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cm art 일센티 아트 - 1cm 더 크리에이티브한 시선으로 일상을 예술처럼 1cm 시리즈
김은주 글, 양현정 그림 / 허밍버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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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 샤워하고 나온 직후에 쐬고 있는 선풍기 바람, 모기로부터 안전한 모기장 안, 그리고 그 안으로 쏟아지는 스탠드 불빛. 이런 최적화 된 환경에서 책을 펼쳤을 때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만나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하루의 마무리가 될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펼쳤을 때가 그랬고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책을 왜 이제야 읽었을까 싶을 정도로 앞서 나온 시리즈에 관심이 갔고,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내 스스로는 알지 못하는 영역을 건드리는 듯한 신선함을 맛보았다.


  원작을 익히 알고 있기에 실재의 인물대신 곰 군, 백곰 양, 바다코낄 군이 등장하는 명화라니! 그 앙증맞음에 빵 터졌고 곁에 머물고 있는 진심을 드러내는 짤막한 글에 깊이 공감했다. 나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문장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는 동안에 아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지만 뒤페이지가 너무나 궁금해서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읽기에만 한정되지 않은, 그림을 보고, 직접 참여도 해보고, 상상도 해보는 시간들을 거치면서 일상이 예술이 되는 게 거창하지 않다는 걸 느낀 셈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참신하고 산뜻하면서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 적당한 무게감을 주는 글과 그림을 생각해 냈을까? 이런 글과 그림을 그리는데 엄청나게 치열했을지도 모르지만 제 3자 입장에서 바라본 바로는 뭔가 여유롭고 기분 좋은 자극을 시켜주는 것 같아서 편안했다. 한 때 사회라는 정글 속에서 나도 좀 독창성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내가 원하는 독창성이란 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늘 자극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의 전환과 시선을 시도하지 않은 채 텅 비어있는 내 안에 것을 쥐어짜려고만 했으니 결과물은 나오지 않고 괴로웠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씁쓸해지기도 했다.


하루는 지나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하는 것처럼 하루도 시간 에너지에서 다른 에너지로 변하는 것일 뿐이다. (87쪽)


  조금만 생각의 전환을 시도하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었던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이런 글들이 더 와 닿았던 건 경험에서 비롯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진심이 느꼈기 때문이다. 타인의 경험, 타인의 생각을 포장한 것이 아니라 깊이 사색하고 곱씹으며 뱉어내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떠돌아다는 수많은 생각과 단어들이 쓰잘데기 없는 것들이 아니며, 작은 것 하나를 붙잡고 끄집어내어 다듬고 좀 더 들여다본다면 또 다른 새로움을 만날 수도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모호한 말 같지만 그렇게 끄집어 낸 것들이 꼭 창작물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쉽게 용기내지 못했던 것, 게으름 때문에 미뤄뒀던 사소한 것들까지 무한했던 것을 유한한 것으로 만드는 시도가 어쩌면 굉장히 쉬울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을 반드시 해 보아야 한다. 두려움을 이기는 법까지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90쪽)


  그래서인지 나 또한 작은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최근에 호스피스 병동을 기록한 책을 읽고 난 뒤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고, 영국 젊은이가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고 남극과 북극을 탐험한 에세이를 읽다 보니 나도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 리뷰를 쓰다 갑자기 하고 싶은 게 생각나 아는 동생에게 우리 합심해서 이러이러한 걸 해보자고 제안을 하니 흔쾌한 답변이 들려왔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은 어떠한 결과물을 바라고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내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용기 내어 이제 끄집어내는 과정일 뿐이다. 이 책이 그런 용기의 마무리를 해주었고 소소하지만 내가 시도하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아서 놀랐다.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이유도 있고, ‘나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니 기대도 하지 말고 실망도 하지 말며 일단 꾸준히 해보자’란 마음을 가지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역시 책을 읽고 드는 생각을 실천할 때야 사람은 활기를 찾는 것일까? 언제 또 금세 지쳐서 나가떨어질지 모르지만 이런 행동을 하게 해 준 이 책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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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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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줌파 라히리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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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 - 호스피스에서 보낸 1년의 기록, 영화 [목숨]이 던지는 삶의 질문들
이창재 지음 / 수오서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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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몸도 피곤하고 정신이 산만한 상태에서 꺼내든 책이었는데 이 책을 덮고 나니 새벽 3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와는 달리 그 어느 때보다 더 정신이 또렷했고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회의감이 왔다.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 내 주변에 놓여 있는 수많은 물건들과 이 장소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내 목숨을 다하면 내가 살아 있었다는 걸 이 장소, 이 물건, 이 시간들이 과연 기억할까 싶었고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졌다.


