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최초의 연작소설,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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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를 읽고 나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저히 하루키란 작가를 배제하던 내가 그를 다시 보게 된 계기는『언더그라운드』덕분이었다. 그 책을 읽기 전에『1Q84』도 읽었고 그의 단편집도 몇 권 읽었다. 하지만 여전히 저자를 경계하는 마음을 갖다『언더그라운드』를 읽고 나의 편견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이후로 초기작을 찾아 읽으면서 서서히 그의 작품세계를 관망하게 되었다. 1995년 일본 지하철에서 벌어진 독가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묶은『언더그라운드』가 왜 그렇게 내 마음을 움직였는지 명확히 설명할 순 없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사건을 현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라는 이름으로 지나치지 않았다는 점, 지난하고 힘든 과정이었음에도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꼼꼼히 기록하고 마지막에 나같은 독자도 눈물을 흘리게 만든 진정성에 마음을 열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최초 연작 소설이자 고베 지진이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이 소설집도 지나칠 수가 없었다.『언더그라운드』가 기록문학의 형태를 띠고 있다면 이 책은 소설이기에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다섯 편의 단편 모두 고베 지진이 배경으로 드러나지만 자세한 설명이나 현장의 모습이 아닌 고베 지진을 당한 누군가와 관련이 있다는 어렴풋한 연결고리만 드러나고 있었다. 지진의 폐해가 피부로 와 닿기보다 큰 자연재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무력감과 고독이 엿보이기도 했다.


  텔레비전 앞에서 지진 소식을 꼼짝하지 않고 보던 아내가 갑자기 떠나 이혼 요구를 하는가 하면, 모닥불 앞에서 한 남자는 아내와 아이가 고베에 살고 있다고 고백하고, 뱃속의 아이를 지우게 하고 자신을 버린 대가로 그 남자가 지진으로 깔려 죽었으면 바라고, 개구리 군과 함께 대지진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장 짙었던 작품은「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였다. 40대 독신남과 함께 땅 밑으로 내려가 거대한 지렁이를 진정시켜야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이야기는 조금 황당하지만, 그렇게 큰 지진을 겪고 나면 그런 생물이 땅 속 깊이 살고 있을 것 같단 착각이 일기도 할 것 같았다.


자  꾸『언더그라운드』를 언급하게 되는데 기록문학을 만났으니 소설 속에서는 고베 지진이란 사건이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궁금했다. 처음엔 연작소설, 고베 지진의 정보 때문에 단편 각자가 지닌 색깔과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생각했던 것처럼 고베 지진에 대한 세세함보다 그 지진을 지켜봤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러나자 그제야 소설 자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지진이란 사건이 관통함에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필연을 담고 있다고나 해야 할까?


눈에 보이는 게 반드시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의 적은 나 자신 속의 나이기도 해요. 나 자신 속에는 내가 아닌 나가 들어 있습니다. (181쪽)


  어쩜 이 모든 이야기는 커다란 자연 재해 앞에서의 무력한 인간보다 ‘자신 속의 내가 아닌 나’를 이겨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쉽게 정답을 얻을 수도 없고 방법을 찾을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의 연속성. 좀 빗겨나간 생각일지라도 이 소설을 통해 삶에 부딪히는 여러 가지 상황과 그에 상응한 각 개인의 태도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찌되었건,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때론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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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거미원숭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사상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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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단편집에 빠져 사냥하듯 그의 단편집을 수집했다. 이로써 내가 소장한 하루키 책은 더 많아졌고 읽지 않은 하루키 책은 조금 더 줄어들었다. 그렇게 책을 모으고 읽다 보니 이 책도 읽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한 하루키 단편집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였다. 대부분 두 장을 넘지 않는, 하루키 작품 중 가장 짧은 단편소설들이었다. 저자는 장편소설을 쓰는 틈틈이 책상에 앉아 생각나는 대로 이 짧은 소설을 써 내려갔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다양한 시도가 엿보였다. ‘이런 이야기도 소설이 될 수 있나?’ 싶다가 ‘될 수도 있겠군.’ 하는 그런 짤막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 짧은 소설에 안자이 미즈마루의 삽화가 실려 있다. 오래전에 출간된 책이어서 그런지 삽화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짧은 소설과 착 감기는 느낌은 거의 없었고 공동 작업이라는 애착으로 받아들였다. 소설 자체를 받아들이는 게 혼란스러워 미처 삽화까지 꼼꼼하게 볼 틈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이 단편집은 하루키라는 작가를 좋아하는 팬심으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단편집은 기이하다. 한번쯤 나도 책상에 앉아 내 안에 들끓는 온갖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로지 하루키 내면에 충실한 단편들이 아닌가 싶다. 지극히 하루키스러웠고(하루키스러움에 대해서는 늘 그렇듯이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다) 이런 엉뚱하고 타인을 잠시 배제한 채 오로지 내면을 들여다보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게 잠시 부러워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루키라는 이름 때문에 독특한 이 소설이 빛을 보게 되었는데 보통의 누군가의 소설들은 어쩜 빛조차 보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었다. 왜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소소하지만 대중적이지 못한 소설을 마주하는 내내 그런 생각과 씨름을 했던 것 같다.


 

  문화와 정서의 다름에서 오는 이질감이 이 소설을 마주하는 내내 나를 겉돌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저자의 다양한 시도를 계속 지켜볼 것이고 그의 작품들이 새롭게 출간될 때마다 역시나 앞장서서 읽어댈 것이다. 아직도 만나지 못한 하루키 작품들이 넘쳐나므로 그 사이에 틈틈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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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일기 읻다 프로젝트 괄호시리즈 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박술 옮김 / 읻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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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지 않는 책만 내는 출판사라는 기사를 보고 바로 검색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런 출판사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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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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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딱 들어맞는 단편집이었다. 개인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보다 이렇게 기이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그 경계를 하루키스럽게 잘 그려낸 것 같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디선가 일어났던 혹은 일어날 것 같은 이야기들. 다섯 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지루함이 없었고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잠시 상상 해보기도 했다.

