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들어봤으면 - 국내 최초, 음악이 들리는 책
구송이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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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때 나에겐 음악이 전부였다. 10대 초반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기반으로 한 국내가요였고 후반엔 힙합에 빠졌다. 그리고 20대 초반엔 록음악에 빠졌고 그 이후론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 온갖 음악을 들었다. 그리고 그런 음악이 죽는 날까지 내 곁에 항상 있을 거라고, 음악을 듣지 않는 일은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 내가 음악에 시들해진 지 꽤 오래다. 일 년에 음반 두어 장 살까말까하며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음악은 6~7년 전에 업데이트 한 뒤로 거의 그대로다. 가끔 음악 들을 일이 있을 때 꺼내 들어도 질리지 않을 음악들이라서 큰 문제는 없지만 내가 이렇게 쉽게 음악을 버릴(?)줄은 몰랐다.


  깊은 밤 책장을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이 책을 찾아냈다. 한때 음악을 좋아했던 내가 언젠가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보관하고 있던 책인데 집어 들자마자 다 읽고 잠이 들 정도로 추억에 빠져 들었다. 나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지, 찾아 듣게 될 음악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기우였다. 오래 전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보았던 <4월 이야기>가 나오더니 키스 자렛 이야기도 나왔다. 기욤 뮈소의 소설을 읽다가 우연히 구입하게 된 퀼른 콘서트 음반 이야기가 나오자 눈이 번쩍 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좋아하는 음반이고 그 뒤에 <My song> 음반을 구입했지만 분위기가 달라 그 뒤로 키스 자렛 음반을 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다음날 둘째 아이와 거실에서 빈둥거리면서 오랜만에 키스 자렛 음반을 들었다. 역시나 좋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뮤지션은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와 ‘스매싱 펌킨스’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었던 제임스였다. 킹스의 음악을 깊은 밤에 유투브를 통해서 몇 곡 들었는데 조금은 촌스럽지만 뭔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는 음악이란 생각이 들었다. 북유럽 특유의 정서가 묻어나는 것 같았고 내 눈에 보이는 건 온통 시멘트 벽 뿐이지만 순간적으로 키 큰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깊은 숲에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우연히 들은 스매싱 펌킨스의 ‘Mayonaise'가 너무 좋아서 구입한 음반이 한 장 있지만 그 뒤로 다른 음반을 구입한 적도, 멤버들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저자의 제임스 사랑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언뜻 들어봐도 기타를 굉장히 잘 연주한다는 사실을 알 정도였지만 제임스에 대한 저자의 사랑이 넘쳐나니 섣부른 감상평은 하지 않으려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음악들을 모두 들어보지 않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음악을 들었을 때 기억이 많이 나서 빠져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나 역시 CD 플레이어를 굉장히 소중히 여겼고 음질 좋은 이어폰을 찾아서 헤매던 일. 그리고 외출할 때 신중하게 CD를 선택해서 나가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음악만 있으면 먼 거리라도 하염없이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20대의 내가 그려졌다. 한없이 우울하고 깜깜했던 20대를 지나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나에겐 현재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음악을 갈망하고 좋아하고 내 마음을 쏟아 부었던 순간들이 생각나서 고마울 정도였다.


  지금, 나를 지배했던 음악을 대체하는 건 책이다. 책에 대한 열정적인 시기를 지나 쌓인 책을 줄여나가야 하는 책임감에 깃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이 책들을 읽고 있을 거란 상상을 하곤 한다. 그러면서 음악이 내게 그러했듯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언제 또 변할지, 내게 주어진 환경이 언제 변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잠시 아찔해지곤 한다. 아찔함 속에는 아쉬움도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기다림과 설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음악이 뭘까 생각하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협주곡 1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이 또 변할지 말지 알 수 없듯이 내 곁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것이 음악, 책뿐만이 아니라 더 사람냄새 나는 행위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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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2-18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있어요. 반가운 마음이라 그런지~ 공감이 크네요 ^^

안녕반짝 2016-02-18 12:58   좋아요 0 | URL
저도 제가 그 곡을 좋아하게 될 줄 몰랐는데 오랫동안 듣다보니 좋아하게 된 곡이예요 처음부터 좋앟던 곡이 아니라^^
 

<안자이 미즈마루> 책을 읽다 <오후의 마지막 잔디>란 단편이 언급되어서 그 단편이 실려있는 <중국행 슬로보트>를 꺼내서 그 단편 먼저 읽었다. 그리고 실린 순서 거꾸로 단편집을 읽었고 조금 전에 완독을 했다. 그리곤 혼잣말로 `다시 하루키를 읽을 때가 됐군!` 하고는 책장에서 <잡문집>을 꺼내왔다. <안자이 미즈마루>에서 재밌다고 했으니 이제 읽을 시기가 된 것 같다.

