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 하 십이국기 4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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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 시리즈의 매력은 각 권마다 에피소드가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칫 분산된 느낌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연 초부터 읽었던 시리즈가 4권쯤 더해가자 나 역시 그 느낌에 점령당하고 말았다. 출간될 때마다 한 권씩 읽는 재미도 있었지만 거리감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4권을 방치하다 6권이 출간된 소식을 듣고 그제야 꺼내서 읽었다. 그리고 그런 방치를 무색하게 만들만큼 4권 상, 하권은 물론 5권까지 연달아 탐독했다.


 

  무엇보다 4권에서 반가웠던 인물은 요코다. 1권의 주인공으로 평범한 고등학생이던 소녀가 경국의 여왕으로 재위하는 소식까지 전했는데 그 이후의 이야기가 4권에서 자세히 펼쳐진다. 전혀 다른 세계로 넘어와서 자신의 여왕이란 사실을 인지하는데도 쉽지 않은 고난을 겪었는데 그 자리에 올라서도 역시나 어려움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고등학생이던 그녀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여왕이라고 하나 갑자기 모든 것을 습득할 수는 없었다. 거기다 선대왕들이 남긴 건 황폐한 국토와 가난한 나라살림이 전부라 어려움은 더해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회피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평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자 그 안에 섞여서 살기로 다짐했다는 것이다.


 

  요코와 더불어 등장하는 두 소녀가 있다. 요코처럼 인간세계에서 건너온 해객인 스즈와 방국의 공주였으나 반역자에게 아버지를 잃고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진 쇼케이다. 스즈는 요코처럼 여왕의 신분이 아니라 하급 여선이었고 그랬기에 온갖 고생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원망이 끊이질 않는다. 쇼케이는 더했다. 아버지가 왕이었지만 폭군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고 반역자에 의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모자라 매일 힘들게 일하며 갖은 구박까지 받고 있으니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분이 다른 세 소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된 세계지만(이를테면 아이를 간절히 바라면 태과라는 열매로 내려준다던지 하는) 기본적으로 왕이 얼마나 잘 다스리냐에 따라 백성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데는 옛 왕조시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왕이 폭군이거나 다스리는데 관심이 없거나 붕어하여 부재중일 때의 백성은 살기가 너무나 팍팍하다. 그렇게 흉흉하면 요마들이 자주 출몰해 사람을 해치고, 기후도 좋지 않아 추위에 시달리고, 20살이 되면 나라에서 땅을 받아 독립을 하지만 재산을 가질 수도 없고 결혼도 큰 의미가 없다. 그러니 아이를 갖는 건 특별한 일이고 오로지 목숨을 유지하는 것만이 전부다.


 

  그런 팍팍한 삶을 들여다보면서 배경은 좀 다를지라도 현재 사회와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데서 오는 씁쓸함도 있었다. 3포를 넘어 5포를 요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겹쳐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런 팍팍한 백성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건 왕이었기에 요코가 좀 더 야무지게 국정을 살핀다면 경국은 달라질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그걸 인지한 요코가 백성들의 무리에 섞여들었고 각기 다른 이유로 스즈와 쇼케이가 요코를 만나러 오면서 셋은 반란을 준비하는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하권에서는 부패한 관리에 의해 피폐해져가고 무기력해져가는 척봉이라는 지역에서 조심스레 반란을 준비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처음에는 그들이 과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차곡차곡 준비하고 인내한 무리들과 요코의 깨달음, 스즈와 쇼케이의 도움이 있어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은 짜릿했다. 요코와 나라를 진정으로 생각하는 인물들로 인해 앞으로의 경국은 지켜볼만 해졌다.