  먹먹한 마음을 부여잡고 핸드폰 메모장을 꺼내 유언장 쓸 것, 한 달에 한 번 가정예배 드릴 것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 외에 당장 생각나는 게 없어서 이 두 가지만 썼는데 유언장은 실행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20대 때 노트에 유언장을 쓴 적이 있었는데 쓰다말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때와 달리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 내가 유언장을 쓰기란 그때보다 더 어려울 것임을 알기에 실행을 미루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은 암이라는 병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많은 당부를 남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러기가 참 쉽지 않은데 이런 담담함이 어떻게 나올까 싶었다.


  당장 내게 앞으로의 생이 3개월 혹은 6개월뿐이라고 한다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상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런 일이 꼭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데서 오는 불안감과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각각의 살아온 삶이 다르고 성정이 다르듯이 이 책 속에서도 자신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모두 달랐다. 내가 과연 저 사람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면 과연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까? 전혀 가늠할 수 없었지만 부정도 하고 원망도 하고 절망에 빠지다 결국엔 죽음을 받아들일 것 같았다. 그리고 신변정리를 하면서 내 삶을 되돌아볼 것 같지만 과연 그런 시간이나마 내게 주어질지 의문인 게 삶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책 속의, 대부분 고인이 된 분들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슬프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눈물이 참 많이 났다. 호스피스 병원의 기록이니 분명 이런 감정을 끌어낼 것 같아서 이 책을 가까이 두면서도 읽기를 한참을 미뤘었다. 그러나 이 책을 만나고 읽은 게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가까이의 사람이(나를 포함) 만약 암 판정을 받아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꼭 호스피스 병동에서 작별 인사를 하게끔 만들어 주고 싶었고, 금세 무감각해지겠지만 앞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기로 다짐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반짝하고 드는 마음이 아니라 꼭 지키겠다는 결심이 드는 다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내 삶을 관망하는 게 아닌 그 안으로 뛰어들게 결심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후유증은 금방 찾아왔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불끈 힘이 솟아 단박의 변화를 맞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기력감이 찾아왔다. 자꾸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고 죽음이 삶을 덮어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러한 책을 읽었고, 앞으로 이렇게 살아가자 문자를 보내놓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덜 내야지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 변화는 분명 일어났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왜 그랬냐고 다그치면서 들었던 순간적인 분노와 절제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차분해져 있음을 느꼈다. 거기다 습관처럼 쉬던 한숨이 많이 줄어들었고 항상 남편에게 더 바라던 마음 대신 내가 좀 더 수고를 더하니 뭔가 평화로운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너무 멀리 말고 앞을 보며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장기적인 계획도 필요하고 멀리 보는 시각도 필요하지만 그 먼 미래가 주는 막연함 때문에 가까이에 주어진 일상을 얼마나 게으르게 살았는지. 멀건 짧건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역시나 순간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답답함을 주기도 하고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적어도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막연한 기대는 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고 순응하는 수밖에. 내가 이 책을 읽고 힘겹게 받아들인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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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받아 - 최신 완역본
토마스 아 켐피스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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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연처럼 책도 나에게 오는데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기독교 고전으로 책 제목을 많이 들어봐서 읽어야지 했었는데, 지난해 말 도서정가제 시행 직전에 이 책을 구입했었다. 그리고 책이 도착하자마자 읽으면서 정말 읽기를 잘했다고 좋아했는데 거의 9개월 만에 더디게 완독을 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건, 과정이 지루하거나 읽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 마음이 힘들 때 이 책을 들여다봤기 때문이었다. 그런 과정을 알고 있기에 이 책을 그냥 쥐고만 있어도 마음이 울컥해진다.


