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파스타 이야기
박찬일 지음 / 허밍버드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김치찌개에 다진 마늘 한 숟갈을 넣으면서 내일은 꼭 오일 파스타를 해 먹으마 다짐했다. 엄마가 항상 마늘을 찧어서 비닐봉투에 납작하게 펴서 돌돌 말린 걸 냉동상태로 주시는 바람에, 결혼해서 지금껏 마늘을 찧어본 적이 없다. 쓰던 마늘이 다 떨어져서 엄마가 준 마늘을 녹이면서 찧었을 때의 색깔이 그대로 살아나는 걸 보며 단박에 오일 파스타가 생각났다. 원래는 여기에 샐러드 채소와 토마토를 잔뜩 얹어서 먹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마늘만 넣어서 먹어보기로 했다. 좀 뜸했던 파스타를 다시 떠올린 건 온통 먹음직스러운 파스타 이야기만 해 대는 이 책 때문이다.


  스파게티라곤 오로지 토마토소스만 고집하고, 피클이 맛있다는 이유로 스파게티를 먹으로 갈 만큼 무지했던 내가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식당에 가서 먹으면 양도 적고 비싸고 맛도 각양각색이라 그럴 바엔 푸짐하게 해서 집에서 먹자 싶었다. 완제품 토마토소스를 그냥 면에다 비비기만 했으니 스스로도 요리가 아니라 조리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먹는 스파게티 맛이 나름 괜찮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토마토 스파게티를 먹다 TV에서 알려준 레시피를 따라 오일 파스타를 만들어 보았고, 거기다 채소와 토마토를 얹은 후 파마산 치즈를 잔뜩 부려 먹는 걸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달랑 오일 파스타 하나만 만들어 먹었을 뿐인데 ‘혹시 내가 이탈리아 요리에 관심이 있고 재능이 있나?’라는 얼토당토않은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한 종류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으면서 어이없는 착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레시피가 담긴 이 책을 호기롭게 꺼내 읽으면서 적어도 내가 더 만들어 볼 수 있는 파스타가 있겠지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세계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다. 단순하게 이탈리아 곳곳의 파스타를 설명하고 알려주는 게 아니라 직접 발로 뛴 생생함이 느껴졌다. 그 생생함에는 이방인의 시선에서 보는 이탈리아와 파스타의 이야기가 그대로 묻어났다. 그럼에도 저자가 정말 파스타를 좋아하는 마음이 느껴졌던 건 이탈리아의 광활한 파스타 세계를 재미있게 안내해 준 이유가 컸다.


  자칫 따분할 수도 있는 파스타의 유래나 종류, 파스타에 관한 궁금증과 요리법에 관한 이야기도 저자의 에피소드와 함께 버무려지니 여행기를 읽는 것 같아 지루할 틈이 없었다. 파스타 이야기가 지역에 따라 달라지니 그럴 수밖에!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를 먹을 때 피클이 없다는 생활밀착형 정보도 그렇고,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파스타는 미국식이거나 한국인 입맛에 맞춰 변형되었으며, 정통 이탈리아식은 맛도 모양도 많이 생소해 먹기 힘들 수 있다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곳곳을 누비며 수많은 종류의 파스타를 따라가며 그 맛을 충실히 알리려 노력한다.

 

  나에게는 끼니와 끼니 사이에 출출할 때 가끔 먹는 파스타가 이탈리아인의 삶에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지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면과 소스로 치부해 버리기엔 그 안에 깃든 손길과 세월과 재료를 길러냈을 땅의 생명이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기분이다. ‘음식은 추억과 기억의 매개체인 게 분명하다.(61쪽)’는 말처럼 그 요리를 즐긴 사람만큼 수많은 추억과 기억을 저장하고 생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단순한 음식으로만 보게 하지 않았다.