하루키 책 구입을 멈춘 건, 이미 읽은 책은 서른권 가까이 되고 구입해놓고 읽지 않은 책이 열 권 가까이 된 탓에 더 늘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하루키 책을 다 읽으면 사자 하고 미루고 있는데 <안자이 미즈마루> 책 덕분에 일단 한 권이 줄었다. 다작한 작가라 책을 이렇게 많이 모았는데도 아직 내게 없는 책이 수두룩하다.

하루키를 안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정기적으로 찾는 내가 참 아이러니 하면서도 절대 관심을 끊을 수 없는 작가다. 신간이 나오면 예판을 해서라도 살 작가니 여전히 나에게 하루키란 작가는 의미가 모호하다. 여튼 그런 건 나중에 따지고 일단 <잡문집>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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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2-18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먼드 카버가 자신의 동반자라고 했듯이 대성당을 보니 하루키의 향이 배어 나오더라구요 :-)
책장을 보니 읽지 않은 문학사상사의 단쳔걸작선이 있어 - 오래된 - 저도 보려하고 있어요. :)
 
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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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일그러져 있다/그래서 모두가 서로를 찾는다 // 우주는 조금씩 팽창하고 있다/그래서 모두가 불안하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


  시인이 20대 초반에 쓴 시다. 외람된 생각일지 몰라도 천상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를 젊은 날에 썼다면 평생 언어를 품고 살아야 할 운명이라고 말이다. 시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지겹도록 말하면서도 저자를 통해 시에 좀 더 다가간 것이 사실이다. 궁금하니 저자의 작품을 찾아보며 읽고 있는데 시와 산문집을 엮은 이 책도 역시나 좋았다.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시라는 세계로 나를 끌어당기는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를 만났다.

그러나 네로/ 곧 다시 여름이 온다/ 새롭고 한없이 넓은 여름이 온다/ 그리고/ 나는 역시 걸어갈 것이다

<네로 - 사랑받은 작은 개에게>


  종종 별거 아닌 고민에 빠지곤 한다. ‘여름과 겨울 중에 굳이 선택하라면?’ 같은 시답잖지만 단박에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들이다. 지금껏 끙끙댔지만 여전히 나의 대답은 시원찮았다. 청명하다는 이유로 겨울을 마지못해 꼽곤 했는데 올 여름을 보내고 나서 여름이 더 좋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곰곰 생각해 보니 여름이 지나버리면 한 해가 훅 가버린다는 사실이 서글퍼서였다. 서글픔에 끝에는 겨울이란 계절이 있었고 날씨가 추우면 몸도 마음도 움츠러드는 게 싫었다. 그러다 이 시를 만났다. ‘곧 다시 여름이 온다, 그리고 나는 역시 걸어갈 것이다’란 시구를 읽으면서 왜 여름의 서글픔만 생각했는지, 다음 여름의 새로움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허망할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져 버렸다.

우리는 아침을 릴레이한다/ 경도經度에서 경도로/ 교대로 지구를 지키는 것이다/ 잠들기 전 잠시 귀를 기울여보면/ 멀리서 우는 자명종 소리/ 그것은 당신이 보낸 아침을/ 누군가 단단히 받았다는 증거다 <아침 릴레이>

  이런 시는 어떤가. 어김없이 찾아오는 피곤한 아침을 누군가 받았다고 생각하면 뭔가 안심이 된다. 그러면서 잠시나마 이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이렇듯 저자의 시에서는 시로 인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광활하게 뻗어나갈 수 있음을 느낀다. 나처럼 내면도, 겉으로 드러나는 시야가 좁은 사람은 이 광활함이 신기하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딘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쓰는 시라는 데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이토록 잔잔한 평화로운 마음이 든 것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2페이지 둘째 줄부터 시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먼저 고유명사가 물에 잠기고/ 형용사가 썩고/ 조사가 흐슬부슬 떨어지고/ 접속사에는 곰팡이가 많이 피었다 (중략) 활자이기를 포기한 시는 목소리로 퍼지고/ 시단은 드디어 국어사전 속으로 은퇴했다 <2페이지 둘째 줄부터>


