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먼로의 <착한 여자의 사랑>이 출간되기 전 운 좋게 받아 본 티저북이다. 단편집이라 티저북에는 <착한 여자의 사랑>이 아닌 <자식들은 안 보내>라는 단편이 실려있다. 제목만 듣고는 가늠이 되질 않아 한참을 망설이다 읽었는데 처음에는 인물도 헷갈리고 집중이 잘 되질 않았다. 그런 염려가 되었는지 출판사에서도 초반 부분을 잘 넘기면 새로운 내용이 펼쳐질 거라 안내하고 있었다.



 



호기롭게 카페에 들고 갔다 읽기에 실패했다. 책은 얇지만 카페에서 가볍게 읽을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책은 덮어두고 케이크와 커피만 맛있게 먹고 왔지만 이 책을 도대체 언제, 어떻게 읽어야할지 조금 고민이 되기는 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버티다 가장 바쁜 시간(남편이 퇴근하지 직전, 나는 저녁을 준비해야 하고 아이들의 귀찮음을 버텨야 하는 시간)에 책을 펼쳐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은 바쁜 시간을 홀라당 잡아먹고, 저녁 준비 시간도 완전히 늦추게 만들었다. 그렇게 다 읽고 났을 땐 나도 모르게 "아, 이거 뭐지?" 라며 중얼거렸다.



 



이게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지금 브라이언이 누워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을 그 펜션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또한 그녀와 브라이언이 함께하는 삶의 표현이자 그들이 살고 싶었던 생활방식의 표현이었던 그 집과의 연결고리도 끊어졌다.


그녀, 폴린은 어느 바비큐 파티에 갔다가 연극에 출연해 보지 않겠냐는 제프리의 제안을 받는다. 어린 아이가 둘이나 있는 입장에서 참여한다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대본을 외우고 연습에 참여한다. 그리고 폴린의 가족과 시부모님이 함께 휴가를 즐기던 중, 갑자기 찾아온 제프리의 전화를 받고 모텔로 돌아가 다시는 가족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은 그 사실을 '대번에 믿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폴린과 제프리는 남편의 반응에 의아해 하면서도,


"그의 잠재의식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다들 그렇게 알잖아요."


라는 폴린의 말에 '그렇게' 체념한다.



 



그녀는 그럴 수 없는 온갖 이유를 댈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말을 하려고도 해봤지만, 바로 그 순간 그녀의 삶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건 마댓자루를 뒤집어쓰고 끈으로 묶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삶은 고꾸라지고 있었다. 그녀도 눈이 맞아 달아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려 하고 있었다. 충격적이고도 이해할 수 없게도 자신이 가진 전부를 포기해버리는 여자가 되려는 것이다.


그녀는 어린 아이와 남편을 떠나 제프리와 함께 살게 된 것이 '안나 카레니나가 했던 것이었고, 마담 보바리가 하고 싶어했던 것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돌아가지 않는다. 돌아갈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고, 브라이언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면 자신을 받아줄 거라 확신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삶이 고꾸라지고 있었음에도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마댓자루를 뒤집어쓰고 끈으로 묶는 것'처럼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거라 여겼다.



지금 뭔가가 달려오고 있다. 트럭이다. 달려오는 것이 트럭만은 아니다-엄청나고 암울한 사실이 그녀를 향해 달려온다. 그 사실이 난데없이 와버린 건 아니다. 줄곧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뜬 뒤로, 심지어 밤중에도 줄곧 잔인하게 그녀를 찔러댔다.



'줄곧 대기하고 있'던 무엇. 그런 것을 담고 있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이 다를 뿐, 내가 폴린의 행동에 놀랐던 부분은 그 모든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제프리에게 가서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걸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행동에 스스로 의아해하면서도 '그녀의 머리에 마댓자루가 씌워졌다.'며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한다.



 



이건 극심한 고통이다. 만성적인 고통이 될 것이다. 만성적이라는 말은 영원하긴 하지만 한결같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그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벗어날 수는 없어도, 그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 매 순간 느끼지는 않겠지만, 고통 없는 상태가 여러 날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 그 일이 그저 가슴 아픈 과거로만 남고 더는 현재의 것이 될 수 없을 때까지 그걸 끌어안고 살면서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



나는 그녀의 행동을 단절로 보았다. '줄곧 대기하고 있'던 무엇을 행동으로 옮기고 이전의 삶과의 단절. 그에 따른 고통은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감내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으려는 독단적인 '단절'로 보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녀의 행동을 어떻게 봐라봐야 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 '마댓자루'를 써버리는 그녀의 단절이 가슴을 욱신거리게 했다. 그녀의 고통이 느껴졌고, 그 고통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자각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스스로 모든 걸 등지는 모습이 슬펐다. 그러지 말았으면, 다시 돌아갔으면, 아이들 생각이라도 했으면 하는 섣부른 생각을 실을 수도 없었다. 그건 오로지 그녀만의 고독이자 단절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충고도, 아무런 걱정도, 아무런 안타까움도 내비칠 수 없어 가슴이 내내 욱신거렸다.