 

  이렇듯 전개가 빠르진 않지만 단계단계 밟아가며 십이국의 이야기가 상세히 펼쳐지는 느낌이 들어 더 재미있어졌다. 십이국 모든 나라의 형태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새롭게 방국의 모습도 드러났고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인해 조금 어둡긴 하지만 십이국만의 분위기에 젖어 든 것 같다. 이 열기를 다음 책들로 인해 얼른 이어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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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지금 가까워질 수 있다면 인생을 얻을 수 있다
러셀 로버츠 지음, 이현주 옮김, 애덤 스미스 원작 / 세계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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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입 안에 머금으면서 다시 읽어보니 참 좋은 제목이라며 혼자 감탄했다. 단순히 ‘나를 만드는 것들’이 아니라 ‘내 안에서’라는 말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내 안에서 과연 나를 만들 만한 재료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 누구보다 내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알고 있지만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우유부단하며 한결 같을 수 없기에 그런 재료가 내 안에 들어있다고 자각할리 만무하단 뜻이다. 그래서 더욱 더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 책의 원 저자가 애덤 스미스라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국부론>의 저자로 유명했고 나 역시 <도덕감정론>이란 책이 있는지도, 애덤 스미스가 생의 마지막까지 고치고 고쳐가며 완성한 책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거기다 250년 전에 쓰인 책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다. 또 한 번 고전의 묘미를 느꼈고 도덕적인 면을 강조하는 이 책이 팍팍한 현 시대를 살아가는데 오히려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애덤 스미스는 우주의 중심이 나라고 착각하고 살아가는 때가 많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렇게 살지 않았던 때가 거의 없었으므로 깊은 수긍을 하면서 우리 안의 공정한 목소리인 관찰자의 존재를 항상 인식하라는 말에 뜨끔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어떤 계기가 되어 내 자신에서 한 발짝 벗어나서 나를 바라볼 때의 그 어색하고 낯설고 부끄러웠던 일. 그렇게 나를 바라봤던 계기는 기쁜 일보다 안 좋은 일이었을 때가 더 많았다. 그 후에 어떠한 결정을 내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단 내 자신에서 한 발짝 벗어났다는 것은 애덤 스미스가 말한 공정한 관찰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므로, 인지를 하며 살았다는 데서 오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기본 바탕에는 선한 본성도 있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기도 한다.’라고 했다. 이 선한 본성을 출발점으로 공정한 관찰자와 끊임없이 마주하면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특히나 요즘 같이 경제도 어렵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어드는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건 자칫 고리타분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말마따나 공정한 관찰자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인생을 살아갈 때 과연 행복할까란 질문을 던져보면 답이 나온다.


  현 시류가 그렇기에, 나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은 공정한 관찰자와 타협하기에 딱 좋은 말이다. 하지만 공정함 앞에서는 타인을 그렇게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공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갈 때 남들과 비교해서 좀 뒤쳐졌을지라도 훨씬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어떠한 결과물에 대한 만족이 아닌 차곡차곡 자신의 삶을 공정하고 성실하게 쌓아간다는 데서 오는 만족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바로 읽는다면 이 책처럼 재미있게 읽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 책은 저자가 <도덕감정론>을 풀어서 현대인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한 책이기 때문이다. 문득 <도덕감정론> 원본을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 책으로 애덤 스미스가 주장하는 것들과 저자의 설명과 경험들이 곁들어져서 충분한 메시지를 받았다. 이제 그것을 실천하는 일만 남았는데 꼭 특별한 것만이 실천의 달성은 아니라고 본다.


수많은 결함과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이 세상, 이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 우리가 각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스미스의 주장이다. (243쪽)