언어와 동고동락하는 시인의 재치가 느껴진다. 그리고 국어사전 속으로 시단이 은퇴해 버린다면 세상은 훨씬 더 삭막해질 거라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시를 아찔하게 사랑하는 것도, 즐겨 읽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우리 언어로 쓰인 시를 읽는 것도 힘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번역의 문제로 해외 시를 좋아하거나 일부러 찾아 읽는 일은 극히 드물다. 다니카와 슌타로라는 시인으로 그의 시를 읽고, 시에 대해 관심을 갖는 마음이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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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학을 읽다 보면 이 책이 자주 언급되어서 늘 궁금했었다. 그래서 오래전에 구입했는데 뭔가 잘 읽히지 않아서 묵혀뒀었다. 시공사에서 이번에 출간되었기에 다시 구입했다. 이번엔 완독할 수 있길!

일단 표지는 시공사판이 더 예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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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2-17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이쁘네요. 전 예전 판본이라 아쉬워요.

안녕반짝 2016-02-17 11:52   좋아요 0 | URL
재생지인지 책 냄새도 좋더라고요^^
예전 판본이 안 읽혀서 이 책으로 다시 구입했어요^^
 

지난 금요일 낮에 남편이 뜬금없이 자기만의 공간이 갖고 싶다고 만들어 달랜다. 방이 세개인 우리집은 안방에 큰 침대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잠들지 못한 관계로 둘째랑 나랑 안방에서, 거실에서는 남편과 큰 아이가 잔다.

작은 방 하나는 옷과 김치냉장고가 있고 중간 크기인 방에는 의자가 두개 들어가는 컴퓨터 책상과 나머지는 다 책장이다. 거실에도 책장이 가득하니 뭘 해볼려고 해도 해볼 수가 없다.

그나마 남는 공간이 컴퓨터 방인데 책상 하나에는 데스크탑이, 나머지는 유모차 의자와 아침마다 개키는 거실 이불이 있어서 공간이 없다. 남편의 문자를 받고 그 책상을 치워서 쓰라고 했다. 그리고 퇴근하고 와서는 책상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낑낑대기에 이걸 거면 거실 책장 두개만 이 쪽 방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두개의 책장이 창문을 가려서 늘 어두컴컴하고 무엇보다 책장 앞에 아이들 수납장이 있어서 이상한 구조가 되어 버렸다.

남편이 이리 저리 줄자를 대보더니 각이 나왔다면서 내일 퇴근 후에 하자고 했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 내내 거실의 책장을 컴퓨터 방으로 옮기고 책장들이 연결된 곳에 생긴 틈을 메우려 책장 세 개에 꽂힌 책들을 다 빼고 미는 작업까지 하니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남편은 그날 저녁 일찍 잠이 들었고 나는 남편이 대충 꽂아둔 컴퓨터 방 책들을 다시 정리했다.

책들을 정리할 때 그 마음이란.
마음 속의 걱정까지 쫙쫙 펴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책장. 이번 기회로 온 집안의 책장을 다시 정리하고 있다. 먼지를 닦고 최대한 수납공간을 늘리고 있는데 이제 책장 2개 남았다. 이 책장까지 정리하면 당분간은 완벽할 듯! 노트북이 고장나지 않았더라면 시작되지 않았을 책장 정리! ㅋ
이제 마저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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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2-15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CTV 작동중 … 인상적입니다!

안녕반짝 2016-02-17 11:52   좋아요 0 | URL
스티커입니다^^

비로그인 2016-02-15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 정리하다 공간이 나오지 않으면 큰 집으로 바꾸세요. *^^

안녕반짝 2016-02-17 11:52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그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원더북 2016-02-15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 구경은 언제라도 즐거워요~ 가지런한 책들을 보니 제 마음까지 가지런해지는 기분입니다^^

안녕반짝 2016-02-17 11:5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근데 저 책장은 저희집 책장의 아주 일부분이라는^^

cyrus 2016-02-15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CTV가 진짜로 작동중인건가요? ㅎㅎㅎ 제가 안녕반짝님의 서재에 가면 안 되겠군요. ^^

안녕반짝 2016-02-17 11:53   좋아요 0 | URL
예전에 동네책방 폐업할 때 데려온 책장이라 스티커까지 붙어 있답니다^^

서니데이 2016-02-1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반짝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책장에 책이 참 많아보이는데도 정리가 갈 되어서 보기 좋네요. 저도 책정리를 해야 할텐데, 하는 생각 했습니다.^^

안녕반짝 2016-02-17 11:53   좋아요 1 | URL
저도 오랜만에 책장 정리 해봤습니다^^
책장 정리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