  책을 덮고나니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를 꾹꾹 눌러 밟은 기분이 든다. 직접 맛본 게 하나도 없으면서도 모두 맛본 것 같은 착각이 일고, 지역 특색이 드러나는 다양한 파스타를 보면서 어릴 적 내가 먹고 자란 엄마의 음식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시골에서,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먹었던 음식들이 빤했지만 추억을 담고 있어서인지 종종 아련해진다. 아침을 못 먹고 학교에 갈 때면 가마솥에서 바로 긁어내 공처럼 말아 손에 쥐어주던 누룽지, 떡을 하는 날 가마솥 옆에서 밥그릇을 들고 있으면 한 주걱씩 퍼주던 쫀득한 밥, 유과 반죽이 아랫목에서 부풀어지고 있으면 엄마 몰래 훔쳐 먹고 간격을 맞춰놨던 기억들. 그 기억들이 이탈리아의 시골에서 이름모를 손맛으로 버무려진 파스타를 맛있게 먹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떠올랐다. 그런 음식을 먹었기에 나는 이렇게 건강하게 자랐나 보다. 문득, 나를 이렇게 키워준 엄마와 한 번도 같이 먹어보지 못한 파스타를 먹어보고 싶어진다. 이건 꼭 실천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삼십 년이 넘도록 소설을 써 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을 읽으면서 처음 드는 생각은 그간 좀 오해를 했다는 사실이었다. 하루키 소설을 읽고 성性에 관한 부분이 너무 노골적이라서 불편하다는 이유로 등한시하다 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의 작품에 좀 더 다가갔지만 더 많은 오해를 하지 않았나 싶다. 재즈 바를 운영하던 중 야구장에서 홈런볼을 보면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첫 소설이 상을 받고 몇 년 뒤에는 소설가로 전업을 한 게 물질적인 뒷받침이 되어주었기 때문이 아니냐고(<상실의 시대>의 성공이 밑받침이 되어주었는데도 말이다), 미국에서는 강연도 잘 하고 사인회도 하면서 한국에서 이렇게 책이 잘 팔리는 데 한 번도 오지 않은 게 괘씸하다는 둥 뭐 이런 사적인 오해였다. 소설가의 하루키를 존중하지 못한 데서 나온 억지였다.


  저자는 스스로를 ‘너무도 개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간 써온 소설에 관한 이야기도, 자신의 소설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문단을 멀리하는 것도, 이 책 속에서 말하는 소설 쓰는 노하우도 모두 개인적인 사고방식 안에서의 이야기라고 말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개인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저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소설에 관한 독자의 입장이 아닌 그 밖에서의 저자를 내 멋대로 판단하고 비난한 것 같아 미안해졌다. 스스로를 장편 소설가라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가 더 좋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으며(이건 취향의 문제라 변함이 없을 것 같지만 이 책을 계기로 장편 소설가로 인식하기로 했다) 싫은 소리를 더 해대면서도 신간이 나오면 꼬박꼬박 구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긴 시간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와 나름대로의 소설 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들려준다. 소설 쓰기가 즐거웠기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있었고, 자신의 책을 읽어주는 독자와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어서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마감과 청탁에 얽매이지 않고 쓰고 싶을 때 쓰지만 마감시한은 넘겨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더한 생활습관이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그 안에서 꾸준히 글을 쓰며 체력을 기르는 일. 작가가 그런 생활을 한다는 게 좀 유별나게 보이긴 하지만, 그래서 평범한 듯 특별해 보이는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마감과 청탁에 얽매이지 않은 글을 오랫동안 쓸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스스로도 그렇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게 운명이었다고 말하지만 어느 정도의 운도 있고 여러 가지 요인들이 긍정적으로 다가와 주어 가능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말 소설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열심히 소설을 써왔다는 사실이 느껴진다.