  항상 내가 고민하는 부분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내가 선한 행동 한 가지를 하고 그 생각이 널리 퍼져나갔을 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선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금방 드러난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의 노력은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을 품고 있고 선한 행동의 변화가 불완전하기도 하며, 인간은 결점이 많아서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 세상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갈 때 그에 따른 변화는 언젠가 드러날 것이다. 그 때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내가 무슨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어?‘보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거야. 이대로 바르게 살자‘고 다짐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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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박세연 지음 / 북노마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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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추억 속을 함께 걷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어린 시절도 떠올랐다. 내가 가장 아꼈던 장난감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종이 인형을 잘라서 옷을 바꿔 입히던 일, 동그란 종이 딱지 테두리가 너덜너덜 한데도 잠들기 전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잤던 일, 그리고 미미 같던(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인형이 내게도 생겨서 머리 빗겨주고 감겨주었지만 옷을 살 여유는 없어서 못 쓴 양말 발목을 잘라 원피스로 대충 입혔던 일들이 기억이 났다. 나 역시 장난감을 사줄 형편의 집에서 자란 아이가 아니었고 부모님께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른다는 건 사치에 불과했지만 이런 추억이라도 떠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인형을 좋아하지도 않고 장난감은 말할 것도 없다.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뭘 좋아해야 하는지 방법도 모른다. 내 딸아이도 그런 나의 성향을 닮아서인지 인형을 좋아한다거나(인형이 많지만 사준 건 하나도 없고 죄다 선물 받거나 얻은 것들이지만) 어떤 장난감에 애착을 갖는 건 아닌 것 같다. 나의 어리시절과는 달리 장난감이 풍족한데 이것저것 막 사주는 성향도 아니고 비싼 것들도 많아 있는 걸로 때우고 있는 실정이긴 하다. 아이의 장난감을 가끔 검색하다 보면 수많은 종류와 신기한 것들이 많아 깜짝 놀라곤 한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워 안 사주게 되는 것도 있는데 과연 아이는 지금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기억하게 될까?


 

  저자의 어린 시절과 함께 한 장난감들과 역사까지 듣고 보니 애정이 상당하다 싶었다. 그리고 영국 유학 시절의 이야기와 벼룩시장에서 만난 장난감들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허투로 잊힐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저렇게 장난감을 모아 본적은 없지만 장난감 하나하나에 추억이 깃들어 있고 관련된 사람들이 떠오른다면 무엇보다 소중할거라는 데서 오는 공감이 있었다. 나에겐 책이 그랬고 오래전 책들을 들춰보면서 책머리의 메모를 보다 보면 추억에 빠지곤 하는데 저자는 장난감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전작 <잔>에서처럼 이 책에도 장난감 사진과 저자가 거닐었던 거리들과 그리고 직접 그린 장난감들이 있다. 그와 함께 어우러지는 짤막한 글을 읽고 있으면 향긋한 커피가 생각이 난다. 타인의 경험을 나는 내가 속한 공간에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지나 온 내 삶을 훑어보기도 하고 내 맘대로 상상도 하면서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아련한 추억을 선물할 수 있는 존재가 될까? 꼭 특별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무언가로 타인에게 마음 한켠을 내어줄 수 있는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도 덮고 나서도 예쁜 장난감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철저한 취향의 문제로 장난감에 대해서 완전 문외한이라는 뜻) 저자처럼 장난감화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오랜만에 책장의 먼지를 좀 털어내고 싶은 생각도 들었고 쌓아두지만 말고 열심히 읽어보자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경험을 통해 이런 다짐을 할 수 있어서 괜히 마음이 뽀드득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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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숲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권수연 옮김 / 포레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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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잠이 든 것 같은데 캄캄한 정글 같은 곳을 헤맸던 것 같다. 퍼뜩 놀라 잠에서 깨니 머리맡에 이 책이 놓여있다. 이래서 내가 밤에는 장르소설을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책을 손에 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나 편안하게 누워서 책을 보고 있는데 책 속의 여주인공 잔 코로바는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일념 하에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파리에서 중남미로 건너가 정글 깊숙이까지 헤매고 있었다. 기이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사건과 그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한 수사판사 잔의 모험이 나까지 깊은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장르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렇게 끔찍한 살인사건은 처음이었다. 시신의 훼손도 심했고 무엇보다 식인까지 했다. 거기다 벽화처럼 사건 현장에 이상한 기호 같은 것도 그려놓았다. 비슷한 방식으로 세 명의 여성을 살해한 범인은 흔적도 없었고 살해의 의미를 파악할 수도 없었다. 희생자들의 연결고리를 추적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을 정도로 유일무이한 사이코패스거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게 아닐까란 추측이 들 뿐이었다. 도무지 윤곽이 잡히지 않던 가운데 잔은 불법적으로 정신과의사 앙투안 페로의 진료실을 도청하게 된다. 그곳에서 한 부자(父子)의 진료 상담을 듣고 범인이 요아킴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요아킴이 누구인지, 어떻게 찾을 것인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상황에서 페로의 진료실을 찾지만 페로도, 요아킴과 그의 아버지도 모두 사라진 뒤였다.


