지 삼형제>의 내용이 덮고 있는 이불위로 펼쳐지는 부분에서 행복한 잠으로 빠지기 직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듣고 있는 책 내용이 그렇게 이불 위에 펼쳐진다는 상상력이 참 좋았다. 그러나 이내 책 속의 동물들과 배경이 뒤엉켜서 모두 날아가는 장면에서 ‘그래도 중간에 빼먹고 읽지는 마, 응?’ 하는데 순간 너무 공감이 가서 빵 터졌다. 나도 너무 피곤할 때 슬그머니 두 장씩 넘기거나 글씨를 빼 먹고 읽는데, 그럴 때마다 첫째가 여기 빼먹었다고 친절히 알려주면 마지못해 읽어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먼저 잠들어버린 엄마를 보며 ‘그런데 사실은…… 난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그냥 좋아.’ 라고 말하는 주인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행복한 웃음이 배어나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엄마라서 그냥 좋아.’라는데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니 그냥 사랑스러운 것처럼 아이들도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좋아해주면 그것보다 더 기쁜 게 있을까 싶다. 부모가 된 뒤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유가 아이들이 되어가는 것. 그것이 때론 힘들 때도 있지만 행복할 때가 더 많다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다. 우리 부모님도 그랬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거리면서도 내 아이들을 키울 힘이 더 난다. 그렇게 사랑은 대물림이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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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카프카 단편선 세계의 클래식 9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세훈 옮김 / 가지않은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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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작품집을 대부분 소장하고 있음에도「변신」을 이제야 읽었다. 줄거리를 익히 들어서 익숙한 것도 있었고, 인간이 벌레로 변해버리는 잔인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변신」이외에「선고」와「요제피네, 여가수 혹은 쥐의 종족」도 실려 있지만「변신」이 단연 돋보였다. 그만큼 비극적이었고, 씁쓸했고, 모든 걸 포기하고 굶어 죽어가는 그레고르 잠자가 그저 안타까웠다.


세 편의 작품을 읽는 내내 모호하고, 알 수 없고, 혼란스럽다는 느낌이었다. 조금이라도 딴 생각을 하게 되면 흐름을 알 수 없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답답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저자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혼란을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20세기의 불안하고 불투명한 세계를 예리하게 꿰뚫어 본 작가’라는 수식어처럼 그의 삶이 순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성공과 결혼에 대한 압박,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위가 그를 얼마나 숨 막히게 했는지 생각만 해도 답답해진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프라하와 아버지의 곁을 죽기 직전까지 이루지 못한 카프카. 그가 남긴 문학이 현실과 먼 이상이 되었을지언정 그 안에서만큼은 탈출구가 되길 간절히 믿고 싶었다.

이런 저자의 삶을 인지하고 작품을 대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고 그에 따르는「선고」의 인물들,「변신」에서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와 보이는 그대로 벌레취급 해버리는 가족들,「요제피네, 여가수 혹은 쥐의 종족」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현실의 괴리를 만들어 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변신」의 그레고르는 쉽게 간과할 수 없었다. 온 가족이 그의 경제활동으로 편하게 살아가지만 정작 그는 그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한 자신을 보면서도 직장과 가족 걱정을 하고 자고 나면 다시 괜찮아질 거란 생각이 그가 맞이하게 될 죽음에서 제발 멀어졌으면 싶었다. 어찌 보면 진정한 해방을 맞이했을 수도 있는 변신으로 인해 그는 더 지독한 구속으로 이어져 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가족의 부양자에서 한 순간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그레고르는 자신이 벌레로 변신해 버린 참담한 현실보다, 가족들의 냉대와 무관심에 더 깊은 상처를 받고 굶어죽기에 이른다. 냉대와 무관심. 여기서 섬뜩했다. 우리가 무심코 보내는 그러한 시선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내면에 갇히게 했는지 말이다. 가깝다고 예외가 있을까?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그레고르가 당면하게 되는 현실이 너무 처절해서 정말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일지 혼란스럽기 까지 했다. 그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 다시 부양자의 굴레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어떤 것도 섣부른 단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 자살을 택할 만큼 그의 고통이 컸다는 사실과 그가 죽은 뒤 온 가족은 큰 짐을 덜어낸 듯 소풍을 갔다는 사실만이 무력하게 만들 뿐이었다.