  이 책을 처음 마주했을 때 딱 드는 생각은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라고 따끔하게 훈계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훈계가 잔소리처럼 늘어지거나 하나님이 중심이 아니었다면 내 마음에 찔림을 받고 공감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해야 하는지, 또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가야 하는지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흐트러진 자세를 고칠 정도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일은 세상을 바라보는 대신 하늘의 일을 좇는 것이다. (14쪽)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을 바라볼 때 마주한 이 문장을 보며 부끄러움과 동시에 위로를 얻었다. 성경을 멍하게 읽고 있을 때 ‘성경에 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다면 겸손하고 단순하게 믿음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22쪽)’는 문장 앞에서 다시 정신을 차리곤 했다. 또한 내게 닥친 고난을 원망하고 싶어질 때면 ‘불안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때야말로 축복의 순간이다.(54쪽)’ 라고 말해주니 내가 이 축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고 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미래가 없다.(61쪽)’라고 따끔하게 말한다. 그러니 이 책을 허투루 읽을 수도 없었고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데 억지로 읽을 수가 없어서 정말 마음이 심란하고 힘들 때 펼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똑바로 살라고(?) 말하고 있는 이 책이 가장 도움이 되었을 때는 불안한 내 마음을 잠재울 때였다. 둘째 아이의 중요한 검진을 앞두고, 혹은 이유 없이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 때, 내가 처한 상황에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고, 내 존재 자체가 무의미할 때 이 책을 펼치면 위로가 되었다. 나를 정신 차리게 해주었던 ‘거룩한 조언’들에 이어 ‘위로’를 해주는 기도를 대할 때면 한없이 마음이 평안해졌다. 모든 것은 주님 안에 있으며 불안해하는 것은 내 마음일 뿐이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품게 되자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게 닥친 크고 작은 고민들과 불안한 마음이 이 책장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것 같아서 책만 바라보아도, 기억하고 싶은 구절에 붙인 메모지만 보아도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이다.


사소한 어려움에 직면하기만 하면 포기하기 때문이다. 너는 지나치게 위로만을 갈망한다. 진정으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시험을 받을 때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킨다. (112쪽)

  그럼에도 내가 위로의 감상에만 젖어 있지 않도록 정도를 지키는 문장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간 정말 편하게 살아왔고 편하게 신앙생활을 했으며, 충분한데도 뭔가 부족하고 힘들다고 징징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을 때 두 번 읽지 않으려고 제대로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이 책은 다른 판본으로 읽고 싶을 정도로 내 마음을 울렸던 책이다. 왜 ‘영적 도서의 베스트셀러’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성경의 소중함, 이런 깨달음을 나 혼자만 간직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다짐하게 했다.


치유와 평안, 그리고 확신을 구하기 위해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당신은 저의 은밀한 생각은 물론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당신만이 저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저의 필요를 아시고, 저의 공허함이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다. 저는 당신 앞에서 벌거벗은 채 서 있습니다. (264~265쪽)


절대 혼자라는 생각은 금물이며, 외로워할 필요가 없다. 또한 사람이 나를 위로해 주지 않는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다. 내가 온 것도, 돌아가야 할 때도 하나님의 뜻이므로 그것을 잊지 않는다면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살아도 부족한 것이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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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부담가지 않은 책들을 주로 추천한다. 괜히 두껍고 무거운 책을 추천했다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질까 하는 걱정도 있고, 나 역시 두툼한 책들을 읽으면서 끈기로 읽었던 책들이 많기에 쉽게 추천하지 못했었다. 책의 무게는 내용에 따라 가는 것이지 두께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은 많이 추천 받을 테니 이번에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꼭 읽어봤으면 하는 소설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기대하시라! 오늘 내가 소개할 다섯 권의 쪽수를 합치면 어마어마하다! ^^

 


 

1. 안나 카레니나 - 레프 톨스토이



 

19세기 러시아문학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유독 톨스토이 작품을 제대로 못 읽었다는 게 늘 걸렸다. 톨스토이 작품을 많이 읽은 건 아니었지만 도스또예프스끼처럼 단박에 매력을 느껴 작품을 연달아 읽을 만큼 내게 와 닿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자기에게 맞는 작가가 있듯이 나는 톨스토이보다 도스또예프스끼가 더 맞는다고 인정하면서도 그의 장편을 언젠가는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큰 맘 먹고 <안나 카레니나>를 읽게 되었다. 도스또예프스키나 고골의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하층민들의 삶을 엿보다 상류사회의 배경이 낯설었고,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안나'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듯 다양한 인물의 얽힘과 그들의 내면 묘사가 상세하게 그려진 소설이었다. 하지만 안나의 불륜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괜히 <보바리 부인>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소설로 인해 도스또에프스끼의 소설에 등장하는 또 다른 시대적인 배경과 톨스토이의 문학세계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1600페이지를 육박하는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대나무 밭에 가서 '나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다.