 

  그 과정에서 잔은 그 사건을 맡고 있었던 오랜 판사 친구를 잃었다. 잔은 그 사건이 자신에게 배당되지 않을 것을 알았고 상부에서도 압력이 가해져 일을 잠시 쉬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혼자서 이리저리 애를 써보아도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일 것 같은데 우여곡절 끝에 사건의 공통점을 발견해가고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요아킴과 그의 아버지, 그리고 뒤 따라간 페로를 쫓아 파리에서 중남미까지 날아간다. 니카라과, 과테말라, 아르헨티나의 혼령의 숲까지 가는 과정에서 요아킴이 악의 잔재라는 사실이 더 확실해졌고, 그와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자신뿐이라고 잔은 확신한다. 그렇기에 그 험난하고 힘든 과정을 모두 이겨내고 결국 요아킴이 태어난 정글의 깊은 숲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서서히 요아킴의 정체와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지만 그 과정에서 듣게 되는 중남미의 역사의 어둠이 낯설지가 않았다. 특히 아르헨티아의 독재시절에 고문당하고 감옥에서 아이를 갖고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고문관들이 물건처럼 주고받고 입양하고 아이를 뺏긴 엄마들이 그 아이들을 찾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요아킴만 악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결국은 요아킴도 그런 군부의 폐해를 겪은 아이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습득되어 버린 폭력의 날것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스릴러 소설을 읽다말고 중남미 역사책을 검색하면서 당시의 역사를 좀 더 상세히 알고 싶었다. 정반대에 있는 나라의 역사였고, 내가 태어난 시기에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는 뭔지 모를 데자뷰가 그런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는지도 모르겠으나 어두운 과거일지라도 국내든 국외든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확고함이 생겼다.


 

  긴 여정 끝에 악의 숲에서 마주하게 된 요아킴과 잔. 요아킴의 존재가 드러날 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저자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범인의 모습을 조금씩 흘려주었는데 의심은 하면서도 지나쳐버린 것이다. 그래서 요아킴이 누구인지 알았을 때의 그 멍함, 그리고 그의 최후 앞에서의 허무함이 계속 잔상으로 남았다. 그의 모든 비밀을 찾아 쉼 없이 쫓아왔고 결국 알게 되었지만 반대로 그의 본모습이 무엇인지 하나도 모른 것 같기도 했다.


 

  살인사건은 충격적이었고 요아킴의 최후가 조금은 허무했을지라도 정독하며 읽게 된 스릴러였다. 오로지 결말을 향해서 무의미한 전개만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역사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이 소설을 묵직하면서도 흘려버릴 이야기로 만들지 않았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역사라면 늘 고리타분하게만 생각하던 내가 중남미 역사책을 검색하고 있는 모습만 봐도 이 책이 가진 의미는 좀 달랐다고 본다. 이 작품으로 인해 저자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으므로(책장을 뒤져보니 두 작품이나 소장하고 있었다.) 바로 실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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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스테리아 3 - 엘릭시르편집부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나온 미스테리아 3호!

이번 잡지에는 특별한 사은품이 있다. 바로 곧 영화로 개봉할 <007 스펙터> 포스터

 

 

포스터 3종 세트!

통에 든 포스터를 보니 정말 옛 생각난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음반 사고 포스터 오면 한 번 보고 곱게 접어놓곤 했는데

이렇게 영화 포스터가 통에 들어서 오니 감회가 새롭다는!

 

 

2. 여자 친구 - 마리 유키코



<악의 숲>을 읽고 나서 면연력이 생겼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집어 들지 않았을 소설인데 결혼도 하고 여자들의 미묘한 감정도 궁금해서인지 이 책이 읽고 싶었다. 나는 과연 이 책을 읽고 내 주변의 여자 친구들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3.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러셀 로버츠



요즘 너무 소설만 읽어댄 것 같아서 인문에 관한 책을 읽고 싶었다. 어려운 책은 읽을 수 없을테니 250년 전에 출간 된 고전을 좀 쉽게 풀어낸 책을 택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틈틈이 읽어볼 생각이다. 제목이 정말 좋은 것 같다. 늘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고민하는 것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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