  저자의 그 모든 이야기를 담담히 들고 난 뒤에도 나와 저자의 거리가 확 좁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되어지는 게 더 만족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이야기, 소설 이야기, 그 안에 녹아든 해명 아닌 해명도 있어서 그를 더 잘 알게 된 기분이다. 저자도 갑자기 확 다가오는 게 아닌 적정한 거리에서 여전히 약간의 의심의 눈초리를 하면서 지켜보는 걸 더 좋아할 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이번 소설을 유감스럽게도 맘에 들지 않았지만 다음번에는 더 좋은 소설을 써달라고 한 독자의 편지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그 독자만큼 행동하지는 못하겠지만 오해는 풀렸을지언정 여전히 적당한 거리에서 그의 글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 나는 독자의 입장에서 자유롭게 즐기는 것. 그걸 잘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좀 오글거리지만 그를 응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거창하게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온전히 소설에 관한 기술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삼십 년이 넘도록 소설을 써 온 저자의 회고록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설가란 직업을 가진 하루키를 만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cm+ 일 센티 플러스 - 인생에 필요한 1cm를 찾아가는 크리에이티브한 여정 1cm 시리즈
김은주 글, 양현정 그림 / 허밍버드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깊은 밤, 책상에 앉아 작은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읽다 만 책도 있었고 읽으려고 가져다 놓은 책도 있었다. 20권이 넘는 책들을 꺼내서 읽다 안 읽히는 책들은 도로 집어넣고 마음이 가는 책들은 계속 읽었다. 그러다 이 책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1cm art>를 읽고 좋아서 구입한 책인데 마음이 동하지 않아 계속 책장 신세만 지고 있었던 책이었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저 책은 정말 내 마음이 힘들거나 혹은 위로 받고 싶을 때 꺼내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금방 읽힐 책이지만 아무 감흥 없이 쉽게 읽어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시간에 보답하듯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이 책을 담담히 읽고 있는 나를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것 같았다. 느긋하게 읽었지만 책장은 쉼 없이 넘어갔고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메모지를 붙이고 잠시 음미하기도 하고 혼잣말처럼 자책과 다짐을 되뇌었다. 왜 이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책 속의 말들이 내게 콕 박히는지 곰곰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쌓여 있던 감정을 격하게 남편에게 모두 쏟아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얘기한 직후라서 그랬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그 행위가 무척 부끄럽게 여겨지는데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에 더 이상 자존심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서로 상처를 좀 받더라도 싸매고 있는 것보다 풀어내는 게 더 낫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순간의 분노, 순간의 오해, 순간의 욕망, 순간의 좌절, 순간의 유혹...... 악마는 순간을 지배한다. 순간을 지배함으로써 모든 것을 지배하는 법을 안다. 반대로 순간이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곧 지나가 버릴 순간에 구속당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과 인생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17~18쪽)


  나의 순간의 분노를 곱게 포장하긴 했지만 감정을 쏟아내는 것에 좀 더 솔직해지기로 다짐한 뒤 이 글귀를 보니 많이 부끄러웠다. 감정을 쏟아내기 직전에 나는 순간의 유혹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내 자신에게 순간을 참지 못해서 욱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순간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잠시 심호흡을 하거나 잠시 공간을 이동한다거나 하는 행동으로 조절해 보기로 했고 좀 더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대부분 현실보다 상상이다.(26쪽)’란 말에도 적극 공감하면서 머릿속에 온갖 상상력을 현실로 끌어들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또한 ‘오늘 밤 자기 전, 당신이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것이 이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과, 아침에 일어나 처음 바라보는 것이 이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서부터(중략) 더불어 당신이 잃었던, 잊고 있던 중요한 몇 가지 것들을 되찾기 시작(58쪽)’하는 운동에 동참해 보기로 했다. 이것은 스마트 폰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스마트 폰에 시간을 뺏기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특별히 들여다 볼 일이 없는데도 수시로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과 메일, 블로그를 확인했다. 심지어 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도 그랬는데 어느 날은 큰 아이가 ‘엄마 핸드폰 그만하고!’ 하면서 핸드폰을 뺏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모습을 보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이가 스마트 폰을 만질라치면 엄마가 허락한 적 없다며 무서운 얼굴을 하면서 나는 내 스마트 폰이란 이유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허락했는지 모르겠다. 그 시간에 아이들을 좀 더 들여다보고 세심하게 쓸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잠들기 전 스마트 폰을 멀리 떨어뜨려놓고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마트 폰을 멀리하려고 애썼다. 며칠 안 되었지만 그렇게 하고 보니 정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몇 년 전에도 이것 없이도 아주 잘 살았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당근과 채찍을 한꺼번에 받는 것 같아 하나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아서 좋았다. 위로에 잠시 마음이 촉촉해지면 금세 이런 마음을 채찍질 한다. 내가 무언가에 회피하려 TV를 보거나, 핸드폰 게임에 빠져 있거나, 쇼핑에 빠져 있는 행위를 ‘마음의 커튼’에 비유해서 공감시켜 주었고 그 커튼의 이면에 진짜 무엇이 있는지 정면으로 바라볼 시선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약간’ 해본 것, 성공, 기쁨, 만족, 사랑 등등에 위안 받지 말고 두려워하라고 말한다. 나쁜 버릇(소파 위 게으름, 인스턴트식품, 나쁜 뉴스, 거짓말 등)에 적응하는 것도 말이다.