소설은 30년 전, 한 가족의 휴가지에서 시작해서 '그녀의 자식들은 성장했다'로 마무리된다. 그녀의 큰 딸 케이틀린과의 대화로 소설은 끝나는데, 폴린은 제프리와 '한동안' 살았음을 알게 되었고, 이후로 다시 가족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한 치의 망설임과 오차도 없이, 어떠한 환상이나 사랑의 달콤함 없이 극단적으로도 보이는 소설 <자식들은 안 보내>는 그렇게 가슴을 후벼 파고 내게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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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8-12-07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거 좋아해요. 부드러운 생크림이 있어서요.^^

안녕반짝 2018-12-10 10:53   좋아요 0 | URL
그죠? 한 번 맛보고 나니 생크림 케이크만 먹게 되더라고요^^
딸아이 데려가면 혼자 저걸 다 먹습니다.^^
 
불편한 믿음 - 인문학으로 푸는 믿음의 공식
이성조 지음 / 두란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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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란, 땅이나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통치와 ‘다스림’을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지배되고 다스려지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예수님을 정말 믿는 사람들은 죽어서 빨리 천국 가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 하나님의 나라를 오게 할까, 오직 이 생각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33쪽


수없이 듣고, 심지어 나도 그렇게 기도했다.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천국을 바라보며 살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다 작년에 한 선교사님의 설교를 듣고 천국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다. 내가 정말 무지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천국이 어디서나 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랍고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큰 비밀을 이제야 깨달아 그동안 고민하던 많은 것들이 해결된 기분이었다. 왜 나는 그동안 하나님 나라가 죽음 이후의 천국에만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온 마음을 다해 듣지 않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경험이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잘못 알고 오해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내가 무지해서 오랜 시간이 흘러 조금씩 깨달아가 가고 있다 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전할 것인지는 늘 마음의 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게 이 책이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는 분인데 왜 이 세상은 이렇게 악한지,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울타리를 치고 유지에 급급하는지 이유를 찾아본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인간적인 마음으로 생각했을 때 믿어지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는 어떠한 핑계도 없음을 정확히 알게 된다.


믿음의 능력은 시간이 아닌 거리가 결정한다. 우리의 믿음은 결국 자기 믿음이다. 그 믿음의 시간에 비례해서 능력이 경험되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믿은 자가 나중 되기도 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기도 한다. 201쪽


포도원에서 일하는 일꾼의 비유는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같은 시간을 일하지 않았음에도 같은 금액의 일당을 받는 모습에서 이해되지 않는 나를 본다. 더 많이 일한 사람에게 당연히 더 많은 일당을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왜 포도원 주인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일을 하게하고 아침부터 일한 사람과 같은 금액의 일당을 주는지 오랫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나처럼 보잘것없고 연약한 사람에게 더 먼저 다가오신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아침부터 일하고 있었던 포도원의 일꾼이었다. 그랬기에 이제 막 교회에 발을 디딘 사람, 나보다 더 어려움에 처하고, 외부인에게 울타리를 치고 경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님은 절대 편을 나누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동일한 은혜를 주셨는데 내가 그 은혜를 먼저 받았다는 이유로 대접받기 원하고, 잘난체하고 있었다. 그랬으니 천국의 모습을 알지 못했고, 천국은 죽음 이후의 것이라 여긴 어리석음을 믿음이라 여기고 있었다.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고 해서, 바랄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얕은 믿음의 기준과 한계가 깨질 때, 우리의 한계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진짜 능력이 역사한다. 그 능력은 다름 아닌 죽음조차 끊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176쪽


저자는 현재 한국 교회가 정체되어 있는 이유를 사랑이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제 2의 로마서라 말하며 절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과연 내일이, 희망이 있는가란 신학적인 질문으로 접근한다. 다양한 사람들의 사상을 언급하기도 하고, 법칙에 대입하기도 하며, 경험과 성경을 섬세하게 파고들며 <불편한 믿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앞선 믿음의 선지자들의 무한한 사랑을 보게 된다. 1300만의 조선인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복음을 전하러 온 언더우드 선교사, 고종의 주치의지만 최선을 다해 백정을 살린 애비슨 선교사, 자신의 아들을 죽인 이를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님 등 하나님이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하고 오신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세상으로 흘러넘치게 한 분들이 있었기에 현재 나는 이렇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내가 갖는 불편한 믿음이란 건 무엇일까? 그 모든 것은 결국 나에게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부족한 믿음.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고, 천국이 언제든 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내 울타리에 갇혀, 내 안위만을 생각하며 적은 믿음으로 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이렇게 어리석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믿는다. 그리고 이렇게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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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 도둑 까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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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책이 60권이나 있지만 이 책은 없는데 반갑게 개정판이 나와주었네요! 제 취향은 확고하니 합본보다는 분권으로 구입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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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에서 2018년 통계를 내주었다.