2. 마의 산 - 토마스 만




뭣도 모르고 이 소설을 읽은 건 <상실의 시대> 때문이었다. 요양원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소설 속 인물을 보고 궁금해서 이 책을 구입하고 해맑게 도전했다가 두 달 만에 완독을 했다. 아무 책도 안 읽고 한 달에 한 권씩 읽어 상, 하 권만 읽은 것이다. 그렇게 자주 보았던 주인공 카스토르프의 이름이 잘 외워지지 않을 정도로 무수한 논쟁이 참으로 어려웠던 소설이었다. 너무 어려워서 이 작가의 작품은 절대 안 읽으마 이를 갈았는데, 우연히 들른 동네 서점에서 <요셉과 그 형제들>을 발견하고 냉큼 구입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어려워서 쩔쩔 메면서 어느새 팬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22살에, 그것도 13년 전에 읽었으니 책의 내용이 제대로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자신 있게 이 소설을 읽어서 속이 후련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한 권의 책을 두 번 읽는 일이 드문 나인데 이 책은 꼭 다시 읽어 보고 싶어서 을유문화사 판으로 재구매를 해두었다. 아마 다시 읽어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13년 전보다는 좀 더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말 인내를 요하는 책이니 쉽게 도전하지 마시길!^^





3. 죄와 벌 - 도스또예프스끼



 

고3 겨울방학 때 무턱대고 고전을 읽겠다며 꺼내든 게 <죄와 벌>이었다. 역시나 방학 내내 달랑 이 두 권을 읽을 정도로 <마의 산>처럼 어려워서 다신 저자의 책을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다짐들이 영원할 수 없듯이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도스또예프스끼의 전집을 보고 반하고 말하다. <죄와 벌>은 치를 떨었던 기억이 나서 단편집을 구입하고 서서히 출간순서대로 읽어가다 드디어 다시 <죄와 벌>을 마주했다. 고등학교 때 읽고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무척 궁금했는데 다시 읽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고 여전히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의 살인 장면은 끔찍하고 그 이유를 공감(어떤 살인도 정당성은 없다고 생각한다.)할 수 없지만, 단순한 줄거리를 빡빡한 두 권의 책으로 써 낸 저자에 감탄을 할 정도였다. 어쩜 그리 시시콜콜하고 궁상맞게 내면을 표현하고 책장이 몇 장씩 넘어가는 대화를 쓸 수 있는지! 그럼에도 고등학교 때 읽었던 <죄와 벌>처럼 완전히 속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뭐랄까. 같은 책을 연령대에 따라 다시 읽을 때 느끼는 게 다름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나 할까?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또 어떤 느낌일지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4. 태백산맥 - 조정래




한참 책 카페에서 활동할 때 이 책을 읽을 사람이 너무 많아서 궁금했다. 내가 과연 10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을 읽을 수 있을까 겁이 나기도 했지만 시원하게 세트를 질러놓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정말 마음 깊이 들어옴을 느끼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울고 웃고 분노하고 씁쓸해하고 안타까워하며 허망해하던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시간들이 소중해 오랫동안 만나고 싶어서 참 더디게 읽었다. 소설이긴 하지만 분명 진실을 보았고 그 진실 안에서 시대의 고충과 흐름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순사건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그래서 6.25전쟁의 참상까지의 역사의 흐름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태백산맥은 여순사건이 끝나는 시점부터 6.25의 끝(끝이 존재할까. 남겨진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거기까지다. 때론 책을 사실로 인식하기도 했으며 미국의 식민지를 거쳐 사회주의는 필요악이었다는 변화를 거듭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복잡한 심경들이 내면을 스쳐지나가면서도 무엇보다 놀랐던 건 10권의 마지막을 읽고 울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지금도 어디선가 빨치산들이 활동하고 있단 듯이 성묘하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 그들을 응원하는 내 마음이 참으로 이상했다. <한강>을 읽었고, <아리랑>은 7권까지 읽고 중단했지만 이 장편이 가장 좋았다.