저자의 작품 속에는 저자 자신이 깊숙이 내재되어 있지만 현실과의 괴리도 느껴진다. 하지만 나의 바람처럼 작품 속에서 온전한 자유와 해방, 완전한 이상을 추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창작활동이 그에게 숨통을 준 것 같으면서도 복잡하고 답답한 현실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저자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해가 없기에 단면만 보고 이런 판단을 했을지라도, 그가 남긴 작품 곳곳에서 절절함이 느껴져 이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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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소망 - 인생의 밤이 길고, 상처가 깊을 때
케이티 데이비스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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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다 보고 계신다. 우리의 상처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다 보고 계신다. 그리고 그 상처를 사용해서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 하나님은 무조건 고통을 피해 가게 하시지 않고, 고통 속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 성장시킨다. 142쪽


초반에 집중이 되질 않아 책을 덮었다, 펼쳤다 계속 반복했다. 입양한 딸들이지만 열세 명의 엄마라니. 사역자로 우간다에 왔다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열세 명의 딸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지 상상이 되질 않아 답답했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아마 답답했던 상황은 나보다 8살이나 어린 그녀가 열세 명의 아이들을 수고롭고 힘들지만 기꺼이 키워내는 상황에서, 두 명의 내 아이들을 힘들다고 티를 낼 수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들을 키우는 것만이 그녀의 일이 아니라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집을 내어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모든 것이 엉망일 게 빤한데도 그녀는 기쁘게 그 모든 일을 감당했다. 그 사실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러지 못하다는 절망감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주님과 함께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꾸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런 고통과 슬픔, 상실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기쁨과 평안을 맛보게 될 줄 몰랐다. 처참한 현실이 나의 장밋빛 낙관을 무참히 깨 버림으로써, 그 낙관이 진짜 소망을 흉내 낸 싸구려 모조품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23쪽

그녀가 하는 일은 주님이 없어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많은 아이들을 남겨 놓고 죽어가는 엄마를 돌보고, 남겨진 아이들을 걱정하고 맡아줄 사람을 찾는 일. 그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하나님께 따져 묻기도 했다. 왜 엄마가 필요한 아이들에게서 엄마를 지켜주지 않냐고 말이다. 주님께서 구해 주실 거라 믿지 않으면 그 모든 과정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 투정도 부리고, 상심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언제나 주님은 곁에서 모든 걸 예비하고 계심을, 인간의 생각보다 더 깊은 뜻이 있음을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가 너무 은혜로웠다.

딸아, 네가 고단한 걸 잘 안다. 하지만 나는 피곤하지 않다. 나는 지치지 않는다. 절대 피로해지지 않는다. 내게 기대라. 네가 약할 때 내가 강하니. 175쪽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사역 속에서 그녀는 피곤하다고 주님께 말하면 주님은 이런 음성을 주셨다. 이런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믿음과 마음이 있다는 사실 앞에 숙연해졌다. 주님께 기대지 않고 내 의지대로, 기분대로, 멋대로 해석하고 풀었던 나의 과오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영원한 불에서 꺼내 주신 분이 이 짧은 삶의 고난에서도 당연히 구해 주시지 않겠는가.’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있기에 내 삶에 윤기가 하나도 없고 다른 사람과 비교만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었다.