어제 주문한 내역은 포함이 안 되었다고 해도 이렇게나 많이 주문했을 줄이야!


분명 요즘에 책이 너무 많아져서 최대한 늘리지 않고 있었는데,

통계를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다.

7월 이후로 좀 애쓴 티가 보이지만 9월에는 왜 그리 많은건지!



노력해도 책 조절은 안 되는구나!

그냥 지금처럼 살자! ㅋ


내년에는 또 얼마나 사고 읽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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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8-11-2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놓을 데가.....빌려 보자...로 바꿔타고 있는데 정말 대단하세요^^

카알벨루치 2018-11-27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0.5% 던가 그렇던데 이참에 확 질러서 0.1%로 달려볼까요? 싶지만....그것도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솔로몬의 격언을 떠올려봅니다 ㅎㅎ열독 응원합니다!!!
 
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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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버스정류장에서 한 할아버지가 어린 학생에게 소리치는 것을 목격했다. 학생은 버스정류장 전광판에서 노선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의자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전광판이 안 보인다며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학생은 무안해서 정류장을 벗어났고 할아버지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앉아 있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한 아주머니께서 학생한테 나오라고 좋게 말하지 왜 그렇게 뭐라고 하느냐고 한 마디 하자 할아버지도 맞받아치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광경과 내가 보아온 몇몇 일들이 겹치면서 노인들은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대고 너그럽지 못하는지 내심 못 마땅했다. 나도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 노인이 되겠지만 내가 보아온 노인들의 모습으로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스스로 살아 온 세월의 결이라 여겼다.


늙은이는 공격적이고 언제나 저기압이다. 81쪽

이 문장을 보며, 저자 또한 노인이라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하며 이유 없이 마음이 옹색해 지는 것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일상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피로한데 의외로 정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놀랐다. 금방 읽을 수 있을 거라 짐작하고 덤벼들었지만 내가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겼고, 생각하고 싶은 문장에 메모지도 붙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글이 너무 솔직해서 마음을 열게 되었고(그 나이가 되면 숨길 게 없어지는 걸까, 아니면 저자만의 개성일까?), 끼니마다 맛이 상상이 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저자를 보면서 엄마 음식이 생각났다.

아, 무섭다. 이건 혹시 내가 노인이 된 증거가 아닐까? 늙으면 어제 먹은 음식은 까먹어도 어릴 적 기억은 갈수록 선명해진다던데. 53쪽

박찬일 작가는 ‘음식은 추억과 기억의 매개체인 게 분명하다.’고 했는데 이 문장과 함께 내 어릴 적 기억이 얽히면서 음식에 관한 여러 추억들이 떠올랐다. 엄마가 해주던 팥묵이며 명절이면 집에서 만들었던 유과, 무조건 밥 말아 먹었던 시레기국까지. 임신 중에 엄마의 시레기국이 먹고 싶어 장장 7시간을 거쳐 친정에 내려왔던 일과 결국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던 일들이 떠올라 음식의 추억과 기억의 연관성과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저자 또한 일상을 꼼꼼히 기록하며, 성장과정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들려주는 과정에서 나이의 상관관계를 따지곤 한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그것도 60년씩이나. 나는 나와 가장 먼저 절교하고 싶다. 아아, 이런 게정신병이다. (187쪽)’ 스스로 성격이 안 좋다고 말하고, 변덕스런 내면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 같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려는 모습 같기도 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성장하는 것인지, 늙어가는 것인지,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183쪽)’ 는 문장 앞에는 30대 후반인 나도 확신이 없었다. 이런 기분이 나이 들어서까지 느껴진다면 노인이기에 스스로를 다스리고 너그러워져야 하는 건 나의 편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글만 봐도 어떠한 환상을 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 더 나아가 우울하고 극단적인 모습까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늙음을(혹은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을 이렇듯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보며 내가 숨기고 살아가는 것들이 과연 무엇인가를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이렇듯 쉽게 고백하고 시원해질 수 있는 것들을 붙잡고 내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저자는 암 선고를 받고 2년 남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오랫동안 괴롭혔던 우울증이 사라지고 알차게 변했다고 했다. 우리의 수많은 고민도 어쩌면 불확실한 죽음 때문이 아닐까란 겸손한 마음을 가져본다.

반면 ‘인생은 번거롭고 힘들지만 밥을 먹고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말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하루를 알차게 보낸 날도 있고 하루를 때우듯 보내는 날도 있는데 그럼에도 어떻게든 된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완벽하든, 엉망진창이든 어쨌든 그것도 나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독립적인 나로 살아가려면 어찌 되었든 나의 일상이, 사고가 진솔해야 함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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