  저자가 말한 것들을 모두 공감하며 실행할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말들이 내게 와 닿았는지 생각해보면 현재 내가 안고 있는 문제가 어떤 건지 알 수 있다. 나는 너무 생각이 많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으며 스스로를 미화시키는 경향이 짙다. 그런 행위를 좀 줄여볼까 한다. 일상의 작은 것부터 시도해 적어도 스마트한 기술력과 물질에 지배당해 소중한 것들을 놓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 아이들을 더 많이 바라보는 것, 그것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 테드북스 TED Books 3
해나 프라이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수학이라. 수학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별로 없다. 학창시절에 공부와 담쌓고 지낸 나는 일찍부터 수학 포기자였고 한때는 잘 해보려고도 했으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여전히 수학에 대한 거리낌이 남아 있다. 그런 내가 이런 책을 마주하고 읽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한 것은 당연하다. 정석 수학에 관한 책도 아니고 저자의 말마따나 ‘이 책을 통해 수학이 얼마나 아름답고 유용한 학문인지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으니 편하게 책장을 펼쳤지만 여전히 두려움은 있었다.


  이런 나의 두려움을 간파했는지 일상생활에서의 수학적 접근이 조금씩 흥미롭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연애와 사랑에 수학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풀이해내는 시도가 신선했다. 내가 싱글일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애인 없음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좀 더 느긋하게 운명이라 착각해도 좋을 상대를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결혼도 하고 애가 둘인 내가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좀 웃기긴 하지만 그만큼 싱글일 때의 조바심 같은 걸 은근히 잘 파고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고 그대로 실행한다고 해서 정말 연애가 쉬워지고 사랑에 대해 좀 더 알게 된다는 건 아니다. 뭐랄까. 좀 더 센스있고 밀당도 좀 잘 할 것 같고 예쁘고 잘나야만 멋진 상대를 만나는 것이 아닌 나의 숨겨진 매력 발산을 더 잘하게 되는 자신감을 심어준다고나 할까? 익히 알고 있는 사실에 수학적 접근으로 흥미를 가지게 함으로써 연애를 비롯한 결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자칫 푹 빠져서 읽다보면 수학적 접근이란 사실을 잊고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착각하며 읽는데 저자의 의도가 제대로 녹아든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흥미로운 책을 만나고 읽었으니 나의 신상에 대한 변화가 있어야 할 터인데 과연 어떤 면을 내 생활과 접목시킬 수 있을까? 연애부터 결혼생활까지 쭉 이야기를 했으니 책의 말미에 실린 수학적으로 부부싸움 하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점수 매기기를 통해 우리부부도 티격태격 할 때마다, 갈등이 있을 때마다 체크를 하면서 얼마나 감정에 휘둘리는지를 눈으로 파악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부터 지출 내역을 냉장고에 붙여두고 적다보니 내가 뭘 낭비하고 있는지가 보였는데 남편과의 감정 소모에 대한 표를 작성하다보면 좀 더 신중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 방법이 얼마나 도움일 될지 알 수 없으나 보다 나은 결혼생활을 하기 위한 조그만 노력이라 생각하고 시도해 보려 한다. 수학에 완전히 등을 돌릴 정도로 상관없이 살아왔던 내가 이러한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러리스트의 아들 - 나의 선택 테드북스 TED Books 1