 

  첫 번째 단편인「우연 여행자」는 저자가 삼인칭의 위치에 있지만 자신이 등장하는 만큼 가장 신빙성(?) 있어 보였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하게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어봄직 하지만 그래도 쉽게 찾아오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런 우연이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고 생명을 살리게 된다면 기이한 형태더라도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개인적으로「하나레이 해변」은 읽는 내내 마음이 찡했고 이 단편집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서핑을 하다 상어에게 물려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매년 해변을 찾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은 그렇게 아들의 환영이라도 보길 원하지만 정작 아들의 환영을 보는 건 서핑을 하는 다른 아이들이다. 그 사실에 잠시 좌절도 하지만 아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해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재조명하는 모습이 쓸쓸하기도 하고 삶이 무엇인지 되뇌어보게 만들었다.

 

  24층과 26층 계단 사이에서 사라졌다 이십 일 만에 다시 나타난 남자의 이야기도 기이했다. 남자가 사라진 기간 동안의 기억도 사라졌지만 사립탐정이라 부르기 애매모한 주인공이 그 사건을 추적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자연스레『1Q84』가 생각나서인지 남자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인생의 여자를 만난 이야기와 움직이는 콩팥 모양의 돌이 기이하게 얽히는가 하면, 이름표를 말하는 원숭이가 가져갔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여자의 이야기도 나온다. 두 이야기 모두 흥미롭게 읽었는데 갑자기 원숭이가 말을 하고 이름표를 훔쳤기 때문에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이야기는 갑자기 현실성이 없이 느껴졌다. 기이한 이야기에 한참 빠져 있다 마지막 단편을 마주하고 현실감을 되찾아서인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시나가와 원숭이」이야기는 다시 나를 현실로 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루키의 단편집에 꽂혀 소장하고 있는 단편집을 모두 읽고 나머지 책들도 부랴부랴 구입해서 읽었다. 몰아서 읽다보니 이야기들이 섞이고 책장을 덮고 나면 정작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제라도 하루키 단편을 읽었다는 만족감이 더 큰 읽기였는데 이 책은 그 가운데서도 기억에 남고 완성도에서도 만족감을 준 책이었다. 그렇게 몰아쳐서 읽던 하루키 단편집에 대한 애정은 현재 멈춰있다. 그러던 중 하루키 신간 에세이 출간 소식이 들려왔고 그 책을 읽다 또 하루키 책에 꽂힐지 모르겠지만 책장에 항시 대기 중인 그의 책들을 보며 다작한 작가라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란다. 일단 하루키 책이 읽고 싶어질 때까지 또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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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별 문학동네 동시집 19
송찬호 지음, 소복이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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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시가 읽고 싶어졌다. 책장을 서성이며 이런 저런 시집을 뒤적거리며 고르고 있는데 내 마음에 착 와 감기는 시집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동시를 모아놓은 책장에 시선이 갔고 이 책을 꺼내들었다. 마치 서점처럼 그 자리에 서서 동시를 읽고, 그림이 귀엽다며 혼자 감탄 하면서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동시를 읽으면 늘 유년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뭔가 아련했다. 아이의 눈으로(혹은 가정 하에) 사물을 보고 느끼는 시선이 좋았다. 어떻게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있고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지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에 동시집을 읽고 흉내를 내면서 한 번 써봤다면 과연 싱그럽고 순수한 마음이 드러날지 너무 궁금해진다. 30대 중반을 향해가는 아줌마인 현재의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득해져서 그런가보다.


  역시나 이 동시집을 읽는 동안 괜히 내가 순수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나의 모습을 꾸역꾸역 끄집어내어 동시에 대입해 보면서 나는 이러지 못했음을 깨닫고도 전혀 괴롭지 않았다. 대리만족을 하게 되었고 어디선가 이런 마음들이 계속 솟아나고 있을 거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마음과 어른의 마음에서 피어난 시심이 독자들에게 많이 전달되길 바랐다.

 

  그렇다고 이 시집에 쓰인 시들이 모두 기분 좋거나 아련한 추억만 떠올리게 만드는 건 아니다. 때 묻지 않은 혹은 있는 그대로 보거나 거기에 무조건적인 아이의 시선이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를 읽으면서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언뜻언뜻 어른의 시선으로 보이는 시들이 보였다. 그런 시가 나쁘다 좋다가 아닌, 어른이 동심의 마음으로 쓴 시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를 테면 ‘미국 메이저리그/야구 경기를 보는데/콧수염을 기른 감독이’라는 부분에서 어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아이라고 해서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초조해서 해바라기씨를 자꾸 까먹는 감독을 보면서 까맣게 익은 마당의 해바라기씨도 초조한가보다며 말하고 있는 시가 그랬다. 야구 경기를 보면서 마당의 해바라기씨가 초조한가보다고 감정이입을 한 적이 내게 있었을까? 갑자기 내 주변 사물들이 살아 움직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현실 도피를 위해 소설을 읽는다고 말하면서도 동시를 읽는 순간 잠시 나를 잊었다. 하지만 그런 잊음이 현실 도피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과거를 반추하게 되어 뭔가 좀 더 아련한 기분이다.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고 하면 너무 오글거릴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의 나를 마주할 수 있어서 생각지도 못한 시간을 갖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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