사역은 하나님의 부름 받은 사람들이 하는 거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보면서 정말 그렇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도 삶의 모든 걸 주님께 맡기고 그 안에서 뜻을 찾으려는 그녀의 모습만 봐도 평안했다. 우간다에서 그녀가 만나고 돕는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 사람들이 주님을 알고 새 삶을 찾아 갈 때 그녀는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렸다. 그야말로 주님의 은혜가 풍성한 삶이었다. 불확실한 미래로 불안해하지 않았고 모든 현실을 자책하지 않았으며, 좌절하지 않았다. 주님께 생명이 있고, 구원 받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그녀를 통해 보살핌을 받는 사람들이 다행이면서도, 우리가 돕고 하나님을 알려줘야 할 사람들이 많음을 보았다. 언제까지 내 신앙에 갇혀 자책만 하고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인가! ‘세파에 시달려 만신창이가 되고 무엇 하나 내놓을 것이 없는 우리지만, 예수님은 그것과 상관없이 사랑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웃어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녀 같은 사역을 못해서 내가 작아지는 게 아닌, 내 믿음을 키우고 내가 할 수 있는 복음을 전하는 게 내가 실천하는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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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내가 된다 - 청년 멘토 이영표를 뛰게 하는 가치들
이영표 지음 / 두란노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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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이렇게 확신이 없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꿈이 없으면 어때, 그래도 괜찮아. 꿈을 찾는 게 더 힘들어.’ 혹은 ‘꼭 뭔가를 해야 해? 안하고 하고 싶은 대로 살면 안 돼?’ 이런 내용이 전부다. 그러다 어린 나이에도 하고 싶은 게 확실하면 대단하다고 말해준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몰라서 찾고 있다고 좀 멋쩍어 하면서 말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내 말이 꼭 틀린 것도 아니다. 그리고 꿈을 찾으라는 말도 그렇다. 이렇게 꿈에 대한 나의 모호한 말과는 달리 축구 선수로 익히 알고 있는 저자의 ‘재능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란 말에 어떻게 이런 확신이 드는지 궁금해졌다.


자신의 재능을 찾아 쉽게 성공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이 내 안에 숨겨 놓으신, 노력으로만 찾을 수 있는 은혜의 선물인 또 다른 의미의 재능을 찾아나서야 하지 않을까? 이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38쪽

늘 재능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고 여겼던 내게는 좀 과하게 들렸다. 하고 싶은 분야에 10년 노력하면 어느 정도 성공한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당장에 결과물을 알 수 없기에 미적지근하게 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내 안에 숨겨 놓으신 재능이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꿈과 재능에 대한 나의 태도는 그야말로 내 안에 내가 주인인, 인간적인 마음으로 가능과 불가능을 멋대로 나눴기 때문이었다.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라고 입술로 말하면서 정작 이성적으로는 내가 주인인 삶을 살고 있었기에 이토록 활력이 없고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세상을 향해 ‘노력 없이 그저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불공평을 외치고’ 있었다.

part 1 <마음의 가치관>에서는 축구선수로서의 경험이 진지하게 묻어난 성공, 삶, 인내 등 마음으로 지녀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처음엔 왜 이렇게 뻔한 얘기를 하나 싶었다. 누구나 성공을 바라고, 그럴 방법이 있다면 우르르 몰려가서 배운다. 하지만 많은 조건들이 뒷받침 되지 않을 때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자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 배웠던 인생의 지혜들이 많이 언급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내 하나님이 주인인 삶은 그런 지혜도, 성공도, 이후에 오는 허무함이 아무것도 아닐 때도 있고,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 더한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말해준다.

사람들은 삶의 주인이 자기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삶과 죽음의 문제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 115쪽

우리는 하나님께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았다. 오로지 믿기만 하면 어떤 조건 없이 공평하게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그렇게 감격했으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해지고, 의심하고, 결국엔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뭘까?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이 나를 위해 대신 피를 흘려 목숨을 구해주셨다는 사실을 잊고, 당장 눈앞에 놓인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간증한다. 어쩌면 우연이라고, 소소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도 있겠지만 그런 소소한 감사도 드리지 못하면서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신할 수 있을까?