잭 이브라힘.제프 자일스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소설 같았다. 분명 저자의 성장과정이고 그가 모두 겪은 일인데도 이런 삶이 있을까 싶어 차라리 소설로 믿고 싶어졌다. 책의 제목처럼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랍비를 살해했고 수감 중에 1993년에 일어난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까지 모의했다. 저자가 겨우 일곱 살 때 일어난 일이었고 그런 아버지를 둔 삶은 정상적이지 못했다. 수없이 이사를 다녀야했고 가난에 시달렸으며 온갖 모욕과 추문, 학교 폭력 그리고 새아버지의 폭력까지 견뎌야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저자의 삶은 일그러져 버린 것일까? 부모의 잘못된 종교관에서 비롯된 비극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란 호칭은 따라 붙어 있고 그의 삶은 일곱 살에 상상해보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삶으로 흘러가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 아닌 테러를 선택한 아버지 때문에 완전히 산산조각 나 버린 가정. 아버지는 그 대가로 감옥에 갇혀 있지만 정작 모든 모욕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남겨진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과 후회는커녕 삐뚤어진 신념만 강해졌다. 아버지의 삶이 평생 감옥에 갇혀 끝나버린 것처럼 저자를 비롯한 남겨진 가족의 삶도 끝나 버린 것 같았다. 그나마 무역센터 테러를 모의하지 않았을 때는 면회도 가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희망을 얘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신념이 바뀌지 않는 한 잠깐의 평화도 유지될 수 없었다. 결국 어머니는 변하지도 않고 곁에 있을 수 없는 아버지 대신 재혼을 했지만 모든 걸 악화시킬 뿐이었다. 새아버지의 폭력을 오랫동안 견뎌야했고 그런 삶을 영위해 간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한없이 우울해졌다.


나의 세계를 정의하는 것은 가족과 친구에 대한 사랑,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또한 다음 세대에게 더 잘해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확신, 아버지가 끼친 피해의 일부를 사소하나마 힘닿는 데까지 보상하려는 욕구다. (126~127쪽)


  그런 의미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테러 방지와 비폭력 메시지를 전하는 저자의 행동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라면 아버지를 증오하며, 주어진 불우한 환경에 대한 비난을 끊지 못한 채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데 저자는 그 모든 걸 견뎠고 이겨냈으며 이제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그것이 타인을 살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살리는 일이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의 폭풍을 견디고 헤쳐 나가는 모습에 경견해지기까지 한다.


  그 모든 걸 혼자서 할 순 없었다. 자신이 테러리스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도 변함없이 곁에 있어 준 친구들이 있었고 복잡다단한 의미의 남겨진 가족이 있었다. 혼자라 느껴졌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가능했고 그런 깨달음을 얻자 자신의 고통을 뛰어넘어 타인의 고통까지 관심 갖게 되었고 어루만지게 되었다.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저자의 모습에 잠시나마 내가 가진 편견과 색안경을 내려놓게 되었다. 내 맘대로 꾸려진 나의 내면은 얼마나 많은 오해를 하고 오류를 범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시선으로 타인에게 상처가 된다면 나도 정의로운 사람일 수 없다. 내 안의 평화가 유지될 때 세계의 평화를 지키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와 내 주변인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작은 평화를 지켜가는 일. 그것도 나만의 방식이듯이 정당한 행위에 수긍하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더 오래 지켜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게 평화든 정의든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에 좀 더 긍정적인 요소가 되는 거라면 무엇이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