5. 홍루몽 - 조설근, 고악



장편소설을 한 호흡에 읽지 않으면 끊겨버린 맥을 다시 잇기가 참 힘든 것 같다. 이 책을 9권까지 읽다 중단하고 3년 만에 끝까지 읽었다. 줄거리나 인물들을 기억해 내기 위해 내가 쓴 리뷰를 찾아보면서, 마지막까지 읽으면 속이 후련할 거라 생각했는데 웬일인지 시원섭섭함까지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약 400명의 인물의 복잡한 구도와 중국 사회를 이해하고 읽어야 하는 낯섦과 이질감과 매끄럽지 못한 개연성의 문제가 나를 괴롭혔기에 당연히 이 책을 읽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12권의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이 책의 분위기와 인물들에 정이 들어서인지 역시나 결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마지막을 읽는 건 힘이 들었다. 설화에서 출발해 가씨 집안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지루할 틈이 없지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고 왜 저렇게 행동하고 생각하며, 저래야만 할까 이런 생각에 지배당하기 쉽다. 마오쩌둥이 <홍루몽>을 읽지 않으면 중국 봉건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할 정도였으니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이 무궁무진할지 모르나 내가 온전히 이해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어 본 건 잘한 것 같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중국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을 추천한다고 했는데 막상 소개글을 보니 장편이어서 힘들었다는 내용으로 불평을 드러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들 모두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 확실하다. 긴 호흡의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내가 그 시대의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고, 장편소설은 여전히 어렵지만 내 책장에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책들이 여전히 많다. 그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면서 추천하고 싶은 장편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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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8-17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도 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오늘 또다시 읽네요. 저도 ‘장편소설‘ 읽는데 재미를 느끼지만 <안나 카레니나>와 <죄와 벌>은 여태 못 읽었답니다. 그 대신 <전쟁과 평화>와 <카라마조프 형제들>은 정말 감명깊게 읽은 적이 있답니다.^^

그리고, 토마스 만은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읽자 말자 곧바로 <마의 산>(을유세계문학전집)을 집어들고 이제 막 ‘상권‘의 막바지에 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마의 산>을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해서 다시 여기까지 왔네요.

사실 제가 댓글을 달고 싶은 건 ‘주인공 이름‘이 살짝 바뀐 듯해서였답니다. ‘한스 카스토르프‘가 맞는데, 이상하게도 <마의 산>에 대해 리뷰나 페이퍼를 읽어 보면 주인공의 이름을 바꿔 부르는 사람들이 꽤나 많더군요. 아무튼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안녕반짝 2017-08-18 23:3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소설을 읽을 때도 그렇게 안 외워지더니 결국 틀리게 써놨네요^^
덕분에 이름을 고쳤습니다.^^

근데 저랑 반대로 읽으셨네요^^
제가 안나 카레니나와 죄와 벌을 읽고 정말 읽어야지 읽어야지 벼르고 있는 전쟁과 평화와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읽으셨네요^^
올 초에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을 시도했는데 멈춰 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시도해 볼까 합니다. 전쟁과 평화는 문학동네에서 이번에 출간되었기에 상,중 까지 모았습니다. 그 책도 꼭 읽어야 할 책이라 기대 중입니다.^^

oren 2017-08-18 23:51   좋아요 0 | URL
저도 장편을 읽는 재미를 처음으로 찐하게 느꼈던 작품이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작‘을 보면 늘 좀 어디가 근질거리는 느낌을 받곤 한답니다.^^ 그 때가 ‘1980년 겨울‘이었으니까 참으로 까마득한 옛날이었죠. 그 당시 몽테뉴의 『수상록』도 잇따라 읽었는데, 그 두 작품을 읽은 덕분에 그 이후론 두툼한 책에 재미를 좀 붙이게 되더군요.

그런 후로는 정말 오래도록 ‘대작‘은 별로 읽지 못했답니다. 스탕달의『적과 흑』,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 괴테의 『파우스트』 정도나 읽었던 듯해요. 또 그 뒤로는 완전 제게는 ‘암흑 시대‘였죠. 워낙 오랫동안 책과 등지고 살았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최근 10 년 동안에 ‘대작‘을 조금씩 ‘다시‘ 읽게 되었답니다. 그 가운데 『율리시스』, 『전쟁과 평화』, 『돈키호테』, 『마의 산』등이 특히 기억에 남고요.(『마의 산』은 이제 방금 <망자의 춤>, <발푸르기스의 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가 앞으로 꼭 읽고 싶은 대작이 있다면 그 가운데 제 마음 속으로 늘상 첫 손에 꼽고 싶은 작품이 바로 『죄와 벌』과 『안나 카레니나』일 껍니다. 그래서 이 두 작품을 읽은 분들을 보면 늘 우러러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