저자는 청년 멘토의 역할도 하고 있어서인지 동성애에 대한 옳은 판단, 진정한 자유,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대한 모든 것을 성경으로 풀어낸다. 성경으로 풀어내지 않으면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기에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간과하고 있었던 내용들도 많았다. ‘우리가 아직 이 땅에 남아 있는 것은 우리를 통해서 무언가를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이다.’ 라는 말 앞에서 나의 지난했던 날들에 대한 게으름이 부끄러워진다. 꿈이 없다면 하나님의 계획이라도 찾아야 하는데, 너무 세상에 젖어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무엇에 가치관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많은 메시지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가운데서도 이런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믿음의 자녀가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실천하게 해주세요.’ 라고 말이다. 평범한 내 일상에 대한 감사와 함께 실천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이런 고민이 주님께 다시 나아가는 길이고, 지치지 않은 일이라고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진정한 내가 되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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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빵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2
백희나 글.사진 / 한솔수북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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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비도 오고 꾸물꾸물한 날이면 가만히 집에만 있고 싶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볼일을 본 뒤 바로 집으로 와서 제습기를 틀었다. 제습기 덕분에 덜 마른 빨래도 말리고, 집도 뽀송해지는 기분이라 나름대로 집 안에서의 활동들이 뿌듯해진다. 최근 들어 유난히 습기에 민감해지는 나인데 아이들은 다른가 보다. 우리 집만 해도 비가 온다고 하면 아이들은 즐겁게 장화를 신고 우산을 챙긴다. 이 책 속의 ‘나’도 비가 오는 것을 보고 동생을 깨워 비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 걸 보니 아이들은 비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동생과 함께 밖에서 비오는 하늘을 쳐다 보다 나뭇가지에 걸린 작은 구름을 발견한다. 어릴 때 하늘이 너무 맑은데 흘러가는 구름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손을 뻗으면, 지붕 위로 올라가면 닿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진짜 나뭇가지에 걸린 구름을 잡아 집으로 가져온다면 정말 신날 것 같다. 아이들은 작은 구름을 엄마에게 가져다주고, 엄마는 구름을 밀가루 삼아 아침으로 먹을 빵을 만든다. 빵이 만들어지는 동안 아빠는 아침을 거른 채 허둥지둥 출근을 한다.

부엌에는 고소한 냄새가 퍼지고 잘 익은 구름빵이 두둥실 떠오른다. 빵이 저절로 떠올라 그걸 하나씩 잡아서 먹는 모습이 따뜻한 전등과 함께 행복한 웃음을 만들어 낸다. 구름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떠오르는 빵의 모습을 아이들은 얼마나 즐거워하고 행복해 할까? 빵을 좋아하는 내 아이들도 만약 이렇게 빵이 떠다닌다면 아마 먹기도 전에 깔깔거리며 신나 할 것 같다.

구름빵이 저절로 떠다니듯이 빵을 먹자 엄마도, ‘나’와 동생도 모두 둥둥 떠다닌다. 아이들은 빵을 먹지 못하고 출근한 아빠가 마음에 걸린 듯 아빠에게 빵을 가져다주기로 한다. 구름빵을 먹은 뒤라 걸어서 아빠를 쫓아갈 필요가 없었다. 투명봉지에 먹음직한 빵을 싸가지고 비오는 하늘을 날아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있는 아빠를 발견한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빵을 주고 구름빵을 먹은 아빠도 둥실 떠올라 회사로 간다. 가까스로 지각을 면한 아빠를 보고 안심한 뒤 다시 하늘을 날아 집으로 도착한 아이들. 지붕 위에 앉아 구름을 바라보며 구름빵을 먹은 아이들은 연신 맛있다며 감탄한다.

비오는 날은 온통 회색빛이라 괜히 우울해지고 감상에 젖게 만든다. 그런데 비구름에 상상력을 덧대 풍성한 색깔과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며 비 오는 날이 달리 보였다. 비 오는 날이면 신발과 바짓단이 젖는 게 싫어서 아예 젖을 채비를 하고 나간다. 아마 날아다니느라 더 젖을지도 모르겠지만 구름빵이 있다면 나도 그 빵을 먹고 아이들 하원을 하러 가고 싶어진다. 아이들도 하나씩 먹여 두둥실 떠올라 창문을 열고 우리 집 복도에 닿는 상상.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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